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낙 '거시기' 하다보니까 남편의 옷을 별로 잘 챙겨주지를 못한다.
애초에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 를 부르짖기에, 그리고 40 이 다 된 남자가 자기 옷을 못 고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야... 남편 옷을 내가 사는 일이 없다. 없어!~
주말에 같이 나가서 사면 되지 않냐?
그렇다..그렇지만, 주말에 쇼핑 센터를 전전할 때의 그 서글픔이란.... 여러 사람이랑 같이 어울려서 걷는 게 재밌을 때도 없진 않지만, 나는 주말에는 쇼핑센터를 전전하느니 집에서 그냥 뒹구는 걸 선호한다.
그러다보니...우리 남편의 옷이 바뀔 날이 없는기다.
남편은 저처럼 '구세군' 시장에서 산 옷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급 옷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도 쇼핑을 간단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서비스 좋은 가게에 가서 맘에 드는 것을 사곤 한다.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러다보니 내가 주로 나와 애들 옷을 사는 곳----구세군 시장---에서 옷을 살 때 남편 옷을 사는 일이 없다. 나는 구세군에서 일 년에 두 번, 여름 맞이, 겨울 맞이 대 쇼핑을 하는데, 도합해서 40 불이 안 넘고 혹시라도 잘 못 샀다 하더라도 아쉬움 없이 그냥 도로 구세군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 요즘 구세군 시장은 물이 좋아 옷들이 아주 깨끗하고, 다양하고, 예쁘다.
그 결과....나는 항상 번듯하게 옷을 차려 입고, 가게에서 제 돈 주고 옷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음....옷을 자주 사지 않기에 좀 행색이 '거시기' 하다.
신발로 말하자면...집시풍, '항상 복고풍'인 나의 입맛 때문에 나는 옛날 신발들이 많다. 그리고 2 년이나 3년에 한번 유럽 갈 때에 신발 하나 좋은 거 산다. 그리고 두고 두고 우려먹는다. 복고풍이니까 신발장에 낡은 신발이 가득하다. (가끔 늙은 신발들이 귀신처럼 보일 때도 있고, 지겨워서 다 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래도 나중에 얼마나 아쉬울지 알기에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울 남편은 자전거 신발 한 켤레, 달리기 신발 한 켤레, 등산화 한 켤레, 그리고 캐주얼 구두와 샌들을 각 한 켤레씩 용도별로 신발 한 켤레를 소유하고 있다.
이번에 엄마가
"에릭 샌들이 많이 낡았구나. 혹시 지난 번 우리가 미국 왔을 때 산 거 아니니?"
(그러고보니 밑창이 너덜너덜한 게 보임. 왜 난 그런 게 말을 해야 보이나?)
"그런가?"
"그게...부시와 고어가 선거전 할 때였는데.....아이구. 매일 샌들만 신는 캘리포니아에서, 저 샌들을 오죽 신었겠니. 이젠 갈아줘도 되겠다."
"에릭이 알아서 바꾸겠지 뭐."
"네가 좀 사주면 안 되니?"
"아니, 자기 신발에 맞는 걸 사는 건데...에릭이 필요하면 알아서 사겠지요."
"에릭이......가..엾...다.."
(엄마는 이런 며느리를 두지 않은 걸 감사해하는 눈치...)
엄마는 물었다.
"그럼, 에릭은 신발이랑 옷이랑 다 자기가 사니?"
"음...그런 거 같네.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았었는데, 그런 거 같아요."
"오...참....너도...."
"엄마, 에릭이 좀 털털해서 그래. 아주 끝까지 낡아빠지지 않으면 그냥 사용하는 스타일이거든...지난 번엔 말이야, 글쎄 내가 한국 가게에 가서 식료품 사는 동안 에릭더러 차에서 잠을 자라고 했건든...쇼핑 끝내고 차로 돌아오는데 에릭이 뒷 의자에서 발을 유리창 쪽으로 올리고 잠을 자고 있더라고. 발은 좀 커? 근데 에릭 양말에 구멍이 큼직한 게 두 개씩 있어요. 유리창에 구멍난 양말이 떡 붙어 있는 게 무슨 작품 사진 처럼 보이더라니까.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히히 웃고...나도 웃겨서 죽는 줄 알았어. 어떻게 양말에 구멍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지?"
"이그...네가 거기서 웃을 수가 있는 거니? 너 정말 한심하다. 그런 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다시금 신주같은 며느리 두지 않음을 감사하는 엄마...)
"넌 다리미 질은 하니?"
"그건 정말 힘든 일이야. 엄마. 나는 바닥청소, 화장실 청소, 무릎 꿇고 하는 청소들 다 좋아. 그렇지만 다리미질은 스트레스가 쌓여서 못하겠어. 우리는 주름 없는 티셔츠를 선호하는데, 시어머니는 에릭한테 선물을 '남방'들을 많이 해요. 시어머니는 다리미질 좋아하시거든. 그러니까 내 맘을 모르시고, 남방들을 사주시는데,...뭐....절대 입지 않는다 노선이지. 남방 입고 싶으면 에릭이 다리미질 해야해. 자신의 일일랑 자신이 해야지."
(엄마의 머리 속으로는 김수희이 '너무 합니다, 너무 합니다, 당시---인은 너무~~합니다' 가 흘렀다지...)
며칠 후, 아침,
에릭이 회사갈 준비를 하고 나타났다.
엇! 나는 놀랐다.
남편이 평소와 달리 (-.-) 멋져 보였다.
피부가 깨끗해 보이고, 늠름한 어깨에 야릇한 '후까시'를 넣은 듯한,
뭔가 듬직해보이면서 도시적 세련미가 느껴지는데..
이게 뭔 일이란 말인가?
분명 어제까지도 저렇지 않았는데?....
소파에 앉아 계시던 엄마 아버지도,
"오, 오늘 에릭이 참 깨끗하고 멋있어 보이는구나."
했다.
정말로 그랬다. 옛날 연애할 때 내가 옆으로 훔쳐보면서 황홀해했던 생각이 날
정도로 에릭이 멋져 보였다.
눈썰미가 있는 엄마의 말씀:
"에릭, 티셔쓰가 참 좋구나. 에릭한테 잘 어울린다."
눈치 없는 아버지조차
"Eric, you look chic!"
했으니 에릭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냐는 야그다.
에릭은 검정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우리를 의식하면서 티셔츠를 쓸어내리는 게 자기도 새 옷을 입어 어색한 거 같았다.
음? 내가 못 보던 거 같은데? 새로 샀나?
새 티셔츠니까 천이 빡빡해서, 입어도 축 늘어져보이지 않는구나.
"에릭, 언제 산 거야?"
에릭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당신이 산 거 아니야?"
"난 산 적 없는데?"
에릭의 티셔츠를 뒤집어 봤다.
G.A.P 이잖아? 우리 집에 없는 상표다.
나도 산 적이 없고, 남편이 산 적도 없고, 그런데 남자 셔츠라니..
(내가 남편 몰래 바람이라도 폈더라면 사지가 후들후들 떨릴 순간이었음)
"우리 집에 외간 남자가 들어온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호호호~~"
그러다가 갑자기 든 생각~
오, 그저께 공사하러 한 아저씨가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지.
"그거 혹시 패이트릭 거 아닌가? 혹시 그 사람이 여기 부엌 의자에 걸어 놓은 거를 ...."
맞았다. 인부 아저씨의 옷이었다.
아쉬운 기색이 연연해, 에릭은 그 옷을 벗었다. 그리고 자기의......축...늘어지는...검정 티셔츠를 꺼내 잆었다.
엄마가 안타까와하신다.
"얘, 저 옷은 정말 아니구나. 오래 된 옷이지? 어떻게 옷에 따라 사람이 저리 달라보이니? 네가 좀 신경 써야겠다. 저렇게 후즐근한 옷을...."
나도 충격을 먹었던 상태였다. 에릭이 다시 찾아 입은 자기 티셔스는 우리가 결혼하던 해 어머님이 가져다 주신 옷이었다. 그러니...이미 8년이 된 옷인가? 나도 물론 8년은 물론 40 년이 된 옷, 죽은 사람들의 옷을 판 옷, 남이 버린 옷, 친구가 구세군에 넘기기 전에 내가 가로챈 옷 (쌔라야~~ 히히) 등을 입지만, 나야 옷의 가짓수가 많아서 궁색이 안 나는데, 남편은 몇 가지 안 되는 옷으로 만날 똑같이 입다보니 옷이 더 쉽게 낡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나는 남편이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 있다는 게, 울 남편이 저렇게 섹시할 수가 있다는 게... 금광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기분이 좋았다.
나는 남편더러 '당신은 벗은 게 더 낳아. 옷을 입었을 때보다.." 라고 찬사와 비판이 짬뽕된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너무 야한가?-.-삭제되어도 불평 안 하겠습니다) 그것이 에릭이 옷 맵시가 안 나서가 아니라, 옷이 너무 낡아서라는 것을 이제야...결혼 후 8년 만에 깨달은 것이다.
며칠 후 사위의 추레한 행색을 딸의 탓이라 생각하신 부모님이 에릭에게 티셔츠 두 장을 사주셨다.
에릭이 멋져졌다.
엄마 말로, '말로 빛나리 빛나리 하지만 말고, 진짜 빛 나게 해줘라. 티셔쓰 한 장 바꿔저도 인물이 저렇게 사는데...너도 너무했다."
동의한다. 나의 시각적 즐거움, 우리의 더 즐거운 성생활을 위해서라도 남편이 새 티셔츠 몇 장 사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남편이 색깔이 잘 맞는 (구멍 안 난) 양말만 밝히고, 깨끗한 구두에, 챠르르한 티셔츠에, 구겨지지 않은 바지를 '나/에/게' 요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없어야한다.
내가 남편의 구멍난 양말을 보고 '내탓이요, 내탓이요' 자성하지 않는 것이 비판의 여지가 있냐 없냐는 나의 관심 밖의 일이다. 부인으로서 그게 내가 잘못한 거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내가 남편을 귀히 여기고, 남편을 잘 돌봐주고, 남편을 '섬기고 '하는 것이 구멍 안 난 양말을 갖다 바치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나는 남편이 그렇게 구멍난 양말에 익숙하고, 그것에 개의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우리 아이들이 남의 것을 얻어 입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자기가 구차하다고 생각지 않고, '새 옷만을 입어야한다' '친척들이 주는 깨끗한 옷도, 상표 안 뗀 옷도 거부한다'고 하는 부모님들 밑에서 공주와 왕자처럼 자라는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자랄 수 있게 하려면....우리 부모 스스로도 구세군 옷, 버린 옷을 찾아 고쳐 입을 수 있고, (남편처럼 구세군 옷을 싫어하는 사람은) 허름한 옷, 뚫어진 양말을 서슴없이 신어, 옷과 양말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같이 하는 생활습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거이... 다 강마담이 떠드는 소리이다. 항상 뒤집고 뒤집어가면서 뭔 가치관을 찾아 내어 그걸 진지하게 가슴에 품고 사는 버릇이 있는 강마담이 하는 짓거리일 따름이다. (넌,..그냥 살면 되지 왜 이리 말이 많노! 지겹따....하는 생각이 들어 글도 쓰기 뭐하지만...그냥 쓰고 있다.)
에릭은 무슨 철학이 있어서 뚫어진 양말을 신는 건 아니다. 그냥 그게 신을 만~~ 하니까 신는 것이다. 그리고 신발도 밑창이 다 떨어져도 그게 신을 만~~ 하니까 신는 것이다. 티셔츠도 아무리 허름해도 그게 입을 만~~ 하니까 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사용할 만하다'의 정의가 좀 낡은 것까지 포함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사용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입고, 신고, 끌고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어떤 면으로는 바로 그게 내가 우리 아이들이 가졌으면 하는 사고방식이다. 거창하지 않게, 사물의 귀함을 떠들지 않으면서 (이게...내가 하는 짓거리임), 그냥 삶 속에서 검약을 실천하는 거...그리고 떳떳하고, 당당하고, 자기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는 거...
내가 이 글을 숨차게 쓰는 동안----엄마 아빠가 떠나실 날이 며칠 안 남았으므로 바쁘다---에릭은 엄마가 사 준 까만 티셔츠를 입고, 회사 갈 준비를 하고 나왔다.
엄마는 또 "정말 빛나리가 빛나리로다"
아버지는 또 "Eric, you look chic."
하신다.
나도 에릭한테 사랑을 느낀다. 멋진 티셔츠를 입은 그가 chic 해보여서이기도 하고 (헉헉...멋져!!), 그 티셔츠가 아니고, 허름한 티셔스를 입었더라도 한결같은 평온한 (무뚝뚝한-.-) 시선으로, 털털거리는 차를 타고 회사로 향할 그이기에... 사랑을 느낀다.
정말 같이 살 만~~~~하다. 나도 (그를^^)함부로 버리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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