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 생각
임병식 rbs1144@hanmail.net
2023년 여름, 찌는듯한 폭염속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경북 영양군 국립생태원에서 한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공식 관찰기록이 없는 쇠똥구리를 몽골에서 들여와 최근 복원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만간 전국에서 몇 곳을 선정하여 200여마리를 방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들여오면서 걱정도 했다고 한다. 자라온 생태환경이 다른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런데 소똥구리는 문제없이 적응을 했다고 한다.
쇠똥구리. 이름을 생각하면 이름뒤에 ‘구리’라는 말이 붙어서인지 어떤 연관어가 떠오른다. 바로 ‘멍텅구리’와 ‘어쭈구리’가 그것이다. 멍텅구리는 어리석고 투미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이 붙은 것 중에는 멍텅구리 배가 있다. 순전히 바람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무동력선으로 일명 풍선 배다. 이 배는 한때 새우를 잡는 배로 사용했다.
‘어쭈구리’라는 말은 어떤 사물을 지칭하기 보다는 흔히 비아냥거리는 뜻으로 쓰인다. 이 말이 생겨난 유래가 재미가 있다. 누가 평온하던 연못에 큰 메기를 입식하자 위기를 느낀 물고기가 뭍으로 튀어 올랐다.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취한 행동이었다. 그 것은 뛰어 달아나 구리(9리)나 내달렸다.
그것을 보고 어부가 뒤쫓으며 말했단다. "어쭈구리(魚走九里)!," 라고. 구리나 내달렸다는 뜻이었다. 이 말이 나중에 널리 전해져서 비아냥거리는 말로 굳어졌단다.
그런데 쇠똥구리라는 말은 그렇게 비아냥대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별로 좋은 뜻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멍청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소똥구리는 결코 멍청한 곤충은 아니다. 무려 자기 몸의 오십 배나 나가는 쇠똥을 굴러 경단을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쇠똥구리가 뒷발을 이용해 뒤로 굴리고 가는 걸 보면 벌린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거기다가 가고자 하는 방향도 정확하게 읽는데, 그 광경은 시골에 살 때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 된데는 소나 그밖의 가축을 방목을 하지 않고 가둬키우며 항생제나 구충제를 사용하기때문이다. 녀석의 생태를 보면 해가 떠올라 따뜻해지면 풀밭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쇠똥을 입으로 조금씩 떼어내어 경단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것을 구르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벼랑에 떨어져 곤두박질을 치며 한동안 혼절을 하다가도 오뚝이 처럼 일어나 다시 굴리고 간다.
나는 쇠똥구리를 생각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가 떠오른다. 몇 번의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명계의 히데스로 부터 집채만한 바윗돌을 산정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그 벌이 실로 처절한 것이다.
쇠똥구리 노역도 만만치 않다.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경단을 한사코 밀려 올리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실로 눈물겹다. 예전에 그것을 보면 그 힘든 노동이 무척 안타까워 보였다.
몇 년 전이다. 환경부에서 소똥구리 입찰에 나선 적이 있다. 마리당 10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는데, 보도가 되자 경향각지에서는 채집활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쇠똥구리라고 잡아온 것들이 실상은 외양만 비슷한 풍뎅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멀리 몽골에서 가져와 마침내 증식시킨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배로 늘어나 400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쇠똥구리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한다. 먹이로 쓰기위해 땅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 땅을 기름지게 하고 환경을 청결하게 만든 단다.
실례가 있다. 1960년대 초에 호주에서는 방목한 소 숫자가 무려 3천만마리가 넘어서서 그것들이 배설한 똥으로 크게 환경을 오염시켰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생겼다. 이때 착안한 것이 소똥구리였다. 아프리카에서 소똥구리를 들여왔다. 그게 적중했다. 놀라운 정화능력을 보였을 뿐 아니라 토질까지 비옥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두었다. 땅속으로 물고 들어간 것이 그대로 거름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쇠똥구리는 쇠똥으로 먹이를 삼고 그 속에 알을 낳아 새끼를 키워낸다. 그러면서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은 부수의 효과이다. 그 점에서 보면 지렁이의 역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루에 자기 몸의 수십 배의 흙을 먹어서 기름진 분변토를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굼벵이를 사육하는 농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차광이 된 암실에는 수십 상자의 굼벵이를 키우고 있었다. 단계별로 막 부화한 알에서부터 성충이 되기까지 분리하여 기르고 있었다.
주인은 앞으로 곤충산업이 미래의 먹거리를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일찍이 관심을 두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인식되고 부가가치를 높이지 않는가 한다. 이것들을 약제와 식량자원 차원에서 바라본 것이다.
생각하면 전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쇠똥구리가 그렇고 금개구리가 그렇고 혼인 색을 띠고 냇물에서 유영하던 피라미가 그렇다. 전에는 얼마나 많았던가. 환경이 오염되어 벌어진 현상인데 그립기만 하다. 그런 것들을 어디서나 다시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설령 복원사업으로 이뤄지더라도 그리 되었으면 한다.
아니, 그 희망을 보게 된다. 이미 지리산에는 복원하여 방사된 반달가슴곰이 개체수가 늘어나 수십 마리나 뛰놀고, 자취를 감추었던 황새와 따오기도 복원사업을 통해 착착 번식이 이루어지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쇠똥구리도 희망이 보인다. 자연상태의 풀밭에서 녀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 2023)
첫댓글 어린시절에 흔히 보았던 쇠똥구리가 멸종한 것은 아마도 농업기계화로 말미암아 소의 외출이 사라져 들판에 쇠똥이 없어진 탓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미련한 것들이 죽을 힘을 다하여 천방지축 쇠똥을 굴리고 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굴리고가던 쇠똥 경단을 빼앗아 떨어진 곳에 놓아두면 용케도 찾아내어 다시 굴리고 가곤 했었지요. 쇠똥더미 속에 바글거리며 쇠똥을 파헤치는 쇠똥구리가 징그럽기도 했지요. 자연계에서 곤충의 역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맹수들이 제 몸에 붙은 기생충에게 절절 매는 광경을 볼 때마다 자연계의 최강자는 과연 누구일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신문보도에서 쇠똥구리의 복원사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는데 당연히 주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찾아볼 수가 없다니 허탈해 졌습니다. 황새나 따오기처럼 복원사업이 이루어져서 예전처럼 들녘에서 볼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2020 그린에세이 1.2호 발표
생태계 파괴는 인류의 재앙으로 돌아올겁니다. 작금의 기상이변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하구요. 이미 멸종되거나 멸종위기에 있는 종들도 복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흔히 볼수 있었던 쇠똥구리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것들과 함께 어울려 산는 세상은 살기좋은 아름다운 세상이 아닌가 합니다.
쇠똥을 입으로 조금씩 떼어내어 경단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것을 구르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벼랑에 떨어져 곤두박질을 치며 한동안 혼절을 하다가도 오뚝이 처럼 일어나 다시 굴리고 간다.
제가 어릴적 본 모습입니다.
어려서는 쇠똥을 굴리는 쐬똥구리를 흔하게 보았는데 지금은 거의 ㅕㅁㄹ종상태라고 합니다.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닙니다.
글에서 해학과 자연사랑이 느껴집니다.
자연미물 하나에도 관심과 애정으로 봐주시는군요.
예전에는 쇠뚱구리가 흔했는데 지금은 고가에 사려고 해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