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지리산
산행일 : 2017. 2. 9(목)~2. 11(토)
산행경로 : 성삼재~묘봉치, 노공단대피소~임걸령, 화엄사
지리산엘 한 번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산행계획을 세워본다. 이제는 여유있는 산행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2박3일 일정으로 정령치~만복대~노고단(1박)~반야봉~뱀사골~반선(1박)을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마침 일기예보에 9일과 10일에 전라남도 일원에 눈이 온단다. 많이 오지는 않고 조금 온다고 하니 산행하면서 설화와 상고대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래서 숙소와 대피소를 예약하고 기차표까지 끊었다. 혹시 싶어서 지리산탐방지원센터에 문의를 하니 정령치까지는 차의 통행을 통제한다고 하는 나쁜 소식을 들려준다. 그러면 고기리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데, 반나절 산행으로 노고단까지 가기는 무리일 것 같아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상의한 결과, 먼저 성삼재로 가서 서북능선을 따라 적당한 지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노고단으로 가기로 하였다. 해서 기차표를 변경하니 구례구역에 11시 1분에 도착하는 KTX가 있다.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날씨가 수상하다. 약간의 불안함을 가지고 택시기사와 흥정을 하니 35000원 이하로는 성삼재까지 갈 수 없단다. 남원역에서 정령치까지는 25000원이라든데..... 기사분 말로는 오늘 새벽에는 성삼재족으로는 아예 못 올라갔고, 아침 무렵에 시암재까지 갔다온 기사가 있단다. 낮이 되었으니, 성삼재까지 가보자고 한다. 시암재까지는 크게 위험한 부분이 없는데, 시암재를 지나면서는 응당이라 길이 많이 미끄럽다. 택시가 비틀비틀하니, 속으로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삼재에 내리니 바람이 쌩쌩 분다. 을씨년스러운 게 서글픈 생각이 절로 든다. 노고단탐방지원센터 앞에 데크가 있어서 거기서 점심으로 라면을 삶아먹으려고 하다가 공단 직원에 물어보니, 취사가 안된단다. 식당에 가서 사먹으란다,. 그런데 식당마저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문을 닫은 상태다. 다시 탐방지원센터 직원에게 상의하니 휴게소 문을 열어준다.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산객이 간혹 보인다. 여러 명이서 북적거리며 가는 팀도 있다.
라면을 맛있게 먹고 만복대 방향으로 나선다. 바람은 여전히 쌩쌩 분다. 1시간 30분간 산행을 한 뒤 되돌아오기로 한다. 고리봉을 바라보니 정상에 사람이 어른거린다. 친구를 먼저 보내고 나는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산을 오른다. 풍성하지는 않지만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날씨는 잔뜩 흐린데 간혹 파란 하늘이 열리기도 한다. 서북능선에서는 지리산의 주능선이 가장 잘 보인다는데,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전망을 보기는 어렵다. 고리봉에서 내려오는 산객 2팀을 만났을 뿐 사람은 거의 없다. 고리봉에 올라서니 저멀리 만복대가 보인다. 얼마를 더 가는데(만복대까지 3km 정도 남은 지점) 앞에서 친구가 돌아오고 있다. 만복대 안부에서 되돌아오는 중이란다. 되돌아오는 도중에 친구가 말라버린 산죽꽃을 알려준다. 대나무꽃을 보기는 처음이다. 산죽꽃은 대나무 꽃과 달리 매우 작다. 쌀알 1톨 만하다.
탐방지원센터에 들러 여직원으로부터 차 한 잔을 얻어마시고 노고단대피소으로 향한다. 계속해서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쉬엄쉬엄 쉬어가며 걷고 있는데, 저 앞에서 떼거리로 몰려갔던 산객들이 눈썰매를 타며 내려온다. 이 분들은 눈썰매를 타는 것이 목적이었었는지, 눈썰매를 아예 여러 개 가지고 왔다. 대피소에 도착하니 직원이 내일 산행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단다. 대설주의보가 내리지 않는 이상 통제하지는 않겠지만, 밤새 눈이 내리면 길이 사라지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강풍주의보로 인해 산행을 하지 못했던 지난 설악산행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예약해놓은 숙소 할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눈이 많이 내려서 마을이 고립되고, 차도 다니지 않으니 오지 말라는 얘기다. 내일 산행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다. 밤새 눈이 많이 오면 능선 상의 길도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고, 특히 뱀사골의 길은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거기다 반선에서의 교통편도 문제다. 내일 아침에 상황을 봐서 산행로를 결정하기로 한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화장실을 가는데, 바람은 더욱 쎄게 불고 눈도 함박눈이 되어 내린다. 계속 뒤척거리다 설핏 잠이 들었다. 6시쯤 되어서 일어나 밖을 나가보니 눈이 그렇게 많이 온 것 같지는 않지만, 온세상이 하얗다. 사방이 상고대로 가득 차있다. 완전 백색의 설국이다.
아침을 하려고 취사장엘 가니 다들 산행을 놓고 설왕설래한다. 공단 직원은 능선을 가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권한다. 하지만 만복대로 향하는 산객도 있고, 벽소령을 향해 떠나는 아줌마 산객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 협의하다가 오전에는 베낭을 대피소에 맡겨놓고 10시 30분까지 주능선을 타다가 되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화엄사로 하산하기로 한다.
아침을 먹고 반야봉을 향하여 출발한다. 눈이 온 직후라서 그런지 주위는 절경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상고대를 마음껏 감상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만, 노출되지 않은 곳은 비교적 잔잔하다. 눈이 많이 쌓인 곳은 허벅지까지 푹푹 빠진다. 바람이 불어서 길이 잠깐잠깐 사라지기도 한다. 길은 나 있지만, 많은 사람이 지나간 것 같지는 않다. 1~2팀 정도가 먼저 지나간 것 같다. 걸음이 느린 데다가 사진까지 찍으니 나의 걸음은 느릴 수밖에 없고, 이 추운 날씨에 나와 함께 산행하기는 무리다. 해서 친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먼저 보냈다. 반야봉은 언뜻언뜻 얼굴을 내보인다. 천왕봉도 저멀리 보인다.
피아골삼거리에 도착하니 10시가 약간 지났다. 조금만 더 가보기로 한다. 임걸령에 도착하니 친구가 노루목삼거리까지 갔다가 되올아오고 있다. 노고단으로 되돌아가는 도중에 여러 팀의 산객들을 만났다. 뱀사골로 하산한다는 팀도 있다.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데, 여자 2명이 화엄사로 걸어서 하산하지 않고 자신들이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차로 내려간다고 한다. 우리도 그 차에 동승하기로 한다. 하산 시간이 빨라지니 친구는 오늘 서울로 간단다. 나는 내일 결혼식에 참석하러 익산으로 가야 하니 서울로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해서 해서 나도 여자 2명이 묵고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하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 시암재까지 걸어간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성삼재까지 픽업하는 데는 3만원이지만, 하산하는 데는 2만원이란다. 우리는 별도로 1인당 1만원씩을 지불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주인장으로부터 보이차를 얻어마시고, 저녁먹으러 구례읍내로 간다. 나는 그냥 해먹었으면 했지만, 여자들이 매식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주인장 차로 읍내로 가서 저녁을 먹고 친구는 서울로 출발하고 우리는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거실에 있는 장작을 때는 난로 옆에서 밤 12시까지 이러저런 얘기를 하다가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갔다. 이후에도 여자들은 얘기를 계속하는 모양인지 두런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엄사 구경을 나선다. 춥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많이 망설여졌지만, 화엄사에 언제 올지 몰라서 구경을 하기로 한다. 화엄사로 올라가는 길 옆으로 계곡이 흘러가고 있다. 가로수로 벗나무가 심겨져 있어 봄에는 경치가 아름다울 것 같다. 화엄사 입장료가 3500원인데, 아침 일찍이어서 그런지 매표소에는 아직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다. 서둘러 화엄사 경내를 구경하고 나오니 직원이 출근해 있다. 화엄사로 해서 산행하는 산객이 한 명 지나간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주인장과 여자분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아침을 먹고 주인장의 차를 얻어타고 구례구역으로 출발! 이로써 올 겨울의 지리산 산행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친다.
<성삼재에서 묘봉치 부근까지 왕복>
만복대
말라버린 산죽의 꽃
노고단. 성삼재를 통과하는 도로가 보인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임걸령까지 왕복>
고리봉
뒤돌아본 고리봉과 만복대
노고단고개
노고단 정상
구름에 가린 반야봉. 뒤로 천왕봉이 보인다.
돼지령에서. 왼쪽이 반야봉(?)
피아골삼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반야봉
겨우살이의 열매
<화엄사에서>
화엄사 입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