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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로 흐르는 대표적인 하천을 찾는다면 백두대간 동쪽의 강원도 양양의 남대천, 강릉 남대천,삼척 오십천
그리고 백두대간 삼수령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낙동정맥길 인근에서 발원하는 삼척 가곡천,울진 가곡천, 울진 평해 남대천
영덕 송천,영덕 오십천,포항 형산강,울산 태화강,울주 회야강,부산 수영강이 있는데 몇 곳만 제외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청명한 물이다.
오늘은 동해로 흐르는 규모가 큰 하천은 아니지만 신라시대 때 낙동강, 금강, 한강과 어깨를 견주던 하천을 찾아 가본다.
유역 면적이나 거리는 짧지만 아름답고 맑은 동해의 물이 되기 위해 모였다 흐르기를 반복하는 곡강천은 어떤지 낙동정맥길에
살짝 벗어난 비학과 내연 산줄기 분기점인 병풍산으로 올라가 본다.
물론 대구에서 첫차로 포항으로 와서 다시 택시로 포항시 신광면 마북리 성법령에 도착한다
성법령에서 잠시 오르막길 올라오니 바람 좋고 시원하다
이곳 병풍산은 맑은 물의 대명사인 영덕 오십천 최장 발원지인 대사천과 포항 형산강의 지류인 안강,기계 평야를 만들어 놓은
기계천 그리고, 신라시대 나라의 평화를 기원하던 4대 강 중 하나인 곡강천 발원지가 있기에 산 높이는 800미터 급이지만
발원지가 3개가 존재하는 멋진 산이다
병풍산 정상에서
낙동정맥 산줄기는 대부분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조망 없는 산들이라 병풍산 정상 역시 낙동정맥길에 살짝 벗어나 있는 곳
이기에 조망이라고는 앙상한 나무 사이로 하늘만 빼꼼 보일 정도다.
지도를 보면 동쪽 계곡은 경사가 급하고 바위구간이 보여 내려갈 때 여러 번 넘어지고 자빠져야 할 것 같다.
낙엽 가득한 동쪽 계곡 따라 무작정 내려가니 경사가 장난 아니게 심하여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니
이러다 발목이라도 삐끗한다면 계곡 아래로 굴러갈 것 같다.
하천 135번째 곡강천 지나간 경로 누적거리 9천 057km
신라시대 제를 지내던 곡강천 발원지는 경북 수목원이 자리하는 샘재 인근과 병풍산 아래 상마북 저수지를 발원지로 하고 있지
만 거리상으로 본다면 수목원 인근의 샘재 방향이 100m가량 더 길다.
오늘 곡강천 발원지를 병풍산 동쪽 계곡 300m 고지 인근 포항시 북구 신광면 마북리에 오래전 동학교주 최시형 선생께서 33세
때 잠시 기거를 했다는 옛집이 있어 그곳에 샘터가 있을까 하여 방향을 잡아간다.
내려가야 할 곳
사진으로 보면 평지 같은데 경사가 무지 심하다
계곡 따라 100미터 내려왔을 때 계곡 바위 절벽에 물이 조금씩 흘러나오는데
조심해서 내려온 경사길
경사진 절벽
양쪽 모두 절벽이고 낙엽이 무성하다.
물은 흐르고
마셔 봐야죠
전국의 이름난 하천 발원지 물맛은 모두 맛보고 다녔으니 오래오래 살듯
행여나 이곳을 찾는다면 무조건 조심해서 오르고 내려야 할 것 같다.
6m 정도의 꽤 높은 폭포가 자리하는데
이름은 비 와야 폭포
물이 겨우 떨어진다.
내려가야 할 협곡을 지나고
협곡을 지나
낙엽 속 풍경이 어떨지 모르니 낙엽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바위만 밟아가며 내려간다.
내려온 곳
협곡을 빠져나와
멀리 병풍산 정상쯤 되겠다.
짧은 협곡을 빠져나오니 산정에서 보던 풍경 대신 따뜻한 햇살에 초록의 신록이 올라오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이며
오래전에 누군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을 묵은 텃밭이 보이는데 조선 후기 동학 교주 최시형 선생께서 기거했던 옛집이 이 근처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묵은 밭인데
지금은 잡목과 잡풀만 무성하다.
나무 굵기로 볼때 70년대까만 해도 아래 마북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던 것 같다.
묵은 밭에서 본 병풍산 정상
내려가야할 계곡길
이쯤에서 해월 최시형 선생의 옛집터를 찾아야 하는데 계곡옆에 쓰러진 이정표가 누워있어 길 찾기 성공
여름에 오면 잡풀로 인해 쓰러진 이정표를 찾지 못해 최시형 선생 집터 찾기도 힘들것 같다
왜 이렇게 이정표가 쓰러져 있었는지 잠시후에 알게 된다.
천도교 교주 최시형 선생 옛집터
선생께서 33세부터 화전(火田)을 일구며 살던 곳이다.
지금은 허물어진 돌담과 오래된 감나무한 그루가 서있는데 가을날 이곳을 찾는다면 행여나 최시형 선생께서 심었을 감나무의
빨간 홍시를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861년 뭔가 뜻한 바가 있으셨던지 경주 용담(현곡면)에 수운 최제우 선생을 찾아 동학에 들어 37세 때 제2동학 교주가 된다.
이런 오지 산골에 어찌 사셨나
하늘은 불과 세평도 안될 것 같은 곳
금방이라도 상투머리에 땀내 찌듯 무명 적삼을 입고, 곰방대를 연신 입에 물며 세상으로 나가 보느냐! 마느냐! 며
돌 담따라 서성이고 계실듯하다
앞에도 산이요 뒤에도 산이요 하늘은 서너평도 안되어 보일 것 같은 이곳 돌담집에서 늦은 아침 해가 뜨고, 그러다가 뒷산으로 짧은 해를 보내는 산촌에서의 삶
무료한 일상에서 막걸리 한잔 받아 오려면 10리 이상을 걸음 하셨을 것 같다
참고로 조선시대 때 전국에 시장이 1천여 곳 있었고
조선 후기에 등장한 주막이 1천2백 개였다는데 이곳 때때 산골에서 주막 찾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 같다
돌담이 정 사각으로 줄지어 몇 칸이 있고
최시형 선생 72세 때 사진
1898년 72세때 모진 고문과 심문으로 눈은 움푹 들어갔으며 발은 퉁퉁 부어있고 손은 피투성인지
7월 20일 오후에 경성 감옥에서 숨지셨는데
최시형을 반결하는 판사석에는 동학 혁명 민중의 분노를 일으킨 주범 전, 고부군수 조병갑이 재판장으로 앉아 있었다.
나라 꼬락서니가 이랬으니...
선생의 생가에서 고단했을 것 같은 선생의 삶을 생전의 마지막 남긴 사진 한 장을 잠시 들여다보며
조선 역사에 있어 꼭 없어야 할 고종항제의 비(妃)민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본다.
그만 가자! 생각하면 할수록 정신만 오락가락 할 뿐이다
집터 주위에 깨진 질그릇 조각을 주워 들고
하천 상류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온통 자갈이 이어진다.
아주머니 몇 분이 산나물 뜯으러 나오셨고
산꾼이라면 모를까 이런 길에서는 서로가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게 상책이다.
너덜 돌들이 경사면을 만들어 두었고
물이 제법 흘러 왔는데
물은 어딘가로 흘러가고 자갈만 남아있다.
상마북 저수지
마을 사람들의 상수도로 사용한다는 저수지 입구에는 출입금지 문구와 커다란 철문
그 옆으로 굵은 미제 철조망으로 촘촘하게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으며
지나는 길에 동학교주 최시형이 살았다는 터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마을 입구 최시형 옛집터 안내판이 몇 곳 있었지만 모두 훼손되어 있었다.
누구나 깨끗한 물을 먹을 권리가 있지만 이 정도면 병(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겨우 철조망을 뚫고 나오니 욕부터 나온다.
"지랄 맞은 인간들 마이 먹고 오래 살아라"
마북 마을
마북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를 지나고
벼농사 지을 모판 자리를 만드느라 논에 물을 가두어 두셨고 가끔 개구리 우는 소리도 들리는데
자연이 내는 소리 중 가장 웅장한 개구리 소리는 좀 더 있어야 들을 수 있겠다
마북 저수지가 보이고
마북 저수지 2km 내려와 본 멀리 도움산이 보이는군요
반곡 저수지를 지나고
이곳 가까이 살고 계시는 이글스님이 찾아오셔서 인근에 아침 겸 점심 먹으러 신광면 냉수리 식당으로 가본다.
이글스님 덕분에 밥 한 끼 같이 먹게 되었으며 자주 찾아뵙지는 못해도 늘 생각은 하고 있답니다.
감사드립니다.
반곡 저수지와 멀리 포항의 진산인 비학산이 지척이다.
거대한 용이 동해로 헤엄치는 기상의 형상강을 둔 포항은 서쪽으로는 면봉산, 북쪽으로는 내연산 남쪽으로는 무장산이 있고
그 가운데 비학산이 자리한다.
멀리 도음산이 보이고
하천으로 흐르는 물은 깨끗하며 이웃하는 주민분들이 조금만 관리한다면
10년 혹은 20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을 정도로 맑게 흐른다.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은 괘령산으로 내연지맥길에 만날 수 있는 산이고
물은 다른 곳처럼 더럽지 않고 그나마 깨끗하다.
비학산이 보이고
물속 풍경 이 정도면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용호교를 지나면 호리 저수지가 나타난다.
호리 저수지와 곡강천
학파동혈
용암백수석
저의 친구인 한문학 박사이신 공주의 팔괘 대장님께서 해석을 해주셨고
"학파동혈 용암백수석"이 쓰여있는 절벽길인데
비학산에서 흘러온 신광천이 예전에는 용암천이라 하였으니
용암천의 물이 깨끗함을 자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신광천 물은 냄새도 나고 더럽게 흐른다.
호리 저수지로 내려와 본 동해 칠포를 지키는 몇몇 산들이 보이는데 곤륜산과 방목산이다.
곤륜산 이름은 들어 보셨죠
호리 저수지에서 내려온 물은 갑자기 더러워졌다
강바닥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오래전에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겠구나 생각이 든다
호리 저수지 수문 방수포가 보이고
멀리 동해바다 칠포 해수욕장을 지키며 서있는 곤륜산과 방목산이 보이고
포항시 흥해 사람들이 산책하는 하천가의 소나무 군락지
비학산(飛鶴山)
천년을 두고 아직 날아가지 못하는 산이며
같은 자리에서 천년에 한번 운다는 비학이다.
천년을 두고 운다는 그 울음소리는 6,25 전쟁이 오고 갔던 시절에 한번 울었다.
형산강 지류인 기계천을 사이에 두고 좌측의 비학산과 우측의 어래산을 둔 기계면에는 선사시대 유적지 고인돌이 많이
분포되어 있기도 하다.
호리 저수지 이후 깨끗하지 못하게 흘러왔던 물은 일순간 어디로 가고
속살 드러낸 하천에는 고만 고만한 조무레기 자갈만 햇볕에 썬텐중이다.
흥해 평야 넘어 내연산 천령과 향로봉 방향이 길게 서있고
동해안 7번 국도 다리 아래를 지나
곡강천 생태 공원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곡강천 생태공원과 내연산 방향
이곳 흥해 평야는 안강-기계 평야와 더불어 신라 천년의 곡간을 책임지는 곳이다
낙수봉과 서원산
잠시 서원산으로 가본다.
낙수봉은 현지분들은 낚수산이라 부르고
서원산(書院山)은 의병 장외삼 선생의 곡강서원이 있어 서원산이라 부른다.
서원산 오름길에 정상으로 가다가 보니 곡강 서원이 눈에 보여
방향을 틀어 곡강 서원으로 향한다.
곡강서원
임진 의병이셨던 정삼외 선생께서 광해군 때 창건했으며
흥선대원군 때 전국의 천여개의 서원 철폐령 때 허물어졌다가 같은 자리에 다시 건립되었다
장삼외 선생은 임진란 때 경주성이 함락되어 동생과함께 의병하여 훗날 영천성 전투와 경주성을 탈환하는데 참전하여 공을
세우신분
물은 바다를 만나기 전에 세력을 부풀리느라 고여있고
곡강천이 바다를 만나기 전
가장 아름다운 곳을 만나게 되며 이곳은 참포 관소인데
신라시대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동독(東瀆)이었다
신화(神話)에서 시조는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와 인간을 다스리다가 죽어서는 산신(山神)이 되었다. 산을 신성시하고
명산대천에 제사하는 의식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어졌으며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당시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전국의 명산대천에 수많은 절과 그 외 직접 제사를 지내는 제도를 마련했는데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던 4개의 강을 독(瀆)이라
불렀다
동쪽에는 이곳 곡강이며, 남쪽에는 경남 양산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황산강),
서쪽에는 공주의 금강,북쪽에는 서울의 한강이다.
천년고도 서라벌 앞으로 형산강이 있음에도 짧은 곡강이 지금의 4대강과 견줄수 있었던 어떤 이유였을까?
[참고]로 조선시대 12대강은? 1,한강(임진강)을 가장 먼저 우선으로 하고 두강(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곳에서 서해로 흐르는 구간을 조강(祖江)이라 불렀고
2,예성강,3,대진강(진위천과 무한천:안성천 삽교천) 서해로 흐르는 두강,4,금강 5,영산강,6,섬진강,7,낙동강,8,대동강,9,청천강,
10 용흠강(태조 이성계) 위로 5대조의 신위와 제사를 지내던 함경남도 함흥에 있고 태조의 높이기 위해),11,압록강,
12,두만강을 넣었다.
이렇게 해서 조선 12대강은 모든게 이성계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낙수봉과 국가에서 제를 지내던 곳이며 조선 영조때 순량이 자결한 곳
충비 순량 순절비
하천을 건너기 전 산죽 사이로 잠시 들어가면 순량 순절비가 있다.
조선 영조때 흥해읍 흥안리 이씨 낭자의 몸종이던 순량이 낙수봉 관소 절벽 위에서 물에 빠져 자살한 주인의
주검을 안고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순량이 자결전에 따라오던 자식을 달래어 집으로 돌려 보낸후 투신하여 순량의 충절과 의리를 기리기 위하여 비문을 쓰고
적었다.
이씨 낭자의 자살 이유는 모르겠고...
조선시대의 사회상인 주인에 대한 충절을 기리기 위해 비(碑)를 만들고 했다는..주인 이씨가 자결을 했으니
몸종인들 살아 돌아가도 산목숨 아니니 부득이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서원산
낮은 산이지만 경치가 좋은곳이라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두었다.
비가 오면 돌다리를 건너지 못하니 참고해서 가시기 바랍니다.
흥해 하수 처리장을 지나
가운데 칠포 바다이며 좌측은 곤륜산이다.
이중환의 택지리 팔도 총론 첫머리에 "곤륜산에서 시작하는 산줄기가 동쪽으로 달려 백두산이 되고 조선 산맥의 머리가 된다"고 적었다.
곤륜산이란 걸출한 이름을 같이 쓰는 산이 있었으니 작아도 대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우측은 방목산이며 국가에서 관리하던 목장이 있어 지금도 방목산이라 부르고
곡강천이 칠포에서 바다를 만나 대양으로 흘러든다.
짧은 하천이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하는 곡강천
우리는 맑은 물만 마시며 천년만년을 살겠노라 철조망으로 출입금지를 한 동네를 보며
내 비록 구정물을 마시더라도 남의 소중한 발길은 막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 하천이다.
첫댓글 지금까지 100여개의 강줄기 답사를 하시면서 폭포나 절벽을 만나신 적은 없나요? 강줄기 답사는 상류부 돌파가 항상 어려워 보이네요.
이름없는 무명폭이나 절벽을 많이 만났으나 옆으로 돌아 내려오거나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되더군요
발원지를 찾아서 사람이 사는 흔적까지 내려오는게 힘들고
하천길을 걷다가 더이상 길이 없을때 물건너기가 늘 부담입니다.
그래서 겨울과 봄 갈수기때와 늦가을에 많이 진행 하죠
이제 140개를 마쳤는데 앞으로 30개 더 걸으면 어디가서 하천에 대해서 좀 안다고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이제 막바지 강줄기을 알아가시는듯 하내요
자연에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바라보려면 그곳에 서있어야 되겠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원류로 흘러드는 짧은 하천들만 남았는데
집 근처로 이어지는 하천은 이제 마무리되어 가니
멀리 찾아가는 건 주말을 이용해 한꺼번에 해야할 것 같아요
주말에 얼굴봐서 좋았구요
다음주 주말부터 긴걸음가는데 몸이 견뎌 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