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전화기를 탁 내려놓는다. 뭔가 심사가 단단히 꼬였다는 뜻이다. 새로 사 온 전화기를 연결하면서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짐짓 모른 척하려 해도 성질 급한 사람이 물을 수밖에 없다. 두어 번의 채근 끝에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대답하는 그의 말에, 박장대소했다.
사무실에 쓰던 전화기가 잡음이 계속 나고 버튼이 잘 눌러 지지가 않아서 새로 하나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한참을 골랐던 모양이다. 그때 친절한 직원이 다가와서 전화기를 하나 권했다.
“아버님 같은 연세에는 이런 전화기가 사용하기 편할 겁니다.”
헉, 그것은 숫자판이 엄청나게 큰 효도 전화기였다. 그는 직원을 한껏 째려주지도 못했다. 그저 윤이 나는 검은 물체에 세련된 숫자가 하얗게 자금자금 박힌 전화기를 들고 왔을 뿐이다.
반상 회비를 일 년간 모았으니 횟집에 가자고 반장이 제안한다. 이웃과의 화목을 도모하는 자리에 빠질 수 없다. 횟집 주인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다. 그동안 벌금에 반 회비에 각종 서류에 도장을 받으려 다니던 반장님은 평소에 얼굴 보기 힘들던 이웃까지도 참석했다며 자리를 빛내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 틈에 하필이면 앉게 되어 행동거지가 불편했다. 얇게 깔린 회는 눈치껏 횟수를 줄여 오갔다. 당근이랑 오이를 쌈장에 찍어 먹으며 분위기를 살피다 소주병을 잡는 할머니 한 분을 봤다. 얼른 술병을 받았다.
“제가 한 잔 올릴께요, 어르신.”
어르신이 술잔을 받으며 한마디 하신다.
“나는 어르신이란 말, 참 듣기 싫더라.”
엥 이건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다. 칠순이 다 된 언니로 인해 점수 따려던 행동은 물거품이 되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르신을 어르신이라 부르지도 못하는 세상, 모르겠다. 자작이나 한잔해야겠다.
약수터에서 떠온 물을 내려놓는 남편의 모습이 더운 날씨 탓인지 벌겋게 익었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온 후에도 갓 씻은 배추속 같은 싱싱함은 없다. 갱년기 여자처럼 벌겋게 오른 부아 난 표정에 주인 심기 살피는 강아지가 된다. 곧이어 전국 노래자랑이 시작된다. 요즘은 가만히 노래하는 사람이 드물다. 모두가 재미난 표정 말투 몸짓으로 사람들을 웃긴다. 중늙은이 한 사람이 무대에 오른다. 한껏 폼을 잡고 노래를 하는데 나이가 자막으로 나온다. 흠씬 놀라는 남편이 표정으로 묻고 있다. ‘갑장인데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하는 눈빛이다. 평상시 미운털이 박힌 걸 생각하면 ‘물론이지’하는 말이 목을 뚫지만, 후환이 두려워 뭉텅 삼킨다.
“어머 저 사람은 당신하고 동갑인데 너무 늙어 보인다. 당신은 저 남자보다 다섯 살은 어려보여.”
손바닥을 쫘-악 폈다. 그제야 기분이 수굿해진 남편은 약수터 갔다 오는 길에 인조 잔디 구장에서 젊은이들이 족구를 하고 있었다나 뭐래나. 한참 구경을 하는데 상대방이 찬 공이 바깥 선에 닿았느니 안 않았느니 하며 말씨름이 났다. 결론이 나지 않자 구경을 하고 있던 남편에게 한 남자가 물었다.
“공이 선에 닿았습니까? 안 닿았습니까?”
남자에게 공이 선에 닿았다고 답을 했다. 그러자 남자가 하는 말이 남편을 충격으로 핑~ 돌게 했다.
“야 어르신이 선에 닿았단다. 어르신이 닿았다면 닿은 것이다. 토 달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어이쿠’
모처럼 한가한 휴일이다. 여동생과 둘이 외고산 옹기 마을을 찾았다. 깨진 옹기로 여기저기 흙벽을 마름질 해놓은 마을 입구는 고풍스러워 볼거리가 된다. 옛날식 가마도 구경하고 마을 길도 걸으며 한가한 마음을 즐겼다. 마을 곳곳에는 기네스북에 도전할 세계최대의 옹기 제작을 준비한다는 소식과 함께 옹기 축제가 곧 있을 예정이라는 펼침막이 바람에 흔들린다. 마을 공동전시장에는 포개어 쌓아 놓은 항아리와 떡시루 화분과 종지들이 좌불로 정진에 들었다. 한곳에는 내 꼬락서니를 닮은 먼지를 뒤집어쓴 질그릇들이 고개를 외로 꼰 채 숨어 있다.
그때 한 여학생이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대학생인데 숙제가 있다며 인터뷰를 요청한다. 어정쩡한 옷차림, 화장도 안 한 맨얼굴, 대충 틀어 올린 머리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생을 슬쩍 밀며 “네가 해라 인터뷰”를 외쳤다. 얼떨결에 카메라를 향한 동생에게 학생 리포트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옹기 축제가 개최되는 것을 알고 오셨습니까?’
“모르고 왔는데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세요. 옆에 계시는 분은 어머니신가 본대 오늘 같이 오셨나보죠.”
여동생과 나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나보다 더 당황한 표정이다. 화독에 갈린 고추처럼 벌겋게 변하는 꼴을 보고도 학생은 아직 사태 파악을 못했나보다.
“어머니랑 같이 나들이 오셨나보죠?”
그래, 나 오늘 시간 많다. 너 죽었어. 내가 좀 붓기는 했지만, 동생의 어머니라니
술항아리를 통째로 마신 듯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시간 없다. 빨리 가자. 학생! 다른 사람 골라보소.”
동생의 팔을 낚아채고 돌아서는데 배불뚝이 찌그러진 항아리가 ‘자네도 별수 없네’ 하며 머리에 얹은 수련을 뱅뱅 돌리며 웃고 있다.
요즈음의 트랜드는 동안이다. 각종 매체에서는 동안 미인대회를 개최하고 베이글녀라고 얼굴은 아기 같고 몸매는 글래머인 미인들에 열광한다. 그래서인지 비만, 피부, 성형에 관계된 병원들이 호황을 누린다. 사람들은 왜 늙음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보이는 걸까. 수명 연장으로 인한 노령 인구는 점차 증가 추세이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이 노인이라는데 쉽게 긍정하지 못한다. 노인이 무능력하고 탐욕스럽기 때문일까. 그러나 키케로의 말처럼 그건 늙음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어리석음과 집착 때문이다. 젊은이도 욕망과 방종이 앞선다면 추하기는 마찬가지다. 흔히들 청년에게는 패기와 열정이 있어 아름답다 한다. 그에 맞서 노인에게는 경험과 삶의 지혜가 있다. 그래서 예부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했었다. 젊음이란 외양이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의 나이에 맞게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자연스런 변화에 순응하면서도 끝까지 새로움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젊음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늙어 보인다는 한마디가 영 언짢은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첫댓글 재미있다고 웃고말 얘기가 아닌 듯 합니다. 분명 노인 인데도 할아버지, 할머니 하는 명칭이 듣기 싫은 것은 사실입니다. 나이 몇 살 차이도안나는 분들이 할머니나 할아버지 하면 '내가 언제 저렇게 늙은 손자를 두었나 싶으지요' 그러니 말을 함부로 하여서는 안 되지요.
대신 아이들의 귀여운 입에서 할머니 하면 웃으며 응대해 줄 수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