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되어 내리네, 별되어 내리네
지난 월요일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대지 위에 촉촉한 생기를 더해 줄 봄비라 생각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지만 꽤나 묵직한 빗방울이 거센 바람을 타고 쏟아집니다. 상쾌한 봄비를 맞으며 남산 길을 먼저 걷고 하루의 일정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이런! 남산길을 찾아 회현동 골목길을 걷는 중에 이미 옷이며 신발이며 양말이 모두 젖어버렸습니다.
그날의 주된 일정은 안산에 문상을 다녀 오는 것이었습니다. 파란색 지하철을 타고 하염없이 내려갑니다. 상록수역에 내려 여전한 비를 맞으며 장례식장을 향해 걷습니다. 가구 거리를 지나치는데 상점마다 손님은 보이지 않고 주인장들이 하나같이 문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담배 연기가 공기를 채색하자 둘러싼 모든 것의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발걸음도 덩달아 무겁습니다. 평소에 담배 연기에 질색하는지라 이 동네 사람들은 유난히 담배를 많이도 핀다고 생각하며 짜증이 담긴 손짓을 보란듯이 휘휘 내저어봅니다.
조금 전 전철 안에서 안산에 내려간 김에 혹시 얼굴이나 볼 수 있을까 하여 부목사로 사역하고 계시는 목사님께 문안 문자를 드렸는데 문상을 마치고 나오니 답문이 와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 안산까지 오셨군요. 오늘내일 안산에 내리는 비는 그냥 비가 아닌 것 같아요...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문자를 보는 순간 아차 하며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제가 안산을 찾아갔던 그 날은 바로 4월 15일이었고 다음 날은 세월호 참사 1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참으로 무심했습니다. 그날로부터 10년이 되던 날에, 아이들이 꿈을 키웠던 그 동네를 찾아갔음에도 여느 봄비 같지 않았던 그 빗방울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날따라 유독 짙고 무거웠던 담배 연기에 섞여 있던 안산 아버지들의 탄식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비바람과 담배 연기에 푸념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다음 날 오후 3시, 4시 16분에 안산에 울릴 사이렌 소리를 앞두고 10주기 416 기억식이 열렸습니다. 박혜진 아나운서와 박원상 배우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다 부르는 순서가 처음 부분에 있었습니다. 화면에 띄워진 졸업 앨범 사진 속에는 영원히 단원고 2학년으로 남아 있는 아이들이 저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미소를 띠며 웃고 있습니다. 지난주 제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찍는다고 아침부터 유난을 떠느라 온 집안이 정신없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내 아이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먹먹해졌고 그동안의 무심함이 더욱 미안했습니다.
기억편지 낭독은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내기인 김지애씨가 맡았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있으면 저만큼 컸으리라 생각했는지 다부지게 서 있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유족들은 연신 눈물을 훔칩니다. 97년생 김지애 청년은 목사를 꿈꾸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말이 비수처럼 저의 폐부를 찌릅니다. "그날(2014년 4월 16일) 이후 내 꿈에 대해 다시 생각했어. 나도 못된 말을 내뱉는 목사가 되는 건 아닐까. 너희를 잊고 비정한 목사가 되는 건 아닐까"
자기만 살고자 발버둥 치던 세월호의 선장처럼 삶에 함몰 되어 비되어 내리는 슬픔을 보지 못하고 되려 비를 향해 못된 말을 내뱉은 목사는 바로 저였고 별되어 내리는 아이들의 숨결을 잊고 담배 연기에 실린 탄식에 짜증을 부렸던 비정한 목사도 바로 저였습니다. 그날(2024년 4월 16일) 이후 목회자로서의 저의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나쁜 말 하는 목사가 되지 말자, 비정한 목사가 되지 말자...’
가수 박창근은 그날의 기억식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왜 이 노래이어야만 했을까 하는 답답함이 들긴 했지만, 가사와 선율과 목소리가 어우러진 우리 시대의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함께 살아야만 할 우리 모두의 시대 말입니다.
별되어 내리네
꽃잎 같은 사랑아 먼저 가라
못다 핀 꽃망울들 위로 내리는
비가 서러워
남은 우리 슬픔이 슬픔이
비되어 내리네
함께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
우린 다른 시간을 살고있는
사이 됐지만
너의 숨결 느낄 수 있어
별되어 내리네
오늘은 유난히 보고 싶어
되뇌어 부르다 잠이 들고 말았지
하지만 걱정 마 괜찮아
울지 않을 거야
울지 않을 거야
조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