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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승리 / 요 12:23~24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부르며 이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5:16 말씀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든지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선이 되어 금 뺏지를 달든지 사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하든지 박사학위를 받든지 사업에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든지...이뿐 아니라 농사를 짓든, 장사를 하든, 무엇을 하든지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겉 사람은 죽고 속사람이 살아나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때는 이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는 때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죽으시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서로다투며 싸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장 고통스럽고 비참한 형틀인 십자가에 죽으러 가십니다. 막 10:45은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낮고 천한 자리, 십자가에 달려 엄청난 고난과 고통, 피와 땀과 물을 쏟으시며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생을 얻게 되었으며 천국을 소유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하나님을 방해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이유는 바로 그의 겉 사람이 아직 변화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본적인 시련과 연단의 과정이 없을 때 결국 기본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열성이든 모두가 다 헛된 수고가 됩니다. 로마서 7장21~25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우리의 겉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고후 4:16절에서 바울은 말씀하기를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속사람과 겉 사람으로 나누어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그 사람의 영은 속사람이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그 사람의 밖은 겉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일의 첫째가 되는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지 않고 내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항상 내게 있습니다. 내가 빨간 안경을 끼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끼면 파랗게 보입니다. 인생의 성공 자는 하나같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자의 몫입니다. 물을 담을 수 있는 양은 비의 양에 있지 않고 그릇의 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 볼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2장 24절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생명은 밀알 안에 있고 밀알 밖에는 상당히 두꺼운 한 겹의 껍질이 덮여있습니다. 이 껍질이 갈라지지 않는 한 밀알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에서 이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니까? 땅 속의 온도와 수분 등이 작용하여 껍질을 갈라지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껍질이 갈라져야만 밀알이 자랍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 속에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밖의 껍질이 갈라졌는가? 갈라지지 않았는가?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속에 있는 생명이 나오게 하려면 밖의 껍질은 반드시 상해를 입어야 합니다. 밖의 것이 깨어지지 않는 한 속의 것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두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명이 제한을 받고 감금되어있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그의 몸에 길을 뚫어주셔서 그에게서 생명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부류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당면한 큰 문제는 어떻게 이 생명을 얻는가에 있지를 않고 생명이 어떻게 우리 몸에서 흘러나오게 하는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갇히고 감금되어 나갈 출구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 사람이 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결코 우리의 삶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의 부흥과 축복이 일어 날수가 없습니다.
요 12장 3절에 보면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온집 안에 가득하더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순전한 나드 향유와 같은 기름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향유는 순전한 나드 기름이고 진실로 신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옥합이 깨어지지 않으면 결코 순전한 나드 기름이 흘러나올 수가 없습니다. 기묘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향유보다 더 옥합을 값어치 있는 것으로 느끼며 속사람보다 겉 사람을 더 보배롭게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교회 안의 어려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부귀와 총명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놀라운 사람으로 착각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놀라운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남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한낱 골동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옥합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향기를 맡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에 이 향유 냄새가 가득합니까? 우리의 삶이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을 깨뜨려서 가장 귀한 것으로 주님의 발을 씻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종교적인 습관을 따라 예배하고 그저 옥합만 감상하므로 이곳에 향유 냄새가 없지는 않습니까? 옥합이 깨어지지를 않고 속의 것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 자신에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교회에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겉 사람을 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포장을 한 선물이라 할지라도 포장을 찢고 뜯어 낼 때에 비로소 진정한 선물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 보배로운 향유를 간직한 자들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사건 이후에 24절에서 오늘 밀의 비유가 나옵니다. 즉, 옥합이 깨어져 보배로운 향유가 흘러나옴과도 같이 밀 또한 껍질이 썩어서 깨어져야지만 진정한 가치 있는 생명이 산출된다는 말입니다. 이 둘 다 깨뜨림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일이 있습니다.(회택이야기/ 지는 것이 이기는 아닙니까? no, 이기지만 지는 것)
우리 삶 가운데 한 가지 일, 뒤에 발생하는 다른 일들의 목적은 우리 겉사람을 깨뜨리어 우리 속생명이 뚫고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약간의 괴로움을 당할 때 불만하고 약간의 시련과 좌절이 있을 때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온전히 사용하시기 위해 깨뜨리시는데 우리는 주님의 손이 우리를 건드리기만 해도 싫어합니다.
고후 4:7절에서 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보배는 질그릇 안에 담겨있습니다. 큰 능력은 보배에 있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른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착각하지를 마십시오! 누가 껍질인 그 질그릇을 원하겠습니까? 우리의 가정이나 교회 안에 필요한 것은 질그릇이 아니라 속에 간직한 보배입니다. 그러나 질그룻이 깨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그 속의 보배를 볼 수 있겠습니까? 교회 안의 모든 문제는 질그릇을 자랑하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최고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교회 생활 가운데에 주님은 안보이고 천연적이고 옛사람인 질그릇만 보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어떻게 주님이 쓰시겠습니까? 주님의 목적은 바로 질그릇을 깨뜨리고 옥합을 깨뜨리며 밖의 껍질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일생 동안 지나온 모든 일들이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일도 헛되이 하시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목적이 우리 겉사람을 깨뜨리시는 것임을 깨달을 때 모든 환경이 다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모든 체험들과 곤란과 환경들이 다 우리의 최고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것들이므로 우리는 주님께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도록 더 이상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서 “주여! 가장 좋은 것을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한다면,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네게 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란다. 매일 네가 만난 환경이 네게 가장 큰 유익이 된단다.” 우리는 이 우리를 다루시는 기간을 연장시킬 수 있을 뿐 스스로 단축시킬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주님은 몇 년의 시간으로 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으시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십 년, 이십 년을 사용하셔도 이 일을 완성시키지 못하십니다. 깨어지지 않을 시에는 진액이 흘러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수년간의 다루심을 받고서도 이 다룸과 연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것일까요? 주님께서는 저들의 강한 의지를, 강한 감정을, 강한 생각을 헐어버리실 수 있는데, 왜 어떤 사람은 수년간 다룸을 받고서도 아직 깨어나지 조차 않는 것일까요? 모태신앙을 자랑한들, 수 십 년을 믿었어도 아직 깨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나드 한 근의 향기는 없고 생명도 나타나지 않으며 초라한 질그릇 자기 옛사람의 고집과 약함만 보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흑암에 거하고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헐고 계시는데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모른 체 살아갑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빛이 결여되어 있고 그들이 빛 안에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사람뿐이고, 오히려 자기와 대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환경만 바라보고 항상 환경을 탓하고 이웃과 다른 성도들을 탓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주 바라기로 살아갑시다.
둘째의 원인은 그들이 자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하여 주시도록 그분께 간구해야만 합니다. 깨어진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습니다. 구약의 야곱을 보면 그는 모태에서부터 형과 다투었습니다. 그는 말썽장이에다 간사하고 궤술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일생은 고통으로 가득했는데, 젊었을 때에는 밖에서 도망 다녔고 이십 년 동안 라반의 꾀임에 넘어갔으며 마음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인생 노중에 죽었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도 팔려갔습니다. 얍복강에서는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되어 평생을 절뚝거렸습니다. 그는 수없이 하나님께 매를 맞았습니다. 야곱의 역사는 하나님께 매 맞는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이러한 다루심을 받은 후 야곱은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의 말년은 정말 빛이 청청하였습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할 때 그는 얼마나 장엄했는지! 임종 시 아들들과 자손들을 위한 그의 축복은 얼마나 분명했는지! 그의 마지막 역사를 읽어볼 때 우리는 고개 숙여 하나님께 경배할 뿐입니다. 야곱은 수십 년의 연단과 훈련을 통하여 그의 겉 사람이 깨어졌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야곱의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이 겉 사람이 다 깨어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환경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안배하시지 않고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 10:29] 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열매 맺는 유일한 방법은 썩는 것입니다. 껍질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땅 속의 습기와 온도가 불쾌할지라도 그 환경은 껍질을 깨기 위한 최적의 환경일 뿐입니다. 썩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껍질이 깨어지는 것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 옆에 같이 땅속으로 들어간 씨앗들이 있습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고 외로움을 나누었습니다. 이 기간을 통해 얼마나 더 큰 형제애, 자매애를 느꼈습니까? 우리 주위에서 “온도 형제들과 습기 자매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였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싹티우기 위한 주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이런 고난이 있을 때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막는 겉껍질이 얼마나 두꺼운지, 이걸 깨기 위해 주님이 얼마나 이렇게 좋은 환경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는지를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아브람에게 [창 12:1] 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은 편안함과 안전함을 제공하였지만 주님은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큰 민족을 이룰 수 없고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밀어 내십니다. 떠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새로운 생명을 땅에 싹트게 하기 위해 주님이 우리를 어두운 땅에 깊숙이 묻으시고 허락하신 온도요 습기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복 자체가 되어서 모든 사람이 우리로 인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요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골 2:15에 見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성경은 예수님의 승리를 선언합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다는 것은 죽음으로 승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음의 승리입니다. 생전에 예수님은 죽기위해 치열한 기도를 많이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내 방법에 대한 죽음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 동안 금식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구원사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 때 사탄이 예수님을 세 가지로 시험했는데 이 때 예수님은 떡으로나 명예로나 권세나 영광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는 것이지 세상 것으로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사탄이 불어 넣어준 생각, 달리 말하면 내 방법에 대한 죽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방법을 내려놓는 일이 바로 치열한 영적 전쟁입니다.
2. 내 선택에 대한 죽음입니다. 눅 6:12-13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제자의 선택을 앞두고 밤새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많이 배우고 똑똑한 제자냐? 아니면 못 배웠어도 열성적이고 겸손한 제자냐? 그 둘 사이에서 아버지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은 제자이십니까?의 저자 요한 까르루스와도 같이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날마다 묻고 그 길을 선택하기 바랍니다.
3. 내 뜻에서 온전히 죽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마 14:36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빠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 역시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이 그만큼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조차 자신의 뜻에서 철저히 죽으셨기에 온전히 승리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손해보고 핍박받고 고난 받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죽어야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한 알의 밀알이 되셔서 남은 생애동안 승리하신 우리 주님을 본받아 열심히 기도하여 내 생각, 내 뜻, 내 주장, 내 감정, 내 교만, 내 방법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십자가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많은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영원한 본향에서 상급 받고 면류관 얻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의 겉 사람은 깨어지고 부셔져서 우리의 속사람에게서 보배로운 향유가 흘러나와 향기가 진동하게 하시고 한 알의 밀이 죽어 많은 열매 맺는 것과도 같이 십자가의 승리, 죽음의 승리를 노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