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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Ellen G. White Notes)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출판하는 보충교재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직 한글번역본이 없는 예언의 신 인용구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4년 1기 – 시편>
제13과 너는 여호와를 기다리라
(Wait on the Lord)
<3월 23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기도가 그대의 힘의 근원임을 기억하라. 교역자가 그의 기도를 급히 서두르고 그가 등한히 하거나 잊어버릴 수도 있다고 염려되는 어떤 일을 돌보기 위하여 급하게 날뛰고 있는 동안 그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그는 다만 몇 가지의 긴급한 생각들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는 육체적 영적 능력의 쇄신을 위하여 생각하고 기도하고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그는 곧 피곤해진다. 그는 향상시키고 고취시키는 하나님의 영의 감화를 느끼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의 지칠대로 지친 몸의 조직과 피로해진 뇌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접촉을 통하여 이완되지 않는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 27:14).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온종일과 밤이 깊도록 그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무엇인가를 하기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께서는 피곤에 지쳐 있고, 무겁게 짐을 지고 있는 이런 사람들을 불쌍한 눈으로 보시면서, 그들에게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신다.(7증언, 243-244)
◎ 우리 각자가 주님을 바라도록 하자. 그러면 그분께서 일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가 가장 잘 적응하여 수행할 수 있는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독자적인 정신을 추구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이론을 퍼뜨리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사탄이 거짓 학문을 높임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화 하려고 애쓰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우리 믿음을 약화시키고 우리 힘을 분산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아주 주의해서 막아야 한다.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우리는 진리로 더불어, 우리 형제들로 더불어 조화되어야 한다. 상의와 협력이 있어야 한다.
말세의 큰 기만들 중에서 사탄의 이론들을 지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만적인 이적들이 행해질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 자신이 숨어 버리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구원을 찾고 또한 얻는 것은 우리에게 가능하다. 또한 비상한 위기의 이 시대에 우리는 홀로 서고,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들 위에 우리의 믿음을 고정시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목사, 490)
◎ 많은 사람은 기도하는 시간에도 하나님과의 교제로 얻는 참된 축복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너무 조급하다. 빠른 발걸음으로 급히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나가서 잠깐 그 거룩한 경내에서 쉬는 듯 하지만 권고를 받고자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거룩한 교사와 함께 머물 여유가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짐을 그대로 진 채 일터로 돌아간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깐 하나님 앞에서 쉬는 것이 아니고, 친히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교제하는 일이다. (말씀과 능력, 225)
<3월 24일/일, 기다리라는 부르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우리는 인간 도구들에게 구하지만 받지는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데 그분은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찾는 분을 알고 우리가 믿는 이를 안다. 우리는 사람을 믿거나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아서는 안 된다.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 전능하신 분을 기뻐하고 그분께 매달려라. 그대의 얼굴을 끊임없이 의의 태양으로 향하게 하면서 바라고 깨어 기도하라.
예수님의 얼굴로부터 발하는 밝은 빛을 그대의 심령에 비취게 하고 그대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취게 하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4-16). 우리는 백성들 앞에 예수님을 높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나타냄, 119)
◎ 우리는 더 큰 어려움은 물론이요 우리의 작은 염려와 걱정을 그분께 가져갈 수 있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기도로 그것을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영혼은 조용히 그리고도 열렬히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찾게 될 것이며 은밀한 것을 보시고 중심에서 나오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자에게서 나오는 그 감화는 유쾌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침착하고 단순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며 또 사탄과의 투쟁에 있어서 자신의 심령을 강하게 하고 붙들고 나아가기 위하여 신령한 빛을 수집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항상 주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마음으로부터 그분에게 감사와 찬송을 돌린다면 우리의 신앙 생애는 늘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형식이 될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오묘한 뜻을 개인적으로 말씀해 주실 것이며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의 임재로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 기도는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게 한다.(말씀과 능력, 225)
◎ 기도를 마친 후 응답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근심하지 말고 기다릴 것이며 불안해하지 말라. 요동하지 말라. 약속을 굳게 붙들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끈질기게 졸라 대던 과부처럼 목적하는 바를 확고하게 하고, 그대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아뢰라. 그 목적하는 바는 그대에게 긴요하고 심히 중대한 것인가! 분명히 그렇다. 그렇다면, 요동하지 말 것이다. 이는 그대의 믿음이 시험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면, 강하고 열렬한 노력을 기울일 만한 것이다. 그대는 약속을 가지고 있으므로 깨어 기도하라. 흔들리지 말라. 그러면 기도가 응답받게 될 것이다.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이 아닌가? 만일, 그것을 얻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지불하였다면, 그것을 얻은 후에 그대는 그것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요동한다면 주님께로부터 무엇을 얻을 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백한 말씀이 그대에게 주어졌다. 피곤해 하지 말고 약속을 굳게 믿으라는 경고가 여기 있다. 만일 그대가 간구한다면. 그분은 그대에게 후히 주실 것이요 꾸짖지 아니하실 것이다.(2증언, 131)
<3월 25일/월, 젖뗀 아이의 평안>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우리는 영적 사물에 있어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 가운데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방금 받아들인 자들처럼 우리 자신들을 표현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기도와 권고는 우리가 진리를 경험하는 가운데 전진한 만큼 지적으로 자라야 한다. …
… 마지막 큰 날이 열리고, 하늘이 우리에게 보증해 주신 도움을 이용했다면 우리가 무엇을 얻었을지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은혜 안에서 어떻게 성장했을지 보게 될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처럼 이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지 못하여 잃어버린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더 진지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소원하게 될 것이다. …
주께서는 그대들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과 딸, 하늘 왕의 자녀로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이해하기를 원하신다. (아들과 딸, 330)
◎ 씨가 발아하는 것은 영적 생활의 시작을 나타내고 곡식이 자라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대한 아름다운 표상이다. 천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 세계에서도 자라남이 없이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식물은 자라나지 않으면 죽는다. 식물이 자라는 소리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으나 끊임없이 계속하여 자라는 것처럼 그리스도인 생애의 발전도 그와 같다. 발전의 단계마다 우리의 생애가 완전하게 될 수 있다. 또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면 계속 발전이 있을 것이다. 성화는 일생을 통해 이루어야 할 사업이다. 우리에게 기회가 많을수록 우리의 경험은 넓어지고 우리의 지식도 증가한다. 우리는 책임을 질 만큼 강해지고 특권에 비례해서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식물은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마련하신 것들을 섭취함으로 자라난다. 식물은 그 뿌리를 땅속에 두고 위로는 햇빛과 이슬과 비를 흡수하며 공기 속에서는 생명소를 흡수한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능력과 협력함으로 자라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식하고 좀 더 넓은 경험을 얻도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기회를 잘 이용하여야 한다. 식물이 뿌리를 땅속에 내리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실물, 65-67)
◎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그들의 연약함과 능력 없음을 보여 주시며, 그분을 유일한 그들의 도움과 방패로 의지하도록 가르치심으로 철저하게 시험하는 시련을 통해 그들을 그분께로 가까이 이끄신다. 그렇게 될 때 그분의 목적은 이루어진다. 그들은 모든 비상사태에 사용되고, 신뢰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를 채울 수 있게 되며, 그 일을 위하여 그들에게 능력이 주어진 중대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준비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시련을 당하게 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좌우에서 시험하여 교육과 훈련과 연단을 받게 하신다. 우리의 구속주, 인류의 대표자요 머리이신 예수께서는 이 시험하는 과정을 견디셨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견디도록 요구된 시련보다 더 큰 시련을 당하셨다. …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승리자의 공로를 의지함으로 그분의 이름으로 승리자가 될 수 있다.(4증언, 86)
<3월 26일/화, 단을 가지고 돌아오라>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만일 택하심을 입은 주님의 기별자들이 모든 장애물이 그들의 길에서 제거되기를 기다린다면 그들 중 다수는 결코 흩어진 양을 찾으러 나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도록 사탄은 많은 이유를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사업으로 그들을 부르신 분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분은 그들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그들 앞에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위대한 교사요 모본이신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 그분의 생애는 수고와 슬픔과 고통의 생애였다. 그리고 끝내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영혼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간청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가운데서 다스리기를 바라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그분의 고난에 동참할 각오를 하여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초기, 63-64)
◎ 우리[제임스와 엘렌 화잇]는 많은 경우 우리의 기대에 실망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노력과 함께 일하시고 영혼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을 볼 때, 이 사업과 관련하여 우리가 겪는 피곤과 실망과 시련을 잊고 그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우리는 낙담하고 거의 절망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는 매우 소중한 신간을 보냈다. 우리는 어두운 영혼의 방에 빛이 비추는 것처럼 그들과 함께 기뻐했다. 주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격려해 주셨고 우리의 위대한 사역을 위해 힘을 주셨다. 우리는 이 모임의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가 풍성하게 맺어질 것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오류의 어둠 속에 있는 영혼들을 진리를 아는 지식으로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자. 하나님 말씀의 모든 페이지에 밝고 귀한 빛이 비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조언자이다.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배우려는 진심 어린 열망으로 그 성경을 공부할 때, 천사들이 우리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신성한 것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마음을 감동시키고 상상력을 강화시켜 준다. (This Day With God, 174).
◎ 우리가 신뢰해야만 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손안에 이 세상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는 우리 편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 온 하늘은 우리의 협력을 위하여 기다리고 사모하고 있다. 주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우리가 두려워할 것인가? 주께서 전능하신데 왜 우리가 떨어야 하는가? 과거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셨으니 만일 우리가 그분의 힘으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분은 우리의 조력자가 되실 것이다. …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자. 자신을 비우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자. 예수님을 그 전체가 사랑스러우시고 만 사람에 뛰어나신 분으로 세상에 나타나게 하자. (그분을 알기 위하여, 342)
<3월 27일/수, 하나님의 안식일의 쉼을 기다림>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안식일은 창조력의 기념일이므로, 그날은 다른 어떤 날보다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들을 통하여 그분을 아는 날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안식일에 대한 생각과 천연계의 아름다운 사물들이 연결되어야 한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들을 건너고 호숫가를 따라서, 혹은 작은 나무숲을 통하여 예배당으로 가신 것처럼 그렇게 예배하러 가는 가족은 행복할 것이다. 만물이라는 펼쳐진 책으로부터 실례를 끌어내어 성경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푸른 나무 아래 모여 하늘 아버지를 배우고 찬미하는 부모는 행복할 것이다.(교육, 251)
◎ 하늘의 사업은 결코 중단되지 않으므로 사람들도 선한 일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은 쓸모없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되도록 의도되지 않았다. 율법은 주의 안식일에 세속적인 일을 금지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은 중지해야 한다. 세속적인 향락이나 이익을 위한 노동은 그날에는 적법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창조하시는 역사를 쉬고 안식일에 안식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사람도 그의 일상의 일에서 떠나 이 거룩한 시간을 건전한 안식과 예배와 거룩한 행위에 바쳐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신 사업은 율법에 완전히 일치했다. 그 행위는 안식일을 존귀하게 했다.(소망, 207)
◎ 성경에서 설명한 성화는 전인, 곧 영과 혼과 몸을 다 포함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라고 편지하였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희생 제물은 모두 엄밀히 검사되었다. 만일 제물로 드려진 짐승에게서 어떤 결점이 발견되면 그것은 거절당하였다. 왜냐하면 제물은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능력을 최선껏 양호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마음과 몸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사람을 그의 창조주를 위한 봉사에 부적당하게 만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아닌 것을 드릴 때 기뻐하실까? 그리스도께서는 “네 마음을 …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로 하나님께 최선의 봉사를 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능력을 촉진시켜 줄 율법과 조화되고자 그들의 모든 역량을 다하여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쟁투, 473)
<3월 28일/목, 아침에 기쁨이 오리로다> 예언의 신 보충자료
◎ 하늘의 빛이 인간 대리자 위에 비출 때, 그의 얼굴은 속에 있는 주님의 기쁨을 나타낼 것이다.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의심에 가득 찬 마음이 되게 하는 것은 영혼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슬픈 표정을 짓게 하고, 인생길을 한숨 섞인 순례자의 길이 되게 하는 것은 다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기쁨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성경이 말하는 말씀의 핵심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빛을 가졌기 때문이다. 빛은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오고, 그 기쁨은 생활과 품성에 나타난다.(화잇주석, 요 15:11)
◎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지배하시는 섭리에 대한 신앙은 걱정과 근심의 짐을 덜어 준다. 이것은 최고의 행운에서나 최악의 불운에서도 마음을 기쁨과 만족으로 충만하게 한다. 신앙생활은 직접 건강을 증진시키고 생명을 연장하고 그 모든 축복의 기쁨을 증대시킨다. 이것은 영혼들에게 무진장한 행복의 샘을 열어준다. 그리스도를 택하지 않은 모든 사람이 저희 스스로가 추구하고 있는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그리스도께서 주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 범죄의 길은 비애와 멸망으로 인도하나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잠 3:17).(부조, 600)
◎ 다시 한번 구주의 온유하신 얼굴을 대할 때 그 제자들의 마음에는 과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던가!(눅 24:32 참조) …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눈으로 보았으므로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제자들이 그들의 구주를 만나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 그들을 위하여 상처를 입으신 그분의 머리와 손과 발들을 보았을 때, 승천하시기 전에 그분께서 그들을 베다니로 데리고 가서 축복의 손을 펴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막 16:15; 마 28:20)라고 말씀하셨다. … 그들은 비록 그들의 갈 길이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과 같이 희생과 순교의 길인 줄 알았지만, 그들이 제자가 되던 당시에 희망했던 그대로 세상에 속한 영광을 버리고 주님 은혜의 복음을 위한 봉사의 대가로 그분께서 오실 때 받을 의의 면류관을 받고자 하지 않았던가? …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주님께서는 저들로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분의 기쁨, 곧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는 기쁨,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 말할 수 없는 기쁨을 함께 누리게 하신다.(쟁투, 350~351)
<3월 2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시련의 단련”(치료, 470~473)
그런 생애를 살고, 그러한 감화를 끼치는 데는 발걸음마다 노력과 자아희생과 수양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너무도 쉽게 낙심해 버린다. 생애를 하나님의 사업에 성실하게 바친 많은 사람이 전에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장애물을 만나 시련과 난관에 둘러싸이게 되면 놀라고 실망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소유하기 위하여 또한 주님의 사업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성에 있는 모든 악을 다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또 그런 환경의 실재를 염두에 두지 않는 실수를 하게 된다. 그들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면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의심한다.
이와 같은 일들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련과 장애는 주님께서 택하신 훈련의 방법이며 또한 그분께서 정하신 성공의 조건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성품을 그들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신다.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올바르게 지도하기만 하면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감수성이 있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섭리로 그와 같은 사람들을 각기 다른 위치와 여러 가지 환경에 처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지금까지 알지 못한 채 감추어져 있는 결점들을 그들의 성품에서 발견하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이와 같은 결점들을 교정하고 그분의 사업에 적합하게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때때로 그분께서는 고난의 불이 그들을 엄습하도록 허락하심으로써 정결하게 하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우리가 시련을 견디도록 부름을 받은 사실은 주 예수께서 계발시키기를 바라시는 귀중한 무엇을 우리 속에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 속에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시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연단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가치 없는 돌을 그분의 용광로 속에 던져 넣지 않으신다. 그분께서 연단하시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쇠와 강철을 불 속에 던져 넣는 것은 그것들이 어떤 종류의 금속인지 알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택한 사람들이 어떤 기질의 사람들이며 그들이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적합한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인 지의 여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그들이 고난의 풀무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신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자기의 뜻대로 형체를 만든다. 그는 흙을 이기고 또 빚는다. 그는 그것을 떼어서 찧고 또 눌러서 뭉친다. 물로 축이고 다시 말린다. 얼마 동안 손을 대지 않고 그것을 놓아둔다. 그것이 완전히 말랑말랑해지면 그것으로 그릇을 만드는 일을 계속한다. 그것으로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녹로에서 깎고 다듬는다. 그는 그것을 햇빛에 말리고 솥에서 굽는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용하기에 알맞은 그릇이 된다. 이같이 일꾼의 지도자 되시는 위대하신 예수께서는 우리를 빚어 만들기를 원하신다.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분의 손에 놓여 있어야 한다. 우리는 토기장이의 일을 하고자 노력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침으로 일꾼의 지도자 되시는 예수님에 의하여 꼴 지어지는 것이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7).
밝은 대낮에 그리고 다른 음성으로 된 노래들이 들려오는 동안에는 새장 안에 있는 새가 그의 주인이 가르쳐 주고자 애쓰고 있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 새는 노래의 한 절 한 절씩을 여기저기에서 떼어내어 짤막짤막하게 부르는 흉내만을 낼지언정 결코 단독으로 완전한 곡조를 다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인이 새장을 덮고 그 새가 하나의 노래만을 들을 수 있는 곳에 두면 그는 노래를 부르게 된다. 어둠 속에서 그는 되풀이해서 그 노래를 부르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그 노래를 배워 완전한 곡으로 부르게 된다. 그런 다음에 그 새를 밝은 곳에 내어 놓으면 그는 거기에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그분의 백성을 취급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노래가 있다. 우리가 고통의 그늘에서 그것을 배우게 되면, 우리는 그 후에 언제나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많은 사람은 그들의 필생 사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그럴 것이다. 그들은 더 높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데도 평범한 일로 그들의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흔히 그들의 노력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결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장래는 불확실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택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기억하자. 좋아하는 일이든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든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1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니느웨로 가서 기별을 전하기를 바라시는데, 우리가 욥바로 가거나 가버나움으로 간다면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길을 인도하여 그 장소로 보내는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곳에 우리가 주어야 할 도움이 필요한 어떤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빌립을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베드로를 로마의 백부장에게,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를 수리아의 장군 나아만에게 보내어 돕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남녀들과 젊은이들을 그분의 대표자로 하나님의 도움과 지도를 구하는 사람들에게로 보내신다.
◎ “개별적인 봉사” (복음, 185~187).
목사들은 설교를 너무 많이 하고, 진실로 각 개인의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하여 돌보는 일은 너무 적게 한다. 그러므로, 각 영혼을 위한 개인적인 활동이 더욱 요구된다. 목사는 그리스도와 같은 동정심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사람들과 친밀하여 그들로 영생에 관한 큰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깨우쳐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마치 도로처럼 단단하여서 그들에게 구주를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 무익한 것 같이 보일지 모르나, 논리나 토론으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거나 확신시키지 못할지라도 개인 전도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돌과 같이 단단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진리의 뿌리가 박히게 한다.
목회는 설교하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하며 열심 있는 개인적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상의 교회는 허물이 많은 남녀로 구성되었으므로, 저희가 현세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활동을 하고 또 내세에 영광과 영생의 면류관을 받도록 그들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근면한 활동이 필요하다. 목사 곧 신실한 목자가 필요하다.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아첨하거나 학대하지 않고, 그들에게 생명의 떡을 먹이며, 매일 생애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며, 항상 이기심 없는 깊은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맡은 사람들을 위하여 활동하는 자여야 한다.
목자장 아래서 일하는 목자들은 때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란과 불화, 시기, 투기 같은 것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런 때에는 재치 있게 활동하며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목사는 강단에서의 설교와 개인 활동으로 신실하게 경고하며, 죄를 책망하며, 잘못된 것을 경고하여야 한다. 고집이 센 사람은 그 기별을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종을 오해하고 비평하고 공격할 것이다. 그런 때 목사로서 기억하여야 할 교훈은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라는 것이다.
복음 교역자의 사명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엡 3:9)는 것이다. 만일, 이 거룩한 직분에 참예한 자가 헌신과 극기를 가장 적게 하는 일을 택하여, 다만 강단 위에서 설교만 하고 개인 전도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그 사람의 활동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바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위해 죽기까지 한 영혼들이 개인 전도의 결핍으로 인하여 멸망하여 간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도 목자들이 하여야 할 개인 전도를 기뻐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는 전혀 하나님의 부르심을 오해한 자이다.
목회자는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전진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기회가 좋다”함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와 시간의 특권과 사람들이 종교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경우에 좋은 기회를 잃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는 것을 말한다. 또 “기회가 나쁘다”함은 집안에서나 들에서나 혹은 길가에서나 시장에서 그 기회를 따라 사람의 마음을 성경의 위대한 문제에 향하게 하며 사랑과 열성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그들에게 이야기하여 알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때를 얻지 못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회를 너무나 많이 거저 보낸다. 그러나 양심을 향하여 발한 지혜로운 충고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성경에는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전 11:6)한다고 하였다. 진리의 씨를 뿌리는 자는 때로는 번민하며, 때로는 그 수고가 쓸데없는 것 같이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신실하게 일하기만 하면, 반드시 그 일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6)라고 하셨다. (복음, 185-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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