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낙동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오른쪽 갯가 맥도 연밭을 둘러보았다. 늪지대에 여러 연꽃을 심어 만들었다. 넓은 연잎 사이사이에 탐스러운 붉은 꽃이 수두룩 피었다. 이곳에 겨울엔 흰 꽃이 핀다. 고니가 날아와 눈 온 듯 하얗게 깔렸다. 을숙도 끝이나 명지 바다 저 멀리 먹이 찾는 새를 볼 수 있는데 여긴 큼직한 것을 가까이서 살필 수 있다.
드넓은 연밭의 붉은 연꽃이 좋대서 한번 가 봐야지 하면서 미루다가 오늘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갔다. 동동 팔월 뜨거운 날 해양박물관으로 가면서 들렀다. 연꽃처럼 피어난 한 떨기 꽃봉오리처럼 큼직한 박물관이다. 북항의 얘기를 소복이 담아놨다. 살면서도 알 길 없었던 곳을 들어가면서 하나하나 살핀다.
미국이 개항시킨 일본이 같은 방식으로 조선을 압박했다. 군함을 앞세워 무력으로 조약 체결을 밀어붙였다. 강화도조약이 되면서 닫혔던 부산항이 빗장을 풀었다. 이런저런 불리한 조약에 말이 많았다. 고쳐나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해관이 설치되고 외국 배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항만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조선에서 바깥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실학자들은 청나라의 앞선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흐름은 개화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전통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두 목소리 사이에 혼란은 계속되었다. 결정해야 할 지도자들은 부패와 권력 다툼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대륙 침략의 길목으로 삼기 위해 항만을 넓히는 대규모 공사를 벌였다. 용두산 근처의 산을 깎아 바다를 메워 단단한 땅으로 만들었다. 북항 일대의 평평한 곳은 상당 부분이 이렇게 매립된 것이다. 우리 민중은 이 작업에 강제로 동원되어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으며 그 위에 부두와 철길이 들어섰다. 착평, 매축이라며 수탈 체제를 완성하는 첫걸음이었다.
군대와 전쟁 물자가 들어와 내륙을 드나들면서 쌀과 수산물 등 약탈물을 가득 실은 배가 쉴 새 없이 다녔다. 논밭과 어장, 산림까지 조사하며 가져가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 나갔다. 착취와 차별, 가혹한 수탈에 맞서 싸우며 버틴 항이었다.
그들의 수탈은 땅과 바다를 가리지 않았다. 농산물 생산량을 늘리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끊임없이 빠져나갔다. 조직적으로 장악한 어장에서도 조선우선주식회사를 만들어 연안 뱃길까지 독점해 나갔다. 그들이 만든 근대 항만 시설은 결국 빼앗아 가는 통로로 이용되고 말았다.
조일통상장정 개정으로 관세 부과 권리를 되찾으면서 정식 해관과 감리서가 함께 세워졌다. 비로소 해관은 오늘날 세관처럼 드나드는 배와 화물을 검사하고 수출입 관세를 걷는 기관이 되었다. 개항 이후 외국 상인에게 세금을 매길 수 있게 되었다. 감리서는 개항장의 행정과 외교, 재판, 경찰 업무까지 총괄했다. 두 기관이 함께 세워지면서 근대 항만으로서의 운영 체계를 이뤄나갔다.
육이오 전쟁 때는 유엔군의 보급 기지이자 해외 원조 물자가 들어오는 주요 통로였다. 원산과 흥남 등 북쪽 항구들이 폭격으로 파괴되면서 사실상 물자 보급의 유일한 길목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빠르게 수리 정비한 데다 운영방식도 나아져 경제를 이끄는 중심축으로 나아갔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거듭된 시련에도 나라를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피난 수도로 나라의 마지막 보루였다. 구원군과 구호물자 보급품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였다. 전쟁 중에도 운영을 멈추지 않았다. 끝난 뒤에는 무너진 시설을 복구하고 새롭게 정비하면서 현대적으로 거듭나 바닷길을 잇는 중심지가 됐다.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긴 향로보다 거리가 훨씬 줄어든 북극항로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새로운 해양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탄소 배출도 주는 이 길은 친환경 스마트로 세계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일이다. 작은 포구였던 북항에 이어 감천항과 신항을 가까이에 뒀다. 남항과 다대항도 있어 해양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항구이다.
둘러보다가 웬 배가 있어 살폈다. 조선통신사선을 절반으로 복원해 놨다. 바람으로 갈 수 있도록 닻을 올렸다. 통신사의 여러 개 방이 가지런히 놓였고 위 지붕엔 올라가 둘러보는 쉼터가 마련됐다. 조선 후기 수백 년 동안 십여 회 일본에 파견되어 양국 평화와 문화, 정치, 외교 현안을 논의했다. 문인과 필담을 나누면서 각 계층에 영향을 끼쳤다.
한때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수출 중심의 성장 정책을 폈다. 신발과 합판, 가발 경공업 제품이 나오면서 폭발적으로 수출이 늘어났다. 높은 연평균으로 증가율을 올렸다. 그런 대도 일꾼의 어깨로 짐을 나르는 힘겨운 방식이 이어졌다. 밀려드는 일감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마침 해운 시장에 컨테이너 수송 방식이 퍼져나갔다. 자성대 부두를 시작으로 전용부두가 하나둘 만들어졌다. 세계적인 항만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컨테이너선에 이어 유조선 탱커, 벌크선, 여객 크루즈선, 자동차 운반선 순으로 여러 선박이 드나들었다. 이중 절반 넘게 컨테이너선이 차지해 붐볐다. 세계적인 환적화물이 넘나드는 항구가 됐다. 수출입과 환적 물동량을 집중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벌크선과 유조선은 에너지 원자재를 수입한다. 여객선은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서이다. 한국 경제의 수출 중심 구조와 글로벌 물류 허브로의 역할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듯 해운 시장에서의 큰 변화는 규격화된 상자에 화물을 담아 기계로 옮기는 방식이 빠르게 퍼졌다. 대형 컨테이너선을 받아들이는 항만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여기에 발 빠르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부두를 자성대에 마련했음이다. 이후 경제 성장과 함께 수출입 화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신선대와 감만 등 대규모 항만을 잇따라서 만들어 나갔다. 동북아를 대표하는 항구가 됐다.
연간 2천만 개가 넘는 화물을 처리하는 곳이다. 전체 물량의 반이 최종 목적지로 가기 전 다른 배로 갈아타는 환적화물로 싱가포르에 이은 거점이다. 가덕도 신항을 중심으로 첨단 기술을 적용하여 운영을 더욱 똑똑하게 만들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체계까지 갖추는 미래 항만의 모습이다.
영도와 조도, 오륙도가 점점이 이어져 북항을 감싸고 돈다. 섬과 이어진 도개교 영도대교와 바로 아래 부산대교, 송도에서 건너가는 남항대교, 영도 동쪽 끝에서 신선대로 길게 건너는 높은 부산항대교 등 네 개가 있다. 철조망으로 가려져 오래도록 갇혔던 북항이 풀어져 둘러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