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에 대한 인식
세상 모든 것은 도에서 비롯된다.
도가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수도는 특별한 소수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인간의식의 수준에서 도의 실상을 파악하는 가운데 일어난 오해다.
본질적 차원에서 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도를 닦으며 살고 있다.
현대적 언어로 이야기하면, 수도는 자기 계발 및 발전에 있어 가장 궁극적인 방법론이다.
수도라는 방법론으로 자기상승을 통한 자기조화와 자기완성이 가능하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로 돌아가는데, 몸을 가지고 지상에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근본 빛을 상승시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세상을 공부환경이라고 말한다.
즉 다양한 사람들이 인연을 맺고 관계를 형성하면서 공부를 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적 시간표를 가지고 동등한 조건 속에서 지상의 현실을 살아가며 더 상위의 의식체계로 상승, 확장, 발전해 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
수도의 차원에서 보면 살아가는 시공간은 다르지만 각각의 시공간이 완성을 이루는 가운데 상호간에 진정한 공감과 소통을 통해 조화를 이루게 되므로 후천시대에는 인류가 서로 돕고 상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수도가 어떻게 자기완성을 향한 궁극의 방법론이 되는가.
세상 모든 것은 빛에서 비롯된다.
인간도 각기 존재의 빛이 있다.
창조이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생애의 기록이 빛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것이 정기신의 빛이다.
수도는 연정화기, 연기화신의 매커니즘을 통하여 자신의 정기신의 빛을 정화∙순화∙승화시키고 조화∙상생∙상합시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과정에 대한 인과응보에서 사필귀정으로 끝맺음되는 것이 아닌 결자해지와 해원상생, 거악생신을 통한 빛의 거듭남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즉 수도를 통하여 세상사적 차원을 넘어 근본적인 빛의 차원에서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문제들을 풀어 내게 된다.
개체가 조화와 완성을 이루어 가는 만큼 그것이 전체로 확산되는 것이 수도의 이치다.
그 이유는 모든 존재가 한 빛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존재의 의식상승은 다른 존재의 의식상승을 돕는다.
그만큼 도인이 나오게 되면 세상에 큰 변화가 수반되므로 수도는 개인 자신의 완성뿐만이 아닌 대우주의 조화와 완성에도 직결된다.
즉 기존의 시야와 안목으로 보지 못하는 세상의 흐름을 본질적으로 꿰뚫어 봄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인류 전체의 조화와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세상에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와 있다.
대변혁 이후 다가올 미래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신인류의 출현’이다.
현재 모든 제도와 법칙, 시스템의 부조화가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더 나아가 인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탐구하고 고민하게 된다.
즉 인간의 정체성을 찾을 수밖에 없는 시대로 접어든다.
수도는 이러한 시대를 여는 실체적 방법론이다.
과거에는 도를 닦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
세상 속에서 수도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설사 세상 안에서 도를 닦았다 해도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도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원래 세상은 도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간 하늘과 지상이 나누어지고 삶과 수도가 분리되다 보니 도가 외면당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처럼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거나, 신선처럼 기행을 하면서 도를 닦는 시대가 아니다.
말 그대로 ‘생활 속의 도’를 가장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시대가 후천이다.
생활 속의 도라는 말에는 깊은 의미가 내재해 있다.
후천시대에 도인들이 가야 할 길을 의미하며, 세상과 분리되어 있던 도의 가치가 다시 세상의 중심으로 자리 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후천시대에 도는 세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 속에서 수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마음공부를 하려면 자신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이 모두 일어나 봐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다채롭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과 인간의 마음이 만나야 한다.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세상과 단절하고 산으로 들어가게 되면, 마음의 빛은 단편적으로만 움직인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 없기 때문이다.
산은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인간의 삼욕칠정 중 특정 감정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음은 다채롭고 변화무쌍하며 복합적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애틋함도 느껴 보고, 직장 상사와도 부딪쳐 보며, 불의를 보면서 분노도 해 보고, 불우한 노인을 보며 측은지심을 가지는 등 온갖 마음이 다 일어나 봐야 인간의 마음과 삼욕칠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음공부를 해 나가는 것이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수많은 감정들을 겪으면서 그것이 비롯된 최초의 마음을 역으로 찾아가는 과정이 마음공부다.
수많은 마음들이 만나 충돌하지 않고 완전한 조화를 이루면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둘째, 수도를 한다는 것은 세상을 해탈한 듯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서부터 하늘의 섭리와 이치를 펼쳐 가는 것이다.
생활 속의 도라는 말에는 도인들이 주도적으로 행해야 할 도성구우와 광명천로의 길이 암시되어 있다.
만일 초연하게 사는 것이 도의 본질이라면, 번민거리가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후천의 도인은 세상 속에서 도를 닦고 펼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고뇌와 번민이 따를 수밖에 없다.
생활 속의 도를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원래 도는 모든 가치를 품고 있지만 인간의식에서는 도와 세상 사이의 거리가 아직 멀다.
세상적인 것과 도적인 것, 지상적인 것과 천상적인 것,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차이가 존재한다.
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그 차이를 줄여 나가는 일을 하므로, 도인이 있어야 할 곳은 산이 아닌 사람들이 같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도인은 하늘의 빛을 품은 존재이므로 도인이 있는 곳이 하늘이 된다.
즉 도인은 자신이 있는 곳(속세)에서부터 하늘을 열어 나간다.
도인은 도의식(하늘의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도와 세상을 조화롭게 가교하고 조정,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도의 가치가 비현실적 가치가 아니라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편가치가 되게끔 한다.
세상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품고 한 차원 더 상승시키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후천 도인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