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의 성공 요인
이렇게 페니키아 인들이 놀라운 항해술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부를 이룬 이유는 무엇일까? 타고난 자질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체제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대와 중세 아니 근세 초기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지중해 세계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민족은 페니키아와 그리스, 유대인, 이탈리아인들 이었다. 단순화하면 페니키아-그리스 도시국가-이탈리아 해양도시-유대인 순으로 경제 패권이 넘어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네 민족은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만 보면 중앙집권적 제국을 이루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도시국가와 지파 공동체의 자치제도 아래 살던 그들은 절대군주의 봉건제도에 살던 나라의 국민들보다 더 자유롭고 진취적일 수밖에 없었다. 비블로스에서 시작하여 베네치아의 멸망으로 끝나는 지중해 도시국가들은 결국 유럽과 아시아에서 일어난 대제국들에 압도되어 사라져 버리지만 그들은 결코 잠시 반짝하는 존재들은 아니었다.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천년 이상 유지된 이 도시국가들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엄청난 유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복과 무력, 종교가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에 교역을 통한 부의 증대를 추구했으며 그리고 육지가 아닌 바다로 진출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갔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의 큰 흐름 중 하나가 되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페니키아 인들은 훗날 세계 곳곳에 나타나는 아르메니아, 유대인, 화교, 인도인 등 상인 유민 집단의 원형이기고 하다는 것이다. 이들 상인 유민 집단은 외국에 살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한데, 원조 격인 페니키아들도 종교나 문화면에서 강력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그 이야기는 뒤 지면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어쨌든 에제키엘 예언자도 티레의 오만과 사치를 비난하면서도 이런 찬사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너는 바다에서 오는 상품들을 풀어 많은 민족들을 만족시키고 너의 그 많은 재물과 물품으로 세상의 임금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에제키엘 27장 33절)
페니키아의 성공에는 물론 지리적인 이점도 빼놓을 수 없다. 육로로 보면 페니키아는 아르메니아, 아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더 동쪽에 있는 인도에서 오는 물품의 서쪽 종점이었고, 아라비아와 홍해 연안의 자원에도 접근하기 쉬웠다. 이 상품들은 페니키아의 항구에 모였다가 지중해 각지로 팔려나갔던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고대 문명의 메소포타미아는 밀과 보리 등 곡물, 생선과 양모는 많이 생산하지만, 목재는 물론 건축용 석재나 금속 같은 전략물자가 거의 생산되지 않았다는 큰 약점이 있었다. 페니키아인들이 이런 약점을 파고 들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지리적 이점은 오리엔트에 대제국이 없을 경우에 유효한 것이었다.
해양도시 국가의 선구자였던 페니키아의 전성기는 길게 유지되었지만 세상일이 그러하듯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오리엔트에서 대제국들이 발흥하기 시작했고, 바다에서는 그리스 인들이 라이벌로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그리고 한 번도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했던 페니키아인들은 이들과 진짜 전쟁과 외교전, 경제전쟁을 같이 치르게 될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