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호텔 욕조 7세여아 의문사, 물 깊이가 '아빠' 지목했다
"딸 익사" 신고받은 경찰, 현장 25cm 수심에 '용의자' 직감
父 휴대폰 여니 "성공" "카메라 조심" 애인과 공모정황 가득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2020-10-24 07:00 송고 | 2020-11-11 13:35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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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8일 오전 1시43분, 7세 소녀가 서울 강서구 소재 한 호텔 욕조 안에서 물에 뜬채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호텔 직원은 황급히 방으로 이동했다. 방 안에서는 딸아이의 숨을 돌리려 두 다리를 들어 올려 물구나무를 세우고 있던 아버지가 있었다. 119 대원들이 도착했지만 딸은 다시는 숨을 쉬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 옆에서 오열했다.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24cm 물에서 익사…"애 키우는 입장에서 이해 안 돼" 추적수사
중국인 장씨는 누가봐도 다정한 아버지였다. 딸을 끔찍이 아꼈다고 딸의 친모도 증언했다. 친모인 전 부인과 장씨는 2017년 이혼했다. 그래도 장씨는 1년에 2~4차례 휴가를 내고 딸과 단 둘이 대만과 한국,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주말에도 틈틈이 딸과 함께 교외로 놀러 다녔다.
장씨가 딸과 함께 외국에서 한국에 입국한 지 4일 만에 딸은 갑작스레 사망했다. 딸은 일주일 뒤 한국에서 열리는 한중 교류 무용공연에 참여하기로 했었다.
딸은 욕조에서 스스로 헛디뎌 익사한 '불행한 아이'로 기록될 뻔했다. 딸의 사체엔 목이 졸린 흔적이라던지 타박상 같은 외상이 없었다. 장씨의 휴대전화에도 용의자로 의심할만한 기록은 없었다. 장씨는 잠시 외출했다가 왔는데 딸이 욕조에 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방 안에서 함께 있었던 아버지를 용의선상에서 지울 수 없었다. '이상한 느낌' 때문이었다.
수사를 맡았던 서울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사실 깊이 24cm밖에 안 되는 (물이 찬) 욕조에서 7살 여자애가 사망했다는 거 자체가 저도 애 키우는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아이가 병력이 있는지 확인했는데도 없었다"며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중국 당국과 공조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장씨에게 결정적 증거가 나올 때까지 수차례 출국금지를 신청했다. 장씨가 살인범이라는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기에 구속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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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포렌식으로 나온 결정적 증거…내연녀의 집요한 '저주'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증거가 나왔습니다."
경찰은 장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했다. 대부분의 문자는 지워져 있었지만 경찰은 이를 디지털기술을 통해 일정부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상한 대화를 포착하게 된다. 바로 여자친구 B 씨와의 지속적인 '이상한' 대화였다.
B : 그럼 나의 '작은 사과'(유산한 아이)는? 걔(A양)가 재수 없어서 잡아먹은 건 우리의 아이잖아. 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2018년 11월7일)
B : 걔가 널 재수 없게 하잖아. 너를 막다른 골목까지 재수 없게 하잖아. 왜 자기는 걔를 이용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고 하지? (2019년 1월24일)
B씨는 장씨와 2017년부터 2년 넘게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였다. 장씨는 딸의 친모와 2017년 이혼한 후 같은 해 여름부터 B씨를 만나 중국에서 동거한 사이다.
B씨는 장씨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두 번 유산했는데 이때부터 A양에 대한 증오가 심해졌다. B씨는 A양을 끔찍이 아끼는 장씨에게 '그 아이는 마귀다'라며 증오심을 부추겼다. 장씨는 B씨의 집착에 끝내 7월28일쯤 이별을 선언했다. B씨는 당시 극단적 선택 시도까지 하며 장씨에게 집착했다. 아이가 사망하기 전날인 8월7일까지도 장씨는 B씨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장씨는 딸과 함께 한강유람선을 타고 서울 구경을 하던 중 B씨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이별 후 심리적 방황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씨 : 오늘 저녁 호텔 도착 전에 필히 성공한다(2019년 8월7일, 사건 하루 전)
장씨 : 중요한 몇 군데는 카메라가 있어(2019년 8월7일, 사건 하루 전)
물론 장씨는 검찰에 "실제로 딸아이를 죽이겠다고 말을 한 것은 아니고 B씨를 달래 주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4시간 후 딸은 호텔 욕조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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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발견된 '점출혈'… 법의관들, 타살 확률 있다고 입 모아
결정적 단서는 '문자'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딸의 몸 안에서 발견된 '점출혈'도 결정적 단서가 됐다. 당시 A양에게는 골절 등 외상은 없었지만 눈꺼풀 결막과 입안 점막에서 다수의 점출혈이 확인됐다.
당시 부검을 맡은 법의관은 익사의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입안 점막에 다발성 점막하 점상출혈을 야기할 수 있는 사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법의관은 "7세 소아였고 욕조에 남아있던 물의 깊이가 23~24cm 정도라서 익사가 발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변사자의 사망에 타인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수사를 통해 사망원인을 좀 더 파악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법의학 교수는 "사망에 익사가 관여했지만 (A양의) 양쪽 눈 주변 부위와 눈꺼풀 결막, 입안 점막 전체에서 관찰되는 다수의 점출혈은 익사에서 그 발생 빈도가 매우 낮다"라고 밝혔다. 그는 "일반적인 사고사라고 볼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경찰은 법의학자 4명에게 A양의 타살 혐의에 대한 의견을 모아 타살 혐의가 있음을 도출해냈다.
문자를 복원하고 중국에 기초자료를 건네받아 장씨와 B씨의 관계를 파악하며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한 경찰은 사건 발생 4개월 뒤 결국 장씨를 구속할 수 있었다. 재판에 넘겨진 장씨는 5월29일 1심에서 징역 22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장씨의 범죄사실에 대해 "B씨와 공모해 8월7일 오후 11시59분쯤부터 다음 날 새벽 0시42분쯤까지 사이에 호텔에서 욕조에 물을 약 25cm 받은 후 피해자를 위 욕조에 집어 넣고 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조르면서 욕조 물 안으로 눌러 그 자리에서 피해자를 익사 및 경부압박 질식사로 사망하게 하여 살해했다"고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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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22년형 유죄 선고…"자칫 의문의 죽음 될 뻔"
서울 남부지법 형사합의 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살인 혐의를 받는 중국인 장씨에게 "피해자는 영문을 모른 채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피해자 앞에 펼쳐졌을 무한한 삶의 가능성이 송두리째 상실됐다"며 22년형을 선고했다.
이어 "이 사건은 자칫 피해자의 의문의 죽음으로 묻힐 뻔하였으나 단서를 그대로 넘기지 않은 수사기관의 적극적 수사에 의하여 이 재판에 이르렀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해외와의 공조수사를 통해 국내외 피의자들을 모두 입건한 거의 유일한 사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와 연인관계였던 B씨는 중국에서 검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쪽에서는 A씨와 관련된 가족관계와 병력, 보험관계, 내연녀와의 관계 등 기초자료를 제공해줬고 국내에서는 A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를 공유했다.
만약 장씨가 살해범이 확실하다면 왜 끔찍이 아끼던 친딸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남자 입장에서 볼 때는 내연관계에 있던 사람에게 심리적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며 "주변 사람들과 사회적 지지관계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심리적 지배를 쉽게 당한다. 전주에서 자신의 딸을 살해한 아버지와 같은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2017년 11월 전주시에서는 5세 아동 고준희양이 친부와 내연녀에 의해 살해당한 바 있다.
한편 장씨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으며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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