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출판놀이 원문보기 글쓴이: 출판놀이
격월간 웹진 『비평공간』 7호
‘블랙북’ (김하연 저 / 슈크림북) 토론
2025년 12월 15일 발행 / 출판놀이
이야기밥 :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비 : 안녕하세요. 왜 이 책을 고르신 거예요?
이야기밥 : 지금까지 청소년들이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토론을 해 오고 있는데요. 『블랙북』은 올 해 나온 책인데도 판매 포인트가 꽤 높더라고요. 청소년들과 대중들이 많이 읽는 책인 거지요. 읽어봤는데 마법이라든가 판타지라든가 그런 공부를 하는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블랙북』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마법을 다루었어요. 청소년문학에서는 ‘일상의 매직’이 장르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요. 마법의 본질은 뭘까? 이런 생각부터 시작해서 공부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품성에 대해서는 각자 느낌이 다르실 테니까, 그런 얘기도 나누고요. 재미있는 토론 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청소년 문학이 대중 문학의 성격을 띠는 쪽으로 발전해 가는 것 같아요. 드라마나 웹툰, 웹소설 등과 장르를 넘어서 서로 교류하는 것 같거든요. 청소년 문학도 점점 재밌어지는 것 같아요.
그럼, 작품 읽은 소감부터 나눠보겠습니다.
하늘 : 처음에는 대중적인 책으로 느껴져서 좀 그랬는데요. 읽다보니까 뒤가 궁금하고 너무 재밌어서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아이들이 보았을 때는 더 재미있다고 느낄 것 같아요. 제 딸이 중학생인데 책 제목하고 표지만 보고도 너무 재미있겠다면서 꼭 읽어보고 싶다고 얘기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띠지에 쓰여 있는 ‘내일 일어난 일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이런 문구만 봐도 다가오는 게 있나 봐요.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전청당』을 썼던 히로시마 레이코가 떠올랐는데요. 히로시마 레이코 작품을 읽을 때도 너무 재밌어서 끝까지 책을 놓지 못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이 책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구름이 :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내일을 알려준다는 문구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고요. 약간은 좀 뻔한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갖고 읽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뻔 하지 않아서 좋았고요.
저는 중간까지는 약간은 지루하게 읽었거든요. 독자로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간혹 있었어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재미있었고요. 책을 덮고 나서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되게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래를 안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나비 : 처음에는 그냥 좀 시시하겠지, 하는 편견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앞부분에 그런 편견을 완전히 깨주는 부분이 있었어요. 일단은 문장이나 서사 전개가 빠른 템포로 진행되어서 지루한 감 없이 읽히게 하는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부분이 하나도 없었어요. 굉장히 라이트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너무나 분명했고요.
서사도 복잡하거나 그렇진 않은데요. 높낮이가 없는 그런 서사를 정리하다 보면 밋밋해서 지루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럴 때마다 적재적소에 핀포인트를 하나씩 꼭 넣어 주셨더라고요. 그런 부분들도 되게 인상적이었고요.
엔딩으로 치닫는 부분에서는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는데, 최근에 읽었던 베스트셀러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이것이 베스트셀러의 공식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야기밥 : 최근에 읽었던 작품 중에 이 작품이 가장 재미있었다는 거죠?
나비 : 네. 이꽃님 작가의 책들이 더 베스트이긴 하지만요. 저는 이꽃님 작가의 책들에서, 편차는 있지만, 작품마다 설득되지 않은 부분들이 두세 군데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결에서, 이런 흐름에서, 저항감이 든다거나 하는 점들이 적었던 것 같아요.
포도 : 저는 선생님이 포스터를 올렸을 때 제목만 보고 다른 책을 읽었어요. 그래서 책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참여하게 됐어요. 제가 오늘 토론에 어떻게 참가해야 하나, 당황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밥 : 어떤 다른 책을 읽으셨어요? 제목이 어떻게 돼요?
포도 : 블랙북이요. 『The Black Book of Secrets』라고 해서, 블랙북이라는 제목의 책이 따로 있더라고요. 꽤 유명한 작품인데요. 2007년에 출간되었을 당시 꽤 많이 회자되었던 작품인 것 같아요.
이야기밥 : 저자가 어떻게 돼요?
포도 : F. E. 히긴스라고, 영국작가예요.
이야기밥 : 재밌네요. 우리 인생도 정해진 대로 가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직선의 길을 가고 있다면, 꼭 어느 한 사람은 삐딱하게 곡선으로 휘어져서 걸으면서, 직선으로 걷는 사람들하고 충돌을 일으키면서 의외의 일을 발생시키거든요.
문학이라는 게 논문 쓰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블랙북』이라는 제목을 가진 또 다른 비슷한 책을 읽고 오신 분이 『블랙북』을 읽은 사람들하고 충돌하면서 무슨 우연의 효과가 발생하는지 한번 봅시다.
메론 :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어요. 제목을 보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첫 페이지를 열었죠. 아니나 다를까 재미있는 소재를 정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요즘에 핫한 케데헌 생각도 났고요. 다 읽고 나서는 이 작가가 베스트셀러를 만들려고 작정하고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 글쓰기 공부 중이라 플롯이 뭔지 아직 잘 모르지만요. 애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와 흔한 가정불화의 문제를 서사로 엮고, 4명의 주인공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인데, 툭툭툭툭, 지루하지 않게 새로운 인물들의 사건을 계속 발생시켜서 재미있게 잘 쓰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데미안』을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중반부에는 『데미안』도 불현듯 떠올랐어요. 『데미안』이야 워낙 대가가 쓴 작품이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꼭 청소년들이 고민할 법한, 재미있을만한,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나? 작가가 베스트셀러를 만들려고 그러신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의구심, 반문이 들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야기밥 :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는데, 『블랙북』을 쓴 작가는 장르 문학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쓰면 대중들이 읽을 것이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간파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어요. 대중의 감각을 잘 수렴해서 썼다, 반영해서 썼다고도 볼 수 있고요. 되게 영리한 작가인 것 같죠.
메론 : 저도 그렇게 쓰고 싶어요. 선생님.
이야기밥 : 그렇죠. 남이 쓴 것을 보면 쉬워 보이는데, 내가 쓰려고 하면 진짜 어려운 게 판타지예요. 판타지라는 게 왜 이렇게 쓰기 어려운지도 우리 얘기해 봅시다.
장르 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블랙북』은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이런 작품을 ‘에브리데이 매직’이라고 해서, 일상의 매직이라고 그러잖아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매직이 막상 쓰려고 하면 상당히 어렵거든요. 장르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이해하면서 써야하는데, 『블랙북』이 일상의 매직에서 장르 문학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을 잘 활용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메론 : 제가 읽었던 책 중에서 선생님이 추천했던 『몬스터 콜스』와 비교해 볼 수 있는데요. 그 작품보다는 판타지적 요소가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소년을 대상으로 써야 하는 한계점이 있겠지만, 제가 『블랙북』의 주인이 된다면, 좀 더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는 일을 물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몬스터 콜스』는 살아있는 것이 대상이었잖아요. 판타지이지만, 살아서 존재하는 나무가 대상이었고요. 『블랙북』은 무생물로 존재하는 사물이어서 그런지 약간 판타지와 현실의 세계가 밋밋하다, 얕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늘 : 이 작품은 장르 문학으로서의 요소가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프롤로그에 교수가 등장을 하는데요. 교수가 블랙북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쓰고 그러는데, 이런 요소가 요즘에 동화도 그렇고 청소년 소설에도 그렇고 참 많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런 요소가 들어가는 것에 의문이 있는데, 아이들은 꽤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최근에 읽었던 책도, 왜 이렇게까지 쫓고 쫓기고, 암울하고, 그런 요소들이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이들은 그 부분을 되게 재밌게 보더라고요. 이런 요소가 들어가야 아이들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보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밥 : 살아보면 우리의 일상이라는 건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고 늘 되풀이되는 과정이잖아요. 일상을 살아가는 게 사실 가장 힘든 일이예요. 또 어떻게 보면, 일상이라는 것은 늘 불안하고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있는데, 이 판타지는 일상에 뭔가 틈을 만드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일상 속에 살면서도, 일상과는 다른 비일상의 세계가 우리를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지요. 또 내가 모르는 비일상이 내 내면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신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판타지라고 하는 게 단순히 공상이나 놀이가 아닌 거예요.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비일상의 어떤 경계를 넘을 때,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 뭔가 뒤통수를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일상을 살면서 무뎌졌던 감각이 막 새로 확 깨어나는 것도 같고, 그러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판타지라고 하는 장르를 유행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삶의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세계,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판타지라고 하는 문학 장르 자체가 이제는 하나의 철학이기도 하고, 삶의 본질로, 조건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은 판타지에 대해서 정의는 못하더라도 감각적으로 열려 있거든요. 많은 판타지 작품들을 접하면서 단순히 재미로만 읽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판타지라는 장르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 요소가 과연 무엇일까? 아무래도 여기서 비일상의 요소라면, 블랙북이라는 책이 갖고 있는 마법성이겠죠? 그 마법성이 바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허물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와 같은 거니까요. 이런 마법의 장치가 이 책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상투적인 것 같으면서도 늘 매력적인 게 마법이지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는 어떤 점이 있을까요? 긍정적인 요소로요.
나비 : 마법의 아이템을 블랙북으로 설정한 거잖아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아이템으로 스마트하게 설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 마법의 도구가 작동하는 시스템도 너무나 심플하고 유효해서 이야기를 읽어 나갈 때 전혀 이질감이 들거나 거슬리지 않다는 것도 장점인 것 같았고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이 마법적인 장치가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아주 스마트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진지하다거나 무게감이 있지는 않잖아요. 자칫 가벼워서 유치하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아슬아슬한, 미묘한 지점이 있는데요. 이 작품은 묘하게 유치하다는 그런 느낌이 안 들었거든요.
대부분의 책들을 보면, 이 작품보다 더 복잡한 설정과 치밀한 구성으로 되어 있어도 유치하다는 느낌이 드는 책들이 정말 많았는데, 저는 여기에서 그 교수가 등장하는 씬 말고는 그런 느낌이 안 들어서 왜 그럴까,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이야기밥 :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내일을 예언하는 마법 책이 마법 도구로 지금 나왔는데, 이게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메론 : 작가가 중학생들의 일상이나 학교생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작가에 대해 찾아봤는데요. 그림책 번역도 하고, 동화책도 많이 쓰셨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문체 자체가 가독력이 있고요.
중학생들의 일상이나 중학생들이 고민하는 문제도 제법 잘 알기 때문에 판타지적 요소, 마법 요소를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밥 : 나비 씨의 문제의식을 들으면서 얼핏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 작품이 처음에 읽어 나갈 때는 가볍게 느껴지는데, 이 가벼움과 무거움이 균형을 유지하게끔 하는 요소가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 주인공들 부모의 고립성이 있거든요. 재승이하고 소진이, 이 두 아이의 가족사가 상당히 깊어요. 가족사를 상당히 절절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요.
재승이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자기 목숨하고 바꿀 수 있다고 하잖아요.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결국은 아이를 낳고 죽은 것 아닙니까.
이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라는 거지요. 엄마 부재의 고립성의 강도가 아주 세다고 봐야 되겠죠. 아빠는 약사인데 그래도 아이를 잘 케어하면서 키우는 것 같아요. 어쨌든 워낙 무거운 가족사가 있기 때문에 작가가 영리하게 스토리를 가볍게 끌고 가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 같거든요. 작품이 다운되지 않도록 하는 거지요.
그리고 소진이라는 여자아이가 나오는데,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엄마하고 아빠가 불화를 겪지 않습니까. 아빠는 엄마 탓하고, 엄마는 아빠 탓하면서 왜 서로 돌보지 않았냐고 싸우잖아요. 그러던 중에 엄마가 진실을 얘기하는데요. 놀이공원에 소진이 네가 데려가지 않아서 사고가 난 것 아니냐. 그러던 중에 아빠는 집을 나가서 다른 사람하고 살고요. 가족사의 강도가 아주 세지요.
이런 내용을 리얼하게 그린다면 너무 절절해서 정말 읽기에도 부담스럽게 그려지기 쉬운데, 작가는 아주 담백하게 처리한단 말이에요. 이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판타지라고 하는 마법장치로 상쇄시키면서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나비 씨는 어떠신가요?
나비 : 말씀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요. 이 절절하고 무거운 가족사를 이렇게 얘기하고 넘어간다고? 너무 간결하게,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서 특이하게 보이는 부분들이 더러 있었거든요. 그런 부분이 오히려 밸런스를 맞추면서 독자로 하여금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밥 : 물론 마법의 진성성에 대해서는 토론해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뒤에 가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고요.
이 작품을 대중 문학이 되도록 만들어 낸 요소 중의 하나는 주인공들의 고립성과 마법 요소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 무거움과 가벼움을 잘 조절한 점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균형 감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이런 점은 작가가 정말 칭찬받을 만한 점인 것 같습니다.
구름이 : 저는 『블랙북』에서 가장 좋았던 게 바로 내일의 일을 알 수 있다는 거였거든요. 몇 년 후나 미래가 아닌 바로 내일의 일을 안다는 그 설정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재승이가 블랙북에 소진이에 대한 질문을 하잖아요. 보통 청소년들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에 집중하고 궁금해 하고 그럴 텐데, 재승이는 처음에 엄마에 대한 질문을 물어본 후로는 수진이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하거든요. 블랙북의 재능을 타인에 대한 삶을 위해 쓰는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거든요. 재승이는 소진이와 친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학대 받는 것을 눈치 채고, 블랙북을 이용해요. “너 내일 아빠 오니까. 집에 가지 마.” 소진이도 재승이와 친하지 않았는데, 너무 당연하게 재승의 말을 따라요.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위해서 이 둘의 서사를 건너 뛴 건지, 아니면 제가 캐치를 못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소진이라면, “뭔 상관이야.” 그런 반응을 했을 것 같거든요.
미래를 알게 된다면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몇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오디션을 보는 친구의 경우도 있고, 교수의 경우나 엄마의 경우도 있고요. 재승의 경우 블랙북을 사용하면서 성장하잖아요. 작가가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작가의 고민이 느껴졌어요.
이야기밥 : 재밌네요. 역시 청소년 소설 작가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마법을 쓰는 방향이 다르다는 거지요.
보통 어른들이라면, 교수처럼 자기 욕망 충족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쓰는데, 재승이의 마법의 방향은 타자의 고통을 향해 있어요. 그런데 교훈적으로 읽히지는 않거든요. 그렇다고 러브라인이 그려지지도 않아요. 그냥 친구를 위해 마법을 사용하는 거예요. 그런 게 오히려 청소년답기도 한 것 같고요. 재미있는 부분을 포착하셨네요.
메론 : 앞서 말씀하신 것에 연결 지어서 이야기를 해 보면요. 제가 블랙북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쓴다면 내 욕망이 중심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밋밋한 스토리가 될 수 있는 마법인데 4명의 주인공들의 무거운 가정사와 밸런스를 맞추며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하셨잖아요.
4명의 주인공들이 일반적인 중학생들이 가질 법한 고민을 가졌다고 생각했을 때, 그러한 고민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해 줄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서, 1시간 후도 아니고, 5년이나 10년 후도 아니고, 내일을 알려주는 질문을 하는 실정을 만든 것 같아요.
구성이나 재미를 주기 위해서 요소 요소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좋았고요. 잘 쓰인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감동적이기도 하고요.
이야기밥 : 쉽게 쓴 것 같으면서도, 읽히게 쓴다는 게 사실 더 어려운 거거든요. 저는 이 작가가 판타지라는 장르적인 특성을 상당히 잘 알고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판타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판타지를 쓰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판타지는 작가가 하나의 우주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과대하게 해석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만든 시공간의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규칙을 만들어야 되거든요. 이 작품은 일상의 매직이니까, 일상이라고 하는 고정 관념화되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고리타분한 질서와는 또 다른 하나의 질서를 창조해야 하는 거예요.
질서를 창조한다는 게, 두루뭉술하게 어느 이상한 나라가 있었어, 이런 게 아니고, 그 질서가 움직이는 새로운 규칙을 정확하게 만들어 내야 돼요. 움직이는 하나의 법 같은 거죠. 그런데 그게 사실은 잘못하면 엄청 유치하고, 결코 쉽지가 않거든요.
작가는 블랙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마법이 움직이는 규칙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지요. 71쪽에 보면 마법책이 움직이는 규칙을 요약해 놓고 있습니다. 제가 한번 천천히 읽어볼게요.
1. 블랙북은 전체적으로 검은색이다. 크기는 가로 12cm, 세로 15cm.
2. 오늘 날짜가 적힌 페이지만 하얀색이다.
3. 사용자는 내일에 대한 질문만 쓸 수 있고, 답은 블랙북이 준다.
4. 질문은 하루에 한 개만 쓸 수 있다.
5. 블랙북의 답은 언제나 진실이다.
6. 내일이 되면 전날 썼던 페이지는 사라진다.
7. 남은 페이지 수는 올해의 남은 날짜 수와 일치한다.
8. 블랙북은 불에 타지 않고 물에도 젖지 않는다.
+추가
9. 매월 첫날, 블랙 북은 이달의 탄생화를 선물한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재밌네, 이런 게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쉬운 게 아니거든요. 새로운 현실의 질서를 이루고 있는 규칙을 법처럼 만든 거잖아요. 그런데 이게 스토리 속에 녹아들어가서 아귀가 맞으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게 쉬운 작업이 아닌 거예요.
이 작품이 보면 판타지의 가장 기본적인 문법을 단순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가 “일상의 매직은 이렇게 쓰는 거예요. 한 수 배우세요. 일단 이렇게 규칙을 정하세요.” 마치 창작 기법처럼 그렇게 알려주는 것 같아요.
작가가 판타지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스토리에 녹여내면서 전체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어떻게 생각되시나요?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나비 : 도표가 아니더라도 블랙북의 규칙이 문장에서 드러나잖아요. 그리고 블랙북의 규칙이 복잡하지 않거든요. 흥미로웠던 것은 규칙을 한꺼번에 다 드러내지 않고 조금씩 뿌려주면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드는 점이었어요. 흥미가 떨어뜨리지 않게 작가가 완급을 되게 잘 조절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규칙들이 아홉 가지, 열 가지가 있지만, 얽히고 설켜서 신경을 쓰면서 읽어야하는 게 아니라, 너무나 심플하고 명료해서 이야기를 읽을 때 논리적으로 거슬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떤 작품들을 보면 그 정교한 구성이 이야기와 결합되면서 몰입감을 깨뜨리기도 하는데 『블랙북』은 그렇지 않은 점도 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모 : 저도 이 작품의 긍정적인 면을 여섯 개 정도 정리를 해 봤어요. 제 취향의 판타지는 아니었지만, 아동학대 당하는 소진의 심리를 되게 섬세하게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전체적인 내용이나 글을 쓰는 스킬이나 그런 부분이 다 좋으신 것 같아요.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으로 촘촘하게 잘 짜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저는 인물 관계라든지 그런 것을 그려내는 부분에서 잔잔한 감성을 느꼈거든요. 엄마가 블랙북에 남겼던 일기 내용이라든지 그런 설정들이 애잔한 느낌을 주면서 여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밥 : 균형감각을 갖기 위해서,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부족한 점이라든가 한계라든가, 그런 점을 이야기 해 볼까요?
모모 : 되게 잘 쓴 판타지이긴 한데, 한계도 느꼈거든요.
블랙북의 기능이 내일에 대해 아는 거잖아요. 내일에 대해서만 알 수 있고, 대답도 예스 아니면 노 밖에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 상황에서 유주는 자기가 탈락할 걸 알게 되어서 아이돌 꿈을 미리 접게 되고, 소진이는 아버지가 오는 날짜를 알아서 피할 수 있게 되고, 재승이는 혼자였는데 블랙북 덕분에 아이들하고 친해지게 되거든요.
블랙북이 판타지의 중요한 요소인데, 저는 이야기의 스케일 자체가 좀 작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블랙북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스토리인 것 같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블랙북의 기능은 더 판타지스럽고 좀 더 거창했던 것 같아요.
의문점도 있는데요. 매달 왜 꽃이 나오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꽃을 좋아하기도 하고 감동을 느끼기도 했지만 꽃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이해가 잘 안되었어요.
그리고 한 에피소드를 깊게 풀어도 될 것 같은데 인물 관계를 그리기 위해서인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잖아요. 가정 폭력이라든지 친구간의 우정,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 들어 있어서, 무겁기도 하고 살짝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현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여서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밥 : 토론을 위해서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해 보면요. 판타지 작품을 읽고 나면, 감동이 밀려 와야 되거든요.
판타지를 연구하는 톨킨 같은 사람도 그런 얘기를 하는데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새로운 하나의 질서를 가진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게 상당히 어렵거든요.
독자들은 아주 영악하기 때문에, 작가가 만들어낸, 일상의 새로운 규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세계가 얼마나 삶의 진실성을 가지는지 따지거든요. 그것을 내적 공간의 진실성이라고 부르는데, 리얼리즘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이나 예외는 없는 것 같아요. “좋아. 네가 마법을 쓰든, 마법 할아버지를 쓰든 다 좋아. 내가 다 받아줄게. 근데 왜 너는 이런 공간을 창조해서 인생의, 삶의 무엇을 추구하려고 한 건데?” 이런 질문을 할 때 순수 문학이 되고, 독자들이 작가의 세계관이나 철학에 대해서 인정을 하며 감동을 하는 거지요.
대중 문학에서 한 발 더 나가는 질문을 던지는 건데요. 저는 엔딩 부분에서 의문이 들기도 하고 좀 힘들게 읽었던 부분이 있는데, 229쪽에 엄마의 편지가 있거든요.
엄마라는 인물 창조가 제가 볼 때는 재승이의 본질이라든가, 무의식을 드러내는 부분이거든요. 재승이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부분이에요.
재승이는 엄마에 대해 간절함을 가지고 있는 아이잖아요. 저는 이 작품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고, 가장 무게가 있는 부분이 엄마의 편지, 엄마가 남긴 후일담이라고 보았어요. 엄마가 헌책방에서 마법의 책, 블랙북을 보지 않습니까. 229쪽 읽어 볼게요.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늘은 그 책을 들고 잠시 외출했다.
그러니까 아기를 낳기로 한 날인데, 아기를 낳으면 약해진 몸이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단 말이에요. 결국 엄마가 궁금해서 질문을 하잖아요. 내가 아이를 낳으면 죽느냐 사느냐? 너무 절절한 질문이잖아요. 그런데 NO가 나왔어요. 죽는다는 뜻이죠.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감정이 막 투사가 되는 거예요. 이 블랙북이라고 하는 예언을 해 주는 책은 한 인간에게 행복인가, 저주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모르는 게 더 좋은 건가, 아는 게 더 좋은 건가.
근데 작가들은 철학자거든요. 작가들은 작가이면서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탐구하잖아요. 그리고 청소년들도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다 깨우칠 수 있단 말이죠.
228쪽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나는 내일 죽는다.
이 책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 사실이겠지.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인생이 아깝기보다는 아기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렇죠. 이해가 되죠. 죽어도 아기를 낳겠다는 결심은 본인이 선택한 것이지만, 아이는 엄마 없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다시 229쪽을 읽어볼게요.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늘은 그 책을 들고 잠시 외출했다. 그 책을 발견한 헌책방에 책을 다시 꽂기 전, 책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인사, 아니 마지막 부탁을 했다.
언젠가 우리 아이에게도 찾아가 주지 않겠느냐고.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숨이 좀 막혔어요. 왜냐하면 앞에서부터 내일을 알려주는 것이 저주인가, 행복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거든요. 작가는 엔딩에서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떤 답을 줄 것인가, 어떤 답으로 내 뒤통수를 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던 거예요.
이 장면에서 엄마는 가장 진실해야 되는 거잖아요. 가장 예민해야 되는 거고요. 어느 누구보다도 절대 절명의 자리에서, 아이를 낳고 죽어야 될 운명을 알아버린 엄마가 하는 이야기잖아요.
언젠가 우리 아이에게도 찾아가 주지 않겠느냐고.
나를 도와준 것처럼 그 애에게도 힘이 되어주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내일 아기를 안아 볼 때까지는 제발 의식이 남아있게 해달라고. 단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고 직접 속삭이고 싶으니까.
저는 이 장면에서 작품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고 허물어지는 느낌을 좀 받았어요. 작가는 왜 엄마한테 이런 멘트를 하게끔 만들었을까? 이 장면에 대한 이해가 저는 잘 안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점치러 다니면서 미래를 알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점은 다 맞지 않기 때문에 유머가 되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점을 치러 가면서도 맞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또 삶을 이겨내며 살기도 하고, 양가감정이 있기도 하고요.
판타지 문학이 대중 문학에서 순수 문학의 자리로 오면서 문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만든 규칙의 공간이 삶의 어떤 진실성을 내포한 공간이냐, 그 문제에 대한 질문이 마지막에 남는 건데요. 참 어려운 질문을 던진 책이었어요.
물론, 답은 없는 거지요. 우리가 여기서 선악을 말하자는 건 아니고요. 어쨌든 좀 충격적인 멘트이긴 했어요.
나비 : 저도 선생님처럼 생각하면서 그 장면을 읽었는데요. 231쪽 중간에 보면 재승이가 “나는 이제 블랙북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엄마의 편지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상쇄된 면이 있었어요.
근데 또 다음 장 넘어가면 블랙북이 조그만 꼬마 아이에게 가는 거예요. “그럼…… 제가 가져도 돼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맺음이 되는 것을 보고 저는 작가가 규칙을 충실하게 따랐다고 이해한 것 같아요. 마법의 도구를 서사의 주인공이 충분히 다 쓰고, 기승전결 새로운 변화의 어떤 지점에 도달하고 나면, 이 마법의 도구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또다시 전달되는 공식을 따른 게 아닐까? 엔딩이 좀 약간 아쉽기는 했죠.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도 떠올랐어요. 엔딩 맺는 방식이 유사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밥 : 에필로그를 보면 이 운명의 블랙북은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누군가의 손에는 전달돼야 한단 말이죠. 결국 어떤 여자아이한테 전달되는 것으로 끝나거든요. 재승이 경우처럼 행운으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이 시한폭탄 같은 블랙북이 한편으로는 엄청난 불운으로 작동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저는 행운보다는 불운 쪽으로 더 많이 작동할 것 같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런데 이 블랙북이 여자아이한테 이동해 가는 장면으로 끝난 거 보면, 요즘 청소년 작가들이 정말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섣불리 해피엔딩을 만들지 않고, 열린 결말로, 독자들한테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있어요. 아주 묘한 느낌이 드는 결말이었습니다.
하늘 : 메론 님이 꽃이 왜 나오는지를 궁금해 하셨는데요. 엄마가 쓴 편지를 보면 꽃이 나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까 나비 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 작품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와 엔딩이 비슷하거든요. 작품을 읽고 엄마의 간절함이 판타지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되게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저도 아이를 낳아 본 엄마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에필로그가 나오면 안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꽃이 나오는 걸 보면 엄마가 만든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엄마로 인해 힘들었던 재승이가 이 모든 걸 해결했기 때문에 작품은 거기서 끝나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여자아이한테 또 책이 가는 걸 보면서 블랙북 투가 나오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부분만 없었으면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처럼 엄마가 만든 판타지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랬으면 더 좋았겠죠.
메론 : 판타지 소설이나 문학 작품은 독자에게 명쾌하게 결말을 내던지지 않고 약간의 여운을 준다고 해야 하나, 그 이후의 일은 너희들이 좀 생각해 봐, 그렇게 끝나는 이야기가 꽤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에필로그를 읽고 저 엄마가 도대체 뭐야? 하고 생각을 했거든요. 문학적 장치라고 해야 하나.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던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꼬마용이 하늘로 날아가잖아요. 엄마랑. 그것도 여운이 있었고요. 끝에 주인공 남자랑 여자랑 마무리가 될 때도 여운이 느껴졌고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명쾌하게 결말을 내지 않고 여운을 주면서 맺음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작품에서 느낀 단점은 교수라는 악역이 조금은 심플하게 그려지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는데요. 일반적으로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도덕적인 면이 있는데, 작품에서 반전을 주고 있잖아요. 현실에서도 나쁜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아이들한테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점은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경찰한테 잡히고, 흐지부지 되는 것을 보면서 약간 개연성이 미흡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이야기밥 : 교수를 통해서 블랙북이라고 하는 예언을 하는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행태를 볼 수 있는데요. 이 교수라고 하는 나이를 좀 먹은 어른은 블랙북으로 인해 완전히 파멸을 하잖아요. 로또 복권 맞은 사람들은 대게 인생이 망가진다고 하는데, 마치 예언서가 로또 복권처럼 작동해서 파멸되는 사람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어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재승이라든가 청소년 아이들은 로또 같은 욕망의 예언서를 잘 컨트롤해서 저주에 걸려들지 않는 방향으로 잘 사용하고 있단 말이죠.
보통 대중 문학은 선과 악, 이렇게 대비되는 인물이 나오거든요. 거기서 오는 단순 재미가 있단 말이죠. 교수하고 청소년 아이들의 캐릭터가 대비되고 있는데요. 교수라는 캐릭터의 어른이 예언의 책을 가졌을 때에는 결국 단순 욕망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청소년들에게 이 작품의 주제를 굳이 말한다면요. 미래를 안다는 것은,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결국 오늘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현재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미래가 예정된 삶은 결국은 죽음이라는 거지요. 새롭게 창조하는 현실 감각이 다 무뎌지고, 무기력해 지는 거예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예언을 갈망하는가? 그것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예언서가 있다면 대게 99%는 돈을 버는데 이용하다가 결국 망할 것 같은데, 1% 청소년들의 건강한 욕망의 방향을 드러냈다, 이렇게도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청소년들은 오히려 그 유혹을 벗어나서 현재를 살고 있지, 예언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봉봉 : 청소년문학에서 판타지를 소재로 한국 사람이 쓴 책은 처음 접한 것 같아요. 소재가 미래를 알려주는 책인데, 딱 내일이라는 시간을 정해서 질문 하나만 알려주는 정도여서, 이런 조건이라면 나는 어떤 소원을 빌 건지 생각을 해봤거든요. 이러한 소재로, 아이들이 생각할 법한 작은 주제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어요. 큰 주제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저는 더 좋았던 것 같고요.
앞서 말씀 해주신 것처럼 욕심 많은 어른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이용하고 또 파멸하는지 막힘없이 서술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도 이런 소재로 판타지를 써도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해 봤고요.
작품에서는 중학생들로 주인공을 설정해 놓은 것 같은데, 아이들이 하는 고민의 깊이가 그렇게 많이 심오하거나 깊지는 않구나, 그런 생각도 했고요. 공부가 많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밥 : 내가 볼 때는. 이런 책이 무서운 책인 것 같아요. 쉽게 읽히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쓰기는 쉽지 않은 작품인 거죠. 판타지 공부하는 분들이 이 작품을 잘 읽고, 판타지에 작동하는 장르 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을 한번 살펴보면 배울 점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정리할 겸 돌아가면서 한 말씀씩 하시면 좋겠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가 있으면 하셔도 좋고요.
하늘 : 못했던 이야기가 있는데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시점이 흔들리는 부분이 있지 않으셨나요?
이야기밥 : 있었어요.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하늘 : 재승이 시점에서 썼다가, 그다음에 소진이 시점에서 쓴 것 같은데, 또 보면 아니에요. 시점이 많이 흔들리는 것 같아요.
나비 : 혹시, 보신책이 1쇄예요?
하늘 : 네, 1쇄예요.
나비 : 다음 쇄에 수정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1쇄에 오탈자도 많았다고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시점이 잘못된 것도 많긴 하더라고요.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지를 하고 있는 부분들은 수정이 되었다고 전해 들었어요.
하늘 : 저도 판타지 작품을 써봤기 때문에 작가가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이런 공식을 가지고 작품을 써 보았는데,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재밌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메론 : 가볍게 느껴진 이유가 중학교 청소년 대상의 이야기여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가벼운 주제를 활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고요.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됐을 때 이 책을 추천하겠느냐고 물어보면, 추천은 안 할 것 같아요. 굳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든 과정을 겪는 청소년들도 있지만 반면에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거든요. 굳이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어두운 면을 들춰가며 깨달음이나 삶에서의 방향을 배워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은 작가가 좁은 공간을 만들어서, 그 틀 안에 아이들을 몰입시키잖아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데미안』 같은 잘된 문학 작품들은 그 공간은 정해져 있지만, 사고할 수 있는 폭이나 넓이가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 아이가 크면 청소년 시기에 걸 맞는 문학 작품을 제시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구름이 : 작가가 과연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요. 블랙북이라는 것이 미래를 미리 아는 거잖아요. 그것은 인간의 욕망인데, 작품 속에서 미래를 알았을 때 대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 다르고요. 저는 결국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미래를 알든 모르든 오늘이 주어졌을 때,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혼자 결론을 내렸어요.
유주는 미래를 알고 나서 미리 패배감에 젖어서 화를 냈고요. 재승이는 미래를 알았을 때 그걸 바꾸기 위해서 소진이한테 계속 정보를 주었고요. 엄마는 미래를 알았을 때 겸허히 그것을 받아들였어요.
저는 소녀가 블랙북을 가져가는 결말이 좋았거든요. 독자가 나에게도 블랙북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해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것 같아서 좋았고요.
이것은 좀 뜬금없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저는 엄마가 왜 재승이가 당연히 건강하게 태어날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엄마라면 내 아들이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 그게 더 궁금할 것 같거든요. 재승이가 당연히 건강하게 태어날 거라고 확정을 하고, 자신의 죽음을 질문했던 건 좀 의문이었습니다.
나비 :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고민도 좀 많이 되었습니다. 이런 책이 인기가 많구나, 많이 팔리는 구나. 그러면 이렇게 만들어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만약 저에게 이 원고가 왔다면 어땠을까? 저는 에필로그 때문에 망설였을 것 같거든요. 에필로그를 생략하는 절충을 할 수만 있다면 오케이, 계약을 했을 것 같아요.
한 장짜리 에필로그가 뒤에 붙는 순간, 청소년 아이들에게 양심적으로, 떳떳하게 권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제 자녀에게도 권하지 못할 것 같고요. 그런데 이 작품이 대중적이기는 하고, 고민이 많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모 : 제가 꽃을 왜 주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를 했어요. 꽃은 엄마의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블랙북은 재승이하고 엄마를 연결해 주는 장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에필로그는 없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아요.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답답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앞도 꽉 채워져 있는 상태인데, 뒤에서도 반복이 되니까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는데요. 에필로그를 생략했다면 여운을 주는 결말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내용에서 회장이 코로나에 걸려서 과제 제출을 못하잖아요. 그래서 최하점을 받는데, 중요한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요. 잘 만든 영화니까 영화제에 나갈 수 있었는데 왜 굳이 그런 내용을 넣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이 작품은 미래를 안다는 것을 소재로,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인 것 같아요. 앞서 선생님들이 자신의 자녀한테는 이 작품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제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이 없어서 이해를 못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우리 아이들한테 보여줘야 되지 않나. 좋은 면, 밝은 면도 보여줘야 되지만 이런 현실도 보여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봉봉 : 앞선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에필로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했을 것 같아요. 저는 재밌게 잘 읽었고요. 《비평공간》에서 이야기되지 않았으면 어쩌면 못 보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추천을 받아서 잘 읽었습니다.
이야기밥 : 포도 씨는 『블랙북』이 아닌 『The Black Book of Secrets』를 읽으셨으니까, 그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겸, 해 주실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포도 :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니 『블랙북』은 미래를 알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제가 읽은 블랙북은 말하자면 사람들의 비밀을 적은 책이에요.
누군가의 비밀을 적게 되는 이야기고, 그러니까 누군가는 자기의 비밀을 고백하게 되는 거죠. 사람들은 누구나 다 비밀을 갖고 있는데, 그 비밀이 누군가에게 알려져서 약점이 되기도 하고요. 반면에 또 누군가는 비밀을 고백함으로써 마음이 후련해지거나 죄책감이나 어려움으로부터 놓여나게 되기도 하고요. 두 개의 상반된 비밀의 역할 혹은 비밀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예요.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 혹은 타인이 나의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 그리고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하는 행위들이 그 비밀을 가진 사람의 삶에 너무나도 다른 형태의 결과를 낳을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었어요.
선생님들이 읽으신 책에서는 마지막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서 그 미래의 블랙북을 가져가는 걸로 끝났는데, 제가 읽은 책에서는 그 블랙북을 기록하는 자가 있거든요. 그 기록하는 자가 어른인데, 다음 후계자로 넘어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요.
블랙북을 쓰는 사람이 제일 처음 하는 일은, 그 블랙북에 자신을 가장 많이 지배하고 있는 비밀, 자신의 진실을 첫 페이지에다 쓰는 거거든요.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서부터는 다른 사람의 비밀을 쓰는 거예요. 저는 아이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기를 고백하고, 이야기를 쓰게 되는 부분들이 재미있게 읽혀졌어요.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나, 미래를 알게 되는 것이 유사점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선생님들 이야기 들으면서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The Black Book of Secrets』는 2007년도에 쓰인 책으로 서양 쪽에서는 꽤 많이 읽힌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저는 선생님들이 『블랙북』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굉장히 많은 만화들이 연상이 되었어요. 『블랙북』이 하위문화에 있는 만화에서 굉장히 많이 활용됐던 소재들이어서, 유사한 장치들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하고 같이 비교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작가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상호 텍스트성을 연결해서 읽어보면 작품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밥 : 『The Black Book of Secrets』, 모르는 작품을 알게 되어 좋네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재미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비평 공간, 일곱 번째 시간인데요. 하나 확실한 것은, 대중들이 많이 읽는 작품들은 어쨌든 뭔가 있는 것 같아요. 심심하지는 않아요. 배울 점이 있거든요.
사실 저는 예전에, 베스트셀러에 대해서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문학성은 떨어진다는 교만한 생각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요. 요즘에는 그런 생각은 없고, 오히려 대중들이 좋아하는 베스트셀러라고 알려진 작품으로 문학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겸손한 자세로 베스트셀러를 읽고 공부하고 또 문학성도 추구하고요.
대중 문학과 순수 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특히 아동청소년 문학은 존재 자체를 생각할 때도 대중문학적인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비평공간》은 출판놀이에서 출판 운동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토론에 참여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문학 운동에 기여해 주시는 거예요. 오늘 말씀 참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꼭 시간 내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비평공간』 후원안내
『비평공간』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온라인에서 나눠보는 웹진입니다. 웹진의 성격상 따로 구독료는 없습니다. 비평공간의 지속성을 위해서 독자 여러분들이 후원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후원이 자본에만 예속되지 않는 아동청소년 문학판의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후원계좌 : 하나은행 376-910016-19604 이재복(출판놀이)
⊙ 『동시빵가게』
출판놀이에서 만드는 또 하나의 동시 웹진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동시빵가게>로 가시면 신작시와 시인의 얼굴을 맞이할 수 있어요.
https://blog.naver.com/dongsippang
⊙ 출판놀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출판을 해 보자’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어요. 작가들과 아동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후원으로 직접 책을 만들고, 독자들과 만나서 놀이도 하고 토론도 하고 콘서트도 펼쳐요. 독자들에게 필요한 책을 찾아내고 숨어 있는 작가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고, 책을 가지고 어떻게 놀지 생각하는 출판사입니다.
⊙ 출판놀이 후원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음 카페 출판놀이(http://cafe.daum.net/punori) 카페에 오셔서 출판놀이 ‘후원회원 소식(신청)’ 방을 클릭하시면 공지된 ‘출판놀이 CMS 후원회원 신청양식’에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습니다.
격월간 웹진 『비평공간』7호
발행 2025년 12월 15일
펴낸 곳 출판놀이
출판등록 2015년 3월 5일 757-94-00013
전화번호 02-6081-9177
전자우편 pubnori@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