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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94강-2-a(2017. 12. 5.)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八
十廻向品 第二十五之六
四. 十廻向
7. 第六 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
(74) 廻向의 명
(75) 廻向時의 住處
(76) 一切法通達
(77) 廻向의 地位
(78) 金剛幢菩薩의 偈頌
가. 說頌因緣
나. 菩薩의 現身
따지고 보면 참사람의 경지!
진여생명의 경지를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거기에 이렀을 세. 그러므로
이름해서 회향이라고 한다.
永出諸有하야 至於彼岸일새 故名廻向이며, 그랬습니다. 모든 존재를 영원히 벗어난다. 諸有 = 있음.
또 3계 25유. 그것을 諸有라고 그렇게 말하지요.
그런 것에서 영원히 벗어나서 靈光이 獨露(영광독로)하는, 신령스러운 광명이 홀로 드러나는 것에 이르는 것!
여기서는 그것이 彼岸에 이르는 것이다.
諸有를 벗어나서, “廻小” 하면 向大가 회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회향을 설명하기로 하면 모든 존재, 그것을 영원히 벗어나서 彼岸에 이른다. 그 彼岸은 뭐라고요?
靈光이 獨露한, 신령스러운 광명이 홀로 드러나 있는 그런 경지! 거기가 彼岸이거든요. 그러므로 회향이라고 이름한다.
永捨諸取(영사제취)하야 至於彼岸일새 故名廻向이며, 그랬습니다. 영원히 모든 取 = 취착. 집착입니다.
취착을 버려서, 彼岸에 이르렀을세. 뭡니까?
집착을 벗어나면 해탈이지요. ‘해탈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우리가 회향이라고 한다.’ 이런 표현입니다.
회향 참 대단합니다.
永出世法하야 至於彼岸일새 故名廻向이니라.
세상 법을 영원히 벗어나면 뭐라고요? 출세간법.
출세간법에 이른다. 그것이 彼岸이된다. 이것은 앞서
세간을 영원히 건너서 저 언덕에 이른다.
그것을 연꽃으로 제가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것하고 뜻이 똑 같습니다. 세법이나 세간이나 똑 같은 것이지요.
저기서는 永度世間! 여기는 永出世法! 그랬습니다.
그 彼岸은 출세간! 세상에 그대로 살면서 출세간적인 삶이 돼야지요.
高原陸地(고원육지)에 不生蓮華(불생연화)하고,
저기 높은 언덕에나 잘 다듬어진 그런 정원에는 연꽃이 피지 않습니다.
卑濕淤泥(비습어니)에 乃生此華(내생차화)라.
아주 낮고 습기 많고 진흙탕, 이런 곳에서 비로소 연꽃이 핀다. 유마경에 그런 말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5온을 가지고 사는 이상은 항상 진흙탕 속에 사는 것이고 세속에 사는 것이고 세속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매일 탁발해서 이 5온 육신을 살리기 위해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5온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그 원리원칙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도교에서는 그렇게 좀 안하고 살려고 신선 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우렸습니까?
呑霞服氣(탄하복기)라 해서 아침에 해 떠오르는 것을 보고서, 해의 기운을 받아들여서 養生(양생)하는 방법 같은 것이 도교에서는 얼마나 많습니까? 무슨 辟穀(벽곡)을 한다든지, 生食을 한다든지 등등 온갖 그런 수단과 방법이 다 있지만, 태어날 때 이 5온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은 5온의 한계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결국은 돌아가셨잖아요.
아무리 오래 산사람도... 뭐 오래 사는 것 이야기하면,
‘그 사람 한 200살ㆍ한 300살 쯤 됐나?’ 저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조금 비웃거든요. ‘뭐 2ㆍ300살 살았다면 제가 인정해 주지, 그렇지만 기껏해야 100살 전후에 살다가 가는데, 뭘 그걸 가지고 그렇게 따질 것 있느냐? 그렇게 자랑스러워 할 것 있느냐?’ 저는 사석에서 더러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 5온을 가지고 사는 이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 정신세계는, 정신세계는 5온의 한계를 벗어나서 사는 길이 얼마든지 또 있습니다.
얼마든지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생사를 초월했다고 그러지, 육신마저 죽지아니하고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육신마저 영원히 금강석처럼 그렇게 사는 길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설사 다이아몬드라 하더라도 세월이 오래가면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육신가지고 어떻게 오래살 수 있겠습니까? ‘그대로 5온의 원리대로 살되, 그래도 우리 정신은 정말 고결하게, 진흙 속에서 피었지만 향기와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연꽃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그것이 수행자의 삶이고, 불교적인 보살의 삶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향이라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여기 거의 화엄경의 이치다보니까 거의 그런 내용이 일관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회향에 대해서 얼마나 장황하게 설명을 했습니까? 무슨 좋은 일 하나 해놓고, 그 보다 훨씬 열배 스무 배 그렇게 회향을 하고 그랬지요. 그것이 소위 善用其心이라.
예를 들어서 작은 것을 보시를 했다 하더라도 그 보시한 것, 물론 중요하고 값집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값진 일은 그 보시를 통해서 보다 더 많은 중생들의 어떤 문제를 연관시켜서 우리가 마음으로 잘 생각 하는 것. 그것이 善用其心! 그 마음을 착하게 쓰는 것!ㆍ잘 쓰는 것! 그런 것이 우리가 쭉~~ 보아온 회향의 하나의 방법이거든요.
(75) 廻向時의 住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則爲隨順佛住며 隨順法住며 隨順智住며
隨順菩提住며 隨順義住며 隨順廻向住며
隨順境界住며 隨順行住며 隨順眞實住며
隨順淸淨住니라
廻向時의 住處(회향시주처).
여기는 회향할 때 어디에 머무느냐? 그런 뜻입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則爲隨順佛住(즉위수순불주)며, 그랬습니다.
곧 부처님에게 隨順하여 머무는 것이 되며, 그랬습니다.
아~~ 뭐, “회향한다.”하면 바로 부처님하고 함께 사는 겁니다. 부처님께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된다. 그랬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회향 설명한 그대로 회향을 한다면 그렇지요.
隨順法住며, 법을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되며,
隨順智住며, 지혜를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되며,
隨順菩提住며, 보리를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되며,
隨順義住며, 義! 이것은 진리라는 뜻입니다.
진리를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되며,
隨順廻向住며, 회향을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되며,
뭐든지 회향하는 것!
隨順境界住며, 경계를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되며,
이 경계란 보살의 경계ㆍ깨달음의 경계라고 봐야겠지요.
隨順行住며, 행을 수순해서,
보살행하는 것을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되며,
隨順眞實住며, 진실을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되며,
隨順淸淨住니라. 청정을 수순해서 머무는 것이 된다.
이것이 회향의 결과로써 이러한 머무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76) 一切法通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하면
則爲了達一切諸法이며 則爲承事一切諸佛이라
無有一佛도 而不承事며 無有一法도 而不供養이며
無有一法도 而可滅壞며 無有一法도 而可乖違며
無有一物도 而可貪着이며 無有一法도 而可厭離며
不見內外一切諸法이 有少滅壞하야 違因緣道며
法力具足하야 無有休息이니라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第六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이니라
一切法通達(일체법통달)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하면, 이와 같이 회향하면,
則爲了達一切諸法(즉위요달일체제법)이며,
則爲 일체법을 요달 하는 것이 되며, 그랬습니다.
회향 잘하면, 마음 잘 쓰면 그 속에 모든 법을 다 깨달아 통달한 이치가 거기에 있습니다.
則爲承事一切諸佛(즉위승사일체제불)이라.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 돼요.
회향 잘하면 부처님섬기는 것이 된다니까요.
따로 “부처님ㆍ부처님” 하고 가서 멀쩡한 부처님 먼지 털고 닦고 그렇게 할 필요 없이, 회향 잘하면, 善用其心! 마음 잘 쓰면,
마음 잘 쓰면 일체부처님을 承事!
받들어 섬기는 것이 된다.
無有一佛도 而不承事며,
한 부처님도 承事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회향 잘하면, 善用其心! 마음 잘 쓰면,
한 부처님도 받들지 아니함이 없다.
無有一法도 而不供養이며,
회향 잘하면, 善用其心! 마음 잘 쓰면, 한 법도 공양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無有一法도 而可滅壞(이가멸괴)며,
한 법도 소멸해서 파괴할 수가 없으며,
회향이 그와 같이 중요합니다. 회향은 뭐라고요?
善用其心입니다. 비록 작은 공덕을 닦았더라도 그 뒤에 내가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뭘 주면서 ‘오냐 잘 먹고 잘 살아라.’ 속으로 그렇게 마음 썼다면, 그것은 뭐가 되겠습니까? 아주,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그런 악담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작은 것을 하더라도 정말 마음속으로까지 그렇게 빌어주고, 잘 되기를 바라는 그런 자세!
그것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요.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것이 “대승불교ㆍ화엄불교의 보살의 마음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無有一法도 而可乖違(이가괴위)며,
한 법도 어기거나 무너뜨리거나 어길 수 없으며,
회향 잘하는데 어떻게 한 법이라도 어길 수 있고, 한 법이라도 소멸하고 파괴할 수가 있겠습니까?
無有一物도 而可貪着(이가탐착)이며, 그랬습니다.
한 물건도, 어떤 바늘하나 실한 톨이라도 탐착할 수가 없으며, 그렇습니다. 회향하는 정신! 여기같이 그렇게 훌륭한 회향을 제대로 했다면 어떤 한 물건도, 탐착할 수가 없습니다.
無有一法도 而可厭離(이가염리)며,
한 법도 싫어서 떠날 수가 없으며,
不見內外一切諸法이 有少滅壞(유소멸괴)하야,
내외일체 모든 법이 조금도 滅壞함이 있어서
違因緣道(위인연도)며,
인연의 도를 어김을 보지 아니한다. 그랬습니다.
어떤 작은 문제도 인연의 도를 어길 수 없다. 어기는 것을 보지 못한다.
불교를 공부하다보면 어떤 차원 높은 화엄경이야기를 읽다가도 늘 깔려있는 것은 인연의 도리ㆍ연기의 도리ㆍ인과의 도리! 그것이 늘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연기를 깨달았다.” 이런 표현을 쓰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여기 법안스님이 만들어 온 거기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제 노래 주제가인데 그것은 안 해놨습니다. ㅎㅎㅎ 우리 인간들에게 제일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그런 이치가 바로 그겁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이치를 우리가 제대로 알고, 그 원리에 입각해서 살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남을 향해서 악담을 하면 자기에게 악담이 돌아오고,
남의 어떤 재산이나 작은 물건 하나라도 손해를 끼치면,
바로 자기에게 손해가 돌아온다. 하는 그런 이치를 알고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가 행동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아지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늘 하는 소리지만, 인과의 이치! 그것이 보통 불교학자들은...
“부처님이 뭘 깨달았느냐?” 하면,
선가에서는 “마음을 깨쳤다.” 이렇게 표현하고, 보통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은 “연기의 이치를 깨달았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화엄경은 연기의 이치가 쭉~~ 깔려있습니다.
공부하다 보면 쭉~~ 깔려있는데요.
정말 깨달음을 성취했을 때, ‘이세상은 어떻게 보인다.’라고 하는 것, 그것은 사실 연기하고 별 연관 없습니다.
연기의 이치가 그 속에 있긴 있습니다만, 그것은 너무 엄청난 일이고, 큰일이기 때문에 연기가지고 설명할 정도가 아닙니다.
始成正覺하니까 이세상이 전부 다이아몬드로 됐더라!
이런 정도인데, 이런 정도로 충격적인 그런 표현을 했는데, 사람들은 전부 부처님이더라! 세상은 전부 다이아몬드이고, 모든 사람ㆍ모든 생명은 전부 부처님이더라! 이렇게 표현했기 때문에 그것 어떻게 연기라는 말로 감히 거기에 붙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보살행을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화엄경입니다.
딱 두 마디입니다.
‘깨달음의 안목으로 보면 세상과 사람은 이와 같이 비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살행을 할 수 밖에 없다.’
딱 두 마디입니다. 그런데 연기의 도리가 시종일관 깔려있습니다. 또 “수행을 해서 성불에 이른다.”고 하는 것도 결국은 연기의 이치고, 인과의 이치고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연의 道 어김을 보지 못한다.
어떤 작은 문제에서도, 작은 滅壞함이 있어서도
인연의 도리를, 인연의 길을 어김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 겁니다. 인연의 道,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리가 정말 믿어야 되는 이치입니다. 因緣의 道!
法力을 具足하야
無有休息(무유휴식)이니라. 休息함이 없느니라.
이러한 이치를 잘 아는 것이 법력입니다.
인과의 도리에 대해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리가 끄떡하지 않고, 거기에 대한 소신을 확실하게 하는 것!
그것이 법력입니다.
뭐 “法力” 하니까 ‘법력이 있다. 없다.’ 그것을 우리가 기본의 상식으로는 남다른 어떤 힘을 가진 그런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그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法力을 具足하야 그 법력이 休息함이 없느니라.
한 번도 멈추거나 쉬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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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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