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피우다 4시가 지나 배낭을 매고 집을 나선다.
동네 사람들 만나지 않으려고 회관 마당을 지나지 않고 마동으로 건너가
농로를 따라 내려간다.
버스가 다니는 지방도를 건너 마륜천까지 걷는다.
몇번 뒤돌아보며 마륜리를 찍어본다.
두류봉은 둥글고 범재등도 걸을수록 뒷쪽의 산에 덮힌다.
하얀 뭉게구름이 푸르른 들판과 파란 하늘에 선명하다.
서호다리 앞에서 비닐하우스 사이 농로를 따라 귀산 경모재에 들어간다.
구룡문은 송전석의 글씨이고 닫힌 문사이로 보이는 경모재 글씨는 송운회의 글씨다.
송대립장군 묘비명 번역비가 서 있는데 본래의 비는 어디에 있을까?
송장군은 여산송씨 제동파 중시조쯤 되나보다.
번역비는 컴퓨터체 글씨로 새긴데다 덮개가 가리기도 하고 너무 빽빽해 멋이 없다.
고추를 따러 포대를 유모차에 싣고 가는 할머니가 날 쳐다본다.
깻대의 이파리를 뜯고ㅗ 있는 할머니꼐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지나간다.
현석이 집을 올려다보고 회관을 지나 귀산마을 표지석이 큰 다른 입구를 지난다.
의재송기휴의충혼비가 있다.
대충 읽어보니 안담산의 의병에 참여하신 분이다.
뒷쪽에 송대립장군묘소입구라는 까만 비가 서 있다.
이끼낀 시멘트길을 따라 올라가 본다.
대나무가 우거져 길을 막고 있고 가끔 평촌 송림 쪽의 벌판이 열리기도 한다.
편백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현석이 등과 어울리면서 이 산에서 많이 놀았는데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 때도 무덤이 있고 큰 소나무가 있었는데 누구의 무덤인지도 몰랐다.
옆길을 돌아 마을 뒷편에 송장군의 무덤이 풀 속에 덮여 있다.
아직 벌초할 때가 아니라지만 조금 고약하다.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난 용감하게 풀바으로 들어간다.
풀을 옆으로 눕히며 발을 밟는다. 풀과 그 속의 가시덤블이 종아리를 할킨다.
모기가 어디서 왔는지 위아래를 문다.
송장군의 묘비는 정사각의 기둥에 모자를 쓰고 있다.
경모재에서 해석글을 읽었기에 대충 풀을 헤치며 사진만 찍는다.
몇개의 무덤과 묘비가 보이지만 다가갈 자신이 ㅇ없다.
문인석과 동물상 등 사이를 지나 다시 돌아나온다.
온몸이 가렵고 쓰리다.
다시 내려와 송기휴 선생의 비를 꼼꼼히 읽어보고 평촌 앞으로 건너간다.
삽재 입구에 모암정이라는 초서체?의 글씨가 큰 돌에 새겨저 있다.
삽재 볼묵(어렸을 떄 잔디와 그 주변의 소나무가 쌓인 묘지 놀이터를 그렇게 불렀다.)도
영호 덕에 드나들곤 했는데 그 모습은 잘 모르겠다.
평촌에서 농로르르 따라 소독차가 하얀 연기를 뿜고 요란핳게 올라온다.
모암정은 장형순의 효도비와 함께 인연이 있는 듯한데 그 자손의 이름은 대충 알겠다.
모암정 글씨도 송전석의 글씨이고 예전에 본 작은 나무 정자는 기둥을 돌로 하고
하얀 주련도 걸리고 모암기도 걸린 어엿한 정자가 되어있다.
곁의 고령신가 영령재는 몇 개의 건물이 있는데 닫혀 잇다.
사적비와 공로자의 비들이 서 있다.
대충 보고 있는데 바보가 금요일 소독으로 30분 일찍 나온다고 어디냐 전화한다.
창원박씨 경모재는 보지 못하고 봉두산을 보고 지방도로 나온다.
풀이 매어진 정자에 앉아 맥주 한캔을 따려하는 사이 바보의 차가 뒤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