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가문에서 배우는 창조적 리더십
메디치 가문은 1397~1743년 346년간 유럽최고의 귀족 가문이었다. 르네상스를 후원하고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을 피렌체에 기증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게 하고 레오10세 및 클레멘트 등 교황2명을 배출하고 프랑스 왕비 2명을 배출한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오페라가 탄생되었다. 서양식 식사 예절이 만들어 지고 , 승마를 위해 여성용 바지가 만들어 지고 하이힐 패션이 나온 것은 모두 메디치가와 큰 관계가 있다.
그들이 후원한 사람은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요 갈릴레이 그리고 아메리고 베스푸치(아메리카 대륙 이름 유래)다. 아메리고 는 메디치의 후원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했다.
메디치는 원래 mugello의 조그만 농장주 였다. 그는 근처 마을 피렌체의 플로린이 기축통화를 사용되고 있음을 은행업을 하기로 했다. 조반니 데 메디치가 로마의 메디치 은행을 피렌체로 옮겨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는 막대한 십일조 자금을 로마로 옮기기 위해 어음의 필요성이 생기고 그래서 은행이 생겼다. 그러나 당시에는 교리상 은행 업을 할 수 없기에 장부를 사용하지 않았고 재량으로 이자를 주는 방법이 은행에서 사용 되었다.
그래서 신용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모직산업이 매우 국가 산업에 매우 중요했는데 메디치 가문은 유럽각국의 정보를 이용하여 모직 사업을 했다. 그들은 은행 업과 모직산업을 한 것이다. 신뢰와 정보를 이용한 사업을 한 것이다. 여기에 메디치 성장의 비밀이 있다.
1. 이 손가락을 보라. 한번 맺은 인연을 버리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지막 작품 “성 세례요한”에서 그림 속 요한의 손가락은 보통 현실에
예수를 가르킨다고 한다. 그런데 다빈치는 이 그림에서 요한의 손가락은 하늘을 가르친다. 이 작품은 메디치 가문의 교황 레오10세가 의뢰 한 것이다. 왜? 다른 것일까?
그 내막을 보면 다음과 같다
발다사레 코사는 나폴리 출신해적인데 볼로냐 대학에서 가짜 법학박사 매입하고 추기경직을 매입했는데 신분상의 문제로 메디치 은행의 첫 고객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1410년 교황 요한23세로 취임했다. 당시 유럽사회는 가톨릭교회의 대 분열시기(1378-1417)로 교황이 3명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이 개입하여 교회통합을 위해 독일 콘스탄트에서 교황모임을 개최하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요한 23세가 불법행위로 체포되고 35,000플로린의 막대한 벌금형을 선고하고 투옥하였다. 이 여행길에 코지모 데 메디치가 교황23세를 수행했다. 교황 요한23세는 하이델베르크 성채에 투옥되고 코지모에게 대출을 요청하였다.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116억원 정도다. 코지모의 소식을 들은 메디치가는 대출을 승인하였다. 그리고 석방된 요한 23세가 피렌체에서 망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심지어 임종을 하자 성 세례 요한 세례당 안에 교황 영묘를 제작해 주기도 했다. 임종 순간 이 모든 것에 감격한 요한 23세는 성 세례요한의 손가락을 기증한다(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박물관에 보관). 신뢰를 지킨 메디치 가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이제 그림의 비밀을 보자. 즉 그림의 비밀은 메디치 가문은 절대로 한번 맺은 신의를 버리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메디치 가문이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런 다소 어리석은 행동을 보고 다른 은행은 모두 비웃는다. 하지만 메디치의 행동을 교황이나 왕들 귀족이 주목하고 있다가 모두 몇 년 뒤 주 거래 은행을 메디치로 변경한다. 막대한 자금이 메디치로 쏟아 들어 온 것이다. 이제 유럽 최고의 은행이 된 것이다.
한번 맺은 인연을 버리지 않는 메디치 가문의 신용이 형성된 것이다.
2. 심적내면을 성찰하라
이탈리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모 데 메디치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및 아랍어 독해 능력이 있었고 희귀 고문서를 수집하는 것이 꿈이 사람이었다. 그가 예술가 들을 후원해 르네상스가 발흥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특히 도나텔로를 잘 후원했다. 도나텔로는 조각품을 깎으면 바로 조각품을 부수는 괴팎한 사람이었다. 이런 노나텔로가 작품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연금을 주어 후원했다. 코시모 데 메디치의 유언은 “ 도나텔로가 죽으면 내 곁에 묻어달라” 그만큼 관계가 돈독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를 후원하여 유럽최초로 플라톤의 전집을 그리스어세서 라틴어로 번역시켰다. 피치노에게 플라톤 아카데미를 지어주고 준 지침이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나”이다.
코시모는 내면 성찰에 관심을 가지고 인문학을 공부했고 행복해 했다. 왜 인문학 공부를 했을까? 가설1) 새 술은 새 부대에 자기가 새로운 세상을 이끌기 위해 플라톤 전집을 후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의 가치 즉 현상에 대한 분석, 이성적 판단, 사물의 관철이라면
플라톤은 초월적 사고 감성적 직관 창조적 영감이다 이것이 르네상스 가치다.)
가설2) 행복을 찾아서, 내면의 성찰을 통한 행복추구라고 볼 수 있다. 심적 성찰을 통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예술을 사랑하고 학문을 추구했던 것이다.
3.인내하라 멀리하라
이후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바통을 이어 받는다. 그녀는 삼촌인 교황 클레멘트 7세의 후원과 지참금 약속을 통해 프랑스 왕자 앙리 2세와 결혼했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의 몰락과 교황 클레멘트 7세의 서거로 지참금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이탈리아 여자”로 지칭했다.
더군다나 잘 생기지 못했다. 그래서 앙리 2세는 미모의 애첩인 디안과 주로 생활했다.
심지어 황제 취임식 날 카테리나는 시녀와 서 있었다. 말로 할 수 없는 온갖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카테리나는 공식석상에서 한번도 슬퍼하지 않았고 웃으며 늘 당당한 모습을 이어갔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고통이 있었다. 황통을 이어받을 아들을 얻는 방법을 알기 위해 카테리나는 앙리의 침실을 숨어서 남편과 앙리가 사랑하는 장면을 보고 그 방법을 훔쳐 봤다.
아들에 대한 열정이 깊었던 카테리나는 점성술사 노스트라 다무스를 고용하여 마음을 의지하고 비법을 찾으려 했다. 비방은 “신선한 암소의 똥을 먹어라”였는데 카테리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 똥을 먹었다. 그런데 몇 달 뒤 놀랍게도 아들을 낳게 된다.
아들을 놓고 얼마 지나지 않은 1559년 콩트와 용병대장 앙리 2세의 마상 창 시합이 있었다. 그 시합에서 창에 찔려 왕이 죽었다. 이제 의지 할 곳이 없는 앙리가 카테리나에게 폐하라 외치며 납짝 땅에 엎드려 싹싹 빈다.
바로 그때 카테리나는 콩트의 칼을 빼어 든다. 모든 사람이 앙리를 죽이겠구나 라고 생각할 때 카테리나는 “나는 너를 용서하고 내 남편이 사랑한 너를 나 또한 사랑하리라” 여기에 압도된 모든 사람들이 굴복한다. 카테리나는 사자의 힘을 숨기고 여우의 지혜를 보인 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리기에(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을 보고 배운 것이다) 인내하며 참고 참은 것이다. 그 후 그의 아들은 황제가 되고 그녀는 막대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녀의 좌우명은 “나는 빛과 평화를 가져온다”였다. 메디치 가문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4,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져라
메디치 대공 코시모 1세가 집권하여 강력한 왕정을 실시하였다. 안전보장을 위해 자기와 아들의 집 사이에 비밀 바사리 통로를 만든다. 이런 것들로 그는 점점 대중과 멀어지게 된다.
그 후 코시모 3세는 체중 조절을 위해 바사리 통로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데 그 통로에 메디치 가문의 소장 예술품을 배치한다. 국민을 저버리고 혼자 만의 권력을 자랑하던 코시모 3세의 방만한 경영과 타락 그리고 무능으로 메디치 가문의 몰락을 가져온다.
실질적으로 메디치가를 일으킨 코시모 데 메디치가 너무나 유명해 많은 후손들이 코시모의 이름을 붙였다. 선조 코시모는 피렌체에서 걸어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인사를 해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 했다. 어려움 사람을 만나면 돕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다. 마음속 깊이 코시모를 존중했다. 그는 출장 갈 때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 겸손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를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아버지라 칭했다. 사람들은 1464년 추도사에서 “모든 상인들의 빛나는 귀감이여”라고 표현하며 존경을 표했다. 코시모의 무덤은 평판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그 위에 설 수 있게 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했던 코시모 데 메디치가 메디치가문의 전통을 만들고 힘이 된 것이다.
유럽의 가장 강력한 부를 형성했던 메디치 가문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한번 맺은 인연은 버리지 말라
내면을 성찰하는 인문경영자가 되라
카테리나처럼 인내하라 멀리 보라
당나귀를 타고 가던 코시모를 기억하라 즉 겸손하라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 가려는 경영인들은 이것들이 주는 영감을 잘 이해하고 마음속에 받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