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 청구국의 원형은 래주만의 형성으로 사라졌다고 추정됩니다.
따라서 지도에 보이는 청주는 청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지도에 보이는 역하(逆河)와 (구하九河)는 주시대(周時代)에 바다로 윤몰되었습니다.
<청구(靑邱)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
1) 중국(中國)에서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
2) 남해(南海) 속에 있는 신선이 살고 있다는 곳
3) 동방에 있다는 땅의 이름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靑丘(靑邱)는 원래 우리나라의 핵심 지명을 가리켰으며 아울러 天王이 머무는
지역을 말하였다가 후일에 제후국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서 <...이에 정예를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은 예탁芮涿의 땅을 지키고 동쪽은
회대淮岱의
땅을 취하여 성읍을 삼게 하고 헌원軒轅의 동쪽 침략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라는 구절로 보아
치우蚩尤는 전역의 승세를 굳히는 과정에서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음을 능히 짐작케 한다.
그래서 따로 [청구]란 이름이 그곳에 불려 진 듯하다.
왜냐하면 치우천왕 이후 단군조선 시대에
이 지역은 <엄려홀>로 바뀌면서 람국(藍國)이란 이름으로 나타
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른 책에 <치우는 고천자이다-사마천 사기 曰 ....蚩尤 古天子之號也> <삼묘족三苗族의 나라
를 구려九黎라 하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왕동령王桐齡 중국민족사>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가 우리
민족의 天王임에 틀림이 없으니 <자오지천왕>의
기록과 맞아 떨어지며 또한 천자가 움직여 정도안거(定
都安居)한 지역이이야말로 우리 강역의 중핵지대로알려져 별칭(別稱)으로 일컬은 청구(靑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미호九尾狐를 찬하는 시문>인데 [산해경찬]에
청구에 사는 기이한 짐승은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라네 靑邱奇獸 九尾之狐
도가 존재하는 세상에 상서롭게 나타나서 書를 머금고 이치를 세상에
드러낸다네 有道翔見 出則銜書
널리 법도가 경사롭게 미치게 하고자 신령스러운 증표를 드러낸다네 作瑞周文
以標靈符
이 글은 순조(純祖) 때 옥유당(玉蕤堂) 한치윤(韓致奫 1765~1814)과 그의 조카인 한진서(韓鎭書)가 함께
편찬한
<해동역사>에서 인용하고 있는 산해경찬(山海經讃)에 기술된 구미호(九尾狐)에 대한 시이다.
구미호(九尾狐)의 원래 인식이
어떠했는지 잘 나타내주는 시로 해동역사 세기편 '동이東夷총기'에도 실려
있다.
진(晉)나라 때 곽박(郭璞)이 《산해경》의 원문에 찬(讃)을
붙인 2권으로 된 산해경찬(山海經讃)에는
이와 같은 시가 실려 있어 이를 한치윤선생은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書>란 고대에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글을 통틀어서 ‘서書’
라고 하였으며 후대에 와서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은 표(表)나 주(奏)라고 하고, 친구 사이에 주고
받는 것을 書라 하였다.
그 뒤로는 친구간이나 사제 간을 비롯하여
인척간, 그 밖의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書라 하였다.
바로 이 글에서 보이다시피 <靑邱>는 분명하게 우리민족의
강역을 이르는 말로 나타나 있다.
시대에 따라 지칭하는 강역의 범위는 변화해도 변함없이 사용되어 초기에는 강역의 일부를 지칭하여
<청구국>만을 가리켰지만 후대에는 아방의 모든 강역을 이르는 말로 확장되었다.〈
산해경 山海經〉권9 해외동경조(海外東經條)에 처음
나타나는 옛 지명으로 동방(東方)을 뜻하는 말이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태조 왕건의 서신에서는 후백제와 고려와 신라를 아우르는 아방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되어 사용되었음이 발견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禹) 임금 때 백익(伯益)의 저술이라
전해지는 산해경(山海經)기록에서 구
미호(九尾狐)는 청구국(青丘國)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산해경 해외동경에
<青丘國在其北 其狐四足九尾 一曰在朝陽之北 청구국이 그 나라(군자국君子國) 북쪽
에 있는데 그 나라의 여우는 4개의 발과 9개의 꼬리가
있다.
혹은 이르기를 조양의 북쪽에 있다고도 한다. <
郭璞云 其人食五穀 衣絲帛 곽박이 이르기를 “그 곳 사람들은 오곡을 먹고
옷은 비단옷을 입는다” 하였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산해경의 찬자나 또 그 사람이 누구였던지
간에 그 당시의 [청구]는 분명
히 앞선 기록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의 발흥지역인 대인국大人國의 북쪽-사비지시奢比之尸(尸는
夷의 古字라고
이미 이야기했다)의 북쪽-군자국(화하인華夏人들이 접하여 알려진 나라이므로 발해만 남
쪽에 위치한 곳으로 추정된다)의 북쪽인-홍홍虹虹의
북쪽-조양지곡朝陽之谷 북쪽에 자리한 나라로 명확
하게 나오는 것이다.
또한 대황동경(大荒東經)에도 우리 민족의
지역으로 비정되는 대언산大言山*대인국*이령시*중용국中容國
*군자국과 함께 언급된 백민국白民國의 근처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해외서경을 보면
백민의 북쪽
에 숙신지국肅愼之國이 있는 걸로 기록되어 더욱 확실하다.
이외 남산경에 청구지산靑邱之山이 나오는데 이는 후일 치우가 이거한
청구지역과 관련되는 걸로 추정하여
여기에서는 일단 논외로 친다.
군자국은 산동(山東)의 낭야(瑯邪)로부터 3만 리(이 수치는 그만큼 멀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떨어져
있는 곳이라고 하였으니(君子之國 多木菫之華 人民食之 去瑯邪三萬里 -예문유취藝文類聚 권 89)
그 위치를 비정할 수
있겠다.
아울러 언급된 이 나라들이 우리 민족의 강역인 것은 다음과 같은 정황으로 판단이 기능하다.
-
군자국에 훈화薰花(근菫 또는 목근木菫이나 순蕣으로 상통한다-학의행)가 많이 생육하는 점
-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며(衣冠帶劍) 호랑이를 부린다(이는 호족을 굴복시킨 설화나 그들이
호랑이 토템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뜻과 동일 의미를 추정케 해준다)
- 靑丘國에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이는 9夷나 9黎를 상징하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가 산다고
한 점(곽박은 이를
세상이 태평하면 출현하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보았다)
- 허신의 설문해자에 군자국의 호양부쟁(好讓不爭)과 비슷한 언급인
<동이는 大를 따랐다.
大人이다. 이의 풍속이 어질고 어진 자는 오래 살기 때문에 군자국이나 불사국이 있다>는
구절을 생각해
보라.
- 동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으니 동방의 목덕(木德)이 어진 고로 군자의 나라라 했으며 그 나라
사람들은
관면(冠冕)을 쓰고 신대(紳帶)를 두르고 칼을 차며 표(豹)와 호(虎)를 마음대로 부린다
<회남자>
※ 그래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영조 때 학자였던 김천택(金天澤)도 청구영언(靑丘永言)이라는 책에서
우리나라를 靑丘라는 일반범칭으로 인식하였는데 김정호의
청구도(靑邱圖)에서 보는 것처럼 靑邱라는
말도 같이 범용하였던 것 같다.
<삼성기전 상>을 보면 <뒤에 환웅씨桓雄氏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 에 내려왔다.
천평天坪에 내려와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파고 청구靑邱에 정지를 나누었다> 라고 하여 사람들이 모여
나라를 이룬 곳을 분명히 청구靑邱로
정했다함으로서 나라의 핵심근거지를 그렇게 칭했음을 알게 해준다.
이어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이 있어 청구靑邱를 개척하여
넓혔으며...>라는 기록이 나와 나라의 중심
을 이룬 강역의 別稱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청구(靑丘)는 원래 桓雄시대에
大人國의 중심영역이었는데 대능하 상류인 안덕향(安德鄕)
의 백산白山(백산栢山으로 당나라 때 靑山 의 서쪽 기슭)에서 난하까지의 지역이며 후일에
다시 나타나는
[청구]는 치우천왕의 전역 시에 잠시 옮겨 안거처(安居處)로 정한 지역으로 보인다.
이곳은 후세에 <엄려홀奄廬忽>로
불리면서 商나라 武丁의 전역에도 보이던 <람이藍夷>의 근거지가 되었
고 결국 <藍國>이란 명칭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과정들을 [환단고기]는 다른 어느 사서보다 정확하고 세밀하게 적시해주고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만주원류고〉〈동표지지〉
《요전》에는 다시 우서(禹書)와 요전(堯典)으로 작은 항목으로 나뉘었다. 그 요전(堯典)에 "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이란 말이
나온다. 그에 대한 주석이 다음과 같이 작은 글씨로 써 있다.
택(宅)은 산다는 뜻이다. 동표지지(東表之地)를
우이(嵎夷)라고 한다. 양(暘)은 밝다는 뜻이다. 해가 골짜기에서 솟아 오르면서 온 세상이 밝아지기 때문에 양곡(暘谷)이라 하는 것이다.
양곡(暘谷) · 우이(嵎夷)는 같은 말이다. 희중(羲仲)은 동방을 다스리는 관직에 있었다. ○ 우(嵎)의 음은 우(隅)로서, 마융(馬融)은
말하기를 "우(嵎)는 바다 모퉁이다(海嵎)다"라고 하였다. 이(夷)는 내이(萊夷)이다. 《상서(尙書) · 고령요(考靈耀)》 및
《사기(史記)》에서는 우이(嵎夷)를 우이(禺夷)로 썼다. 양(暘)의 음은 양(陽)이다. 곡(谷)은 공목반(工木反)이요, 또 음은 욕(欲)인데
아래와 같다. 마융이 말하기를 "양곡(暘谷)은 해우이(海嵎夷)의 지명이다"라고 했다. "일출우곡(日出于谷)은 원래 어떤 곳에서는
"日出于暘谷"이라고 썼는데 "暘"자가 잘못해서 더 들어간 글자 이다.
필자가 참고한 《금고문상서전역》 역주자인
전종무(錢綜武) 선생에 의하면 공영달 등이 칙명을 받고 편찬한 《상서정의(尙書正義)》는 《공전고문상서(孔傳古文尙書)》를 저본으로 하되,
《공전(孔傳)》을 정주(正注)로 하고, 위 · 진 남북조 이래의 《상서》에 관한 설(說)을 널리 채집하여 소(疎)를 했기 때문에 당대 이전의
《상서》 연구의 성과가 총집된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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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표란 말은 원래 《공전(孔傳)》에 들어 있던 "東表之地稱嵎夷" 라는 말에 대해 공영달이 소하기를,
"靑州吊, 界外之畔爲表, 故云東表之地"라
하였다 한다.
이를 풀이한다면, 청주 즉 산동반도는 동쪽에 있었는데 그 경내 밖의 가장자리를 표(表)라고 하며,
그래서 동표의 땅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출처] 동표지지(東表之地)인 양곡(暘谷)이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앞글의 머리에 올려진 글입니다. 옛날 평양부를 설명하는 대목에 쓰여진 글이라고 하는데 이 설명이 과연
한반도의 평양을 설명하는 글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떤 책에서 조선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51권 평양부(平壤府)
군명(郡名) 조에 "居東表日出之地,
故曰朝鮮"란 구절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부분을 풀이하자면 동쪽 해뜨는 땅에 있으므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다는
말이다.
조선이란 말의 어원이 어디에 있느냐는 학설이 구구하다.
이에 관해서는 북한 리지린이란 학자가 쓴 《고조선연구》에 다섯
가지의 예를 들고 있다.(리지린, 《고
조선연구》, 32~33쪽) 그 가운데는 《여지승람》에 들어 있는 "東表日出之地, 故曰朝鮮"이란 말도 들어
있다.
이 책의 서두의 건치연혁 조에는 옛날 단군임금께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열으시면서 도읍지를 평양으로
하셨다는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 글에서는 동표(東表)라는 말이 어디서 나온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인지를 알아보고, 그와 동시에
해돋는 곳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양곡(敭谷)이란 말도 어디서 나왔으며 그곳은 어느 곳인가도 알아
보고자 한다.
동표(東表)와
양곡(暘谷)의 출전 그리고 그 의미
(1) 동표(東表)
가) 《상서정의》
중국의 도서 분류 방법은 경 · 사 · 자 · 집(經史子集) 4부로 나누는데 경부(經部)에서 으뜸을 차지하는
것이 중국의 열세 가지 경서가 소위
《십삼경(十三經)》이다.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역경(易經)》·《시경(詩經)》·《서경(書經)》·《
주례(周禮)》·《의례(儀禮)》·
《예기(禮記)》·《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논어(論語)》·《효경(孝經)》·《이아(爾雅)》·《맹자(孟子)》를
총칭한다.
이 《십삼경》에 대해 주석을 하고(傳), 다시 그 주석에 주석을 한 것(疎)이 저 유명한 《십삼경주소(十
三經注疎)》이다.
그 가운데
《상서정의(尙書正義)》란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한나라 때의 공안국(孔安國)이 전(傳)을 하고
당나라 때 공영달(孔潁達)이 소(疎)를 한 것이다.
[출처] 동표지지(東表之地)인 양곡(暘谷)이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만주원류고를 사랑하는 모임)
|작성자 봉오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