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군왕릉 주차장 앞.....눈이 제법 쌓여있었다 (09:50)
*심스테파노 길
조선말 병인교난(1866년) 때 심 스테파노라는 인물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당시로는 아주 드물게 서울에서 직접 내려온 포도청 포졸들에게 잡혀가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이 시기의 천주교 성지가 있다.
그러나 강원도 원주와 횡성 동쪽에는 없었던 것은 태백산맥을 넘어 천주교의 전파가 더뎠다는 뜻일 텐데,
바우 길을 개척하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가 청송 심씨이며, 삼척부사를 지낸 정대무(정약용의 손자)의 사위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다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곳에서 한 천주학자가 자신의 기둥 같은 믿음 아래 치명(순교)했다는 것이다.
강릉 경포대에서 그곳에 이르는 길을 우리는 '심 스테파노의 길'로 이름 지었다. /이순원 소설가
강원도 원주와 횡성 동쪽엔 구한말 병인박해 때의 천주교 성지가 없었다.
그러다 이 길을 탐사하며 이 길이 지나는 골아우 마을에 심스테파노라는 천주교 신자가
지방관아의 포졸이 아니라 서울에서 출동한 포도청 포졸에게 잡혀가 순교한 사실을 찾아냈다.
바우길 탐사대는 이 마을을 심스테파노마을이라 부르고, 이 길을 심스테파노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순교자를 기리며 순례자의 마음으로 걷는 길이다. (출처 : 강릉 바우길)
아이젠을 반대로 예쁘게(?) 채워 주고 있는 친절한 하곤씨...(결국엔 다시 채워 줘야 했다..ㅎ)
감자아빠님의 '이 정도 눈과 추위는 껌이다'...하는 결연에 찬 저 표정을 모르고 앞에 서 있는 두 여인네들...
눈발이 흩 날리기 시작한다.
열심히 달려 오고 있는 사라님....(동생 들레님은 안 보이네...)
추위와 눈보라에 나약한(?) 바우님들을 위해 군가를 씩씩하게 불러 군기를 팍~팍 넣어 주고 있는 국장님...
10구간 구간지기 친절한 낭만주객님과 전 세계 4대 미녀 이상한 하곤씨......
약간의 몸풀기 후.... 출발을 한다....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조선 선조 때 김주원의 후손인 김첨경(金添慶)은 강릉부사 재임 시,
주원의 현몽(現夢)으로 선대(先代)부터 실전(失傳)된 시조묘소를 찾기로 결심하였다.
그 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지금의 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때 능묘(陵墓) 앞과 사면은 돌로 만든 층계가 있었고,
그것의 네 모퉁이에는 1척 남짓한 돌 동자상(童子像)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 무덤 속에서 유해를 담은 백사(白沙) 항아리가 나왔는데,
그 뚜껑에는 북두칠성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김주원은 신라태종무열왕의 5대손으로 혜공왕 13년(777)에 이찬(伊飡)으로 시중(侍中)이 된 인물이었다.
선덕왕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당시 왕의 선출이나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던 화백회의에서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이때 상대등(上大等)이었던 김경신(金敬信: 원성왕)이 화백회의의 의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비상수단으로써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먼저 왕실에 들어가 즉위식을 올려 왕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경신이 알천신(閼川神)의 도움으로 즉위하게 되었다고 한 것과,
하늘의 뜻으로 비를 내려 재선출한 결과 왕이 되었다고 한 표현은
김경신의 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꾸며진 말로 이해된다.
한편, 김경신의 전횡에 위협을 느낀 김주원은 강릉으로 퇴거하였다.
그는 강릉으로 낙향한 이듬해에 원성왕에 의해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해졌다.
그리고 명주 관하의 3개 군과 1개 읍을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김주원이 받은 식읍은 그의 후손들이 강릉 지역에서 독자적인 지방세력으로 성장하는 데 경제적 기반이 되어 주었다.
강릉 지방에서 김주원 직계손들의 반독립적인 세력은 신라 말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신라 하대에는 오늘날 영동 지역에 속하는 어떤 세력도 이들과 연고 없이는 존립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세가 강성하였다.
1942년 후손들이 기적비(紀蹟碑)를 세웠다.
또한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찬한 신도비(神道碑)가 금산리 능소 앞에 세워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눈이 제법 쌓여 있어 제대로 된 겨울 하이킹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그네님은 서울로 가시고 외로이 홀로 걷는 허브님...
(역시 등산복은 색상이 화려해야 눈에 잘 들어 온다..참고 할 만한 사항이다)
앞 뒤로 찍다 보니 선두에서 자주 벗어나게 된다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을....
눈을 밟으며 걸을 수 있어 썩 괜찮은 하이킹이었다.
감자아빠님...
수정님
눈 길의 계단은 항상 위험하고 조심스러웠다.
대관령 고속도로
터널로 들어서면서 크게 소리들 질러 본다.....악~악...
이곳은 쌓여 있는 눈이 거의 빙판 수준이었다.
분지목 소나무
구간지기로부터 분지목에 관 한 설명을 들으면서..
뿌리는 하나인데 가지가 2개 붙어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솔바우 전망대 도착
칭런아자씨
선화 누님
스카이블루..(누님? 동생?...우린 이렇게 암암리( 暗暗裡)에 나이를 정리했다....ㅎ)
가축(?)적인 분위기로 한 컷....
전망대에서 눈 발이 제대로 흩날리기 시작한다
후미를 기다리면서....
솔바우 전망대에서....
행여나 바우님들이 미끄러워 질까....계단 눈 쓸기를 하고 있는 천사 같은 캡님...
스테파노 마의 구간을 조심스레 들 내려온다
쌓여 있는 눈 비탈 길이 제법 미끄러웠다
갑자기 눈발이 많이 흩 날린다.
한번 넘어진 신시아님.....지구 반대편에서 빗발치게 전화가 온다...자기네 나라가 너무 흔들린다고 아우성이다...
신시아님 표정과 허브님 표정이 대조적이다.
법륜사 앞 마당에서 맛있는 오뎅탕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던 천사 같은 여인네들....
(테라님,사랑초님, 쟈스민님,산두껍님.....추운 날씨에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
추워도 맛나게 식사들 한다.
행복한 노숙자들....
전설이 있을 것 만 같은 나무 밑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구간지기님과 바우님들...
심스테파노길이 지나가는 골아우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제일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골아우(鯨岩洞)는 마을에 고래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래바위가 줄어서 골바위로 되었다가 골바위가 변해 골아우로 되었다고 하는데.....
(분명 고래바위를 찍은 것 같았는데....이상하게 사진이 없다....이상하네....)
심스테파노 길과 이곳 천주교인들의 묘지는 왠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망자(亡者)의 영혼을 위로하며 그들의 곁을 조심스레 지나간다.
마치 바위 가운데를 깨트리고 솟아난 것 같은 나무....
위촌리 도배례 참고 사진
위촌리 마을은 조선 중기인 1577년에 주민 대동계를 조직한 이후
지금까지 촌장을 모시고, 합동 세배를 올리는 전통을 계승해 오고 있는 마을이다.
위촌리 마을의 이 같은 도배풍속은 80여 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토박이 마을주민들로 이뤄진 대동계가 그 유래이다.
마을의 가장 연장자인 대동계 계장이 촌장을 맡고 주민들은 세배를 하기 위해
서로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 없이 촌장집에 모여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마을 공동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던 것이다.
따라서 합동세배를 드리는 이날은 위촌리 마을의 신년 정기총회나 다름없다.
누굴 위해 남겨 둔 모과일까?.....남겨져 있는 모습이 묘하게 쓸쓸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10구간 종착지 송양 초등학교에 도착해서...... 오늘의 발걸음을 멈춘다.(오후 2:45)
첫댓글 눈 쓸고 계신 캡님의 모습에 미소와 함께 마음이 찡긋~ㅎ
바우님들 기다리며 참 많이 걱정했어요~
내리막길 어쩌나~
갑자기 내리는 눈도 걱정이었고~
그래두 점심 맞추어 눈이 그치니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열악한 날씨속에서 바우님들의 안전에 마음 보태주신거~
추억사진 남겨주신거
감사드립니다~^^
산에는 눈이 조금 있으리라....은근 기대했었는데....
간만에 눈 발 휘날리는 겨울을 느끼면서 눈 길을 걸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캡님은 천사요...
내리막 길에서 몇 명 바우님들이 걱정되어 조금 뛰어 다니기는 했습니다 만...
근데.내가 넘어 졌다는 거....ㅎ
올 만에 먹어 본 오뎅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아이구~~걷자님
언제 이리 사진을 많이 찍으셨나요 ^^
하얀 눈 속에서
아이처럼 즐거웠던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너무 애쓰셨고
너무 감사합니다~^^
역시 고수는 다르시네요~
다음길에서 또 뵐께요~걷자님 ^^
아이구~ 이건 사진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장거리 산행을 할 때는 기록을 남겨야 해서
출발 부터 끝 날 때 까지 거의 종군 기자 노릇을 하다 보니
200장 이상 찍을 때도 많았습니다...
빨간 쟈켓이 예쁘게 어울리는 허브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어제 모처럼 찬바람과 함께 쌓인 눈을 밟으며 10구간을 걸어보았네요. 솔바위에서 하산할 땐 엉금엉금..
게다가 출발할 때 나누어 준 손난로, 완주봉사회에서 준비한 어묵탕.. 걷자님의 푸짐한 라면, 막걸리..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요?
점심을 먹던 그곳에서 9년전 즉 2014.3.15(토) 중국 원어민샘이 중국 노래를 불렀지요. 그 모습을 당시 걷자님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겨놓으셨더군요.
그래서 갑자기 그 원어민샘들이 보고싶어서 메시지를 보냈더니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바우길의 추억에서 벗어나질 못한다고 하네요. 꿈속에서도 바우길이 나타난답니다.
그러면서 바우님들께 편지 한 통씩 써서 저에게 보내어 대신 이곳 카페에 올려달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중국 서안(西安)에서 만나뵙고 싶다고 하네요.
언제 날 잡아 중국 서안을 접수할까요? 아무튼 바우길은 이젠 국내용이 아닌 것 같아요.
당시 원어민샘 이름은 호우페이페이(侯佩佩), 가오지에(高洁)
9년전 그 모습 그 사진을 올립니다.
소중했던 기억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忘却)의 강으로 흘러 가나 봅니다.
샘 덕분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호우페이페이, 가오지에' 와의 즐거웠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고향으로 돌아 가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요...
갑자기 그들이 궁금하고 훅~ 보고 싶어집니다.
앞서서 미끄러질세라 길닦아주시고
로프잡아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힘들고 추웠던날이었지만 여러분들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던 하루였습니다 ~♡
제법 먼 길을 달려 오셔 바우길과 사랑에 푹 빠지신 사라님...
열정적으로 걸으시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몇 달은 겨울 하이킹 계절입니다
배낭 속에 아이젠과 스패츠는 항상 넣고 다니시길 권 해 봅니다.
(서울은 왜 이리 더 추운지 모르겠습니다...^^)
네네~
감사드립니다 ~^^
돌아온 종군 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