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이야기] 구운몽(九雲夢)
"부귀영화는 한낱 꿈에 불과하다" 조선 중기 한글로 쓴 '판타지 소설'
입력 : 2024.03.19 03:30 조선일보
구운몽(九雲夢)
▲ 구운몽 소설 내용을 그린 병풍. /한국민속박물관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비록 산속 깊은 절에 있다 해도 도를 이룰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근본을 잊지 않으면 속세에 푹 빠져도 마침내 돌아올 곳이 있다."
'구운몽'은 "중세 한국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금도 널리 읽히는 작품이에요. 조선 중기 문신인 김만중(1637~1692)의 소설인데요,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갔을 때 어머니 윤씨의 근심을 덜어주고자 썼다고 해요. 효심이 깊었던 그는 어머니가 읽으실 수 있도록 한글로 썼대요.
주인공 성진은 신선 세계에 있는 절에서 수행에 매진하고 있어요. 스승인 육관 대사의 심부름을 다녀오던 성진은 돌다리 위에서 봄 경치를 즐기던 여덟 선녀와 마주치죠. 성진은 다리 지나가는 일을 두고 선녀들과 옥신각신 다퉈요. 성진은 복숭아 가지를 던져 구슬로 바꾸는 묘기를 보여주며 길을 터서 절로 돌아와요. 육관 대사는 수행 중에 여인들과 장난을 친 것은 적절치 않다며 성진을 꾸짖고 지옥으로 쫓아내요. 마찬가지로 여덟 선녀도 지옥에 떨어집니다. 지옥을 다스리던 염라대왕은 성진과 여덟 선녀를 인간 세상으로 보내기로 해요.
성진은 양소유라는 이름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어려서부터 공부에 매진한 양소유는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면서 승승장구했어요. 반역을 일으킨 토호들의 난을 평정하고 전쟁에 나가 무공을 세우기까지 했어요. 오늘날 국무총리와 비슷한 승상 벼슬에 올랐고 황제는 양소유를 마음에 들어 하며 사위로 삼았어요. 양소유는 인간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부귀영화를 모두 갖게 된 셈이죠.
재미있게도 양소유가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해내는 사이사이 환생한 여덟 선녀와 인연을 맺어요. 여덟 선녀도 각각 진채봉, 계섬월, 정경패, 가춘운, 적경홍, 난양공주, 심요연, 백능파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거든요. 15세에 과거를 보러 가던 중에는 진채봉을 만나 혼인을 하고, 이듬해 다시 과거에 응시하러 가는 길에는 기생 계섬월과 만나죠. 역모를 토벌하러 갔다가 적진에서 보낸 자객 심요연을 만나고, 용왕의 딸 백능파를 도와주기도 해요. 양소유는 여덟 명 여성 모두의 마음을 얻고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해요. 결국 양소유는 온갖 즐거움을 다 누리며 살았어요.
과연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나이가 든 양소유는 옛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지나가다가 부귀영화를 다 누린 자신의 인생도 저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허탈함을 느껴요. 그때 꿈에서 깨는데 바로 육관 대사 앞이었죠. 성진의 꿈은 깨달음을 주려는 육관 대사의 뜻이었어요.
'구운몽'은 요즘 말로 하면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대담한 스토리와 치밀한 묘사가 읽는 재미를 더하는 고전 중 고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장동석 출판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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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九雲夢)
시대 조선
유형 작품/문학
분야 문학/고전산문
(요약)
「구운몽」은 조선 숙종 때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고전 소설이다. 불도를 수행하는 성진이 우연히 팔선녀를 만나 속세에 대한 욕망을 품게 된 뒤, 양소유라는 남자로 태어나 8명의 여자와 혼인하고 높은 관직에 올라 부귀공명을 이루는 꿈을 꾼다는 내용이다.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환몽 구조로 이루어진 한국 고전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저자
이 작품의 저자는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다.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 부인에게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1665년(현종 6)에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가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여러 번의 정치적 부침(浮沈)을 겪고 1692년(숙종 8)에 남해 유배지에서 56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김만중은 서인 노론 벌열층의 일원이라는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당시로서는 이단시되던 불교나 패서(悖書) 등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이러한 점이 소설을 지을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다. 종손인 김춘택(金春澤)은 김만중이 속언(俗言)으로 많은 소설을 지었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 경우에도 어머니를 위하여 속성으로 지었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이규경은 김만중이 귀양갔을 때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하였는데,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즉 그가 장희빈(張嬉嬪)의 아들 이윤(李昀)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에 반대하다 선천에 귀양 간 1687년(숙종 13)인지, 아니면 장희빈이 인현왕후(仁顯王后) 대신 왕후로 책봉된 기사환국 때문에 남해로 귀양 간 1689년(숙종 15)인지가 확실하지 않다. 일본 천리대학교 소장본 『서포연보(西浦年譜)』가 출현함으로써 일단 선천 유배 시기로 확실해졌으며, 그 완성은 남해 유배 시기로 추정된다.
이본사항
이본에 따라 1책부터 4책까지 분량이 다양하다.
1725년(영조 1)에 간행된 금성판(錦城板) 한문 목판본을 비롯하여 국문 방각본, 국문 필사본, 국문 활자본, 한문 필사본, 한문 현토본 등 50여 종이 넘는 많은 이본이 전한다.
「구운몽」에 관한 연구는 여러 방향에서 이루어졌는데, 먼저 원본을 확정하는 작업이 선행되었다. 김태준(金台俊)은 「구운몽」도 「사씨남정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김만중이 국문으로 창작한 것을 김춘택이 한문으로 번역하였을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정규복(丁奎福)은 국문 원작설에 의문을 제기하여, 한문 ‘을사본’의 모본이자 최고본(最古本)인 한문 ‘노존본(老尊本)’을 발견하였다. 이에 의해 이전까지 원본에 가깝다고 추정해 온 국문 ‘서울대학교본’ 및 국문 ‘노존본’이 한문 ‘노존본’과 같은 계통이며, 이의 번역본임을 증명하고 한문 원작설을 주장하였다.
더불어 「구운몽」은 텍스트의 연구를 통하여, 한문본이 노존본(1725년 이전)에서 을사본(1725년)으로, 을사본은 다시 계해본(1803년)으로 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국문본도 노존본 계통의 국역본(國譯本), 을사본 계통의 국역본, 계해본 계통의 국역본 등으로 분류되었다. 아울러 '서포문중설화(西浦門中說話)'가 밑받침되어 「구운몽」의 한문 원작설이 더욱 뒷받침되었다.
그런데 「구운몽」의 한문본과 국문본의 비중이 거의 같다는 점은 계층과 성별의 구분을 넘어서 「구운몽」이 수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운몽」은 어느 부류의 독자층이라도 인정할 수 있는 공동의 소설적 규범을 개발하는 데 선구적인 구실을 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내용
중국 당나라 때 남악 형산 연화봉에 서역으로부터 불교를 전하러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짓고 불법을 베풀었는데, 동정호의 용왕도 이에 참석한다. 육관대사는 제자인 성진을 용왕에게 사례하러 보낸다. 이때 형산의 선녀인 위 부인도 팔선녀를 육관대사에게 보내 인사를 전한다. 용왕의 후대로 술이 취하여 돌아오던 성진은 연화봉을 구경하던 팔선녀와 석교에서 만나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희롱한다. 선방에 돌아온 성진은 팔선녀의 미모에 도취되어 불문의 적막함에 회의를 느끼고 속세의 부귀와 공명을 원하다가 육관대사에 의하여 팔선녀와 함께 지옥으로 추방된다.
성진은 회남 수주현에 사는 양 처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양 처사는 신선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났다. 아버지 없이 자란 양소유는 15세에 과거를 보러 경사로 가던 중 화음현에 이르러 진 어사의 딸 채봉을 만나 서로 마음이 맞아 혼약한다. 그때 구사량(九士良)이 난을 일으켜 양소유는 남전산으로 피신하였는데, 그곳에서 도사를 만나 음률을 배운다. 한편, 진채봉은 아버지가 죽은 뒤 관원에게 잡혀 경사로 끌려간다.
이듬해 다시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양소유는 낙양 천진교의 시회(詩會)에 참석하였다가 기생 계섬월과 인연을 맺는다. 경사에 당도한 양소유는 어머니의 친척인 두련사의 주선으로 거문고를 탄다는 구실로 여관(女冠)으로 가장하여 정 사도의 딸 경패를 만나는 데 성공한다. 과거에 급제한 양소유는 정 사도의 사위로 정해졌는데, 정경패는 양소유가 자신에게 준 모욕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시비 가춘운으로 하여금 선녀처럼 꾸며 양소유를 유혹하여 두 사람이 인연을 맺도록 한다. 이때 하북의 세 왕이 역모하려 하니 양소유가 절도사로 나가 이들을 다스린다. 돌아오는 길에 계섬월을 만나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었는데, 이튿날 보니 하북의 명기 적경홍이었다. 양소유는 두 여자와 후일을 기약하고 상경하여 예부 상서가 된다.
한편 진채봉은 서울로 잡혀온 뒤 궁녀가 되었는데, 어느 날 황제가 베푼 자리에서 양소유를 보고 그의 환선시(紈扇詩)에 차운(次韻)하여 애타게 된다. 까닭을 물어 진채봉과 양소유의 관계를 알게 된 황제는 이를 용서한다. 양소유는 어느 날 밤에 황제의 누이인 난양 공주의 퉁소 소리에 화답한 것이 인연이 되어 황태후의 사위로 간택되지만, 정경패와의 혼약을 이유로 이를 물리치다가 옥에 갇힌다. 그때 토번왕이 쳐들어와서 양소유가 대원수가 되어 출전한다. 진중에서 토번왕이 보낸 여자 자객 심요연과 인연을 맺게 되고, 심요연은 자신의 사부에게 돌아가면서 후일을 기약한다.
양소유는 백룡담에서 용왕의 딸인 백릉파를 도와주고 그녀와 또 인연을 맺는다. 그 사이 난양 공주는 양소유와의 혼약이 어그러져 실심한 정경패를 만나 보고, 그 인물에 감탄하여 형제의 의를 맺어 정경패를 제1공주인 영양 공주가 되게 한다. 토번왕을 물리치고 돌아온 양소유는 위국공에 봉해진다. 그리고 영양 공주 및 난양 공주와 혼인한 후, 궁녀 진씨와 만나 동침하는 가운데 그녀가 진채봉임을 확인하게 된다.
양소유는 고향으로 가서 늙은 어머니를 경사로 모시고 오다가 낙양에 들러 계섬월과 적경홍을 데리고 오니, 심요연과 백릉파도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양소유는 2처 6첩을 거느리고 일가가 화평하고 즐거운 가운데 부귀공명을 누리며 살아간다. 생일을 맞아 종남산에 올라가 가무를 즐기던 양소유는 역대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보고 문득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비회에 잠긴다. 이에 9인이 인간 세계의 무상과 허무를 논하며 장차 불도를 닦아 영생을 구하자고 한다. 그때 한 호승이 찾아와 문답하는 가운데 꿈에서 깨어나니, 육관대사의 앞에 있었다. 본래의 성진으로 돌아와 죄를 뉘우치고 육관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팔선녀가 찾아와 대사의 가르침을 구한다. 이에 육관대사가 설법을 베푸니, 성진과 팔선녀는 본성을 깨우치고 적멸(寂滅)의 큰 도를 얻어 극락세계에 돌아간다.
특징
주제 연구
삼교 화합설
「구운몽」의 주제 또는 사상에 관하여는 여러 연구에서 논란이 거듭되었다. 우선 주장된 바는 「구운몽」에는 삼교 화합 사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게일(Gale,J.)이 「구운몽」을 영역(英譯)할 때 서문을 쓴 스콧(Scott,R.)은 「구운몽」에는 '유교 · 불교 · 도교 사상이 섞여 있다'고 하였다.
김태준은 작품의 여러 장면에서 나타나는 민간 신앙에서 유 · 불 · 선 삼교의 화합 사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 주왕산(周王山)은 유교의 현실주의, 불교의 은둔사상, 도교의 향략주의가 나타나 삼교가 '혼연히 일치된 소설'이라고 하였다. 또 이명구(李明九)에 따르면, 양소유는 유교를, 성진은 불교를, 팔선녀는 도교를 각기 표상하고 있어, 「구운몽」에는 '유 · 불 · 선 세 가지의 인생관이 나타나 있다'고 하였다.
사실 「구운몽」의 대표적 공간인 남악 형산은 불가적 · 도가적 · 유가적 색채가 경쟁하듯 조화를 이루며, 각자 생동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 남악에 새겨진 인문 지리, 즉 그것이 배경으로 삼는 인문학적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다. 남악은 도교와 불교가 자신들의 대표 성지로 삼고 있는 공간인데, 이는 남악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기록인 『남악총승집(南嶽總勝集)』이 불교의 『대장경(大藏經)』, 도교의 『도장(道藏)』에 모두 수록되어 있으며, 여기에 남송대 주희(朱熹)와 장식(張栻)의 수창 일화가 더해지면서 유가적 성지의 성격이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희가 찬시를 지은 연화봉이 부각되면서 연화봉이 유불도의 공간 경계역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기에 「구운몽」 속 남악 형산의 이미지에는 유 · 불 · 도적 성격이 혼재하게 된 것이다.
한편 「구운몽」은 추상적 음양오행론을 서사적으로 구현한 커다란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김만중은 작품 구상 단계에서 팔선녀들의 천간(天干)의 순서를 정하고 해당 천간이 지닌 음양오행적 속성을 고려함으로써, 이름과 개성을 구체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작품 서두에 오악을 배치하거나 상극과 상생의 관계적 구도를 적용하는 등 서사 세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음양오행적 상상력을 발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작품은 『주역(周易)』 중에서도 절망적 상황에서 만사형통의 희망을 찾는 복괘(復卦)의 의미를 바탕으로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작품 속 9명의 인물을 복괘 각 효의 변화를 고려하면서 형상화하고, 이원적 구조와 주제를 괘사와 효사의 의미를 바탕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절망적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의미를 던져 준다.
공사상설
삼교 화합설에 반하여, 김만중의 불교에 대한 심취나 작품에 나타나는 불교적 성향을 들어 「구운몽」에 나타난 사상은 오로지 불교 사상뿐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박성의(朴成義)는 「구운몽」이 불교적인 제행무상관(諸行無常觀)을 사상적 배경으로 '인생무상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고 하였다.
이재(李縡)가 「구운몽」의 대지(大旨)를 '인생의 부귀공명이 일장춘몽이다'라고 한 것과 같이, 「구운몽」의 주제는 대승불교의 중심인 『금강경(金剛經)』의 공사상(空思想)이라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정규복에 따르면, 성진은 팔선녀로 인하여 미(迷)하였다가 유교적인 부귀공명의 환(幻)을 통하여 육관대사 앞에서 각(覺)한 것으로 되돌아갔으니,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중심으로 한 공사상과 대응된다'는 것이다.
정주동(鄭柱東) 역시 '불교사상 중에서도 『금강경』의 공사상, 곧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진공묘유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또 성현경(成賢慶)은 '넓게는 불교사상, 좁게는 공사상이 김만중식으로 변용, 굴절되어 나타났다'고 하였다.
설성경은 '「구운몽」에서는 대승불법이 강조되고, 이는 『금강경』의 공사상을 통하여 구현된다'고 하여 정주동, 성현경과 마찬가지로 정규복의 『금강경』이 바탕이 된 공사상을 되풀이하고 있다.
공은 표면적으로는 인생만사를 부정하는 데 있는 것 같지만 이면적으로는 인생만사를 역설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운몽」은 『금강경』이 소설화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불교사상 일반설과 재반론
공사상설에 대하여 김일렬(金一烈)은 「구운몽」이 『금강경』의 중심 사상인 공사상을 투영하려 하였으나, 그 결과는 '공사상의 본격적인 차원'에 이르지 못하였음을 지적하였다. 「구운몽」의 현실 부정은 각자의 관념적인 도피이며, 이는 공사상의 한 단계로서 공사상만의 것이 아니고 불교사상 일반의 것으로 그 초보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동일(趙東一)도 '성진이 『금강경』 사상의 높은 차원의 것을 실행하지는 않았고, 다른 방법으로 그 사상이 작품에 나타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공사상설을 비판하였다. '상(相)이 있는 것은 허망하다라는 정도의 생각은 불교의 기본적인 전제이기에 불교사상설이 오히려 실상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규복은 「구운몽」의 종결 부분에 등장하는 육관대사와 성진의 문답에서 성진의 꿈(양소유)과 인간(성진)의 2분법을 깨뜨리고 성진과 양소유, 몸과 꿈, 장주와 호접의 1분법으로 되돌리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구운몽」의 주제와 사상은 다시 『금강경』이 바탕이 된 공관(空觀)의 미학임을 재확립하였다.
비교 연구
「구운몽」을 비교문학적 시각에서 다룬 연구로는 정규복의 업적이 대표적이다. 「구운몽」에 나타나는 환몽 구조(幻夢構造)의 가장 오래된 것은 인도에서 형성된 『잡보장경(雜寶藏經)』의 ‘사라나비구(娑羅那比丘)’이다. 이것이 육조시대에 중국에 들어와 당나라 때에 나온 「침중기(枕中記)」,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 「앵도청의(櫻桃靑衣)」 등과 같은 전기소설(傳奇小說)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 작품이 다시 우리나라에 수용되어 「구운몽」 창작의 배경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또 「구운몽」은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시대[明治時代]에 고미야마[小宮山天香]에 의하여 「무겐[夢幻]」으로 번안되기도 하였다. 즉 환몽 구조는 인도에서 중국-한국-일본으로 전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 불경의 ‘사라나비구’는 설화 형태에 지나지 않고 당대(唐代)의 전기소설은 소설의 초기 형태에 불과하지만, 「구운몽」은 완전한 소설이라는 점이 다르다. 일본으로 건너간 「구운몽」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번안물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구운몽」이 동양 문학권 내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구운몽」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나 『태평광기(太平廣記)』 및 『서유기(西遊記)』의 영향도 받았다.
국내의 다른 작품과의 대비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상택은 「구운몽」이 초월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한다면, 「춘향전」은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성현경은 「구운몽」이 「옥루몽」을 낳게 한 모태가 된 작품이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구운몽」의 ‘여장탄금(女裝彈琴)' 이야기는 「임호은전」, 「장국진전」, 「김희경전」, 「옥선몽」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기타
이외에도 「구운몽」에 대한 연구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김병국(金炳國)은 분석심리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작품의 내면에 감추어진 의미를 찾고자 하였고, 이능우(李能雨)는 작품 속의 성적(性的) 상징물들을 분석하기도 하였다. 김열규(金烈圭)는 기호론적 방법론으로 작품에 나타난 ‘이산(離散)’과 ‘회동(會同)’이라는 구조를 찾고자 시도하였다. 이외에도 구조, 화소, 전고, 인물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근래에는 현대적 변용이나 교육적 측면에서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주제 역시 사상적 면에서 벗어나 '당대 남성 사대부의 욕망, 숙종의 각성 염원, 해방과 희망의 서사, 위로와 치유의 서사' 등으로 다양하게 제시되며, 계속해서 새롭게 읽으려는 노력들이 현재 진행 중이다.
의의 및 평가
이 작품의 기본 설정은 주인공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뜻을 꿈속에서 실현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꿈속의 일이 허망한 한바탕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이는 김시습(金時習)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와 같은 몽유 소설(夢遊小說)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꿈속에서 이룬 욕망이 오히려 허망하고, 꿈에서 깨어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화합이 이루어진다고 한 점은 다른 몽유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몽유 소설과는 달리 꿈속의 주인공인 양소유의 삶이 ‘영웅의 일생’에 따라 전개된다. 그러나 투쟁이 약화되는 대신 남녀의 만남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일반적인 양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점에서 「구운몽」은 몽유 소설과 영웅소설을 변형시켜 결합한 작품이라 하겠다.
한편 「구운몽」은 현실-꿈-현실로 바뀌는 과정, 양소유가 8명의 여인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묘미있게 꾸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또한 8명의 여인이 각기 개성을 갖추도록 배려를 하면서 작품에 등장하는 환경, 인물, 심리를 우아하고 품위있는 문체를 활용하여 세밀하게 묘사해 놓은 것에서 작자의 뛰어난 창작력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소설적 흥미를 유지하고 품격을 높이며, 사상적 깊이를 가지도록 하여 유식한 계층까지도 독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구운몽」은 이후의 소설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구운몽」 자체를 늘리거나 축소하여 개작한 작품이 계속 나왔을 뿐만 아니라, 「구운몽」과 같은 설정을 하면서 다른 사건을 결합시킨 작품들도 대거 등장했다. 그러므로 「구운몽」은 고전 소설 창작에 전형적인 모범을 제시하여 소설사의 획기적인 전환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춘향전」과 더불어 대표적인 고전 소설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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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九雲夢)
조선의 소설 구운몽 九雲夢 The Cloud Dream of the Nine The Nine Cloud Dr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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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구운몽》의 규장각 소장본 |
저자 | 김만중(金萬重) |
공개 | CE 1687년 |
언어 | 한국어 (한글) |
종류 | 소설 |
장르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하렘 |
배경 | 시간 CE 8세기? ~ 9세기? (당) 공간 당의 강남(회남도, 강남도), 중원(경기, 도기) |
등장인물 | 양소유[1], 진채봉, 계섬월, 정경패, 가춘운, 적경홍 이소화, 심요연, 백능파, 양 처사, 유 부인, 두련사, 정생, 최 부인, 정십삼, 황제, 태후, 육관대사, 위 부인 등 |
분량 | 권수 1권 (한국어 단행본) |
1. 개요
九雲夢
조선 후기인 1687년에 서포 김만중이 집필한 고전소설. 한국 양반소설의 대표 주자로,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조신의 꿈'의 기본 틀을 활용하여 스토리를 확장한 소설이다.
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조설근의 대작 소설 《홍루몽》과 비슷한 줄거리 형식을 지니고 있는 소설인데, 시기상으로만 보자면 1740년에 쓰인 《홍루몽》보다 1687년에 쓰인 《구운몽》이 더 앞선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홍루몽》이 청나라에 수출된 《구운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전기적, 불교적인 성격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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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에서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던 성진이 동정호의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여덟 선녀와 노닥거리고 만다. 돌아와서 세속의 욕망 때문에 고민하다가 스승에게 걸려 여덟 선녀와 함께 세속으로 떨어져 양소유라는 사람으로 태어나 승상까지 오르고 여덟 부인(팔선녀)을 얻어 잘 먹고 잘 놀며 자식까지 낳아 남부럽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집터와 가옥, 부, 명예를 얻어 잘살게 되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풍요로운 삶에 점점 싫증이 나고 죽으면 어차피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생각이 겹쳐 양소유는 영생을 위해 신선이나 그에 버금가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관음보살을 찾아 문수보살께 예를 드려 도를 얻고, 영생을 얻기 위해 여덟 선녀와 자신의 모든 부와 명예 등 세속의 것을 놔두고 떠날 마음가짐을 한다. 그러던 와중 자신을 알고 지냈다는 중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중은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는데, 양소유와 화담을 나누며 양소유에게 춘몽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양소유가 이를 묻자, 환술을 부려 승상 양소유의 눈앞을 흐리게 하는가 하더니, 양소유는 성진의 모습으로 깨어난다. 여태까지의 일이 전부 꿈. 성진은 막 깨어나 주변을 살펴보고 자신의 몸을 만져보지만, 만져지는 건 까칠까칠한 까까머리와 팔에 걸려있는 백팔염주뿐, 자신의 모습은 대승상이 아닌 하염없는 소화상 즉 어린 승려의 모습이었다. 주변 역시 성진 자신이 불도를 닦던 장이었고 여덟 부인도, 피붙이들도, 모두 보이지 않았다.
성진은 이들이 모두 꿈이라는 것을 알고 육관대사에게 속세에서의 남녀 간의 욕정, 부귀가 모두 허사인 줄을 알게 해준 것에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한다. 그러자 육관대사는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가 다시 인간이 되었었다는 꿈을 꾸었었단 일화를 말하며 성진과 소유가 누가 꿈이며 누가 꿈이 아니냐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다. 성진이 누가 꿈인지 깨닫게 해달라는 말을 하자 육관대사는 곧 마음을 깨닫게 하려 한다며 곧 새로 올 제자가 있을 거라 말한다. 그러자 곧 성진이 용왕에게 가는 길에 만났던 팔선녀가 들어오며 머리를 조아리고 대사의 자비하심을 입어 하룻밤 꿈에 크게 깨달았다는 말을 꺼내며 얼굴의 연지분을 씻고, 소매의 가위를 꺼내 머리를 잘라 비구니가 되어서 같이 도를 닦기로 결심해 육관대사는 이들의 정성에 감동한다. 대사는 경문을 경론하고 네 구절 진언을 외웠다.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 여로역여전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인위적인 일체의 법은 꿈과 환상 같고, 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볼지어다. -김만중 저, 송성욱 역, 『구운몽』, 서울, 민음사, 2003, p.233. |
이에 성진과 여덟 비구니가 동시에 깨달아 불생 불멸할 도를 얻고 성진은 대사에게 받은 가르침과 물들로 대중에 교화를 베풀어 존경을 얻는다. 여덟 비구니는 성진을 스승으로 섬겨 보살의 도를 얻어 결국 아홉 사람 모두가 극락세계에 간다.[2]
(1) 해설
원작을 자세히 보면 성진이 팔선녀를 만나고 갔다 와서 향을 피우고 염송한다. 여기에 '밤이 이미 깊었더니'라고 구절이 있다. 그 후 갑자기 동자가 와서 육관대사에게 불려가 혼나고, 황건 역사한테 끌려 염라대왕한테까지 갔다가, 양 처사 집에 가서 양소유가 되기 전까지 시각을 알려주는 문구가 나오지 않는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을 텐데 말이다. 나중에 성진이 다시 현세로 돌아왔을 때 '지는 달이 창에 이미 비치었더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혼자서 고뇌하고 있었을 때부터 꿈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양소유로 지내던 때뿐만 아니라 팔선녀가 절에 불려오고, 염라대왕한테 불려 가고 했던 것까지 전부 다 꿈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매우 불교적인데, 삼국유사에도 실린 설화 "조신의 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조신이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다 보니 행복해지기는커녕 온갖 고난을 겪었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신은 세속의 덧없음을 깨닫고 구도에 정진하여 성불한다는 이야기다. 구운몽은 이 이야기를 각색한 이야기인 듯하다. 당시 최고 석학이었던 김만중이[3] 삼국유사를 읽어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4]
김만중이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설이 있다. 불교의 '공(空)' 사상을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라는 설과 '꿈속에서는 양소유가 되어 유교 이상의 정점에 오르고 현실에서는 불교 이상의 정점에 오른다'는 내용을 통해 어느 세계관에서든 정점에 오르고 싶어 하는 양반들의 이상을 반영한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마지막 하나는 양쪽 모두를 주제 의식으로 품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운몽을 읽어보면 일단 결말은 공 사상으로 끝나지만, 정작 그 결말에 이르기 위한 세속에서의 유학자이자 권신으로서의 삶을 묘사한 부분의 비중이 훨씬 더 크고, 그 전개 또한 매우 치밀하면서 구체적이다. 어찌 보면 현실 세계에서 누릴 거 다 누린 다음에 죽기 전에 해탈해서 더 잘 살자는 욕심의 발로일지도? 뭐 이건 작가인 김만중이 현실 세계의 정치인이자 권력자 집안 출신으로서 보인 세속적 욕망의 발로라고도 볼 수 있다.[5]
창작 동기에 대해서는 "그가 남해로 유배를 간 시절인 1689년에 어머니 윤씨 부인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주기 위하여 지었다"는 설과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의 이야기책을 사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귀국한 뒤에야 생각나서 며칠 만에 부랴부랴 썼다"는 설이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 발견된 서포연보로 인해 김만중이 남해에 유배되었을 때 쓴 작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아마도 귀양 생활 중에 심심하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남아서 쓴 듯하다. 정병설은 정신적으로 많이 몰려 있을 시기에 집중할 거리를 찾으며 쓰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이 소설을 자유연애를 꿈꾸는 여성들의 꿈을 실현시킨다는 여권을 위한 소설이라는 설도 있다. 어머니를 위해 쓴 소설이라는 설이 있는데 해당 작품에 나오는 여자들은 능동적이며 양소유라는 사내의 이야기지만 또 작품의 히로인으로 나온 여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품 내에서도 양소유에 대해 팔선녀 캐릭터들이 "색을 밝힌다"는 투로 말하기도 한다. 이 해석에 따르면 일반 여성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장편 소설로 여성 작가인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겐지모노가타리는 히카루 겐지라는 사내의 인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여자들의 인생과 고단함, 성공의 욕망을 다룬 여자들의 이야기로서 장치라는 해석을 생각한다면 작가가 남성이라는 걸 제외하고는 비슷한 원리라고도 볼 수 있다. 정병설은 일본의 <호색일대남>같이 주인공이 여자만 3742명(+ 남자 725명)을 상대하는 소설도 있었음을 들며, 여성이 그렇게 존중받지 못했던 실제 조선 사회에서 공평하게 사랑받고 부인끼리 서로 어울려 지내는 구운몽은 오히려 여성을 꽤 존중하는 이야기라고 지적한다.
3. 등장 인물
다음은 현실 세계 - 몽환 세계 간 인물 대응 관계이다. 각 인물과 성진이 만난 순서이기도 하다.
(1)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