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네는 말이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재주가 비상한 인물로 소문이 났능기라. 우리들은 자네가 판사나 검사를 할 줄 알았다고!”
“판사 검사보다 돈 잘 버는 사장이 최고제! 뭐라 캐도 우리 쑥밭골에선 장 사장이 제일 출세했능기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자네는 코흘리개 때부터 뭐가 달라도 달랐어. 딴 아이하고는 떡잎부터 아주 싹 달랐다 아이가.”
“아이고, 공부는 우짜고! 자네는 산수라 카면 백점은 따놓고 먹었제? 참말로 공부 잘했능기라.”
마을 진입로 포장 협찬금을 부탁하러 온 쑥밭골 특사들은 장영표 사장을 칭찬하느라 서로 앞 다투어 침을 튀겼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무슨 칭송의 헌사를 늘어놓아도 홍연실의 낭창낭창 나긋나긋한 모습의 실루엣에 가려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쑥밭골 사람들이 자신의 송덕비를 세워준다고 해도 그 모두가 그녀의 미소 한번보다 하찮은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산수’였다.
“자네는 쑥밭골이 낳은 최고 인물이고, 재산도 누구보다 많이 모았담시로! 그래서 우리는 딱 믿고 있능기라. 진입로 포장 협찬금도 가장 많이 내놓을 것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주 염치없는 것은 아니데이. 몇 년 전부터 가가호호 돈을 갹출해 모아왔고, 다른 출향 인사들에게도 십시일반 얼마씩 협찬금을 거두고 있능기라.”
“우리도 무리한 요구야 할 수 없제. 그래서 말인데, 돈 백만 원, 이백만 원쯤 자네가 보태주면 좋겠다는 그 말이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채 한눈을 팔고 있던 장영표 씨는 돈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구나 그는 쑥밭골 촌사람들의 입에서 돈 백만 원, 이백만 원이란 말이 식은 죽 먹듯이 너무 쉽게 흘러나오는데 경악했다. 돈 백만 원, 이백만 원이 아이들 이름인가, 라고 생각하자 그의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땅 열 길을 파보아라, 땡전 한 푼 나오는가 말이다!”
그 말이 그의 입에서 자칫하면 흘러나올 뻔했다.
장영표 씨의 산수는 계산된 알사탕 공세로 부인을 얻었던 것처럼, 땡전 한 푼의 효용론이 철저하게 뿌리박고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도 땡전 한 푼씩만 주었다. 1만 원을 1만 원 권 지폐로 한 번 주는 것이 아니라, 100원짜리 동전으로 100번을 주었다. 또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야간 여고생 숙자에게 보너스를 주어도 10만 원을 한꺼번에 주지 않고, 1000원짜리 지폐로 100번을 주었다. 실제로 숙자는 10만 원을 한꺼번에 받고 단 한 차례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보다, 10만 원을 100번으로 나눠 받으면서 100번이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에 더 만족했다.
장영표 씨가 가구공장을 운영할 때도 그의 땡전 한 푼 산수는 확고부동했었다. 몇 안 되는 종업원과 거래처에 대해서도 월급제보다는 일급제로, 일급제보다는 시간제로, 사원제보다 고원(雇員)제로, 현금결재보다 어음결재로, 일시금보다 분할금으로, 고정급보다 수당급으로……작게 나누고 쪼개고 하는 방식을 밀고 나갔던 것이다.
그가 불황이 닥치기 바쁘게 공장을 처분한 것도 자신의 산수에 종업원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때문이었다. 그의 산수는 이미 경영 형편이 어려운 것으로 판단을 했으므로 종업원들의 이런저런 요구가 제기되자 공장을 정리해버렸다. 종업원들과 입씨름을 해가며 다투는 것보다 공장을 처분한 돈으로 빌딩을 사들여 임대를 하여 세를 받아먹는 것이 백 배 나은 일이라고 계산했던 것이다.
장영표 씨는 쑥밭골에서 찾아온 김판돌 씨와 마을 대표자들의 요구에 대해 이 말 저 말 변명을 들이댈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요구를 한마디로 딱 잘라 거절했다. 냉정하기로는 한겨울 동장군이 남기고 간 얼음 뺨 칠만 했다.
“나 그런 돈 못 줍니다. 백만 원, 이백만 원이 무슨 아이 이름이오? 그런 돈다발을 길바닥에 깔면 콘크리트에서 쌀이 나옵니까, 감이 열립니까? 촌동네는 촌동네답게, 흙길은 흙길로 내버려 두는 것도 좋아요. 촌동네에 몇 사람이 산다고 진입도로를 넓히고, 콘크리트 포장을 한다고 그 야단들인가, 그 말씀이오!”
장영표 씨가 내쏟은 말에 쑥밭골 사람들은 한동안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가 보았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던 김판돌 씨가 화를 벌컥 내며 냅다 소리를 내질렀다.
“돈 못 내겠다면 그만이지, 자네가 우리들에게 훈계까지 한다 그 말이가? 촌동네는 촌동네답게, 무시기가 어쩌고 어째?”
“소주 한잔 사라면 그거야 사겠소만, 길바닥을 돈으로 덮겠다는 그 허영심이 딱하다 그 말씀이오.”
“우리가 소주 한잔 얻어 묵을라꼬 수백리 길을 달려온 줄로 아나? 자네 말이 그렇다면 소주는 고사하고 맹물 한잔 얻어 마실 마음도 없데이. 좋아, 우린 이만 갈란다. 장영표 사장, 자네 잘 먹고 잘 살거래이!”
“참말로, 뭐라카노? 무시기 허영심이 딱하다고? 이거 참,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있노?”
쑥밭골 고향 사람들은 그만 일어나 문을 벌렁 박차고 나가버렸다. 장영표 씨는 그들을 붙들지도, 불러 세우지도 않았다. 그의 뇌리에는 그들보다 백배 천배 소중한 홍연실의 생각만으로도 빈 구석이 있을 수가 없었다.
(4)
장영표 씨는 자나 깨나 홍연실을 생각했고, 그 생각이 얼마나 간절한지 마치 몸살이라도 앓는 것처럼 온몸에서 열이 펄펄 끓어올랐다. 쑥밭골 사람들이 협찬금을 받으러 온 바람에 데이트가 중단된 뒤로 어째선지 그녀와의 만남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일감이 늘어나 날이면 날마다 재봉틀 돌리기에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했다.
그의 애타는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간절해졌다. 솜털보다 부드럽고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하고 깊은 산중 석간수보다도 더 청량한 그녀의 목소리는 전화로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를 직접 만나볼 수가 없어 그의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기만 했다. 그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얼굴을 보지 못해 몸살이 나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고, 그러자 그녀는 이런 대답을 들려주었다.
“선생님, 우리가 만나지 않더라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주셔요. 제 마음은 언제나 선생님 가슴에 안겨 있거들랑요. 선생님 자동차의 등받이 카버 하트 무늬에 바로 제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게 따뜻하지 않으셔요? 하트 무늬를 만지작하면서 마음을 달래보세요.”
(아이고, 요것이 참말로 사람 몸살나게 만들어주고만! 혓바닥으로 녹여먹고, 빨아먹고,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아니지 아니야, 둘이 먹다니……혼자서 씻어주고 닦아주고 감싸주고, 어디까지나 나 혼자서 먹어야지!)
그가 혼잣말을 이렇게 쏟아내는 동안 온몸에서 찌릿찌릿한 전율이 일어났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전화 속에서 또 시골 얘기를 물어오고는 했다.
“선생님, 고향에는 살구꽃 복숭아꽃이 피겠지요? 금잔디도 있고, 솔밭도 있고, 보리밭 밀밭도 있겠지요?”
그녀의 그 말에 그는 쑥밭골 특사로 김판돌 씨 등이 사무실에 찾아왔던 일은 깡그리 잊은 채로, 입에 거품을 물고 전화통이 뜨거워지도록 열변을 토했다.
“아이고, 살구꽃 복숭아꽃뿐이겠나. 제비꽃 할미꽃 진달래 철쭉 찔레꽃 연꽃 무꽃도 다 있다고! 또 금잔디 솔밭 보리밭뿐만이 아니다. 자운영밭 밀밭 쑥밭 참외밭 수박밭 목화밭 고추밭 감자밭 고구마밭……없는 것이 없다니까!”
지난번에 고향 마을 쑥밭골 사람들이 사무실에 찾아왔던 날, 홍연실은 그에게 시골 얘기를 밤새도록 듣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 그가 불쑥 그녀에게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시골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아주 내가 연실을 데리고 시골에 가서 시골 사람이 되어 함께 살면 어떨까?”
그녀는 놀랍게도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렇게 맞장구를 쳤었다.
“어머나, 선생님!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제 꿈이 이루어지는 거죠. 전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꿈을 꽃밭에 물 주듯이 키워왔다고요!”
그 이후 그와 그녀는 전화로만 얘기를 나눴지만, 시골 얘기라면 두 사람은 나이 차이도 아랑곳없이 마음이 하나가되어 불꽃이 타오르는 듯했다. 그는 언제까지나 전화기를 든 채 마른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만나야 한다. 홍연실을 만나보아야 한다. 이건 무조건이다,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장영표 씨의 ‘산수’는 조금의 망설이지 않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무조건 그녀를 만나야 보릿대의 싱싱함, 박꽃의 순후함, 아카시아의 짙은 향취(香臭)를 맡을 수 있다. 그녀의 그런 얼굴을 보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쇠똥 불에 개구리 구워먹는 어린 시절’을 보다 절실하게 생각할 수 있을 터였다.
장영표 씨가 갑자기 홍연실과의 만남을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불현듯 자신과 그녀와 아내의 문제를 묶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 때문이다. 사실 아내로 말하자면 홍연실과 견줄 것이 없었다. 그저 집안에서 아이나 키워온 아내는 40대 중년여자의 허물을 죄다 지니고 있는 듯했다. 살이 쪄서 스타일도 구겨졌고, 아카시아 향기는 고사하고 고작 화장품 냄새밖에 풍기는 것이 없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남편 수발하며 살림을 꾸려온 여성이라면 그런 변화가 이상할 것도 없다. 장영표 씨도 그런 아내의 변화를 추호의 껄끄러움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홍연실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특히 그녀가 시골에서 사는 꿈을 꽃밭에 물 주듯이 꿔왔다는 말을 들려준 뒤로 그의 생각은 급격히 한쪽으로 치우쳤다.
아내 문제에 관한 산수는 물론 단순할 수가 없다. 그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작하여 3년 동안 사탕을 사주었고, 그 뒤로도 생일이다, 졸업이다 하여 선물을 사주었다. 그가 한 사람에게 그처럼 장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투자를 한 것은 이 세상에서 아내밖에 없다. 그가 가구공장이라도 경영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투자의 결과였다.
아내는 무엇보다 두 눈알이 초롱초롱한 아들딸을 낳아서 제대로 키우고 가르쳐왔다. 그러니까 살을 섞고 살아온 아내와의 산수는 가감승제(加減乘除)의 보통 산수나 1, 2차 방정식으로는 풀 수가 없었다. 굳이 해법을 얻어내려면 ‘시그마’나 ‘무한대(無限大)’의 복잡한 기호가 들어가는 고등수학을 동원해야 될 것 같았다.
장영표 씨는 좌우지간 홍연실을 만나야 한다며 조바심을 쳤다. 아무리 일이 바쁘지만 차 한 잔 마실 짬이야 못 낼까보냐, 이렇게 단정한 그는 화들짝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꽥 소리를 내질렀다.
“숙자야, 나 나간다! 나는 만나야 한다!”
김성종 씨의 추리소설을 읽고 있던 야간 여고생 숙자는 깜짝 놀라 따라 일어서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는 그의 등에 대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일이 벌어졌구만, 나도 이제 추리소설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