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之道 其猶張弓與 천지도 기유장궁여 高者抑之 下者擧之 고자억지 하자거지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天之道 천지도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 則不然 손유여이보부족 인지도 즉불연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손부족이봉유여 숙능유여이봉천하 唯有道者 是以聖人爲而不恃 유유도자 시이성인 위이부시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공성이불처 기불욕현현 의역: 道는 마치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구나. 과녁을 기준으로 활을 너무 높이 올렸다면 내려서 맞추고, 너무 낮으면 높여서 맞춰야 한다. 활시위를 너무 당겼으면 힘을 빼고, 약하면 더 당겨야 하는 것처럼 하늘의 道는 넘치면 덜어내어 부족한 곳에 보충하지만 인간의 방식은 천지의 道와는 다르다. 가난한 자들의 것을 덜어 부유한 자들의 배를 더욱 채우니, 과연 누가 남는 것으로 부족함을 채울 것인가? 오로지 道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인은 도로써 이루면서도 의지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서도 머물지 않으며, 공로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시간은 만물의 생장쇠멸에 관여하면서도 현재에 머물지 않고 끝없이 흘러간다. |
우리 우주에는 꼭 있어야 하는 비대칭이 있는데, 그것은 시간이다. 시간을 앞으로 또는 뒤로 보내도 아무 차이가 없다면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겨날 수 없다. 그러나 순수한 無의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 시간은 무언가 변할 것을 요구한다. 변화가 없으면 시간도 없다. 원자가 진동하고, 시계가 똑딱거리고, 지구가 태양을 돌고, 우주가 팽창하는 등 변화가 시간을 정의한다. 시간은 無속에서 존재할 수 없고, 無는 시간 속에 존재할 수 없다. 時間과 有는 얼마간 연결되어 있다. 모든 것은 시간에 의존한다. 그리고 무는 시간 없이 존재한다. 《우주의 구멍》 K.C 콜 지음❘김희봉 옮김
이 章에서 道의 다른 특징, 均衡(균형)에 대해 설명한다. 움직임과 변화를 본질로 하는 본성에 숨겨진 대칭(對稱)과 균형, 순환 사이에는 오묘한 이치가 있다. 道가 만들어낸 一의 본성에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속성도 함께 가졌다. 저울에서 균형을 느낄 수 있다. 비의 움직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때로는 폭우를 내리기도 하지만, 만물을 이롭게 하고자 生氣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丁壬癸도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無爲는 완벽한 균형을 원한다. 중력으로 균형이 깨진 상태를 老子는 人爲로 보기에 道德經 전반에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들이 드러난다. 老子에게 균형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天之道 其猶張弓與(천지도 기유장궁여)
天地 道는 마치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구나.
高者抑之 下者擧之(고자억지 하자거지)
과녁을 기준으로 활을 높이 올렸다면 내려서 맞추고, 낮으면 높여서 맞춰야 한다.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활시위를 너무 당겼으면 힘을 빼고, 약하면 더 당겨야 하는 것처럼
天地道 損有餘而補不足(천지도 손유여이보부족)
천지의 道는 넘치면 덜어내어 부족한 곳에 보충하지만.
人之道 卽不然(인지도 즉불연)
인간의 방식은 천지의 도와는 다르니,
損不足而奉有餘(손부족이봉유여)
가난한 자들의 것을 덜어 부유한 자들의 배를 더욱 채우니
熟能有餘而奉天下 唯有道者(숙능유여이봉천하 유유도자)
과연 누가 남는 것으로 부족함을 채울 것인가? 오로지 道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是以聖人 爲而不恃(시이성인 위이부시)
따라서 성인은 도로써 이루면서도 의지하지 않으며,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공성이불처 기불욕견현)
공을 이루고서도 머물지 않으며, 공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이 章에서는 天地의 道와 인간의 행태가 상이함을 설명한다. 老子가 살던 시대에도 그런 문제를 가졌지만, 현대도 다르지 않다. 인간의 발전은 물질에 국한하기 때문이고 정신발전은 거의 진보가 없다. 모든 종교의 불문율은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훔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일들이 발생한다. 인간의 정신 성숙은 불가능한 것이리라. 老子는 많은 비유를 통하여 길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에게 나눠주어 균형을 맞추면 좋은데 인간의 행위는 정반대라고 한다.
天地 道는 자연히 그러한 것을 인간은 하지 못한다. 중력의 利己 때문이다. 이 章에서도 聖人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뛰어난 인물이 아니다. 道를 상징한다. 시간으로 바꿔서 이해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道德經 전반에 걸친 표현방식이다.
누군가가 행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움직임은 無爲로 이루어지는데 “그냥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어렵다. 실행 주체를 聖人으로 설정하고 의인화된 행위를 묘사한다. 色界에서 無爲의 道를 구현할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聖人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는 계속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나아가고 있다. 聖人을 시간으로 바꾸면, 시간은 만물의 생장쇠멸에 관여하면서도 현재에 머물지 않고 끝없이 흘러간다. 움직임과 변화의 중심에서 항상 균형을 맞추며 그것이 道의 본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