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43】 2
<4> 보살의 지혜를 비유로 나타내다
佛子야 譬如有人이 以摩尼寶로 置色衣中에 其摩尼寶가 雖同衣色이나 不捨自性인달하야
“불자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마니보석을 물을 드린 천 위에다 두면 그 마니보석이 천의 빛과 같아지면서도 제 성품을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강설 ; 여기에 있는 마니보석의 비유를 살펴보면 마니보석은 자체의 색이 없고 투명하여 주변의 색깔을 받아 자신의 색깔로 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천 위에다 두면 그 천의 색깔과 같아지지만 마니보석의 자체 성품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成就智慧로 以爲心寶하야 觀一切智하야 普皆明現이나 然不捨於菩薩諸行하나니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지혜를 성취하여 마음의 보배를 삼고 일체 지혜를 관찰하면 널리 분명하게 다 나타나거니와 그러나 보살의 행을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강설 ; 보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지혜를 성취하여 마음의 보배로 삼아 일체 지혜를 관찰하여 널리 밝게 나타내지만 보살로서의 모든 보살행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發大誓願하야 利益一切衆生하며 度脫一切衆生하며 承事一切諸佛하며 嚴淨一切世界하며 安慰衆生하며 深入法海하며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큰 서원을 내어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며, 일체중생을 제도하며, 모든 부처님을 섬기며, 모든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며, 중생을 위로하여 법의 바다에 들게 하며,
爲淨衆生界하야 現大自在하며 給施衆生하며 普照世間하며 入於無邊幻化法門하야 不退不轉하며 無疲無厭이니라
중생세계를 깨끗이 하려고 크게 자재함을 나타내어 중생들에게 베풀어 주며, 세간을 두루 비추어 그지없고 환영과 법문에 들게 하되, 물러나지 않고 달라지지 아니하며, 고달프지도 않고 싫은 마음도 없느니라.”
▶강설 ; 보살이 큰 서원을 내어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며, 일체중생을 제도하며, 모든 부처님을 섬기는 등의 보살행을 마음껏 펼치더라도 세상을 널리 밝게 하려는 보살의 본분에서 물러서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 까닭을 밝혔다.
佛子야 譬如虛空이 持衆世界호대 若成若住에 無厭無倦하며 無羸無朽하며 無散無壞하며 無變無異하며 無有差別하야 不捨自性하나니 何以故오 虛空自性이 法應爾故인달하야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이 모든 세계를 싸고 있으면서 이루어지거나 머물러 있거나에 싫어함도 없고, 게으르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않고, 차별도 없어서 제 성품을 버리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허공의 자체 성품이 으레 그런 까닭이니라.”
▶강설 ; 드넓은 허공에서는 지구를 위시하여 무수한 별들의 세계가 성주괴공(成住壞空)하며, 또 각각 별들에서는 온갖 사물들이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 그와 같이 성주괴공하고 생주이멸하는 변화에 따라 이루어지거나 머물러 있거나에 싫어함도 없고, 게으르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않는다. 허공의 본성은 아무런 차별도 없고 자성을 버리지도 않는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立無量大願하야 度一切衆生호대 心無厭倦이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큰 원을 세우고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게으른 마음이 없느니라.”
▶강설 ; 허공의 자체 성품이 으레 그렇게 아무런 변화가 없듯이 보살도 큰 서원을 세워서 일체중생을 제도하더라도 마음에 아무런 싫증이나 게으름이 없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싫증을 내거나 게으름을 내면 그는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보살이다.
佛子야 譬如涅槃이 去來現在無量衆生이 於中滅度호대 終無厭倦하나니 何以故오 一切諸法의 本性淸淨이 是謂涅槃이어니 云何於中에 而有厭倦인달하야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열반은 과거 미래 현재에 한량없는 중생이 그 가운데서 죽더라도 마침내 싫어하고 게으름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의 본 성품이 청정한 것을 열반이라 하나니 어찌하여 그 가운데 싫어하고 게으름이 있겠는가.”
▶강설 ; 열반을 비유로 들면서 대승적 열반과 특히 화엄경에서의 열반에 대한 견해를 확고히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열반은 ‘반열반(般涅槃)’이라고도 하는데, ‘멸(滅), 적멸(寂滅), 이계(離繫), 해탈(解脫), 원적(圓寂)의 의미를 가진다. 이 열반에 관한 사상은 우리나라에서 열반종(涅槃宗)의 창종 이래 널리 연구, 전승되었다. 원래 열반은 불을 입으로 불어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 등을 나타내며,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없애서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화엄경에서는 열반은 언제 어떤 수행을 통해서 새삼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체 모든 존재의 본성이 텅 비어 청정한 것이 곧 열반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일체중생이 얻고 얻지 못하고에 관계없이 본래로 열반 속에 있으면서 죽고 태어남을 거듭할 뿐이다. 일체중생이 이미 열반 안에서 죽는데 다시 열반이 그것을 싫어하거나 게을러 할 까닭이 없다. 일체중생은 본래로 한 순간도 열반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증득할 일도 없다. 마치 바다에 물결이 바람을 따라 출렁이더라도 물의 본성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과 같다. 물의 본성은 본래 있어서 새롭게 얻는 것이 아니듯이 열반도 본래 있는 것이다. 새롭게 증득하는 것이 아니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爲欲度脫一切衆生하야 皆令出離하야 而現於世어니 云何而起疲厭之心이리오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모두 벗어나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였는데 어찌하여 고달픈 마음을 내겠는가.”
▶강설 ; 보살의 의무는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모든 번뇌와 생사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였다. 이와 같은 의무가 없으면 보살도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중생을 제도하는데 피곤해하거나 싫증을 내겠는가.
佛子야 如薩婆若가 能令過去未來現在一切菩薩로 於諸佛家에 已現當生하며 乃至令成無上菩提호대 終無疲厭하나니
“불자여, 일체 지혜[薩婆若]가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부처님 가문에 이미 태어났고, 지금 태어나고, 장차 태어나서 위 없는 깨달음을 이루게 하여도 마침내 싫어하거나 고달픔이 없느니라.”
▶강설 ; 불법수행의 궁극은 사람 사람에게 본래 갖춘 일체 지혜를 깨닫는데 있다. 그 일체 지혜가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부처님 가문에 태어나게 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게 한다. 즉, 일체 지혜에서 출발하여 일체 지혜인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체 지혜는 조금도 피곤해하거나 싫어함이 없다.
何以故오 一切智가 與法界無二故며 於一切法에 無所着故인달하야
“왜냐하면, 일체 지혜와 법계가 둘이 아닌 까닭이며, 일체 법에 집착이 없는 까닭이니라.”
▶강설 ; 그 까닭은 일체 지혜와 우주법계는 다른 것이 아니며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 비유한 열반과 같이 일체 지혜도 사람과 우주법계가 본래로 하나이다. 또한 중생 그대로가 일체 지혜이다. 그러므로 일체 법에 집착이 있을 까닭이 없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其心平等하야 住一切智어니 云何而有疲厭之心이리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마음이 평등하여 일체 지혜에 머물렀는데 어찌 고달프거나 싫은 마음이 있겠는가.”
▶강설 ; 열반의 비유와 또한 일체 지혜의 비유와 같이 보살도 또한 그 마음이 평등해서 본래로 일체 지혜에 머문다. 그러므로 보살이 곧 일체 지혜며, 일체 지혜가 곧 보살이다. 그래서 달리 피로해 하거나 싫증이 없다.
<5> 의과(依果)가 수승함을 밝히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有一蓮華호대 其華廣大가 盡十方際하야 以不可說葉과 不可說寶와 不可說香으로 而爲莊嚴하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에게 한 연꽃이 있으니 그 꽃이 매우 넓고 커서 시방의 끝까지 이르렀고, 말할 수 없는 잎과 말할 수 없는 보배와 말할 수 없는 향(香)으로 장엄하였느니라.”
▶강설 ; 의과(依果)란 보살이 의지하는 의보(依報)이다. 즉 과거에 닦은 수행이나 지은 행위의 과보로 받은 부처나 보살이나 중생의 몸이 의지하고 있는 국토와 의식주 등 환경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