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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전쟁이 끝난 날의 풍경
오봉술이 그 꿈을 마지막으로 꾼 것은 그가 일흔여섯이 되던 해 첫 서리가 내린 아침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언제나 스물두 살이었다.
가슴에는 계급장 대신 피가 번졌고,
귀에는 포성 대신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낙동강 방어선이라는 말이 그의 일생에 박힌 못처럼,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아침의 꿈은 달랐다.
총소리가 없었다. 불이 없었다.
그저 강이 있었다.
강물은 가을볕을 받아 금빛으로 출렁였고,
그 위로 종이배 하나가 천천히 흘러갔다.
오봉술은 강가에 서서 그 배를 바라보았다.
배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름도, 날짜도, 기도도.
그냥 하얀 종이가 물을 먹고 가라앉지 않은 채 흘러갔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손마디마다 관절염이 들어앉은 손이었다.
손가락 두 번째 마디에는 오십 년 전 세탁소 맹글에 눌렸던 흉터가 아직 있었다.
그것은 전쟁의 흔적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었다.
그 차이를 그는 이제 알았다.
오봉술이 살고 있는 마을은 경상북도 어느 군의 끝자락,
시내버스가 하루 네 번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었다.
마을 이름은 솔치라 했다.
소나무들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어서 붙은 이름인데,
요즘은 소나무도 많이 죽어나가 솔치라는 이름이 무색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오봉술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름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붙으면 실체가 사라져도 이름은 남는다.
전쟁터였던 땅도 결국 밭이 되고,
전우였던 사람도 결국 이름으로만 남는다.
그의 이웃은 강마담이라 불리는 강말순 할머니였다.
일흔셋으로 오봉술보다 세 살 아래였으나 허리가 더 꼿꼿했다.
그녀는 자신이 꼿꼿한 것이 아니라 슬픔이 뼈를 세워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십 대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오십 대에 아들을 먼저 보냈다.
아들은 교통사고였다.
강말순은 그 사실을 말할 때 '교통사고'라는 단어를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건조하게 발음했는데,
오봉술은 그 건조함이 실은 눈물을 모두 써버린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마을 경로당에서 하루 한 번씩 마주쳤다.
특별히 친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살아남은 자들끼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해 가을, 마을에 새 목사가 부임했다.
박세현이라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마흔 초반이었고,
서울 신학교를 나와 십오 년 동안 도시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가 왜 서울을 떠나 이 작은 마을에 왔는지,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그의 아내가 오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는 그 이후 도시에서의 목회가 무언가 공허하게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신자들이 늘어날수록, 자신이 드리는 설교가 자신에게 먼저 가 닿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박 목사는 부임 첫 주일에 오봉술을 보았다.
맨 뒷자리에 앉아, 찬송가는 부르되 입을 거의 열지 않는 노인.
눈은 십자가 위의 어느 지점을 고정하여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기도하는 사람의 것인지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예배 후 박 목사가 인사하러 다가가자 오봉술은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는 힘이 상당했다.
할아버지 손은 이렇게 강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 목사가 그 악력에서 손을 빼며 말했다.
"오래 다니셨습니까, 이 교회를?"
"사십 년."
오봉술은 그렇게만 말하고 예배당을 나갔다.
박 목사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십 년 동안 뒷자리에 앉아 무엇을 들어온 사람인가.
그달 말에 오봉술이 쓰러졌다.
뇌경색이었다.
다행히 빠르게 발견되었다.
강말순이 사흘째 그의 집에 불이 켜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문을 두드렸고,
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구급차가 오는 데 이십오 분이 걸렸다.
그 이십오 분 동안 강말순은 오봉술의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나중에 그녀는 그 시간이 자신이 살면서 가장 고요했던 시간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왜인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제 2 장 원수와의 화해를 기록하는 방법
병원 침대에서 오봉술은 오래 천장을 바라보았다.
몸의 왼쪽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을 들어올리려 하면 신호가 어딘가에서 잘렸다.
마치 전쟁 중에 전화선이 끊기던 것처럼.
그 느낌이 너무나 익숙해서 오봉술은 잠깐 자신이 다시 그 전선에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천장에는 형광등이 있었고,
형광등 옆에는 소화기 마크가 있었고,
소화기 마크 아래 커튼 봉이 있었다.
전선이 아니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처럼 구체적인 것들로 확인된다.
박 목사가 문병을 왔다.
오봉술은 그를 보고 고개만 끄덕였다.
박 목사는 의자를 당겨 앉더니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사들은 대개 침묵을 버텨내지 못한다고 오봉술은 생각해왔는데,
이 목사는 달랐다.
오 분이 지나도록 그냥 앉아 있었다.
"무서우십니까?" 박 목사가 마침내 물었다.
"뭐가."
"죽음이요."
오봉술은 잠시 생각했다.
정직하게 대답하자고 마음먹었다.
이제 정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죽음은 안 무섭소.
하나님 앞에 서는 게 무섭지."
박 목사가 고개를 들었다.
"어떤 점에서요?"
"내가 죽인 사람들 때문에."
그 말이 나오자 병실이 조용해졌다.
오봉술은 자신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낸 것이 이번이 처음임을 알았다.
사십 년 교회를 다니면서,
목사에게도, 아내에게도,
자식들에게도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이었다.
박 목사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봉술은 그 침묵이 고맙다고 생각했다.
강말순이 다음 날 왔다.
그녀는 죽을 가져왔다.
병원 밥이 짜다며 자기가 끓인 것이라고 했다.
"잘 먹어야 낫지."
그것이 그녀가 한 말의 전부였다.
그러나 오봉술은 그 말 안에 여러 개의 말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빨리 일어나야 한다.
나 혼자 두지 마라.
아직 갈 때가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네가 필요하다.
죽을 받아먹으면서 오봉술은 강말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주름이 깊었다.
주름 하나하나가 날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주름은 아들이 죽던 날 생겼고,
저 주름은 남편이 떠나던 해에 새겨진 것이리라.
"나한테 하나님이 있어서 다행이오."
오봉술이 갑자기 말했다.
강말순이 물었다.
"하나님이 뭘 해줬는데요."
"싸움을 끝내줬소."
"무슨 싸움."
"나하고 하는 싸움."
강말순은 이해한다는 표정도,
이해 못 한다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냥 수저를 건네주었다.
"더 드세요."
오봉술이 오십 대였을 무렵,
그는 한 가지 신학적 문제와 씨름했다.
물론 그는 그것을 '신학적 문제'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다.
그냥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자신이 전쟁에서 죽인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면,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옳은가.
그는 이 질문을 이십여 년 동안 가지고 살았다.
교회에서 은혜를 받는 것 같다가도,
기도 중에 그 얼굴들이 떠오르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생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읽고 있던 로마서에서 한 구절이 그를 붙들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원수 되었을 때에.
오봉술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자신이 의롭게 된 뒤에 하나님이 받아들이신 것이 아니었다.
원수인 상태에서, 화목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 화목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다 해결한 뒤에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오봉술은 그날 밤 처음으로 자신이 실제로 용서받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했다.
가능성이었다. 확신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능성만으로도 이십여 년의 무게가 조금 달라졌다.
제 3 장 팍스(Pax)라는 이름의 속임수
박 목사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래 걷었다.
아내가 죽은 뒤 그는 걷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도시에서는 걷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 부딪혀야 했다.
신호등, 사람들, 가게들.
그러나 이 마을에서는 걷다 보면 산이 나왔다.
산은 그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오봉술이 한 말을 생각했다.
"내가 죽인 사람들 때문에."
그 말이 그의 안에서 계속 울렸다.
그것은 단순한 죄책감의 고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오십 년 이상 짊어지고 살아온 무게의 첫 번째 음절이었다.
뒤에 얼마나 많은 음절이 더 있는지 박 목사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백 이후 오봉술의 얼굴이 더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가 조금 옅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박 목사는 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박세현이 아내를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분노였다.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이 그를 더 당혹스럽게 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우면 신앙의 위기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냥 평화가 없었다.
이십 년 동안 설교하면서 '평화'에 대해 수십 번 말했다.
빌립보서 4장 7절, 요한복음 14장 27절, 로마서 5장 1절.
그 구절들이 그의 입에서 나올 때 그것들은 진실이었다.
그런데 아내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그 구절들은 그에게 도달하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그것이 자신의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다른 생각이 왔다.
어쩌면 그는 평화를 느낌으로 이해해왔던 것이 아닐까.
평화가 느껴지면 있는 것이고,
느껴지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고.
그러나 로마서 5장 1절의 평화는 그런 구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누리자'는 권유로 시작되지만,
그 권유의 근거는 이미 완료된 사건,
즉 칭의에 있었다.
전쟁이 이미 끝난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종전 협정은 유효했다.
박 목사는 그 생각이 오자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는지 당장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오래 이기지 못하던 무언가가 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마인들에게 평화는 팍스(Pax)였다.
팍스는 협정이었다.
강자가 약자에게 내리는 선언이었다.
황제의 군단이 어느 지방을 정복하면 그 지방에 팍스가 도래했다.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의 조건은 복종이었다.
세금이었다.
황제의 신상 앞에 무릎 꿇는 것이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로마의 신자들은 그 팍스 아래 살고 있었다.
그 팍스가 언제 거둬질지 몰랐다.
네로 치하에서 그 평화는 실제로 거둬졌고 그들은 불탔다.
그런데 바울은 말한다.
더 근원적인 평화가 있다.
황제가 아닌 분이 선언한 평화.
그 분 앞에서 우리가 원수였을 때,
그 분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성취된 평화.
이 평화는 황제가 거둬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며,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이것을 머리로 알았다.
그러나 오봉술과 나눈 짧은 대화들이 그 지식을 다른 층위로 내려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지식이 내려가는 것은 느낌보다 더 조용하고,
더 지속적인 일이었다.
제 4 장 질서의 회복 혹은 사랑의 자리
오봉술이 퇴원한 것은 입원한 지 삼 주 뒤였다.
왼팔은 여전히 완전히 말을 듣지 않았고,
걸을 때 왼발을 조금 끌었다.
그러나 의사는 재활을 잘 하면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오봉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것이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 있는 동안 무언가를 정리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말하기 어려웠다.
다만 오십 년 동안 꽉 쥐고 있던 어떤 것을 조금 내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던 날,
강말순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집 마당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쓸었소?"
"낙엽 쌓이면 미끄러지니까."
오봉술은 대문 앞에 서서 자신의 마당을 바라보았다.
어제 내린 서리에 소나무 가지들이 은빛으로 빛났다.
마당 한쪽에 그가 여름에 심어둔 국화가 아직 남아 있었다.
거기 핀 꽃 한 송이를 강말순이 꺾지 않고 남겨두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그 광경이 오봉술의 눈물샘을 건드렸다.
그는 얼굴을 돌렸다.
일흔여섯 노인이 마당 앞에서 우는 것은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들어가세요. 따뜻하게 해놨어요."
강말순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봉술은 그 목소리를 듣고 생각했다.
따뜻하게 해놨다는 것은,
내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해 겨울 박 목사는 로마서 5장을 본문으로 강해 설교를 시작했다.
오봉술은 여전히 맨 뒷자리에 앉았다.
다만 이제는 왼팔을 지팡이처럼 쓰는 오른손에 기대어 앉는 것이 달라졌다.
박 목사가 말했다.
"평화는 감정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평화를 '질서의 평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 찾아오는 고요함.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의 선으로,
그 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을 때,
그 질서가 회복될 때,
그 결과로 우리 안에 평온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오봉술은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전쟁 이후 그는 오랫동안 죄책감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다.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일이 중심이었다.
그 질서의 왜곡이 오십 년간의 불안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몰랐다.
"오늘 1절 말씀에 '화평을 누리자'고 했을 때,
헬라어 원문은 권유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화평을 가지고 있다.'
그 화평은 내가 느끼느냐 느끼지 못하느냐와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이미 성취된 사실입니다."
오봉술의 눈이 십자가를 향했다.
그는 사십 년 동안 그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그 십자가가 처음에는 부담이었다.
나를 위해 죽었다는 말이 왜 내가 그만한 죄를 지었다는 고발처럼 들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십자가는 다르게 보였다.
판결문처럼 보였다.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문처럼.
예배가 끝난 뒤 오봉술은 강말순에게 말했다.
"강 마담, 당신은 하나님 믿소?"
강말순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믿는다고 하기엔 너무 많이 따졌고,
안 믿는다고 하기엔 너무 오래 의지했어요."
오봉술은 그 대답이 어떤 신학 책보다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엔 그랬소.
그런데 이젠 알 것 같소.
믿는다는 게 전쟁을 이기는 게 아니라,
전쟁이 이미 끝났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라는 걸."
강말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오봉술 옆에서 함께 걸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제 5 장 어둠의 밤과 닻의 무게
봄이 왔다.
그리고 봄은 오봉술에게 가장 힘든 계절이었다.
겨울에는 모든 것이 잠들어 있어서 기억도 잠든다.
그러나 봄이 오면 흙이 녹고,
새싹이 올라오고,
냄새가 바뀌고,
그 냄새들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것들을 건드렸다.
낙동강 근처의 흙냄새.
불에 탄 풀 냄새.
봄이면 그것들이 돌아왔다.
그래서 봄이면 오봉술은 꿈을 더 자주 꿨다.
꿈속에서 그는 총을 들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언제나 그것이 옳은 일이었는지 물었다.
꿈은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 봄날 밤,
그는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 수 없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이 밝았다.
그 시간 그의 마음은 어두웠다.
하나님과의 화평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가.
내가 그것을 이해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인가.
사십 년 동안 교회를 다닌 것은 진심이었는가,
아니면 두려움을 달래기 위한 습관이었는가.
그 질문들이 새벽 두 시의 고요 속에서 더 크게 들렸다.
신앙의 어두운 밤.
오봉술은 그 말을 들어본 적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 있었다.
다음 날 그는 박 목사를 찾아갔다.
박 목사는 교회 마당에서 텃밭을 손보고 있었다.
오봉술을 보고 일어서면서 장갑을 벗었다.
오봉술이 말했다.
"목사님, 나 요즘 평화가 없소."
박 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앉읍시다."
두 사람은 마루에 앉았다.
오봉술은 어젯밤의 일을 말했다.
질문들이 왔던 것을.
대답이 없었던 것을.
박 목사는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것이 믿음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오?"
"저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그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화평이 정말 있는지 묻는 그 물음 자체가,
그것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오봉술은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고 평화가 오는 건 아니지 않소."
"맞습니다.
그래서 닻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가 폭풍을 만났을 때 평화를 느끼는 것과 닻이 잡혀 있는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제가 아내를 잃었을 때,
저는 전혀 평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에도 닻은 던져져 있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닻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봉술은 오래 그 말을 생각했다.
닻. 파도에 흔들려도 바위에 걸려 있는 것.
"그 닻이 그리스도라는 거요?"
"그렇습니다.
로마서 5장 1절이 말하는 화평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이루어진 화해입니다.
그것은 내 감정 상태와 관계없이 유효한 판결입니다.
할아버지 어젯밤 그 어둠 속에서도 그 판결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오봉술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왼발을 여전히 조금 끌면서.
평화가 갑자기 찾아오지는 않았다.
새들이 다시 노래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랐다.
어젯밤의 어둠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어둠이 '닻이 없다'고 말했지만,
닻은 있었다는 것을.
그 사실이 어둠을 끝내지는 않았지만,
어둠의 의미를 바꾸었다.
폭풍 한가운데 있는 것과,
폭풍 한가운데 닻이 있는 것은 같은 폭풍이지만 다른 이야기였다.
제 6 장 종전 이후의 삶 — 평화의 개화
여름이 왔다.
오봉술의 왼팔이 많이 돌아왔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들어올릴 수 있었다.
찻잔을 잡을 수 있었다.
재활 치료사는 기대 이상이라고 했다.
오봉술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일흔여섯에 기대 이상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해 여름 어느 날,
그는 노트를 꺼냈다.
오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전쟁에 대해 쓰기로 했다.
편지였다.
받을 사람이 없는 편지.
그가 전쟁에서 마주쳤던 얼굴들에게 쓰는 것이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처음에는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용서를 비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썼다.
그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상상해서 썼다.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다.
밥을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계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상상이 그들을 적으로 만든 역사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다.
편지를 다 쓰고 나서 그는 그것을 접어 서랍에 넣었다.
태우지 않았다.
남겨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평화와 맺은 계약서 같은 것이었다.
강말순이 그해 가을 처음으로 예배당에 들어왔다.
오봉술 옆에 앉아서 그녀는 찬송가를 받아들고 오래 바라보았다.
노래는 하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예배 후 박 목사가 인사하러 왔다.
"처음 오셨죠?"
"예." 강말순이 말했다.
"하나님이 뭘 해주는지 보러 왔어요."
박 목사는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오봉술은 그 짧은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강말순이 여기 온 것은 사십 년이 걸린 일이다.
아들을 잃고, 남편을 잃고,
혼자 살면서도 굽히지 않은 등뼈가,
오늘 이 문턱 하나를 넘었다.
그것을 '처음'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해 겨울,
오봉술은 다시 그 꿈을 꿨다.
낙동강. 금빛 물결. 종이배.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이 차가웠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그는 종이배를 손으로 잡았다.
배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배 위에 이제 글씨가 있었다.
그는 읽으려 했지만,
빛이 너무 밝아 읽을 수 없었다.
그냥 그 밝음이 좋았다.
그 밝음 안에 있는 것이 좋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오래 누운 채로 있었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겨울 새.
그 새가 무슨 새인지 그는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들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내가 느끼는 평화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이미 성취된 사건이다.
내가 원수 되었을 때 이루어진 화해이다.
그 화해는 내 감정 상태와 관계없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어둠 속에 있을 때도,
꿈에 시달릴 때도,
새벽 두 시에 질문들이 쏟아질 때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오봉술은 그것을 사십 년 만에 이해했다.
아니, 어쩌면 이해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인 것이다.
이해와 받아들임은 다른 일이다.
이해는 머리에서 일어나고,
받아들임은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일어난다.
봄이 왔다. 이번 봄은 달랐다.
흙냄새가 났다.
불에 탄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봉술은 마당에 나가 국화 모종을 심었다.
왼손으로 흙을 떴다.
느렸지만 할 수 있었다.
강말순이 울타리 너머에서 보고 있었다.
"뭐 심어요?"
"국화."
"거름 줬어요?"
"아직."
"잠깐요."
그녀가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가 퇴비 한 바가지를 들고 왔다.
오봉술 옆에 쪼그려 앉아서 뿌려주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흙을 만졌다.
봄 햇볕이 마당 위에 있었다.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
솔치.
소나무가 많아서 붙은 이름.
지금도 소나무는 있었다.
다 죽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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