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공포정치 폭군 네로
어떤 폭군도 처음부터 폭군 소릴 듣진 않았다. 폭군의 대명사 네로와 히틀러,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에 연산군, 광해군 등 그 제왕 놀이를 즐긴 사이코패스에 소시오패스들도 처음부터 ‘나 폭군이야’라고 하지 않았다.
네로는 서기 37년 12월 15일 로마제국 제3대 황제 가이위스(칼리굴라) 황제의 외조카로 태어났다. 초대 황제 가문 핏줄인 악랄한 성격의 아버지 그나이우스는 서기 41년 네로가 네 살 때 죽었다, 이에 어머니 소 아그리피나는 제4대 황제이자 자신의 삼촌인 클라우디우스와 재혼했고, 네로도 클라우디우스의 딸 옥타비아와 결혼하여 사위이자, 양자가 되었다.
서기 54년 클라우디우스가 독살되자, 17세의 네로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로마 제5대 황제가 되었다. 즉위하며 스승인 철학자 세네카가 써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이후의, 이전 정권의 병폐를 없애겠다’는 개혁 연설로 원로원의 찬사를 받았다. 네로는 그렇게 개혁 통치자가 되겠다고 했다, 그리스를 흠모하여 문화 예술을 장려하고 도시 인프라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개혁은 입발림 포장이고 실제는 탐욕으로 뒤범벅된 자신만의 자유 누림뿐이었다. 네로와 그의 섭정들은 로마 시민의 자유를 더 악랄하게 감독하고 억압했다. 자신의 반대파는 가차 없이 제거했다. 아내 옥타비아를 잔인하게 죽이고 어머니는 물론 스승인 세네카도 처형했다. 네로가 내세운 개혁, 공정과 상식, 역사가 평가한다는 허울 좋은 막무가내 통치는 무소불위 권력 남용, 잔인한 반대파 숙청뿐이었다,
특히 64년 로마 대화재는 세계대전과 히틀러의 학살, 일본의 731 세균부대 잔학성과 함께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참사이다. 무려 5일에 걸쳐 로마의 14개 구 중 10개 구가 불탔고 3개 구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때 네로는 궁중의 높은 누각에서 리라를 켜며 노래를 불렀다. 또 눈물을 흘리며 황금병에 그 눈물을 담았다.
더욱 가증스럽게 이 대화재 뒤, 궁전을 개방 시민들의 피난처로 제공하고 건축 자재의 가연성 재료 사용 금지법 제정, 도시 복구와 난민 지원에 사재를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정신병자의 일시적 광기였다. 로마 시민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화재 범죄의 희생양으로 기독교도를 선택, 폭군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네로는 시민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기독교도에게 짐승의 가죽을 덮어씌운 뒤 사냥개를 풀었다. 또 십자가 처형과 화형 등 별의별 잔혹한 방법의 처형을 마치 운동경기처럼 즐겼다. 이때 베드로와 바울로가 화재의 주범으로 몰려 순교했다.
결국, 자신의 개혁을 역사가 평가한다며 기세등등 공포정치를 휘두르던 네로는 원로원이 채찍형으로 자신을 처형한다는 소문에 공포에 떨며 노예 집으로 달아났다. 측근에게 부탁하여 칼로 목숨을 끊으며 ‘참으로 훌륭한 예술가인 내가 죽는구나’라는 유언을 남겼다. 예수의 십자가형 때 병사들이 휘둘렀던 당시 채찍은 쇠구슬, 날카로운 뼛조각, 쇳조각, 가시 등으로 만들어져 공포의 상징이었다. 아내건, 어머니건, 스승이건 가혹하게 죽인 네로가 채찍형이라는 말만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그 사이코패스에 소시오패스인 네로는 2천 년 역사를 대표하는 폭군이다. 또 무능 부패에 광폭하여 도덕성과 신뢰를 잃은 통치자의 자업자득 결말이자 표본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태는 이 폭군 네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가 청렴도는 ‘절대 부패에서 갓 벗어난 정도’인 50점대를 이어오다 2020년 61점으로 올라섰다. 그러다 2023년 다시 3년 만에 내림세가 되었다. 국민권익위가 권력 1순위 부인권익위라고 손가락질받는 이유이다. 긴 불볕더위와 열대야의 신기록이 우연이 아닌 필연인 것처럼, 오늘의 우리 현실이 대화재 때 리라를 켜고 시를 읊으며 황금병에 눈물을 담던 폭군 네로의 가증스러운 모습과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