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심리이야기] 아버지가 파괴한 세계, 그 잔해 속에서 괴물이 되어간 사람들 ― 영화 <시스터>, <왕과 사는 남자>, 연극 <BE HAPPY>
지난 한주 뜻하지 않게 2편의 영화와 한 편의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이 세 작품의 이름은 <시스터>, <왕과 사는 남자> 그리고 <BEHAPPY>입니다.
부호의 딸을 납치하는 내용을 다룬 <시스터>와 단종의 이야기를 다룬 <왕과 사는 남자>그리고 비행청소년의 폭력과 범죄를 다룬 <BEHAPPY>는 시간도 소재도 인물을 표현하는 모든게 전혀 다른 매우 이질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아버지의 존재가 세계의 중심에 서 있고, 그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방치당한 인물들이 결국 어떻게 무너지고 뒤틀리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들 속에서 아버지는 단순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자녀의 세계관을 결정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의 부재나 폭력은 단지 개인의 상처를 넘어, 인물들이 살아가는 현실 전체를 붕괴시키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세 작품의 출발점은 모두 ‘근원적인 거부’입니다. <시스터>에서 혼외자는 재벌 회장이라는 아버지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채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돈과 복수를 선택하는 냉혹한 계획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왜 버려졌는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존재가 세상을 향해 분노하는 방식은 결국 자신을 지워버린 질서 전체를 향한 저항이 됩니다. <BE HAPPY> 속 아이들은 집 안의 폭군 같은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나오지만, 탈출이 곧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지만, 그 안에서조차 폭력과 지배가 반복됩니다.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났을 뿐, 마음속에 각인된 공포와 생존 방식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단종이라는 어린 왕이 가장 믿어야 할 가족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고립됩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죠. 세종이후 장자세습이 이뤄진 가장 합법적인 권력 그자체였던 단종은 불과 12살에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아버지 문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 권위를 수양대군이 차지하게 되죠. 어린 단종을 지켜야 할 세계가 더 이상 그의 편이 아님을 선언한 구조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거부였습니다.
이 작품들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상처 입은 인물들이 서로를 통해 진정으로 회복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피해자들이 연대하려 하지만, 그 관계는 결국 서로를 이용하거나 상처를 되풀이하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시스터>의 인물들은 공범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지만, 서로를 보호하기보다 생존을 위해 계산하고 방치하고 배신을 합니다. <BE HAPPY>의 가출 팸 역시 가족을 대신할 공동체를 꿈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배와 폭력이 되풀이되는 공간으로 변합니다. <왕과 사는 남자> 속 인물들 또한 거대한 권력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구해내지 못한 채 파국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가해자의 방식이 얼마나 쉽게 피해자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가 하는 점입니다. 보호받지 못한 존재들은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폭력의 언어를 재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특히 ‘BE HAPPY’라는 제목이 던지는 역설은 세 작품을 하나로 묶는 핵심적인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행복을 말하지만, 그 행복은 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다른 이름에 가깝습니다. 왕의 안위를 바라는 충심도, 가족의 돈을 노리는 계획도, 가출한 아이들이 만든 공동체도 결국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선택들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권위가 남긴 상처와 공백이 너무 깊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로 도망치든 또 다른 지옥이 반복됩니다. 떠났다고 해서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치유가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이 세 작품이 남기는 가장 묵직한 질문은 결국 ‘부재한 아버지의 그림자’입니다. 보호해야 할 권위가 상처를 남길 때, 개인은 어떤 세계를 살아가게 되는가. 그리고 그 상처는 어떻게 다음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가. 작품 속 인물들은 괴물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사실은 무너진 세계의 잔해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존재들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종종 파괴적이지만, 그 출발점에는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과 안전한 울타리를 갈망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비극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권위와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상처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를 이 작품들은 집요하게 묻습니다. 아버지의 부재와 폭력이 만들어낸 균열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구하려 애쓰지만, 끝내 실패하고 때로는 또 다른 상처의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상처의 시작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같은 비극은 이름과 모습만 바꾼 채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들을 통해 절망만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계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이미 어그러진 관계 속에서도 회복의 가능성은 남아 있는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실제로 아버지의 역할 부재로 인해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많은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로뎀을 비롯한 여러 상담센터를 찾는 아이들 역시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에 서 있습니다. 이들의 혼란과 고통이 더 큰 상처로 확장되지 않도록, 누군가는 그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고 지켜주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무너진 세계의 잔해 속에서 또 다른 괴물이 태어나지 않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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