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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품 詩品 원문보기 글쓴이: 푸른하늘저편
방황하는 청춘은 포춘텔러를 찾는다 / 곽아람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할 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상대 역술인들이 처방해주는 것은 결국 '희망'이다.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 그때까지만 견뎌' 그 한 마디를 듣고 거기에 기 대 결코 지나갈 것 같지 않은 힘든 순간을 넘기기 위해 나는 점을 보러 간다.
이대 앞에 용한 사주카페가 있다고 친구가 알려주었다. 물론 그 카페 자체가 용한 것은 아니고 거기서 일하는 '선생님' 한 분이 기가 막히게 용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솔깃했지만 나는 올해 초 다시는 점 같은 건 보러 가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었기에 유혹의 소리에 귀를 막았다. 다년간 각종 점쟁이 및 사주쟁이들을 만나왔지만 '지나고 나니 별 거 없더라'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점술계에 입문한 것은 스무 살 때였다. 자의는 아니었다. 재수생이었던 내 입시 결과가 염려됐던 엄마가 서울까지 올라와 용하다는 사주쟁이에게 거금을 주고 사주를 보고 왔다. 사주쟁이는 당시 내가 지원했던 대학 두 군데에 모두 합격한다고 말했고, 그의 말대로 나는 두 대학에 모두 합격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따님은 마흔 살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돈방석에 앉을 거고 그 운이 향후 30년 이상 갈 겁니다." 신이 난 어머니는 그 이후로 틈만 나면 그 이야기를 했다. 그분은 또 말했다. "따님은 스물여덟, 아홉 사이에 결혼할 겁니다." 나는 지금 서른인데, 미혼이다. 서른이 되면서 그의 모든 말들은 신빙성이 없어졌다.
4년 전인가, 일하다 알게 된 모 기업의 홍보팀장이 창덕궁 앞에 있다는 '기가 차게' 용한 점집을 가르쳐주었다. 약사보살을 몸주로 모시는 아주머닌데 옆자리에 앉아 일하는 사람의 인상착의까지 딷딱 알아맞힌다는 것이다. 그 주말에 당장 그분을 만나러 갔다. "내년에 아버지가 나가는 수야." 그분이 말씀하셨다. "네? 나가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겁이 덜컥 나 물었다. "음. 건강이 심하게 나빠져서 세상을 뜰 수도 있겠어." "어머, 어떻게 해요?" "방법이 하나 있지. 정초에 닭을 잡아서 굿을 하면 돼. 38만 원이야." 닭을 잡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아직까지 정정하시다.
17세기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작품 중 「점쟁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잘 차려입은 순진한 귀족 도련님이 네 명의 여성에게 둘러쌓여 있다. 맨 오른쪽에 서 있는 할머니가 바로 집시 점쟁이다. 노파는 청년에게 동전을 건네며 점괘를 말해주고, 청년은 가자미눈을 뜬 채 노파의 예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청년이 자신의 운명에 대한 노파의 장광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그림 왼쪽의 한 집시 여인은 청년의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훔쳐가고, 점쟁이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여인은 몰래 청년의 회중시계를 빼내어간다. 노파를 향한 청년의 눈동자와 청년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시계 훔치는 여인의 눈동자가 쏠리는 방향을 엇갈리게 그린 화가의 재치와 유머가 반짝이는 작품이다.
프랑스 로랭 지방에서 빵집 아들로 태어난 화가는 생존 당시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그 이후로 잊혀져 20세기까지 그다지 조명을 받지 못했다. 동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그러했듯 그는 16세기 이탈리아의 거장 카라바조의 화풍을 추종, 수많은 성화聖畵와 당대의 현실을 꼬집는 장르화를 남겼다. 「점쟁이」 역시 17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카라바조풍의 장르화 중 하나다. 점을 보고 있는 청년은 흔히 성서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로 해석된다. '돌아온 탕아'가 아직 회개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방탕하게 돈을 쓰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흡사 연극의 한 장면 같은 이 그림을 통해 화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현실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점 따위를 보지 않는다. 점을 보는 것은 마음이 불안하고 나약한 인간이다.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곤 했던 16세기부터 유럽은 징집만을 기다릴 뿐 딱히 할 일이 없는 젊은이들과 고향을 떠나 있는 수많은 군인들로 넘쳐났다. 방황하는 젊은 청춘들이 빠져들 것이라는 게 술, 노름, 여자 그리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예언 아니겠는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화가의 고향도 역시나 불확실한 운명을 집시 점쟁이에게 물어보려 하는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당대의 이러한 풍경을 풍자하는 그림을 통해 화가는 훈계한다. "오지도 않을 미래 따위 걱정할 겨를이 있으면 지금 네 주머니에서 돈을 훔쳐가는 사람들부터 살펴라." 즉, 미래에 휘둘리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드 라 투르는 이 그림뿐 아니라 카드놀이에 빠져 사기당하는 젊은이를 그린 「카드놀이 사기꾼들」 을 비롯해 수많은 교훈적인 그림들을 남겼다. 그러나 정작 화가 본인은 민중을 돌보지 않고 농민에게 린치를 가하는 등 반민중적인 행위를 일삼은 탓에 1652년 1월 일가족이 학살당하는 불운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에 대해 불길한 소리를 했던 창덕궁 보살 이후에도 수많은 곳에 미래를 물으러 갔다. 들어맞은 것도 몇 가지 있었고, 영 엉터리도 많았다. 일산의 한 점쟁이는 '스물아홉부터 이름을 날릴 것'이라고 했다. 스물아홉에 이름을 날리기는 했다. 지방 순환근무를 하면서 지방면 한 면을 메우느라 하루에도 기사를 20~30매씩 썼으니까. 대신 본지에 기사를 거의 안 써서 경기 남부 이외의 지역에 사는 지인들은 내가 회사를 그만둔 줄 알았단다. 친구들과 함께 갔던 압구정동의 한 사주카페의 그 사람은 "셋 중 당신이 가장 먼저 결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머지 친구 둘이 벌써 결혼한 가운데 나만 아직 싱글이다. 꼬박 3시간을 기다려 만난 강남의 한 '도사님'은 날더러 "경영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이미 미술사 대학원에 합격한 상태였다. 3년 전쯤에는 영어 학원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의 추천으로 평창동에 있는 한 무당에게 점을 보러 갔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무녀는 목에 염주를 걸고, 한 손엔 방울을 짤랑거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쌀을 뿌리더니 말했다. "좋네요. 당신 같은 사람은 점 보러 안 와도 됩니다. 사주가 참 좋아요. 앞으로 평탄하게 잘 살 겁니다." 그 이후로 2년간, 내 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을 보냈다.
아무리 용한 점쟁이나 사주쟁이라도 내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지는 못한다. 더 문제인 것은 만일 우연히 그들이 내 미래를 맞힌다고 해도, 그래서 내게 엄청난 불운이 닥친다고 해도, 내가 그것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닥쳐오는 순간순간이 스쳐갈 때까지 버텨내는 것, 바람이 불면 납작 엎드려 바람을 피하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비가 멎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살아가는 데 그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언젠가 엄마가 말했다. "과거에 집착 말고, 미래를 걱정 말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라." 그러는 우리 엄마 역시나 복채에 엄청난 액수의 생활비를 쏟아 부었다.
나는 여전히 '점'과 '사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할 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대안(비록 그것이 적절치 못하다 해도)을 제시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술인들이 처방해주는 것은 결국 '희망'이다. 어떤 역술인도 내 미래가 계속 어두울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 그때까지만 견뎌', 그 한 마디를 듣고 거기에 기대 결코 지나갈 것 같지 않은 힘든 순간을 넘기기 위해 나는 점을 보러 간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 회사 일이 잘 안 풀릴 때,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그리고 '언젠가는'이라는 불확실한 예언을 듣고 와 아편 주사라도 맞은 듯 순간순간을 잘도 넘겼다.
친구가 추천해준 이대 앞 사주카페엔 마침내 다녀왔다. 복채가 1만 원밖에 안 하는 데다가 주변 사람들이 다녀와서 다들 "정말 용하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2시간을 기다려 겨우 얼굴을 마주 대한 그분은 묻지도 않았는데 "2010년에 결혼운이 있다"고 말했다. "남편감은 이정재 스타일, 키 178센티미터 이상에 자상하고 부성애가 강한 남자야." 순간 기분이 좋아진 나는 "대체 그 멋진 남성은 언제 나타나나요?" 하고 물어보았다가 "너 점 보러 왔어? 사주 보러 온 거잖아. 내가 점쟁이야? 그런 걸 맞히게"라는 타박을 듣고 잔뜩 기가 죽어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그분의 말씀을 경청했다. 뭐, 딱히 나에 대해 정확히 분석하고 있지도 않았고, 예언이라는 것도 일관성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데다가 그분을 기다리느라 보낸 시간과, 마신 차값과, 왕복 차비, 복채 등등을 떠올리자니 흡사 조르주 드 라 투르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나는 '이정재' 한마디만 가슴에 담고 나머지는 흘려버리기로 했다.
-「그림이 그녀에게」(아트북스, 200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