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 광명 화신
천수경과 여래십대발원문(정토원의 삶 96/정목스님/2006.04.17)
원아영리삼악도. 원아속단탐진치
원아상문불법승. 원아근수계정혜
원아항수제불학. 원아불퇴보리심
원아결정생안양. 원아속견아미타
願我決定生安養. 願我速見阿彌陀
원아분신변진찰. 원아광도제중생
願我分身遍塵刹. 願我廣度諸衆生
우리나라 불교인이 가장 많이 독경하고 암송하는 경전은 단연 <천수경>이다. <반야심경>도 빼놓을 수 없지만 대중적이고 신앙적인 면을 생각하면 <천수경>이 으뜸이다. <천수경>은 다른 대승경전처럼 일시에 설하신 말씀도 아니고, 그 역사가 오래된 것도 아니다. <천수경>은 화엄, 법화, 반야, 밀교(진언), 율종(계율), 선, 정토 등 대승불교 사상과 실천법이 고루 들어 있으니 불교의 저변 확대와 민중신앙을 위해 노력한 역사의 산물이라고 보아진다. 말하자면 대승경전의 대중적인 신행 말씀을 뽑아 편집한 것이다. 이것이 조선 말기 불교의식집이 완성되는 시기에 그 안에 편입되면서 본격적인 대중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천수경>은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를 중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중생구제 원력에 대한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의 구제 원력 뿐 아니라, 대승사상과 실천법이 고루 들어 있으니 대승불교와 민중신앙의 보배라고 할만 하다. 그러므로 불교인들이 <천수경>을 그렇게 많이 암송하는 일 못지않게 그 뜻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어느 경전 어떤 수행법에 뒤지지 않는 가피력을 입고 수행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대해일미(大海一味) 라고 했으나, <천수경>은 그 골자들이 모여 있으니 불법의 참맛을 보기에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천수경>의 강물에는 대승사상과 관세음보살의 구제원력이 녹아 있지만 그 흐르는 방향은 서방정토이다. 관세음보살은 <법화경> 보문품의 원력을 그대로 보이지만 일체 중생을 서방정토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모든 수행문이 가리키는 방향은 자연과 생명이 청정한 정토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무량한 광명의 물결이 넘치고 광대무변한 아미타불의 정토가 으뜸이기 때문에 <천수경>에서도 그 뜻을 잘 전하고 있다.
<천수경>에는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외우기 전에 먼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등장하고, 이어서 관세음보살의 다른 명호인 아홉 분의 보살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무본사아미타불"을 부른다. 대승불교를 신앙적인 측면에서 말하면 모두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의 관계이다. <천수경>도 역시 그러하다. 석가모니불은 동쪽에서 길을 보이시고 아미타불은 서쪽에서 영접하시며, 관세음보살은 그 노정에서 구제원력을 실천하여 인도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무본사아미타불" 은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을 동시에 부르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여래십대발원문은 우리들이 일으켜야 할 원과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 들어가는 문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왜 정토에 왕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원행으로써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는 삼악도를 영원히 벗어나고, 탐진치를 속히 끊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법승의 가르침을 항상 들어야 하고, 그로 인해 계정혜를 열심히 닦아야 한다. 또한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따르되 반드시 보리심을 일으키고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
보리심을 일으키고 염불하는 자는 반드시 정토에 태어난다. 정토에 왕생한 자는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고, 자비광명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성취한 뒤에 참으로 보살다운 보살행을 실천한다. 수행이 깊어저 초지보살에 이르면 중생의 근기와 업력을 헤아려 변화의 몸을 보이며 제도한다. 한 몸으로 여러 변화한 몸을 보이므로 분신(分身)이라 부른다.
정토의 곳곳에서 보살이 출현하고, 각기 분신을 보여 중생을 제도하니 일체중생이 제도된다. 중생이 끝없으나 보살의 원도 끝없으니 끝없는 중생이 모두 다 제도된다. 정토는 깨달음의 땅이요, 보살의 원을 실천하는 국토이다. <천수경>은 이러한 뜻을 잘 보여주어 오래도록 민중의 사랑을 받으며 정토왕생의 염원을 고취시키고 있다.
나무본사아미타불 나무본사아미타불 나무본사아미타불
나는 반드시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나는 아미타 부처님 속히 뵙기를 원합니다.
나는 분신으로 수많은 세상에 펴기를 원합니다.
나는 모든 생명들을 널리 제도하기를 원합니다.
스님 글을 읽고 '천수경=관음신앙'이란 이전의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스님만의 독특한 해설이신가, 다른 분들도 스님처럼 해석하시는가 궁금하여,
스님의 천수경해설을 읽은 김에 가지고 있던 두 권의 천수경 해설서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한 권은 무비 스님의 천수경(조계종출판사), 다른 것은 혜국스님의 생활속의 천수경(효림)입니다.
여래십대발원문을 여러 번 읽어 보니 용어의 차이가 눈에 띕니다.
어느 책의 여래십대발원문에도 '정토'나 '보살도'란 용어는 없습니다.
비록 안양국, 극락, 성불, 중생제도 등이 같은 맥락인 것을 알 수는 있겠으나,
정토나 보살도가 더 명쾌하게 와닿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놀랍니다.
-정목스님
여래십대발원문은 우리들이 일으켜야 할 원과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 들어가는 문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왜 정토에 왕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원행으로써 대변해 주고 있다. (중략)
정토는 깨달음의 땅이요, 보살의 원을 실천하는 국토이다. <천수경>은 이러한 뜻을 잘 보여주어 오래도록 민중의 사랑을 받으며 정토왕생의 염원을 고취시키고 있다.
-무비스님
여래십대발원문 또한 원력을 나타낸 구절인데, 원력이란 살아가는데 있어 참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력이 없는 사람은 생명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힘은 곧 원력이고, 원력은 곧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불교는 연기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자기 혼자만의 길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원리적으로 따져볼 때 다 함께 성불하는 것만이 자기 자신의 성불도 가능합니다.-무비 스님
-혜국스님
원(願)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바램으로, 그 자체가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원을 잘 세우는 것이야말로 미래의 기초를 잡는 소중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자여러분들은 어떤 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중략) '더 편안하고 풍요롭게 해주십시오.' 등 세상의 흐름에 온 몸을 푹 담근 원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들은 참으로 소박하고 현실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속적인 원이 우리를 근원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자칫 잘못하면 이기적인 껍질을 두르게 하여 아래로 내려가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불자는 드문 듯 합니다.
이에 비해 불보살님의 원은 다릅니다. 역대 부처님들께서 세웠던 원은 일반 중생의 원과는 정반대입니다. '나'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는 원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위한 원이며, 세상의 흐름에 잠긴 채 발하는 원이 아니라 생사를 뛰어넘고 세상을 뛰어넘는 향상(向上)의 원들입니다.(중략) 도를 이루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며 정진하던 수좌들도 정구업진언부터 천수경을 독송해나가다가 여래십대발원문에 이르러 온몸으로 통곡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부처를 이룬 모든 분들이 반드시 세웠다는 열 가지 큰 발원! 이 우주를 가득 채우는 여래십대발원문 속에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크나큰 자비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혜국스님 글 옮기다가 '수좌들도 ~통곡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에서
그 마음이 느껴지고, 그 힘듬이 느껴져서 눈물이 왈칵납니다.
도를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우시면....
스님들께서는 깨달음의 방향전환이 참으로 힘드신가 봅니다.
스님께서 이런 가벼운 비유를 강의 중에 하셨습니다.
돈이 필요할 때 막연히 '돈 가져와.' 하지 말고 '돈 얼마 가져와.' 하라고.
공부라는 것도 막연히 '하라'가 아니라 '어떻게 하라'가 맞는 것 같습니다.
스님들께서 바른 선지식 만나 바른 공부할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어제 공부한 '중생을 교화하는 요체(아미타경강의 10강)'에서
스님께선 종교적 이해와 종교적 체험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중생을 교화하는가?
공, 무상, 무원에 의해 실천하는 사람.
적어도 묘관찰지를 깨닫고 정정취이상인 사람.
정신적, 사상적, 실천적 체험이 있는 사람,
종교적 이해와 종교적 체험을 해본 겸손한 사람만이 행할 수 있다.'
오늘 스님의 가르침에서 종교적 이해로 삼아야 할 말씀으로는
'보리심을 일으키고 염불하는 자는 반드시 정토에 태어난다.
정토에 왕생한 자는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고, 자비광명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성취한다.'
종교적 실천으로 삼아야 할 말씀으로는,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따른다.
반드시 보리심을 일으키고 물러서지 않는다.
참으로 보살다운 보살행을 실천한다.'
위와 같은 종교적 이해와 체험이 부족한 염불인으로서 갈 길이 멉니다.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일체경계 본래일심
일체가 아미타불 화신이다.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첫댓글 일체경계 본래일심
일체가 아미타불 화신이다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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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천수경은 부처님의 대원성지 " ..(우리스님 ).
독송을 할 때 마다... ... 일심청정 하여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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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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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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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본심 미묘 진언"
다냐타 옴 아리다라 사바하. 다냐타 옴 아리다라 사바하. 다냐타 옴 아리다라 사바하.
(그리고 관세음보살을 찬탄하오며 부디 성취하리라)
염불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르러 반드시 관세음보살과 같은 삶을 성취하리라는 서원을 담고 있는 진언 중에 진언이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화신이며 좌보처로서 아미타불이 성취하신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덕성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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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광명.화신.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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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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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끝없으나 보살의 원도 끝없으니 끝없는 중생이 모두 다 제도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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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공부하시는 선법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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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따른다.
반드시 보리심을 일으키고 물러서지 않는다.
참으로 보살다운 보살행을 실천한다.'
확실한 길을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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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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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아미타아미타아미타아미타아미타,,,
보리심을 일으키고 염불하는 자는 반드시 정토에 태어난다.
일심.광명.화신.
감사드립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_()()()_
'감당 못함을 알지라도 보리심은 일으켜야 한다.' 라는 말씀이 희미하게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