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화) 여행 6일차
리조트 호텔에서 아침을 맞는다. 구 소련 시절 쿠타이의 츠칼투보는 소련 내에서 손꼽히는 휴양지였다. 80년 대에 고급스럽게 지어진 리조트는 관리 부재 등으로 쇠락한 느낌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비 속에서 리조트 주위를 조금 산책한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가 상쾌하다.
버스가 쿠타이 시 외곽에 들어 오니 이 도시가 기울어 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녹슨 공장 들과 낡은 건물들, 빈 집들이 즐비하다. 과거 수도 트빌리시에 이은 제2의 도시였고, 콜키스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가 이제는 바투미에 2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쿠타이 외곽의 겔라티 수도원으로 간다. 약간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와중에 수도원에 닿는다. 11세기에 다비드 대왕은 페르시아 세력을 완전히 몰아 내고, 조지아 왕국의 전성기를 연 인물이다. 그는 화가와 학자들을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로 유학시켜 선진 문물을 습득해 오게 했다. 돌아 온 유학생들은 조지아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겔라티 수도원은 선진 문물이 교육되는 학교임과 동시에 수도원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막을 내린다.
이 수도원에는 다비드 대왕의 무덤이 주 출입구의 대문 안쪽에 있다. 사람들이 대왕의 무덤을 밟고 지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문은 폐쇄되어 다른 출입구로 드나든다. 무덤위 옥개석이 조금씩 내려 앉아서 취한 조처란다.
대왕 무덤 옆에는 철제 장식품 같은 것이 있다. 대왕이 성을 깨트리고 승리한 후 뜯어 온 철제성문의 장식이라고 한다.
이 수도원에서 7개월 째 세계여행 중이라는 대단한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7개월 전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여기 까지 왔다고. 현대자동차의 코치 버스를 캠핑카로 개조하여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대단한 용기와 노력에 갈채를 보내며, 나머지 장도도 건강하고 안전하기를 빈다.
쿠타이 시를 잘 조망할 수 있는 바그라티 대성당으로 간다. 이 성당은 다비드대왕의 조부인 바그라트 3세 왕 시절인 10세기에 세워졌다. 이 왕은 조지아의 동부의 이베리아 왕국과 통일의 업적을 이루었다. 그 기념으로 동•서조지아에 각각 큰 교회를 지었는데 서 조지아 교회가 바그라티 성당이다. 이 성당은 조지아 정교회의 주교좌 성당이었다. 다른 하나의 교회는 동조지아, 이베리아의 수도였던 므츠헤타에 있다.
17세기 오스만터키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다고 한다. 일부 남은 교회에서 신실한 조지아의 기독교인들은 지붕 없는 교회에서 수 백 년 간 주일이면 예배를 보아 왔다고 한다.
이 성당은 외곽에 별도의 성곽을 가진 성곽 교회이다. 그래서 오스만터키가 더 강하게 파괴해 버렸을 지도 모른다. 구소련 붕괴 후 조지아가 독립하자 성당 복원에 착수하여 10여 년 전 복원하였으나 내가 보기에는 너무 엉망으로 복원한 대표적 사례이다. 심지어 복원에 철재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복원 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었으나 복원 후 자격미달로 지정 취소되었다고 한다.
여하간 안타까운 일이다. 간혹 흩날리는 비 속에서 쿠타이 시를 내려다 보니 정취가 특별하다.
시내로 나와서 콜키스 분수대와 시내 중심의 공원을 둘러 본다. 시 외곽에 비하면 도심은 잘 정돈된 느낌을 준다. 미슐랭가이드에 등재되어 있다는 조그만 이태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꽤 맛이 좋다.
약간씩 비가 내린다. 할머니 청소부가 길거리를 청소한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여자들은 우산을 쓰고 다니는데 남자들은 절대 우산을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쓰면 비겁한 남자로 치부된다고 하네. 물론 조지아에서는 한 시간 넘게 폭우가 내리는 일은 없고, 조금 오다가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런 풍습(?)이 생긴 게 아닐까라고 가이드가 알려 준다.
이제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바투미로 간다. 일부 개통된 고속도로를 달리고, 다시 국도로 접어든다. 바투미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투자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이제는 트럼프의 자본은 완전히 철수했고 트럼프 빌딩이라 불렸던 건물은 분양광고가 붙어 있다..
바투미 시내를 통과하여 고리오 요새로 간다. 이 요새는 터키와의 국경 가까이에 있다. 1세기 경 로마가 건설하였다. 로마의 주요 군사 기지 중 하나로 로마의 코카서스 지방 경영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로마가 동•서로 갈라진 이후에는 동로마제국, 셀주크와 오스만 터키가 계승하여 계속적으로 군사기지로 활용했다.
현재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성곽에는 망루 등이 설치되어 있고, 2,000년 전에 만든 수도 시설과 목욕탕 등이 남아 있다. 사각형으로 성벽을 쌓아 올리고, 내부에 숙영지 등을 배치한 구조이다. 로마 군인들 2,000여 명이 주둔했다. 조금 무리하면 5,000명의 군인이 머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요새 내의 그늘막에는 키위나무가 잘 익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바투미 시내로 돌아온다. 온 시내가 공사판이다. 주로 호텔과 아파트이다. 호텔 방 하나에 한국돈으로 5천만원 정도, 아파트 한 채에 1억 정도면 분양받을 수 있다고 한다. 분양광고가 신축 중인 건물 뿐만 아니라 분양 중인 건물마다 붙어 있다. 완공 후 미분양도 있는 것 같다. 여름이면 이란에서 특히 많은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일부러 호텔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버스를 내려 시내를 구경한다. 황금 양털을 든 악녀(?) 메데아 동상이 서 있는 광장을 둘러 본다. 메데아는 콜키스 왕국의 왕녀로 마술사, 약의 조상이라고 안내판에 씌여져 있다. 오늘날 약의 영어인 medicine은 메데아 공주의 이름에서 연원되었다고 한다.
오후 4시 반 경 호텔에 체크인 한다. 바투미 항이 잘 내려다 보인다. 1992년 홍콩에서 만나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내는 김선생 부부와 흑해 해변산책에 나선다. 잔뜩 찌푸린 날씨다.
흑해 바다에 손만 담그려다 파도에 신발이 조금 젖는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신발 벗고, 양말 벗고 흑해에 발을 담근다. 제법 차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부자 간으로 보이는 남자 둘은 옷을 벗더니. 그냥 흑해로 몸을 던진다. 아흐, 10년만 젊었어면 나도....
저녁 식사는 바닷가에 접한 해물식당에서의 생선 바베큐이다. 조지아식 반대떡 하차푸리가 특이하고 꽤나 맛있다. 바투미의 하차푸리는 목욕탕에 가면 머리에 쓰는 양머리 모양이다. 추정컨대 빵을 양머리 모양으로 만들고 가운데에 치즈를 가득 올려 오븐에 구운 다음 식탁에 나갈 때에 계란 노른자를 올린 것으로 짐작된다. 녹은 치즈를 포크로 휘휘 저어 부드러운 빵과 함께 먹는다. 맛이 좋다.
생선 구이로는 흑해에서 잡은 정어리, 전갱이, 숭어 등이 나왔는데 맛은 그냥 보통이다. 홍합 스튜가 함께 나온다.
무대에 중년의 여성 가수가 나와서 귀에 익은 '백만 송이 장미' 를 불러 준다. 이 노래는 가수 심수봉이 불러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사실 이 노래는 지금은 꽤나 유명하지만 영화 간판이나 그렸던 무명이었던 어느 화가가 프랑스 배우를 짝사랑한 실화를 노래로 만든 것이다. 그 화가의 이름을 들었는데 잊어버렸네. ㅎ. 간혹 그 화가의 그림이 발견되는데 무척이나 비싸단다.
다음 주 금요일 후속편 계속
오늘은 경남고 30회 자전거 동호회인 '구르메'의 송년회가 있는 날이다. 여러 회원들이 선물을 준비한다. 경장군은 펌프와 타이어 레버 몇 개와 대만의 금문 고량주 58도 짜리 한 병을 준비한단다. 나는 2015년 담근 모과주를 준비한다. 황대장과 여러 장군들이 선물 등을 준비해 올 것이다.
오늘도 도장군은 암사대교로, 황대장은 신대호수 공원을 돈다. 포장군은 고기리 성을 나와 하철신공을 더하여 대림성에 나타난다.
식전행사로 당구 한 개임, 노장군의 홍짜장 옆 당구장에 홍해도황덕포옥진이 대대에서 한판 붙는다. 하태장군은 동원에서 일합을 겨루고 대림성에 얼굴을 내민다.
드디어 송년회가 시작된다. 17명이나 모였다. 결산 보고와 구르메 연혁이 소개된다. 회장단에서 준비한 선물과 상이 수여된다. 상 못 받은 회원을 위한 행운권 추첨, 행운권도 당첨 안된 사람들을 위한 선물 등이 주어 진다.
정성 듬북 담긴 음식을 장만해 준 형설공신 노장군과 마나님, 송년회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준 황대장과 은총무,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겔라티 수도원 전경
겔라티 수도원 지붕의 기와. 구 소련 시절 기와를 뜯어 내고, 양철지붕을 얹었으나 복원했다고.
겔라티 수도원 대문 안에 있는 다비드 대왕의 무덤
조지아 왕국의 전성시대를 연 다비드 대왕의 초상화
쿠타이 시내의 콜키스 분수
메데아 공주의 동상.
손에 황금 양털을 들고 있다
메데아 공주를 소개하는 간판
맑은 바다 흑해
바투미의 하차푸리
저녁으로 먹은 생선구이
흑해의 석양
고리오 요새
바투미 시와 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