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미국, 다음 무기는 셰일가스…한국, 또 당하나
셰일가스로 불붙은 텍사스… 21세기 新에너지 혁명에 전 세계 자본이 몰려든다
"동네에 새로 들어선 대형마트처럼… 셰일가스가 석유화학·태양광·전기차 全산업 흔들 것"
미국 텍사스주 남서부의 샌 안토니오(San Antonio)시(市)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이어진 300㎞ 남짓한 길이의 35번 고속도로 양편 일대는 요즘 사상 최고의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뉴 에너지(New energy) 혁명의 총아(寵兒)'인 셰일가스(shale gas) 개발이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이뤄지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 한국석유공사 제공 |
지난달 20일 낮 샌 안토니오에서 남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승용차를 달린 후 35번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이글 포드(Eagle Ford) 가스전에 들어왔다. 속칭 '셰일가스 회랑(回廊·corridor)'의 노른자위 지역이다. 이 가운데 듬성듬성 나무가 심어졌고 농작물은 없는 황무지에 있는 '뉴맨 농장'을 찾았다. 4만에이커(약 161㎢) 일대가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셰일가스 개발용 드릴링과 시추 장비 등을 실은 대형 트럭들이 오가며 일으키는 흙먼지로 비포장도로가 자욱했다.
"텍사스에 제2의 석유 붐이 찾아왔습니다."
이곳에서 셰일가스를 개발하는 'EP에너지'의 로널드 라이스(Rice) 현장 감독관은 이렇게 말했다. 20세기 초반 석유 발견으로 하룻밤 새 백만장자가 된 농장주들이 속출하던 때로부터 100년여 만에 다시 '대박'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3년 전부터 셰일가스 개발이 불붙어 일대 농장 땅값은 수십배로 뛰고 농장주는 벼락부자가 됐습니다." 이 지역 농장주들은 로열티(땅 렌트비)로만 매월 100만달러(약 11억원) 정도를 받고 있다.
셰일가스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높이의 7배나 되는 거리를 지하로 파들어가 암석층에서 가스를 뽑아내 생성된다. 그리스계 미국 이민자인 조지 미첼(Mitchell)이란 채굴업자가 10여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1998년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 공법(工法)의 핵심은 모래와 화학 첨가물을 섞은 물을 파이프를 통해 지하 2㎞ 밑의 바위에 쏘아대는 프래킹(fracking·수압 파쇄)이다. 프랙킹으로 바위 속에 갇혀 있던 천연가스가 바위 틈새로 모이면 장비를 이용해 이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농장 가운데로 가보니 20여대의 트럭이 50m 높이의 프래킹 타워(tower) 옆에 모여 '윙윙' 소리를 내며 자체 발전기를 돌리고 있었다. 지하에 있는 바위를 깨트릴 수 있는 강력한 물을 쏘는 데 필요한 거대 동력을 생성하는 작업 중이다. '뉴맨 농장'에서 프랙킹 작업을 마치고 지하에서 셰일가스를 끌어올리고 있는 유정(油井)만 30여곳 있다.
지상 유정은 사람 키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장비로 구성돼 있다. 땅속 셰일층에서 올라온 가스는 이 장비를 거쳐 다시 지하의 파이프관을 통해 중간 저장소로 모인다. 농장 안은 다양한 굵기의 많은 금속 파이프관으로 연결돼 있어 석유화학 공장을 연상케 했다.
▲ 미국 텍사스주 이글 포드 셰일가스전(田)의 한 수압 파
쇄 컨트롤 룸. 룸 안에 있는 컴퓨터 화면에 지하 2㎞ 밑
암석층의 상태를 나타내는 정보가 뜬다. / 이글 포드=호경업 기자 |
6시간여 현장 취재를 마치고 샌 안토니오로 돌아오는 35번 고속도로 주변에는 아나다코·코노코필립스·쉘 등 30여개 기업이 운영하는 셰일가스 광구의 간판들이 보였다. 미국 전역에는 '이글 포드'와 같은 거대 가스전이 20군데가 넘는다. 가스전마다 중국·일본 등 세계 각국 기업이 불꽃 튀는 지분 투자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10년 미국 천연가스 총생산량의 24%였던 셰일가스 비중은 2035년엔 49%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 에너지 혁명의 불길이 미국 전역으로 활활 타오르며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엑손모빌·셰브론·코노코 필립스·마라톤 오일 등 세계 100대 에너지 기업의 본사 또는 미국 본부가 모여 있는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은 '셰일가스' 천국(天國)을 방불케 했다. 기자가 3일 동안 체류했던 시내 중심부의 하얏트 호텔에는 셰브론, 엑손모빌 같은 오일 메이저들이 주최하는 비즈니스 미팅이 연일 호텔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셰일가스 개발 관련 투자자·개발자·거래 브로커·컨설턴트 등으로 장사진을 이뤄 마치 서부 개척시대의 골드 러시(Gold Rush) 현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수많은 미팅들의 주제는 예외 없이 '셰일가스 투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에너지 평론가인 대니얼 예긴(Yergin)은 "21세기 에너지 혁신의 대표 주자는 태양광·풍력이 아니라 셰일가스"라며 셰일가스의 등장을 조그마한 타운에 들어선 월마트로 비유했다.
"월마트가 작은 마을에 들어서면 기존 수퍼마켓 같은 자영업자들 간의 생태계가 깨진다. 마찬가지로 값싼 셰일가스가 등장함에 따라 예전 석유·석탄이란 쌍두(雙頭) 체제가 붕괴하고 석유·천연가스(셰일가스)란 새 체제가 탄생했다. 이는 태양광·풍력·바이오 관련 에너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셰일가스 낙관론과 별도로 비관론도 나온다. 채굴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개발 비용이 예상보다 늘어 경제적 수익성이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셰일가스를 둘러싼 7대 궁금증을 Weekly BIZ가 정리했다.
①왜 갑자기 셰일가스가 각광받나
엄청난 매장량 때문이다. 기존 천연가스보다 셰일가스 매장량이 더 많다는 분석이다. 확인된 매장량만 전 세계가 60년 정도 쓸 수 있는 187조5000억 세제곱미터(㎥)다. 이를 열량으로 환산한다면 1687억 TOE(Tonnage of Oil Equivalent·각종 연료를 석유 열량 단위로 환산하여 상호 비교하는 단위)로 기존 석유매장량(1888억 TOE)과 비슷하다.
이 자원이 빛을 보게 된 계기는 2000년대 들어 채굴기술이 급속하게 발달하면서부터다. 결정적으로 수압 파쇄법(Hydraulic Fracturing)과 수평 시추법(Horizontal drilling)의 결합이 계기가 됐다.
드릴링 작업을 통해 수직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은 기존 석유나 천연가스 개발과 거의 같다. 수직으로 뚫고 가다 셰일층을 만나면 다시 수평으로 1.5㎞ 정도 파고 들어간다. 완만한 L자형 시추방법이 수평 시추법이다. 수압파쇄법은 파고 들어간 구멍에 화약을 촘촘히 터뜨려 지하 바위에 작은 균열을 낸다. 여기에 물(90.6%), 모래(8.95%)와 화학첨가물(0.44%)을 섞은 젤리 같은 물질을 바위에 쏘아댄다. 그러면 바위 속에 갇혀 있던 가스가 바위 틈새로 모이고 파이프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 기술은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며 기존 석유 시추과정에서 일부 적용됐던 기술을 각각 뽑아내 조합한 것이다.
②셰일가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가?
절반만 맞는 얘기다. 현재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은 MMBtu(Million Metric British thermal unit·1Btu는 1파운드의 물을 화씨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 0.252㎉로, MMBtu는 100만Btu)당 2.7달러 수준이다. 2008년 12.5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5분의 1로 폭락했다. 셰일가스 개발이 최근 2~3년간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일시적으로 초과했기 때문이다. 셰일가스의 개발 원가(原價)는 MMBtu당 4달러 안팎으로 평가된다. 이론상으로는 셰일가스를 퍼낼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그럼에도 셰일가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셰일가스 개발 지분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셰일가스 채굴 기술을 얻기 위해 미국 셰일 광구에 대한 지분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 사모펀드 KKR은 2010년 텍사스주 이글포드 광구지분을 4억달러에 샀다가 1년 만에 원금의 거의 3배인 11억3000만달러에 팔았다. 이 회사는 2009년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11억7000만달러의 투자수익을 거뒀다.
다양한 에너지원이 나오는 것도 매력이다. 콘덴세이트(Condensate·석유와 비슷한 성분) 등이 셰일가스 생산과정에서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순수 셰일가스만으로는 손해지만, 콘덴세이트 등을 팔면 수익성이 좋아진다. 최근 셰일가스 광구를 일시적으로 폐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콘덴세이트가 나오지 않고 순수 가스만 나오는 지역이다.
③셰일가스는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비판받는데…
지금도 치열하게 벌어지는 논쟁적 이슈이다. 수압 파쇄에 쓰이는 화학 첨가물을 통한 식수 오염이 가장 문제이다. 실제 2009년 루이지애나에서 화학 물질이 유출되면서 소 17마리가 폐사한 사례가 있다. 수압 파쇄법을 사용하면 유해한 화학물질이 포함되기 때문에 지하수 오염이 현실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식수로 사용되는 지하수는 보통 지상으로부터 100~400m 지하에 있다. 셰일가스층은 2~4㎞ 지하에 있기 때문에 식수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셰일가스를 추출할 때 석탄이나 기존 천연가스 추출 때보다 더 많은 메탄가스가 공기 중에 들어가 온실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부와 카네기 멜론대학은 이 연구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공식 반박 보고서를 냈다.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아직 논박 중이다.
엑손모빌의 패트릭 맥긴(McGinn) 대변인은 "지금까지 셰일가스의 환경오염 문제점은 중소개발사가 주먹구구식으로 개발할 때 나타났던 것"이라며 "환경오염 매뉴얼을 지키면 별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④셰일가스는 미국의 전유물인가?
그렇지 않다. 정작 셰일가스 매장량은 미국보다 중국이 더 많다. 미국 EIA(에너지 정보청)는 중국에 세계 최대 규모인 36조㎥의 셰일가스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2009년 12월 쓰촨 지역에서 첫 시공을 한 이후 중국 전역에 70여개의 셰일가스전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4만여개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중국 석유천연가스공사(CNPC)는 내부적으로 '미국 셰일가스 개발 기술을 5년 내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관건은 얼마나 물을 적게 사용하고도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있느냐이다. 일반적으로 1개 시추공을 개발하는 데 하루에 1만t의 물이 필요하다. 미국 텍사스 같은 지역에서는 땅을 파면 광구개발용 물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 서부 지역에선 아무리 땅을 파도 나오는 물의 양이 미미하다. 물을 사용하지 않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현재 중국 시노펙은 엑손모빌·토탈과, 중국 CNPC는 네덜란드 로열더치셸과 기술개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 등은 환경문제를 들어 셰일가스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 업계에선 셰일가스 개발 붐이 미국을 넘어 세계로 퍼지면 유럽도 개발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한다.
⑤셰일가스 붐, 에너지 가격에 영향을 미치나
셰일가스의 등장은 당장 석유·석탄 등 기존 에너지 가격 급등을 막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특히 석탄이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올 7월 미국 석탄기업인 패트리엇 코얼(Patriot Coal)사는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매년 20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던 이 회사가 몰락한 이유는 석탄 가격 하락 때문이었다. 미국 석탄 수요는 1998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발전소마다 천연가스 발전비용이 석탄 발전비용보다 저렴해지면서 가스로의 대체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올해 4월에는 미국 발전 역사상 처음으로 석탄과 천연가스의 발전량이 같은 수준에 이르렀다.
⑥셰일가스 덕분에 한국은 값싼 천연가스 수입할 수 있나?
싼 가격의 미국 천연가스를 LNG(액화천연가스) 형태로 공급받아야 한다. 올 6월까지 미국 정부에 수출 승인을 신청한 LNG 물량은 연간 1억2700만t이다. 한국가스공사도 에너지 유통업체인 체니어(Cheniere)사와 2017년부터 20년간 매년 350만t의 가스를 공급받기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수출 신청 물량을 전부 승인할 가능성은 낮다. 현재 미국에서는 싼 천연가스를 바탕으로 석유화학·철강과 같은 관련 제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이 무성하다. 미국 내에 불고 있는 제조업 부활론과 맥을 같이한다. 수출 대신 자국 제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셰일가스를 우선 사용하자는 주장이 변수인 셈이다.
⑦한국 산업에 어떤 영향 미치나
전방위 영향이 예상된다. 우선 셰일가스는 미국 내 석유화학·철강업 등 제조업 부활을 이끈다. 다우케미칼 등 12개 기업이 2018년까지 미국에 1254만t 규모의 에틸렌 설비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셰일가스로 에틸렌을 제조하면 유럽 내 석유화학공장은 경쟁력 약화로 문을 닫아야 한다.
한국 석유화학·철강업계도 에너지원 변화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빠르게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배터리·태양광 산업도 속도조절을 각오해야 한다. 예컨대 앞으로 늘어날 CNG(압축천연가스) 차량은 향후 전기차와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 태양광 같은 그린 에너지도 값싼 셰일가스 등장으로 성장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최대 석유社 엑손모빌도 셰일가스 개발 총력전
미국의 엑손모빌은 올해 경제 전문지 '포천'지(誌)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랭킹 1위'에 꼽혔다. 지난해 엑손모빌의 주가(株價)는 20% 올랐고, 순이익은 35% 증가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8% 늘어난 4529억달러(약 513조원)였다. 오일 메이저 가운데 최대 큰손인 엑손모빌이 가장 주목하는 미래 에너지원은? 정답은 셰일가스이다.
엑손모빌이 최근 발표한 '미래 에너지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에는 석유(34%)와 석탄(26%)이 세계 에너지시장의 투 톱을 이뤘지만, 30년 후인 2040년에는 석유(32%)와 가스(27%)가 에너지시장의 양축(兩軸)이 된다. 셰일가스 생산이 세계적으로 급증하며, 가스가 석탄을 대체한다는 얘기다. 가스 사용량이 석탄 사용량을 추월하는 시점은 2025년으로 예상했다. 지금부터 13년 후이다.
그린 에너지의 대표 주자인 태양광·풍력·조력 등은 같은 기간 전 세계 에너지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서 4%로 늘어난다. 30년 후에도 신재생에너지는 주류(主流) 에너지원이 되기엔 역부족이란 분석이다.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엑손모빌은 최근 에너지 투자의 초점을 셰일가스로 맞추고 있다. 2009년 엑손모빌이 미국의 셰일가스 기업인 XTO를 360억달러에 인수해 시장을 뒤흔든 게 대표적이다. 셰일가스는 중소 개발회사만 하는 것이란 통념을 깨고 오일 메이저들의 본격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엑손모빌의 렉스 틸러슨(Tillerson) 회장 겸 CEO는 당시 "이제 프래킹(Fracking·셰일가스 개발에 사용되는 수압 파쇄법) 파티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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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정보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