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시편-21 아삽의 신앙과 노래(시편 76편 1-9절)
성경 말씀은 시편 76편 1절에서 9절까지를 봉독합니다.
[시편 76편] <아삽의 시, 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
1 하나님이 유다에 알린 바 되셨으며 그 이름은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2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3 거기서 저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치시도다(셀라)
4 주는 영화로우시며 약탈한 산에서 존귀하시도다
5 마음이 강한 자는 탈취를 당하여 자기 잠을 자고 장사는 자기 손을 놀리지 못하도다
6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이 들었나이다
7 주 곧 주는 경외할 자시니 주께서 한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셀라)
우리가 지난 시간부터 아삽의 시를 함께 읽으면서 살펴보는 중입니다.
아삽은 다윗 시대에 성가대 대장이었고 또 이 사람은 선견자로까지 존경을 받는 그런 인물입니다.
오늘 이 76편을 보면, 자기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들이 당혹스럽고 그리고 낙심되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사라지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지 못할 것인가? 하고 회의가 밀려올 때..
여러분은 신앙생활 할 때 그런 때가 없었어요?
정말 하나님이 내게도 은혜를 베푸시고 계시는가?
나를 정말 사랑하시기는 사랑하시나?
아니면 더 심하면 내가 이래가지고 천당가기는 가나? 라든지..
더 심하면 하나님이 계시기는 계시는가?
이런 데까지 회의가 올 수 있죠.
제가 처음 믿을 때에 그런 회의가 올 때 그것을 의식적으로 떨치지 않고 그런 회의가 밀려올 때, 정말 도마처럼 정직하게 회의해 봤어요. 정말 의심도 해 봤는데, 어디까지 해 봤느냐?
새벽기도 나가면서 새벽기도 하다가 그런 회의가 밀려오니까 나는 초신자에 불과한데, 저 전도사님까지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도 괜히 없는데 있는 줄 알고 속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밀려 왔어요.
내가 그런 회의를 품어 본건지, 마귀가 내게 그런 회의를 뿌려본 것인지, 하여튼 눈앞에 캄캄하게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는 거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나를 부르실 때에 나를 불렀던 성경 말씀이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씀이예요.
그런 말씀이 히브리서에 있는 말씀인데, 내가 목수였잖아요. 옛날에..
집마다 지은이가 있는 거죠.
나무가 저절로 꿈틀꿈틀 살아와서 ‘내가 집이 될래’ 하면서 집이 되고, 무슨 나무가 ‘나는 가구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가구가 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죠. 절대로..
그래서 이 우주만물을 볼 때 이렇게 질서가 있고 법칙이 있고, 이런 법칙과 질서가 있으니까 이것을 연구해서 과학으로 이용하는 거지, 거기 아무 법칙도 아무 규칙도 아무 원칙도 없다면 연구하면 뭐하겠어요? 다 헝클벙클인데..
수많은 회의가 몰려왔을 때 항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일 수가 없다.’
창세기를 가지고 저의 신앙의 기초를 항상 다져왔기 때문에 지금도 제가 처음 믿는 사람들 새로 믿는 사람들에게 창세기를 늘 강조하고, 저 자신이 수많은 회의가 왔을 때도 결코 이 모든 세상은 우연일 수 없다..
내가 아무리 회의한다 할지라도, 회의할 수 없는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집마다 지은이가 있는 것처럼 만물을 분명히 디자인 하신 분이 있다.
여러분 아름다움이라든지 질서라든지 법칙이라든지 이것은 지성의 산물이지 의지의 산물이지 결코 우연의 산물일 수 없다는 거야.
이런 것부터 차근차근 챙겨서..
또 만약에 그런 하나님이 계셨다면 사람에게 자기 뜻을 분명히 어딘가 밝혔을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만물과 인간까지 창조하셨는데, 이 인간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 인격을 가진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어딘가 어떻겐가 나타내실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지구상에 성경 이외의 어떤 책에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인간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기록된 이런 책은 성경 이외에는 없거든요.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분명하고, 그 분의 뜻을 몇천년 될 때까지 인류역사 종말이 되어가는데, 여태까지 아무 뜻도 나타내지 않았다면 그것은 신도 아니죠. 인격도 아니고..
어딘가 어떻겐가 나타내었을 것이 아니냐?
나타낸 것이 성경.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는 것이 계시라고 하니까, 부인할 수 없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의심을 할려고 해도 의심할 수 없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이 계신 것이고, 그분이 뜻을 나타내셨는데, 그 뜻이 성경이라고 하는데, 내가 그 외에 무엇을 다른 어떤 곳 어디가서 찾아보겠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성경을 정말 제대로 공부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런 저런 신비체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까딱하면 신비주의로 해서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는 그런 소지가 다분히 있는 사람이예요. 제가..
그래도 역시 사고를 합리적으로 하는 사고, 그리고 성경이 분명히 이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지금 이 시간까지 역사 종말이 될 때까지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인격을 향해서 아무 계시도 안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계시된 것이 성경이라면 성경을 정말 봐야지.. 그렇게 해서 성경을 살펴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 지금 아삽이라는 사람도 지금 나라가 망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가 불신자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할 수 있느냐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런 회의가 막 몰려올 때, 이 사람이 확실한 것 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부터 몇 가지 챙겨본다는 겁니다.
첫째,
[시편 76편] <아삽의 시, 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
1 하나님이 유다에 알린 바 되셨으며 그 이름은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이스라엘 역사, 유다 역사에 전혀 우리가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2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있는 것부터 확실히 하자.. 확실한 것부터 분명히 하자 하면서 짚을 것을 짚어가는..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살아가다가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모든 것이 그저 회의가 밀려올 때 절대 흔들릴 수 없고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부터 챙겨보시라고..
아삽처럼.. 저도 그렇게 해봤거든요.
그렇게 안 해본 사람은 아삽의 시가 뭘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거야.
너무 당연한 건데, 지금 하나님이 유다에 분명히 알리신 바 되었어.
이 지구상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나타낼 때, 맨 먼저 누군가 어느 민족의 누군가를 만나야 되죠.
물론 처음에는 노아를 만난 것이고, 그 이후에 노아의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을 만난거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곱, 야곱의 아들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알리신 바 되었지만, 한 400년간 흐지부지 되었다가 다시 한번 온 세계 전체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려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통하게 그 민족을 살찌게 해서 모세에게 알리신 바 되었다.
그리고 특히 그것이 다윗이 태어나게 될 유다 지파에 분명히 알리신 바 된 것이고,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 이름이 확실히 크신 것이다.
확실한 것부터 확실히 하자.
아무리 의심할려고 해도 의심할 수 없는 것부터 한번 챙겨보자. 이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지구라는 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는데, 무슨 천국대사관이 같은 것이 있어야 될 것 아녜요?
그게 살렘에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것 확실한 것부터 확실히 하자. 이렇게 하는데,
그래서 그 처소는 분명히 시온에 있다.
이것은 흔들릴 수 없고 의심의 여지가 없고 부인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부터 확실히 하자.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3 거기서 저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치시도다(셀라)
여러분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좌정하시고, 아시는 대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항상 이기게 하시는 거야.
어떤 나라가 까불든지 덤비든지 할 것 없이, 예루살렘에 좌정하시고 시온에 처소를 두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기게 하셨다는 거죠.
3 거기서 저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치시도다(셀라)
4 주는 영화로우시며 약탈한 산에서 존귀하시도다
여기,
5 마음이 강한 자는,
‘강한 자도’ 하는 것이 더 좋은 번역같아요.
5 마음이 강한 자도 탈취를 당하여 자기 잠을 자고 장사는 자기 손을 놀리지 못하도다
장사, 골리앗도 까불어도 자기 손을 놀리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는 거예요.
6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이 들었나이다
7 주 곧 주는 경외할 자시니 주께서 한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셀라)
하고 자기 신앙을 다시 다지는 거죠.
우리가 그저 막연하게 확실한 것 노목사가 믿는데 맞겠지.. 그러고 있지 말고 회의가 오거든 그런 회의가 날 때 아삽을 따라서 분명하고 확실하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챙겨보시라고..
그래서,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지금은 비록 이스라엘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언젠가 하나님의 판단이 나타날 때는 그런 강대국 하는 것도 다 끝장날 날이 올 것이다.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셀라)
그 때 그렇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에게 그리고 겸손한 자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신다.
온유하고 겸손해야 돼요.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불러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렇게 하셨는데, 성경 전체에서 온유한 자와 겸손한 자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은혜에 참여하게 해 놨어요.
그래서 우리가 교만하거나 그 다음에 강퍅하거나 이래가지고는 우리 마음이 부드럽지 못하고는 은혜도 진리도 심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 씨앗을 뿌려도 그 마음밭이 옥토가 아니고, 그 땅이 토심이 깊고 부드러워야 씨가 심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 씨앗을 뿌려도 돌짝밭 같다든지 길바닥 같아서는 씨가 떨어져도 자라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온유한 사람 겸손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일어나실 때에는 세상에 악한 사람들은 그 목장에 서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10 진실로 사람의 노는,
사람이 분노하고 그냥 진노하고 하지만 그런 노하던 사람들이,
..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사람들이 까불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큰 소리치고 해도 그 사람이 분노하더라도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고, 찬송하지 못하는 분노는 끝장나게 될 것이다.
11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자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그래서 우리가 섬길만한 분, 하나님을 우리가 참으로 알았다면 서원한 거라도 갚아놓고 이야기 하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마땅히 사망에 있는 모든 자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서, 헛된데 예물을 드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12 저가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시리니 저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그래서 왕들이든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께는 다 예물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77편은, 여러분 우리가 확실한 것을 붙잡고 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한다해서 회의가 다시 안 오느냐? 그래도 와요.
어떤 때에 오느냐?
옆사람이 복을 받았다는데, 나는 아무 것도 못 받았다.
그러면 회의가 오는 거예요.
옆에 사람이 무슨 은사를 받았다 능력을 받았다는데,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옆에 사람은 건강한데, 나는 병들었다.
그러면 그 때 회의가 몰려와요.
마귀가 아무 때나 의심의 씨앗을 뿌리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를 추스려도 77편을 보면 또 회의가 옵니다.
[시편 77편]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
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2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그러니까 얼마나 이 아삽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께 진지하게 간구하고 있느냐 하면, 사람들의 위로 아무리 사람들이 와서 위로해도 그것 가지고는 자기가 위로가 안 돼.
하나님의 위로가 나타나야 되는 것이지, 그래서 사람들의 위로를 거절하면서까지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3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불안하다보니까 내 심령이 상하도다..
왜 상하느냐?
4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5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6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심령이 궁구(窮究)한다’는 것은 궁극적(窮極的)인데까지 연구(硏究)한다는 뜻이예요.
궁극적인데, 요즈음 토론하는 것 보면 끝장토론 그런 것 있죠?
끝까지 연구해 볼 때 이런 회의가 밀려와요.
7절,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9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셀라)
하면서 자기 심령이 상했다는 거예요.
이런 회의가 오니까 또 궁극적인 것을 궁구하고 또 확실한 것부터 챙겨보고..
이게 너무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것이 보이지 않고, 구원의 희망도 여명도 보이지 않고 하니까 아삽의 얼마나 고민 했느냐 하는 것은 읽을 수 있겠죠.
10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내고 믿음이 약해서 그렇지.. 하면서 자기 믿음을 탓해보기도 하고,
..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하나님께서 오른손을 높이 드는 해,
11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눈앞에는 이렇게 회의의 구름이 안개가 올라와도 옛적의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서 추스려본다는 거죠.
그래서 역사가 필요한 거예요.
12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13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
14 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15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 (셀라)
이것은 부인할 수 없단 말이죠.
16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17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발하며 주의 살도 날아 나갔나이다
18 회리바람 중에 주의 우뢰의 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19 주의 길이,
‘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주의 길은,’
..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20 주의 백성을 무리양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인도하게 했던 하나님이 분명히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 현재가 너무 불투명하니까, 과거의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하나님은 이런 분이 아니셨던가 하고 자기 믿음을 또 다시 추스리는 거죠.
이렇게 하다가는 77편은 이렇게 했는데, 78편에는 아예 본격적으로 역사를 더듬기 시작합니다. 아삽이..
그래서 보통 78편을 역사 명상시..
‘아삽의 마스길’ 명상시는 명상시인데, 무엇을 명상하느냐?
흰두교 요가식의 명상이 아닙니다. 그런 명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역사를 쭉 명상하면서, 분명히 이것은 사실이 아니냐?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하고 자기 믿음을 계속 다지는 겁니다.
[시편 78편] <아삽의 마스길>
1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3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열조가 전했으니까 듣고 알았겠죠.
여러분 우리도 성경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전하고 가르쳐야 듣고 알 것 아녜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약점이 뭐냐 하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엄마 아빠가 성경을 가르칠 실력이 없다는 거예요. 자녀들에게..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거야.
전혀 우리 교회가 잘못해온 거예요. 옛날 어른들이..
어른들이 성경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목사도 성경을 다 가르실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리고 성도들은 성경을 다 배울 수가 없을 것이고, 목사들도 다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 성도들은 오죽하겠나 해가지고..
그것은 서구에도 대체로 그런 것이고, 성경을 자기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믿은 민족은 유대인 하나밖에 없어요.
유대인들은 지금도 자녀에게 성경을 부단히 가르칩니다.
물론 더 어려워지면 랍비에게 가서 배우는데, 저는 우리 부모 된 우리 모두가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되어야 돼요.
연세 많은 분은 어렵습니다. 지금은 이미 잘 안되는데, 젊은 사람은 앞으로 시집가고 장가갈 사람들은 지금부터 어떻든 아이가 태아나기 전에 내가 성경을 통달하리라..
제가 늘 성경강좌 할 때마다 강조하니까 어떤 자매는 꿈을 꾼대요. 자기가..
아이들을 여섯명 일곱명을 앉혀놓고 낳아서 성경을 가르치는 꿈에 가슴이 설랜다는 거야.
우리 홈페이지에 그렇게 글 쓴 사람이 있다니까..
그러니까 목회자들이 옛날부터 성도들을 그렇게 지도했으면 그렇게 될 텐데, 다 굉장한 실력들이 있으면서도, 목회자들이 성경을 성도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를 않았어요.
또 성도들은 배울 수 있다고 믿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믿음대로 안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 못 배우고..
안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 잘못 가르치고 미흡하게 가르치고..
이렇게 해서 아무도 자녀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가 성경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못했다는 거야.
한국 교회나 기독교 전체에 큰 약점이죠.
유대인들은 가르칠려고 그렇게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녀를 낳는 목적도 유대인들이 자녀를 10명 15명 낳는 목적이 뭐냐 하면, 그렇게 여럿을 낳다 보면 에스라라든지 가말리엘 힐렐 같은 랍비가 나오지 않겠는가 혹시라도..
그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니까..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초등학교 문턱도 안 밟아봤어. 그런 분인데, 자녀 7명을 낳다 보니까 5번째 나 같은 사람도 나오고, 6번째 내 동생이 나와서 둘이 다 목사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우리 둘이 목사가 되는 바람에 밑에 조카 둘이 목사가 되어서..
우리 어머니 밑에 목사 4사람이 나온거예요. 그래도..
감사한 일 아닙니까? 시골 신작로 끝나는 동네에서..
세상에 그렇게 꽤재재한 동네에서 자동차가 더 이상 못들어가는 동네인데, 그런 데에서 한 동네에서 목사 넷 나와도 대단한데, 한 가정에서 한 어머니 밑에서..
어머니는 빌기는 딴데 빌었어요. 딴데 빌었는데..
평생에 빌기는 하나님께 빌지 않고 딴데 빌었는데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서..
그냥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시랑께 비나이다 하면서..
그러니까 여러분 앞으로 결혼할 사람들은 가족계획을 하세요. 무슨 계획을 하느냐? 15명 낳는 계획을 해요.
내가 볼 때 12명은 너무 작아..
유대인들이 15명 낳는데 우리는 그보다는 더 낳아야지..
그리고 대학공부 해도 좋고 안 하면 더 좋고,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 아니야.
빨리 중학교 졸업하면 결혼할 준비해가지고 빨리 빨리 결혼해서 15명 낳을려면 상당히 서둘러야 돼요.
우리 성경강좌 할 때 보면 17명 낳은 사람 있죠?
지난번에 어떤 엄마가 16번째까지 낳아서 안고 ‘너는 막내가 아니야’ 하면서.. 그렇게 교훈하는 것 보셨잖아요.
미국에서 두 가정이 경합을 벌인다는데 한쪽은 17명, 한쪽은 16명 낳았는데, 누가 끝까지 낳는가 보자 하면서 계속 더 낳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아직도 젊은 엄마 같아.
그러니까 한참 더 낳을것 같애..
여성들이 계속 아이를 낳으면 늙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 낳으면 갱년기도 없어요.
진짜입니다.
보니까 전혀 안 믿는 눈치야. 보니까..
계속 낳으면 공장의 문이 닫혀버리니까 갱년기가 오는 거지..
그러니까 딴 교회 말고 우리 교회에 그런 사진이 나와야 돼요.
18번째 낳았단다 이렇게 나와야죠. 16명까지 낳은 분 한국에서 제가 봤거든요.
제가 무안에 있을 때 우리 교회는 전도사님 할머니가 16명을 낳았어요.
86세 될 때 안부를 물었는데 아직은 아픈데가 없다고..
16명을 낳았어요.
참 이상하게 나는 설교를 하다보면 결론이 그리로 가요..
그래서 자녀들에게,
3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열조가 우리에게 전했다.. 전하고 전하고 전해야 돼요.
그래서,
4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여러분 아삽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시를 썼기 때문에 아삽의 이런 결심과 신앙과 노래와 이런 것들이 후대에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 듣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계시적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나타나는 계시적 사건은 한번이나 두번 이렇게 일어났지만 그 교육은 한번만 하는게 아니고, 사건은 한번이지만 그것을 기록해서 교육은 계속되고 반복되는 거죠.
계속되고 반복하라고 이것을 경전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사람들을 모든 사람에게 가서 계속 기적을 행하다가 보면 이 자연질서가 다 파괴되는 거야.
그렇지 않습니까?
날마다 해가 동쪽에서 섰다가 서쪽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맨날 여호수아때처럼 해가 떴다가 말았다가 해봐.
질서가 다 깨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기적과 사건이 일어난 것은 한번이면 족하고, 이것을 기록해서 교육은 계속되고 교훈은 반복되어야 되죠.
이런 말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나 같으면 필기를 하겠다..
사건은 한번이어도, 교육은 계속되어야 되고, 교훈은 반복되는 것이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6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7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8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여러분 교육 목적은 조상들처럼 되지 않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유명한 손봉호 장로님 계시죠? 서울대학 교육대학에 교수로 계시는 분인데, 제가 참 존경하는 분인데, 그 장로님이 한국에 있는 속담을 하나 때려부수는 책을 하나 썼는데, 속담이 뭐냐 하면, 보통 우리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죠?
그런데 내가 보니까 윗물이 맑아도 아랫물이 흐려. 보니까..
지리산은 물은 상당히 맑은데, 낙동강 물은 부산까지 가서 보면 꾸정물이야. 완전히..
그런데 이 분은 뭐라 하느냐? “윗물은 흐려도” 라는 책을 썼어요.
위에 어른들은 잘못해도 기독교인들은 후손들이, 어른들이 잘못한 것을 냉철하게 비평하고 우리는 우리 선배들이 잘못해도 후배들은 잘못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아주 유명한 책이예요. ‘윗물은 흐려도’ 라는 수필을 썼는데, 오래전에 읽고 참 감동을 받았어요.
윗물이 흐리다고 불평 하지 말고, 윗물이 흐려도 아랫물은 얼마든지 맑을 수 있습니다.
손봉호 교수님의 이야기인데,
여기 지금 우리가 역사교육 하는 목적이 뭐냐 하면, 8절에,
8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역사교육의 목적이 조상들의 우를 조상들이 범한 실수를 그런 과오를 범죄와 허물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를 항상 비난하고 이런 것은 잘못하는 겁니다.
비난이 아니고 건전한 비평정신. 우리 열조 우리 선배 할아버지 조상들이 무슨 못된 짓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건전한 비평을 해야 역사가 발전하는 거예요.
제가 가끔 우리 한국교회가 이런 것 잘못되었다 하고 비평하는데, 그 비평을 비난으로 알아가지고 크리티시즘(criticism)이라는 것과 슬랜더(slander)는 같은 말이 아니거든요.
헐뜯는 것과 비평하는 것은 다른 거야.
비평은 지성의 1기능이 비평인데, 비평 없이는 발전이 안 됩니다.
저는 당연하다 싶은 것도 정말 당연한가 꼭 비평을 해봐요. 정말 당연하냐?
비평을 해야 우리가 잘못된 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역사 교육할 때 우리가 그런 것은 철저히 공부해야 돼요.
그래서 이런 안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견자라는 그런 존경을 받은 겁니다.
역대기에 여러 군데에 보면 아삽을 선견자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시를 보면 일단 북왕국이 멸망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 많거든요.
남왕국 유다는 아직 멸망된 것 같지 않고 아삽의 시를 볼 때..
9절에 보면,
9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에브라임’은 북왕국을 말하죠?
전쟁에서 졌다는 거죠. 왜 그러느냐?
10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11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었도다
교육 부재죠.
12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13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
14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
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16 또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17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시험하고 탐욕을 냈던때가 민수기 11장 34절 35절에 기브롯핫다와예요.
탐욕자의 무덤이라고..
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20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22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을 무시한거죠.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무시하거나 멸시하기 때문에 안 믿는 것 아닙니까?
23절,
23 그러나 저가 오히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24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25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
26 저가 동풍으로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27 저희에게 고기를 티끌같이 내리시니 곧 바다 모래 같은 나는 새라
28 그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 거처에 둘리셨도다
29 저희가 먹고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도다
30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저희 식물이 아직 그 입에 있을 때에
31 하나님이 저희를 대하여 노를 발하사 저희 중 살진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32 그럴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33 하나님이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여러분 이 믿음이 없이 패역하다가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했어.
여러분 믿음이 없으면 허송세월을 많이 해요.
세월을 그냥 헛되게 많이 보내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인생이라는게 기회가 한번밖에 없는데, 그 세월을 헛되게 보낸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믿음을 갖지 못하면 세월을 그냥 헛되게 보내는 거죠.
.. 저희 해를 두렵게 지내게 하셨도다
34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35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36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37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정함이 없다’는 것은 ‘깨끗할 정(淨)’자가 아니고, ‘결정할 정(定)’자. 결정하는 마음을 한군데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갈팡질팡 이렇게 했다는 거야.
38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39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40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고
41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42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생각이 없고, 역사를 기억하지 하고, 하나님의 행하신 이적 기사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거야.
43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 징조를, 소안 들에서 그 기사를 나타내사
44 저희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저희로 마실 수 없게 하시며
45 파리 떼를 저희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46 저희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시며 저희의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47 저희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저희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48 저희 가축을 우박에, 저희 양떼를 번갯불에 붙이셨으며
49 그 맹렬한 노와 분과 분노와 고난 곧 벌하는 사자들을 저희에게 내려 보내셨으며
50 그 노를 위하여 치도하사 저희 혼의 사망을 면케 아니하시고 저희 생명을 염병에 붙이셨으며
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52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도다
그러니까 애굽에는 그러한 재앙을 내렸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렇게 양떼같이 인도해 내셨는데, 그런 것도 기억하지 않고 북왕국이 까불다가 망했다 그런 얘기죠.
53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54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 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56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57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가서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실로’는 에브라임 지파의 수도입니다.
61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64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65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66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이것은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대가 송장이 되었던 일 같이 보입니다.
67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그러니까 북왕국을 버렸다는 얘기죠.
67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69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
70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그러니까 아직은 이 때를 봐서는 북왕국은 하나님께 버림받았지만, 버림받은 대신에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 다윗의 가문을 택하셨다. 다윗 시대에 성가대장이니까 이 사람이..
이렇게 노래한 것을 보면 역사를 쭉 굽어 살피는데, 아삽의 시라 하지만 이것도 아마 아삽의 자손의 시겠죠?
왜냐하면 다윗때는 북왕국 남왕국이 없었잖아.
후대이기 때문에 이렇게 쓸 수 있는 거예요.
북왕국을 버리고 남왕국을 택했다는 것은 아삽이라고 하지만, 아삽의 자손들이 후손들이 쓴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이 사람이 아까 얘기한대로 어찌해서 그 후손들이 믿음을 팔아먹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느냐? 아까 봤죠. 역사 교육 한다고..
부단히 가르쳐서 그 조상들처럼 그렇게 패역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은 가르치는 거예요.
사건은 한번 있었지만 그것을 기록한 성경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부단히 가르쳤기 때문에 아삽 자손들이 바벨론 포로갈 때 포로잡혀 갔고, 잡혀 간 사람들이 복된 사람들이니까,
또 돌아올 때도 돌아왔는데 128명이 돌아온 것 아녜요?
그래서 저도 모르겠어요. 저도 열매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 현재로도 성경을 몰라서 아주 애타는 사람들이 성경을 깨닫고 즐거워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 현재 우리 일반 기독교가 하는 것은 보면..
여러분 지난 월요일 저녁 신문에 인터넷 신문판에 보니까 기독교 윤리단체에서 무작위로 성인 100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기독교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18.4%밖에 안 돼요.
기독교라는 종교가 믿을만 한가를 설문했는데, 18.4%밖에 안 되고, 불교는 36%-39%예요.
카톨릭이 26%가 되고..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신뢰가 안 가는 종교가 기독교로 나타났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한국에 있는 기독교인이 18.3%예요.
한국에 기독교인이 18.3%인데, 18.4%가 기독교를 그래도 신뢰할만하다 이렇게 밖에 안 나온 것은 더 이상 선교가 안 되는 이유가 보이죠?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이 교회의 어떤 집회문화나 이런 것들이 세상 사람의 눈에 경건하게 의롭게 정직하게 안 보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주지 못하는 종교가 되어버렸어요.
그러면 선교가 어려워요.
이것 회복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한번 국민들에게 잘못된 종교처럼 인식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선교가 굉장히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말씀대로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것이 있는데, 저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저의 욕심은 그래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제대로 가르쳐서 아삽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 갔다와서까지 믿음의 뿌리가 유지된 것처럼,
샤론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고 에스라 성경강좌에서 성경을 배우고 혹은 CTS나 인터넷에서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주님 오실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이 땅에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열심 그런 소망 그런 기대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힘들고 외롭고 하지만 묵묵히 이것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지금 현재 우리 기독교인 보통 아무리 큰 교회 모습이라도 그 모습으로는 한국의 교회의 아름다움을 사회에 심어주기 어려워요.
너무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그런 문화로 타락하고 있는 거야. 변질되고..
교회가 도무지 경건한 것 같지 않고, 정직한 것 같지 않고,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도 성경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잘못하는 우리 선배들 따라 하지 않기 위해서..
78편 6절-8절 보겠습니다. 결론적인 얘기인데,
6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7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8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하는 이것이 우리가 지금 아삽이라는 사람이 이런 시를 남기고 이런 기도 이런 교육을 했던 목적인 것처럼, 우리 모두도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성실하게 심어 갈 수 있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하나님의 사람 아삽의 신앙과 그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정말 우리들도 이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사오니, 이 세대가 또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어떻든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이 사명을 맡겼사오니 잘 감당하게 하옵시고, 성경과 역사를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바르게 증거해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주님 오실 때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