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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451a 진실에서 빗나가게 되었을 경우에는, 결코 잘못 되어서는 아니 될 것들과 관련해서, 비단 나 자신만이 아니라 친구들마저도 함께 망쳐놓게 되지 않을까 해서일세.
>진실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항상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이웃들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견지하는 것에 한층 더 힘을 보태는 역할도 한다고 본다.
455d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의 일로서 여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것인 것은 없고, 남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것인 것도 없다네.
>말은 옳다. 편견에 의한 차이는 없을 수 있지만 편견에 의한 차이를 뛰어 넘는 각 성별의 고유한 특징 또는 아름다움은 강조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시절에는 이것이 엄청난 발언일지 몰라도 그만큼 여성에 대한 지식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성의 자아실현의 기회가 비약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456b 남자 수호자들의 아내에게 시가와 체육 교육도 받도록 하는 것이 ‘자연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고 있네.
>이 부분을 보면 소크라테스(또는 플라톤)에게 자연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것 같다. 이들이 자연철학에서 인문학적으로 넘어오는 획을 긋는다는 전제하에서 결코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457b 최선의 것을 위해서 옷을 벗고서 체육 훈련을 받고 있는 여자들을 비웃는 사람은 ‘설익은 웃음의 열매를 따고 있으니.’
>민망해서 웃는 것일까? 하는 행동만 봐서는 그게 뭔지 잘 모를때가 많다는 것. 제대로 알지 못하고 비웃는 자는 웃는 자신의 민망함을 알게 되리.
458e 우리가 혼인을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성스러운 것으로 만들 것이 분명하이. 그러나 성스러운 혼인은 가장 유익한 혼인일 걸세.
>내가 생각하기에 혼인이라는 것은 성스러운 것이지만 여기에서 플라톤의 설명이 결혼의 성스러움 보다는 올바른 국가정체를 이룩하기 위해 결혼의 기능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어야 하는 것 같은, 그래서 그것이 자칫 혼인이라는 것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훼손시킬 수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나의 본받아야 할 계층의 새로운 관습이나 유행은 사회 전반의 영역에 그것이 일단 좋다 라는 생각을 심어 놓게 만들고 또한 하나의 유행이나 관습으로 굳혀질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처자 공유가 혼인 본연의 성스러운 모습들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461c 그렇지만 여자고 남자고 아이를 낳을 나이를 벗어나게 되는 때에는, 아마도 우리는 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자유롭게 성적 관계를 갖도록 내버려둘 것으로 나는 생각하네.
>그럼 자식은? 뭘보고 자라지? 이해시키기 참 힘들겠네.
462b 나라를 분열시켜 하나 대신 여럿으로 만드는 것 이상으로 나라에 더 나쁜 것을 우리가 말할 수 있겠는가? 또는 나라를 단결시켜 하나로 만드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분열되어 있는 나라라면 그의 현상이 좋을 리 없다.
표면적인 나라의 통일성이 중요한 것만 아닌 것 같다. 분열되어 있는 현실은 분열되어 있는 정신을 낳고 분열된 정신들은 분열된 사회로 나타나고 그것들이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남한과 북한, 좌우이념처럼 우리는 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의식 이면에 깔려있는 현실이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462c 그러면 한 사람에 가장 가까운 상태에 있는 나라야말로 그렇겠구먼?
>한 몸에 여러 지체. 공동관계(코이노니아). 때론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고 말하면서도 각 사람이 우리와 코이노니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 같다. 믿음이 없는 걸까? 서로에 대한 공포심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걸까? 우리는 여러 지체이지만 한 몸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마치 오래전부터 다른 족속이었던 것처럼. 서로가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464b 우리는 고통과 즐거움의 공유가 '최대선'이라고 동의했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쾌락(행복)을 중요시 하는 공리주의는 자본주의의 이론을 공익 측면에서 잘 뒷받침 하고 있다. 고통에 대한 언급은 찾기 힘들어 은근히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고통과 즐거움의 공유가 최대선이 라는 이 입장은 정말이지 위의 배경에서는 새로운 측면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정말 큰 행복을 위해서는 더 많음 모험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듯.
472b 그렇다면 먼저 이걸 기억해야만 하네. 우리가 올바름이 그리고 올바르지 못함이 어떤 것인지를 찾다가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말일세.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작했고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를 종종 잊어버릴 때가 있다.
473a 어떤 것이 말대로 실천될 수 있는가, 아니면 실천은 말보다도, 비록 어떤 이에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을지라도, 언제나 진실에 덜 미치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가? 자네로선 그렇다고 동의하는가, 아니면 동의하지 않는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롬 7:15)
473a 그러니까 자넨 우리가 논의를 통해서 자세히 말한 그러한 것들이 완전히 실제로 실현되는 걸 보여 주어야만 된다고 내게 강요하질랑은 말게나.
>우리가 말로 따지고 또 따지는 것이 참 많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의 말들이 그 본질을 흐릴 뿐인 경우가 있어 그럴 땐 겸손해 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완전히 그것을 실현한 다기 보다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이야기 한다는 것. 우리는 때로 모든 것을 체계화 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때가 있다. 자신의 머릿속에 하늘을 밀어 넣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 그것을 강요하게 될 때 독재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열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두뇌이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이렇게 쓰지만 나는 매일 두뇌가 분열되는 것을 경험한다.ㅠㅠ 내 삶의 독재자...)
479d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름다움이나 다른 여러 가지 것에 관련된 다중의 많은 ‘관습들’이 ‘있지 않은 것’과 ‘순수하게 있는 것’의 중간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으이.
>우리의 인식은 한계가 있고 우리는 아름다움을 인식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잃어버리기도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아름다움 앞에 깨지고
모든 실체는 우상 파괴적이다.
479e 그러니까 이들은 인식을 하지, 의견을 갖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과연 인간이 어떤 의견을 갖지 않고 순수하게 인식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면.
480a 의견을 사랑하는 사람들/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이렇게 획일적으로 나눌 수 있을까?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는(바라는) 사람들인 동시에 의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6권>
485d 진실로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젊어서부터 줄곧 모든 진리에 최대한으로 이르고자 하네.
>젊어서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젊은 사람에게 또한 좋은 선배나 선생이 함께 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오히려 젊을 때 좋은 선배나 선생을 보고 더욱 진리에 이르고자 관심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486a 고매함을, 그리고 모든 시간과 일체의 존재에 대한 관상을 갖는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 있어서 인간적인 삶이 무슨 대단한 것인 듯이 여겨질 수 있을 것으로 자네는 생각하는가?
>아무리 고매한 사람이라도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해 경히 여기면 그 고매함이 사라질 텨! 같은 인간이라도 각자가 발을 붙이고 있는 입지점이 다른 수 있는데 누가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도 판단하랴
490c 진리가 선도할진대, 나쁜 것들의 무리가 진리를 뒤따를 것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나는 생각하네.
>꼭 나쯘 것들의 무리가 꼭 자신이 진리라고 선도할 때가 있다. 반면 진리의 외침은 작은 소리로 여겨질 때가 더 많은지...
492d 설득되지 않는 사람을 이들이 시민권 박탈과 벌금 그리고 사형에 의해 처벌한다는 걸 혹시 자네는 모르고 있는가?
>여전히 공권력이라거나 법같은 것이 현실사회에서 오용되는 경우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논술 수업 시간에 생각했던 것. 법은 상징성과 효율성이 같이 가야 합니다. 하지만 또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고(사회적 약자를 이해 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사회적 약자에게는 위와 같은 것들이 훨씬 심하게 적용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이라고 생각합니다.)
494c 그가 큰 나라 출신이고 그 나라에서도 부유하며 명문 태생이라면, 게다가 잘생기고 키까지 훤칠하다면 그가 무슨 짓을 할 것으로 자네는 생각하는가? 걷잡을 수 없는 희망으로 가득해서, 헬라스 인들의 일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일까지도 능히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믿을 것이며, 또한 이런 조건에서 자신을 한껏 높여서는, ‘지성은 갖추지 못한 채’ 젠체하는 마음과 공허한 자만심으로 충만해 있지 않는가?
>오늘 중국 고대 문자의 흐름에 대한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공통점이 나타나는 것 같다. 중국 고대 金文에서도 문화의 쇠퇴와 함께 문화에 따른 문자가 성행하는 이전 시기에 비해 문자가 흔히 젠체 하는 모습으로 장식용으로 돋보이게 쓰여지게 된다. 우리의 지성도 마찬가지 일 수 있다고 본다.
496a 이런 자들이 어떤 자식들을 낳을 것 같은가? 사생아나 하찮은 자식들 아니겠는가?
>위대한 철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공자는 무당의 사생아 아닌가? 부처는 왕자의 신분이라서 더 특별했을까?
유전학 측면에서 보았을 때 위대한 사람들 중에 고아거나 부모를 잃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컬하다.
497b 오늘날의 것들 중에서는 그 어떤 나라 체제도 철학적 성향에 걸 맞는 것이 없다네.
>기원전의 오늘날이나 현재의 오늘날에도 나라 체제에 있어 소크라테스(플라톤)가 말한 철학적 성향에 걸 맞는 나라 체제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499e 다중을 아주 그런 식으로 비난하지는 말게나. 만약에 자네가 그들과 다투어 이기려 하지 않고 그들을 달래며, 배움을 좋아함에 대한 그들의 비방을 제거하기 위해, 자네가 말하는 철학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여 준다면.
>대중은 바보다 동시에 그들은 신의 아들들이다.(라고 진중권씨가 이런 말을 들었드랜다 그말 한 사람 참 누군지...)
글라우톤 씨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 주세요!
500d 철학자는 신적이며 절도 있는 것과 ‘함께 지냄으로써’ 그 자신이, 인간으로서 가능한 한도까지, 절도 있고 신과도 같은 사람이 되네.
>인간에게 있어서 함께 지낸다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그렇기에 누구와 함께 지내느냐가 중요해 지는 것이다.
504c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미 한 것으로써 족하며, 따라서 더 이상 추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네.
>안주하고 싶은 욕심. 부족한 내 모습을 들여다 보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완벽한 믿음을 갖고 싶은 욕구가 있다.
505a 마치 우리가 어떤 것의 ‘좋음’을 빠뜨린 채 그걸 소유한들 아무 소용이 없듯이 말일세.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많고 좋은 것을 취한들 그것의 본질이 되는 중요한 것을 빠트린 채 소유만한다면 겉으로는 좋아보일지라도 실상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일 때가 있다.
505b 혹시 자네는 소유가 정작 좋은 것이 아닐지라도, 모두 이득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득과 좋음, 유익함과 도덕적 선.
논술수업을 들으며 고민 하게 된 공리주의자와 의무론자간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결론적으로 유익함이 추구될 때 도덕적 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도덕적 선을 추구하다보면 결국에는 유익함에 이르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의무론자의 입장에 동의하고 싶다.
505c 즐거움을 좋은 것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이들은 다른 쪽 사람들보다는 어떤 점에서 덜 헤매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일까? 이들 역시 나쁜 즐거움들이 있다는 데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에 대한 좋은 자세를 견지하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한편으로 더욱 대단하다고 본다.
507b 반면에, 이데아들은 지성에 알려지기는 하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 하네.
>눈에 보이지 않는 다기 보다 지성(또는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508b 그러나 눈은 감각과 관련되는 기관들 중에서는 어쨌든 가장 해를 닮은 것일세.
>해를 가장 닮은 것은 대머리가 아니었던가!...
줄곧 빛나는 태양은 빛나는 대머리와 같다는 생각이 박혀 있었는데... 미처 눈에 대비될 줄은 몰랐네.
나에겐 사람의 눈도 한편으로는 그런 것 같다.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교수님 제 머릿속에는 저의 생각보다 어디서 줏어들은 생각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