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본질#하나님과관계
플라톤(Plato)이 예레미야(Jeremiah)를 만났을 때
이 이야기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이스라엘 선지자 예레미야의 가상 만남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러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오며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티샤 베아브 성전 파괴로 유대인들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제 1성전의 파괴를 목격한 선지자자 예레미야는 폐허 위에 쓰러져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플라톤은 그 광경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물었습니다. "유대인 중 가장 지혜로운 자네가 돌과 나무에 대해 울고 있군요. 게다가 과거를 두고 왜 슬퍼합니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새롭게 만듭니다."
예레미야는 수수께끼처럼 대답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시라면 삶과 지혜에 대해 많은 질문을 가지고 계시겠군요." 플라톤은 자신이 철학적 질문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그럼 제게 질문을 하세요. 최선을 다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플라톤이 물었고, 예레미야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플라톤은 예레미야의 지혜의 깊이에 경탄했습니다. 마침내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의 생각 속에 깊이 새겨질 말을 꺼냈습니다. "내 모든 지혜는 이 돌과 나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과거를 두고 울부짖는지에 대해서는, 이 질문이 매우 심오하여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유대인만이 과거를 두고 우는 것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대답의 의미: 두 가지 가능성
예레미야의 말, "내 모든 지혜는 이 돌과 나무에서 나왔다"는 말은 깊이 있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우리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 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각 관점은 지혜의 본질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드러냅니다.
첫 번째 접근법은 성전 자체에 대한 철학적, 지적 이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랍비 모쉐 이셀레스(Moshe Isserles)의 저서 『토라트 하올라』(Torat HaOlah )는 성전과 그 복잡한 의식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하는 유대교 사상의 중요한 저작입니다. 랍비 이셀레스는 성전이 단순한 희생과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탐구합니다. 성전은 사실 창조의 축소판으로,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철학적, 과학적 진실을 반영합니다. 랍비 이셀레스는 성전의 규모,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행해지는 예배까지도 우주의 근본 법칙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레미야가 플라톤에게 한 말은 아마도 이를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이 유대교 예배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를 만나고 성찰하는 장소임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세계관을 대표하는 플라톤은 막대기와 돌의 유용성, 심지어 훌륭한 건축물의 미적 아름다움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성전 자체가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혹은 예레미야의 말을 좀 더 개인적인 무언가의 반영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플라톤에게 자신의 위대한 지혜가 신성과 성전의 영적인 본질에 대한 깊은 연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돌과 나무"는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때 성전을 가득 채웠던 거룩한 존재와 유대인들이 그 신성한 공간에서 누렸던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상징합니다.
예레미야가 플라톤에게 준 교훈은 진정한 지혜는 단순히 지적인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근원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지적으로 질문하거나 답을 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장 깊은 진리는 영적인 진실을 추구할 때 드러납니다.
예레미야의 눈물에 담긴 잊혀지지 않는 지혜
하지만 아마도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부분은 예레미야가 플라톤에게 한 마지막 말에 있을 것입니다. "오직 유대인만이 과거에 대한 눈물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성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재건에 집중하라고, 과거를 뒤로하고 떠나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애도에는, 상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에는, 신성하고도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는 성전의 파괴뿐 아니라 우리의 영적 중심을 잃은 것을 애도하는 날인, 티샤 베아브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특히 가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예레미야는 플라톤에게 과거를 애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지적인 이해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들이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깊고 영혼 깊은 연결이 필요합니다. 유대인의 영혼은 이러한 생각에 독특하게 맞춰져 있습니다. 유대인은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애도하며, 그 애도를 통해 역사의 긴 여정에 대한 더욱 풍부하고 경험적인 이해를 얻습니다. 톨스토이가 썼듯이, "유대인은 영원의 상징입니다.“
By Rabbi Dovid Campbell
※ 플라톤(기원전 428년/기원전 427년 또는 기원전 424년/기원전 423년 - 기원전 348년/기원전 347년 사망):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객관적 관념론(objective idealism)의 창시자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며, 대학의 원형인 고등 교육 기관 ‘아카데메이아’의 교육자. 이데아론이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학설을 제창.
※ 예레미아(기원전 650년경 - 기원전 570년경 사망): 예루샬라임 근교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남. 이스라엘의 대예언자 가운데 한 명. 눈물의 선지자로도 불림.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그의 필경사이자 제자인 바룩의 도움과 편집 아래, 예레미야서와 열왕기, 애가의 저자임.
※ 톨스토이(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년 9월 9일 출생 ~ 1910년 11월 20일 사망):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힘. 《전쟁과 평화》(1869년), 《안나 카레니나》(1877년)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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