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새해맞이도 요란스럽다. 땅이 넓고 모스크바 등 일부 도시들이 평지에 세워져 '해돋이' 같은 고단스러운 행사는 없고 친지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떠들고 즐기는 게 대부분이다. 이를 위해 모스크바 등 각 지자체는 시민들이 긴 새해 연휴(올해는 8일까지)를 즐길 수 있도록 시내 곳곳에 다양한 볼거리와 축제 등을 준비한다.
올해 가장 특이한 곳이 모스크바다. 이상난동 현상으로 모스크바에 눈이 내리지 않자 새해 맞이 행사장에 인공 눈을 만드는 등 예년과 완전히 다른 세밑 풍경이 만들어졌다.
사실 모스크바는 이미 지난 13일부터 새해 축제 모드에 들어갔다. 내년 1월 12일까지 붉은 광장 인근을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서 '성탄으로 가는 여행' 축제 фестиваль 'Путешествие в Рождество' 가 벌어진다.
안타까운 것은 모스크바에서 그 흔한 눈이 성탄절~새해 축제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모스크바는 어쩔 수 없이 눈을 인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모스크바의 새 명물인 자랴디예 공원과 트베르스카야, 노븨아르바트 거리 등에 쌓여 있는 눈더미가 바로 만든 눈이라고 한다. 그 흔한 눈이 이제는 모스크바 시민들이 SNS에 올릴만큼 인기를 끄는 이상한 겨울이고, 세밑이다.
이유는 역시 지구 온난화 현상이다. 모스크바가 서울보다 따뜻하다는 건 이미 몇차례 나왔고, 엊그제(18일)는 낮 최고 기온이 5.4도로 1886년 세운 12월 최고 기온 기록을 깼다. 12월 평균 기온이 영하(-) 6도 정도인데, 무려 10도 가까이 높았으니, 기가 찰 일이다.
날씨가 따뜻하면 좋은 일도 있다. 새해 맞이 술판을 벌이다가 길거리에서 동사하는 시민은 없어질 테니까. 매년 새해를 맞을 때마다 모스크바는 새해 날씨를 예보하면서 "술을 마신 뒤 절대로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곤 한다. 자칫하면 불상사가 생길 수 있고, 실제로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은 12월 마지막 날,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친지들과 먹고 마시며 밤을 샌다. 그리고 서울에서 밤 12시 보신각 종소리를 듣듯이, 러시아인들은 대통령의 신년사를 듣는다. 푸틴 대통령도 꼭 20년 전인 1999년 12월 31일 '한 세기가 넘어가는 역사적인 순간'을 즐기기 위해 친지들과 새해 맞이를 준비하던 중, 옐친 대통령의 사임 소식을 들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현지 언론은 러시아인들이 올해에는 새해 맞이 비용으로 1만9천루블(38만원)을 지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보다 1천루블(2만원) 정도 늘어났다. 경제난이 조금 해소된 탓이라고는 하지만, 새해 음식 준비에도 비용이 전년보다 16% 늘어났다고 하니, 서민들은 죽을 맛이다. 지출은 크게 선물을 사고(46%), 새해 음식을 준비(43%) 하는 것으로 나눠지고, 나머지는 가족과 연휴를 즐기는 비용이다. 선물은 주로 스마트 폰과 여성용 향수, 초콜릿 등을 고른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은 새해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야채와 과일, 치즈를 사거나(89%), 신선한 육류와 생선(87%)을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탁에 올릴 술로는 응답자의 84%가 스파클링 와인과 샴페인을 구매한다고 답했다. 보드카는 59%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