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왕관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아름다움 앞에서도 나이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붉은색 옷을 보면서도 너무 화려하지 않을까 망설이고, 조금 특별한 옷을 입으려다가도 괜스레 주변의 시선을 살핀다. 젊은 날에는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충분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옷 한 벌에도 나이라는 잣대가 따라붙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아름다움에도 나이를 정해 놓고 살았을까.
짙은 와인빛 드레스가 눈길을 붙잡는다. 금빛 자수가 촘촘히 흐르고 풍성하게 펼쳐진 치맛자락에는 오래된 궁전의 시간이 내려앉은 듯하다.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와 화려한 장식, 머리 위의 왕관까지 일상의 옷차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다. 오히려 한 여자가 아주 오래 미뤄두었던 자신을 찾아 입은 것처럼 보인다.
왕관은 본래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왕이나 왕비, 혹은 세상의 정점에 오른 사람이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을 살아보니 왕관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을 끝까지 견디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이지 않는 왕관 하나쯤 가지고 있다. 한 여자의 삶을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딸이었고, 어느 날 아내가 되었으며, 아이가 태어나면서 어머니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이름보다 역할로 불리는 날이 많아진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라는 이름 뒤에서 자신의 이름은 조금씩 작아진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마음속 옷장에는 입어보지 못한 옷들이 쌓인다. 하고 싶었던 일도 있고, 가고 싶었던 곳도 있다. 배우고 싶었던 것이 있었으며 한 번쯤 과감하게 변신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말한다. 다음에. 조금 있다가. 아이들이 크면. 시간이 나면. 그렇게 미뤄둔 ‘다음’ 사이로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간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서면 낯선 사람이 바라보고 있다. 눈가에는 잔주름이 생겼고 머리카락 사이에는 흰빛이 보인다. 그제야 문득 묻게 된다. 나는 언제 나를 위해 살아보았던가.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반드시 늦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야 자신에게 돌아갈 시간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젊음에는 젊음의 아름다움이 있다. 팽팽한 피부와 빠른 걸음,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하지만 세월을 건너온 사람에게는 젊음이 흉내 낼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기다릴 줄 알고, 잃어본 사람을 이해하며, 작은 행복 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아는 마음이다.
그래서 중년 이후의 아름다움은 얼굴에만 있지 않다.
눈빛에 있고 말투에 있으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지나온 계절이 쌓인다. 많이 웃은 사람에게는 웃음의 흔적이 남고, 많이 견딘 사람에게는 단단함이 생긴다. 누군가를 오래 사랑한 사람에게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온기가 느껴진다. 주름은 세월이 남긴 흠이 아니라 삶이 써 내려간 문장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감추려고만 했다. 젊어 보여야 아름답다고 믿었고, 나이가 들면 조금 얌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색을 피하고 옷차림도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색깔에 나이가 있을까. 붉은색이 스무 살의 전유물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수많은 계절을 지나온 사람이 입는 붉은색에는 젊음과 다른 깊이가 있다. 그것은 보여주기 위한 색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선언하는 색이다. 나는 아직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나는 아직 설렌다. 나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짙은 붉은 드레스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왕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왕관을 권력의 상징이라 말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다. 왕관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남들이 인정해주어야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상을 받아야 훌륭한 것도 아니고, 이름이 알려져야 특별한 삶을 산 것도 아니다. 하루하루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사람에게는 그만의 역사가 있다.
아이를 키운 시간도 역사이고, 가족을 돌본 시간도 역사다. 자신의 꿈을 붙잡고 묵묵히 걸어온 시간 역시 역사다. 실패하고 다시 일어선 날,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닦았던 밤, 포기하고 싶었지만 다음 날 다시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던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애가 된다. 그 모든 시간을 견딘 사람에게 누가 감히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왕관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젊은 날에는 다른 사람의 박수에 마음이 흔들렸다. 누군가 예쁘다고 말하면 기뻤고 잘한다고 칭찬하면 자신감이 생겼다. 반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쉽게 작아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가장 오래 들어야 할 박수는 다른 사람의 박수가 아니라 내 안에서 들려오는 박수라는 것을. 잘 살아왔다고. 많이 견뎠다고. 넘어지면서도 여기까지 왔다고. 가끔은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잃어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젊음이 멀어지고 몸은 예전 같지 않으며 익숙했던 사람들과도 하나둘 헤어진다. 그러나 잃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얻게 되는 것도 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고,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며,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힘도 생긴다. 무엇보다 남의 시선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젊었을 때는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것이 세월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인지 모른다. 그러니 어느 날 마음에 드는 붉은 드레스를 만나면 입어도 좋겠다. 평소 해보지 않았던 머리를 해보고 조금 화려한 귀걸이를 달아도 좋겠다. 여행을 떠나도 좋고, 그림을 시작해도 좋으며, 오래 미뤄둔 글을 써도 좋다. 누군가 “그 나이에?”라고 묻는다면 웃으면 된다. 바로 그 나이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제야 다른 사람의 허락 없이 나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인생에는 정해진 의상이 없다.
스무 살에는 밝은색을 입어야 하고 예순에는 어두운색을 입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인생의 계절마다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봄꽃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가을 단풍은 봄꽃이 가질 수 없는 깊은 색을 가지고 있다. 겨울나무 역시 잎을 모두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가지의 선을 온전히 보여준다.
사람도 그렇다. 세월이 무언가를 가져갈 때마다 또 다른 것을 남겨놓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아름다움은 젊음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왕관을 다른 곳에서 찾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 씌워주는 왕관은 언젠가 벗겨질 수 있다. 칭찬도 명예도 인기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그러나 스스로 씌운 왕관은 다르다. 그것은 살아온 시간에 대한 존중이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약속이다. 오늘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는 약속. 남은 삶을 남의 기준에 맞추느라 허비하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설렘을 오래 지켜주겠다는 약속이다.
나는 거울 앞에 선다. 예전의 얼굴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얼굴이 싫지 않다. 웃었던 날과 울었던 날,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졌던 사람, 걸어온 길과 돌아섰던 길이 모두 이 얼굴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젊은 날의 나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의 아름다움도 좋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젊음을 오래 붙잡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계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조금 화려해도 좋겠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금빛 장식을 두르고 마음속 왕관 하나를 꺼내 써도 좋겠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기까지 걸어온 나에게 주는 작은 대관식이다. 그리고 조용히 말해본다. 잘 살아왔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도 좋다. 왕관은 처음부터 내 것이었다. 다만 너무 오래 다른 사람을 바라보느라, 내가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