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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 걸린 슬로건처럼 이 영화는 “매혹적이고 도발적”이다. 아니 그보다 더 수위가 높을 수도 있다. 바로 자신의 친구의 아들과 각각 남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동양의 윤리도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떡하니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는 심정적 동의와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그저 남녀 간의 통속적인 사랑타령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릴과 로즈는 어릴 적부터 붙어 다닌 죽마고우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말도 들었지만 그녀들은 각각 결혼하고 건장한 아들을 둔 중년의 미시로 돌아온다. 아들이 스무 살이니 이들도 이제 불혹을 지나 지천명으로 가는 나이지만 몸매만 보면 자신의 아들인 톰과 이안의 누나뻘로 밖에 안 보인다.
이들이 묘한 관계에 빠져들게 된 계기엔 이들이 살고 있는 공간도 한 몫 한다. 호주의 어느 북부 해변가, 풍광하나는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인데 베란다에 나가서면 바다가 눈앞에 들어오니 지상낙원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심심하면 서핑을 하고 허기가 지면 엄마들이 만들어주는 간식을 먹는 일상이 반복되고 마치 일 년 365일 휴양지에 온 바캉스 족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이들은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살고 있다. 하루 종일 볼 수 있는 건 친구와 친구의 엄마뿐이다. 아이들에겐 아버지의 존재가 부재하다. 한 친구의 아빠는 일찍 세상을 떴고, 한 친구의 아빠는 도시로 나가 교편을 잡는다고 한다. 그러니 엄마에 대한 의지는 점점 커지고, 이들은 고립무원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있다.
엄마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아들이나 다름없는 친구의 아들과의 남녀관계가 그녀들에겐 단순한 성적 충동의 발로인지 아니면 성적 파트너인 남편의 부재가 가져온 허전함의 대체제였는지, 아이들의 이런 충동적 행동이 분명 오래 가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뿌리치지 못한 채 본능에 충실해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파국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영화엔 바다에 떠 있는 부표가 자주 나온다. 수영을 하다 잠시 올라가 쉬는 곳이기도 하고 포스터에 보이는 것처럼 엄마가 아닌 엄마 친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곳은 어쩌면 인간이 윤리적 잣대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경계를 의미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들의 최후 선택은 모두의 상처가 될 지, 아니면 상투적인 연출이지만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지 감독은 관객들에게 물음표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