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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연구
1.야인 아모스
거금(距今) 2700년 전항(項),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760,70년 전, 서양에서는 그리스문화가 겨우 시작되고 라틴민족이 대로마 시의 초석을 놓던 때요, 동양에서는 춘추(春秋)의 난세가 비로소 시작되려 하던 때 그때에 이스라엘의 베델 장(塲)터에서는 행장 초조(草粗)한 일개 장부가 나타나 “이스라엘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고 예루살렘에서 음성을 발하심에 목자의 초장(草場)이 슬퍼하고 가멜산 꼭대기가 쇠잔(衰殘)하리라” 하며 벽력(霹靂)의 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아모스다.
기록한 바에 의하면 그는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요, 그 남방에 있는 유대 땅 드고아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서운 예언을 발하기 위하여 특히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온 사람이었다. 그러면 그 무서운 사람은 대체 어떠한 사람인가.
“드고아 목자 중에 있는 아모스”라고 씌어 있는 대로 그는 목자였다. 또 그 자신도 “나는 본래 선지가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오. 나는 본래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라” 라고 말한다. 즉 그는 지금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및 그 네 가지 죄로 내가 보응(報應)하기를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대언하고 있으나, 세상이 일반으로 공인하는 직업 선지자도 아니요 또 세습적(世襲的) 선지자의 가문에 난 것도 아니었다. 오직 양을 치는 자요, 그 한편으로 뽕나무 재배(栽培)를 하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전부(田父)요 야인이었다. 그러나 이 야인 위에 하나님의 명령이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대언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자기 양떼를 놓고 여호와의 말씀에 몰리어 이스라엘로 향하였다. 본래 위에 인용한 구절은 베델에서 아마시아와 변쟁(辯爭)할 때에 아모스가 대답한 말이다. 베델이라면 종교 도시였고 겸(兼)하여 상업도시였다고 한다. 아마시아는 거기에 제사장으로 있었다. 아모스가 베델에 가서 하나님의 말을 전하자, 아마시아는 예의 종교가 근성을 발휘(發揮)하여 누렬(陋劣)한 수단(왕권과 결탁하여 세력을 빌어가지고) 아모스를 경외(境外)에 축출(逐出)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왕에게 말하기를 “아모스의 말이 여로보암(곧 왕)이 검에 죽고 이스라엘이 반드시 사로잡혀 자기 땅에서 나가리라 한다”고 하였다. 아마 그는 아모스의 예언으로써 자기 교권의 침해한다고 반감을 산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모스에 대하여는 “선견자(先見者)야, 너는 도망하여 유대 땅에 이르러, 거기서 떡을 먹고 거기서 예언하려니와, 다시는 베델에서 예언하지 말라”하였다. 말하는 심산(心算)은 아모스를 예언하기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적 선지자라고 모멸(侮蔑)하는 것이었다. 거기 대하여 아모스의 대답은 벽력같았고 칼날 같았다.
나는 본래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다. 나는 본래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라. 내가 양을 먹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취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내 백성 이스라엘에 예언하라 하셨으니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네가 이르기를 예언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치지 말며 이삭의 집을 경계하지 말라 하니 이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 아내는 성 중에 창기가 될 것이요, 네 모든 자녀는 검에 망하고 네 땅은 줄어 나눌 것이요,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옮겨가리라.
아모스의 성소(聖召)는 고대 선지자 피소(被召)의 전형적 일례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 위에 독특한 지위를 가지는 그를 보아서 하나님이 자기의 거룩함과 자기 말씀의 순결과 자기 뜻의 진실함을 어떻게 하여서 보존하는가를 아는 동시에, 고대의 예언자의 생애가 어떠했던 것인가. 그들과 세상과의 관계가 어떠했던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연구가의 말에 의하면 아모스는 호세아와 같이 최고(最古)의 선지자의 일인이라 한다. 물론 그전에 엘리아, 엘리사 등이 있었으나, 그들의 예언은 단편적이요, 그것을 계통적 문헌(文献)으로 끼친 데는 아모스가 그 비롯이라 한다. 그런데 이 아모스가 드고아 산성의 한 야인이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큰 힘이 되는 일이다. 드고아의 목자가 미래 영원의 자유 신앙자를 위하여 만장의 기염(氣㷔)을 토(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 야인을 세워 자기 진리의 옹호자로 만들었는지 그를 우리는 모른다마는, 우리는 이것만은 안다 —— 그는 맹종을 요구하는 교권이나 사람(비록 신자라 하더라도)이 집성(集成)한 교회의 명령에 의하여 세운 바가 아니고 전원의 성전에서 실생활을 통해 체험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종교는 그 독특한 것이요, 그 말은 지극히 자유롭고 강직(剛直)하고 소박 무식(無飾)한 중에 투철(透徹)열렬(熱烈)한 것이 있었으며, 하나님에게서 직접 받은 것이었기 때문으로 그는 두려워할 것이 없었고 세상이 도리어 그를 무서워하였다고. 어쨌든지 그는 교권에 의하지 않는 자유신자요, 소인(素人) 전도자였다. 그 때문에 그는 철저적(徹底的)이었다. 철저적(徹底的)이었기 때문에 전문종교가에게 미움을 받았다. 진리의 제일의 특징(特徵)은 그 철저적(徹底的)인 점(点)에 있다. 타협(妥協)적인 것이 진리될 수는 없다. 그런데 종교나 세속을 물론하고 발달을 완수하여 현재에 한 세력을 이룬 자는 반드시 현상유지를 주장하는 것이요, 현상유지를 필요하는 자에게 철저적인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이로써 보면 3천 년 전에 이미 교권과 자유신앙자의 사이에 싸움이 있었던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싸움이 아무리 있어도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다. 아모스와 싸우던 아마시아 자기 입으로 이를 잘 표시하였다. 왈(曰) “이 땅이 능히 그 모든 말을 감당치 못할지라”고.
아모스는 야인이었다. 그의 예언의 재료는 우는 사자가 아니면 무는 독사, 메뚜기, 여름 과실, 짐승을 잡으려 땅에 베푼 기계, 바다에서 땅위에 붓는 노파(怒波), 모두 이런 것들이다. 과연 양의 뒤나 따르고 뽕나무 심는 사람의 말이다. 본래 드고아 성이 이 선지자를 길러내는 데 적당한 양육소였다. 예루살렘에서 50리 허(許) 베들레헴에서는 25리쯤 남으로 있는 한(一)산성으로 부근 일대는 쓸쓸한 광야이므로 옛날부터 드고아 광야라 하였고, 산성의 이름도 거기서 나온 것이다. 유대 고원의 동연(東緣)에 서서 남북으로는 연원(蜒蜿)한 봉령(峰嶺)이 연긍(連亘)하였고, 동으로는 깎은 듯한 급애(急崖) 밑에 요단 협곡이 입을 벌리었고 그 심저에 죽음의 염해(鹽海)가 적막히 가로누웠다. 서편으로는 지중해에 향해 점점 기울어지는 평원이나, 원래 해발 2700척의 고원이므로 농경에는 부적(不適)하고 거민(居民)은 목축을 업으로 삼으며, 그 소산인 양모는 고래로 품질의 우량으로 이름이 있다. 우리 아모스도 그 목자 중의 일인으로 그 자연 속에서 자라났다. 봄에는 초장(草塲)의 웃는 꽃이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고, 여름에는 임간(林間)에 우는 새가 섭리의 은혜를 찬송하였다. 사자가 바위틈에 울고, 배암이 숲 사이에 날고, 메뚜기가 곡식(穀食)밭을 침로(侵鹵)하고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실물 교수(敎授)였다. 그는 이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그의 영광을 알고 그 뜻의 오묘를 알았다. 그는 아마 초혼(初昏)달이 산성 두(頭)를 비치는 고요한 저녁에 무언의 벗을 데리고 비탈길로 돌아오며 몇 번씩 몇 번씩 기도와 명상(冥想)에 잠겼을 것이다. 하나님은 전원을 만들고 악마는 도시를 만들었다는 이언(俚諺)은 일면의 진리를 표시한 말이다. 아모스는 이 문화권 외(外)에 서는 드고아 산성에서 하나님에 충실하고 세상 문화에서 멀리 서기를 배웠다. 그의 성격은 질직(質直)하였고 그 말은 강용(剛勇)하고 대단(大胆)하였고 이론은 자연법칙과 같이 단순 명료하였다. 그의 생활도 아마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는 소박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단순히 무식한 야인이 아니었다. 도시문화를 배척하였다 하더라도 단순히 소박한 원시생활을 찬미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역사에 의해 모든 국가와 문화의 흥망륭체(興亡隆替)를 알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경륜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예언의 내용을 보면 그가 조국 유대와 이스라엘은 물론 이요 각 인방(隣邦)의 역사에 정통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대다수 학자들의 의견이 예언서는 아모스 자신의 친필로 된 원문이 대부분 보존되어 있는 듯하다는 데 일치한다는 것을 보면 그가 문장에도 상당히 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하여서 그만한 교양을 얻었던가. 그는 알 수 없다. 혹이 추상(推想)하는 것같이 직업상 관계로 다른 지방의 종교 혹은 기타 문화단체와의 접촉이 많이 있어 그로써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 설명에 의하면 그가 부업으로 하던 뽕나무는 드고아 같은 고원에는 재배(栽培)가 불능(不能)한 식물이요 평지에만 있는 것인즉, 아모스는 아마 상원(桑園)을 평지 어떤 지방에 가졌던 모양이요 또 양모는 타처에 많이 매출되는 것인즉, 그 관계로 이따금 다른 지방에 거래가 있었으리라고 한다. 혹 그랬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도 드고아 성 자체가 문화권 외(外)에서는 전원도시인 동시 또 역사적 암시풍부한 곳이었다. 그 산성은 르호보암이 쌓은 성으로「(역대기」하, 11장 5〜6절) 유대 국방상에는 요해(要害)의 일새(一塞)였다. 또 거기서 보면 베들레헴을 지호할 듯하고 가나안의 평원을 일목하(一目下)에 감시할 수 있었다. 아모스는 아마 양을 치는 동안 때때로 베들레헴을 바라보고는 다윗 왕을 연상하고, 가나안을 굽어보고는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의 사적을 탐구했을 것이다. 혹은 사해를 보고 소돔 고모라의 고사, 그로부터 롯, 아브라함의 위적(偉蹟)을 듣고 배우고 했을 것이다. 잡초가 우거진 고성 밑의 길로 양떼를 몰 때마다 선조들의 인근 명족(名族)과 힐항(詰抗)하던 역사를 다시금 기억했을 것이요, 퇴락(頹落)하는 성벽의 기울어진 것을 보고는 부패한 조국의 현상을 연상하고 금석(今昔)의 감(感)에 견디지 못하는 동시에 의분의 열화(烈火) 충천(衝天)하려 함을 느꼈을 것이다. 여하간 그는 역사의 추세에 대하여 투철한 관찰을 가졌고 그를 통하여 생존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다.
그렇다고 그를 열심 있는 사회개량가라고 생각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는 어디까지나 목자요 야인이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아마 그는 겸손한 목자의 일인으로 드고아 성 중에서 부패한 사회와는 관계없이 조용하게 일생을 마치자는 것이 이상이었고 아마시아의 호수(虎鬚)를 끄들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는 것 같은 일을 몽상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가 그를 불렀다. 양떼에서 취하여다가 이스라엘로 가기를 명하였다. 과연 아모스 자신이 말한 바와 같이 “사자가 부르짖으매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심에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리오”다.
아모스는 문화생활을 모르는 야인이었고 교권을 모르는 독립신자였다. 드고아는 문화의 권외(圈外)에서는 목인(牧人)의 성이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직업을 업으로 삼았고 다윗의 생애를 생애로 하였고 선조와 같이 광야에 가까이 하는 자들이었다. 알아라, 여기서 도도한 문화의 탁랑(濁浪) 속에 의연(毅然)히 서서 싸우는 하나님의 투사가 났음을.
2. 아모스의 시대
하나님은 드고아의 야인을 양군(羊群)속에서 빼내어 멀리 이스라엘에 보내어 그를 노책(怒責)케 하였다. 그럼 그가 가서 본 이스라엘은 당시 어떤 곳이었던가. 무엇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 성노(聖怒)를 발하였던가. 아모스의 입을 빌어서 “보응하기를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라고 그는 선언하였다. 무엇에 대한 보응인가. 왈(曰) 세 가지 죄와 네 가지 죄가 있다. 자비하고 길이 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돌아오기를 바라며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반성을 촉(促)하고 경계를 발하였다. 땅 일부에 비를 내리고 일부분에 아니 내리며 풍재(風災)를 내렸고 상재(霜災)를 내렸다. 혹은 팟종이(메뚜기)로 그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먹게 하며 염병으로 그 소년을 죽여서 당신의 눈이 졸지 않음을 알게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세 가지씩 네 가지씩 몇 가지씩 죄를 거듭했다. “어리석은 자는 심중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요(「시편」, 제14장 1절) 어리석은 시대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이미 의인을 돌아보고 악인을 벌하기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듯하다마는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잊는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는 다메섹과 가사와 두로와 에돔과 암몬과 모압의 죄도 용서할 수 없었다. 하물며 특별한 애육(愛育)을 받았던 유대와 이스라엘이랴—— “온 땅 모든 족속 중에서 내가 다만 너희를 알았으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벌하리라.”
이스라엘이 무슨 죄를 범하였나. 왈 “은을 받고 의인을 팔았으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았다.” 왈(曰) “공의를 변하여 쑥으로 되게 하고 의를 땅에 버렸다.” 왈 “의인을 학대(虐待)하며 뇌물(賂物)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窮乏)한 자를 억울케 한다.” 왈 “가난한 자를 학대(虐待)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왈 “부자(父子)가 한 여인에게 음행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혔다.” 왈 “나시르 사람으로 술을 마시게 하고 선지자를 충동하여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한다. 왈 무엇 왈 무엇. 즉 하나님의 의로써 키워낸 그들이 이제 의를 버렸다. 공의가 땅에 떨어지자 약자의 머리는 유린(蹂躪)당하고 강한 자는 그들의 머리 위에 티끌까지 탐한다. 그리하여 회뢰공행(賄賂公行)하고 재판(裁判)은 부정한다. 엄격한 가정도덕 밑에서 자라난 그들이 이제는 남녀도덕이 극도에까지 문란(紊亂) 되어 부자가 한 여인에게 음행한다. 과연 “바른 것을 행할 줄 모르고 그 모든 궁에 포학(暴虐)과 겁탈(怯奪)을 쌓았다.” 그러면서 다소 남아 있는 양심의 가책도 견디기가 싫어서 나시르 사람을 타락을 시키고 선지자의 입을 막아버린다. 그리하여 가다가 혹 의인이 있어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미워하고 “바른 말을 하는 자를 싫어”한다.
이것이 당시에 이스라엘의 사회상이었다. 이것이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놀라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 타락의 원인인가. 원래 이스라엘에는 대대로 하나님이 기억하여 내려오는 죄가 있었다. 때로 충실한 왕이 이스라엘에 나서 치적을 들은 이가 없지 않았다. 여호와가 그를 가납(嘉納)하였다마는 근본의 한 큰 죄가 있어 거기서 떠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노를 풀 수 없었다. 그 죄라는 것은 곧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지은 죄” 라고 하는 것이다. 여로보암은 곧 솔로몬 왕의 사후, 반기를 들어 이스라엘을분립시켜가지고 그 제1세 왕이 된 사람이다. 왕위에 오르자 그는 자기 백성이 멀지 않은 장래에 다윗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念慮)하여 민심수람책(民心收攬策)으로 예루살렘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대립하는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을 주고 그것이 곧 이스라엘 족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온 신이라 속이고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열왕기」상, 제12장 25〜33절) 이것이 북방의 이스라엘이 남방 유대와 달리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을 섬기게 되던 시작이다. 이에 여호와는 지극히 노하여 이스라엘에서 전화와 살육(殺戮)이 떠나지 않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열국 간에 수모(羞侮)를 당했다. 열왕기하 13장 7절에는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티끌과 같이 밟았다”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고생과 수고를 인생에게 시키시되 딴 맘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다. (애가, 제2장 33절) “이스라엘의 곤란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또한 도와줄 자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 아니하여서” 여로보암 2세의 손을 풍자(馮藉)하여 구원하기로 하였다. 여로보암 2세 명왕의 치적을 들었다. 마침 그 시대는 북방의 앗시리아가 강성하여 시리아를 압박하였으므로 시리아는 부득이 이스라엘에 대한 침입의 손을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는 호기회였다. 전에 잃었던 토지를 회복하고 유대 땅을 탈취(奪取)하고 이스라엘의 세력은 다시 한번 열방에 떨쳤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무사태평 국세융융한 이때에 부패의 병원(病原)은 이미 폐부에 사무쳤다. 왕성한 물질문화는 양심을 마비시켰다. 생활은 사치(奢侈)를 극하는 동시에 도덕은 지면에 떨어졌다. 아모스는 그 모양을 간경(簡勁)한 말로 묘사(描寫)하였다. 왕은 동궁이 있고 하궁이 있고 상아궁이 있고 큰 궁이 있었다. 부민(富民)은 “조각한 돌로 건축한 집”에 있고 포도원을 두르고 “상아 침상에 눕고 방석에서 기지개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마구에서 송아지를 먹고 거문고를 타며, 헛된 노래를 부르고 다윗처럼 자기를 위해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술을 마시고 지극히 귀한 향유(香油)를 몸에 바르고” 있었다. 부녀의 타락은 언어에 절하였다. 아모스는 비산 암소 같은 여인이라고 상류부인의 호사방탕(豪奢放蕩)을 질책(叱責)하였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착취압제하고 “그 집 주인더러 이르되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 것이었다. 과연 시온은 평온한 듯하고 “흉한 날이 먼 듯”하였다. 그러나 이는 증오할 만한 불의와 잔학(殘虐) 위에 서는 외면상의 번영뿐이었다. 고로 이런 시대의 통례대로 이런 내부적 도덕적 정신적 부패 타락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의식적 종교는 은성(殷盛)하였다. “아침마다 제사지내고 매 3일에 10분의 1을 드리고 누룩 넣은 떡을 불살라 수은제를 드리었다.” 과연 경건한 듯 여호와의 날을 사모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외형만이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월삭(月朔)이 언제나 지날까 우리가 곡식을 팔겠으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날까 우리가 밀을 내리니”한다. 고로 하나님이 노하여 “너희 절기를 내가 한하고 슬퍼 미워하여 너희 모든 성회(聖會)를 기뻐하지 아니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물질적 부성(富盛)은 그들의 맘을 오만(傲慢)케 하였다. 이스라엘의 수치(羞恥)를 면케 한 것은 여호와의 자비에서 나온 것이지만 어리석은 그들은 “우리 힘으로 뿔을 취한 것이 아니냐”하였다. 당시 북방에 강국인 앗시리아는 내란으로 인하여 일시 남도(南圖)의 뜻을 실현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로서 만일 각득(覺得)하는 바가 있으면 회개하고 진실에 돌아가 견고한 입국책을 강구(講究)해야 했을 것이다마는 그들은 한갓 폭풍 전에 저기압으로서 오는 일시적인 평온(平穩)을 투탐(偷貪)하였다. 이것은 아모스의 눈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장차 올 재난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이는 광인의 광언 같았다 —— 불과 5, 60년에 실현되는 그 일이.
그와 그의 시대, 렘브란트의 그린 인물과 배경같이 심하게 대조(對照)가 된다.
3. 아모스의 예언
아모스는 하나님의 명대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언을 발하였다. 그 예언 때문에 그렇지 않았으면 세상에서 별로 주목하는 사람도 없이 신뢰와 감사의 평온(平穩)한 일생을 마쳤을 그는 이스라엘의 무서워하는 바가 되고 증오 배척하는 인물이 되었다. 왜, 증오하고 배척하였는가. 자기네를 향하여 이스라엘이 망하리라, 여로보암이 검에 죽으리라 하기 때문이었다. 예레미야가 말한 것같이 그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서자 “말을 낸즉 비참한 말을 하고 또 포학하고 잔인한 것을 말하지”않을 수 없었다(예레미아 20장 8절). 이는 그가 심악하여서는 물론 아니지만 그의 인격이 고결하여서도 아니었다. 물론 그의 인격과 그가 당한 세대와의 사이에는 천지 같은 차가 있었다 할 수 있었다마는 그것이 대분노를 토케 한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 자신의 말대로 “지혜로운 자가 잠잠할” 시대였다. 그보다도 하나님의 의가 그의 혼을 삼키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였다. 그를 전할 사명을 그는 받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말씀을 들으라. (「아모스」, 제3장 1절)
너희 바산 암소 같은 여인들아 이 말을 들으라.(4장 1절)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5장 1절)
하고 그는 격렬한 부르짖음의 연호로써 그 예언을 시작한다. 무슨 예언인가.
내가 너희를 누르기를 수레가 곡식단에 눌림같이 하리라.
1천 명이 나간 성읍에 1백 명이 남을 것이요 1백 명이 나간 성문에 1십 명이 남으리라.
그때에 만일 열 사람이 한 집에 남아 있으면 저희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죽는 사람의 친척(親戚)은 그 시체를 불사르는 자니·········.
이스라엘 족속아 볼지어다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저희가 너희를 학대하여 하맛 어구로부터 아라비아 시내까지 이르리라.
아모스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대망(待望)하는 자였다. 이스라엘이 모멸을 당함을 보고는 슬퍼하고 기도했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국력이 회복(恢復)되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과 같이 그도 이를 위하여 즐거워하고 축하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잔인한 수단으로 국세를 확장(擴張)하고 도도한 문화가 일일 발전하여가는 거기에 일대 위기를 보았다. 그는 우려(憂慮)하고 기도했다마는 점점 커졌다. 외양으로는 오직 성대 오직 번영이 있는 곳에 내면으로는 거대한 공극(空隙)이 자라고 있었다 ——여호와에게서 떠남, 생활의 사치, 교만, 도덕의 타락, 종교의 형식화. 더구나 후자에서 전율할 만하였다. 양식은 더욱 성대하여가고 희생은 더욱 열심으로 바치나 여호와의 얼굴은 이미 저희에게서 돌아섰다. 예배도 예물도 교의(敎義)도 계명도 다 탐욕(貪慾) 있는 승려와 부호의 악용하고 곡해하는 바가 되어, 궁핍한 자를 압박하고 착취(搾取)하여 향략을 극하는 그들의 수단으로 쓰이고, 옹호(擁護)하고 엄폐(掩蔽)하는 기계가 되어 버렸다. 의인의 가슴은 곧 탈 만한 때였다.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아모스에게 임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눈을 열어 장차 올 것을 보게 하고 그리고 그의 입에 말을 넣었다.
어떤 날 그는 목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늦은 봄비에 버렸던 풀밭에서 돋아나는 새움이 마치 자라나는 이스라엘인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묵묵히 섰는 동안에 문득 한 떼의 메뚜기가 날아와서는 땅의 채소(菜蔬)를 다 먹어버렸다. 그때에 그의 속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운명이 과연 이것이 아니냐고. 이 계시를 읽은 그는 곧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赦)하기를 빌매 하나님이 이를 들으셨다.
또 다른 날 그는 불이 붙는 광경을 보았다. 담담하게 되어 오르는 불길이 산과 들의 온갖 것을 다 태우고 물과 육지를 아울러 삼키려는 형세였다. 또 그는 이 계시 중에 이스라엘의 운명을 읽고 불로써 상징되는 병화(兵禍)가 장차, 영화의 꿈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진멸(殄滅)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또 여호와에게 간청하여 유예(猶豫)를 얻었다.
그러나 이렇게 재삼 하나님이 참고 견디고 기다렸으나 이스라엘은 회개할 줄을 몰랐다. 이제 그에게는 지난날의 온갖 충재, 수재, 한재, 역병, 병란의 섭리적 의미까지 명료하여졌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좋아하나? 물론 아니다. 살육하기를 즐겨하나? 물론 아니다. 약속을 위반하나? 물론 아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나? 지극히 사랑한다. 주야로 그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악한 자의 하는 일을 잊고 불의한 것을 모르는 체하나? 결단코 아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향해 용서를 빌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에 심판이 임할 것은 인과법칙과 같이 필연적이었다. 사자가 움킨 것이 있으면 부르짖고 기기(器機)를 땅에 베풀면 새가 떨어지는 것같이, 이스라엘의 거듭하는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는 불가피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는 어떤 날 드고아 성읍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쌓을 때에 다림줄을 띠고 수직으로 쌓았던 성벽이 지금은 한 편으로 기울어져서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이 넘어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과연 이렇구나 하고 보여지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다림줄을 베풀었다.” 이제 이 백성은 그의 의에 견주어서 도저히 세워둘 필요가 없는 상태가 아닌가. 고로 “너희는 공의는 물 흐르는 것같이 하고 의는 큰 강같이 할지니.” 그리하면 살고 그렇지 아니하면 반드시 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기와 동족에 대한 열애를 잊지 못하는 그에게는 일상의 대소사가 무심한 것이 없었다. 사소(些小)한 것에서까지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읽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여서 반드시 기적적, 초자연적, 비상한 방법으로만 오는 줄로 세상이 생각하나, 하나님은 도리어 매우 특별한 경우(境遇)를 제하고는 비상한 방법을 쓰지 않는다. 그보다도 평상 일상의 사물로써 우리 정신의 정상상태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이 원칙이다. 아모스에게 준 예언에서 그 좋은 실례를 볼 수 있다. 더구나 그중의 여름 실과의 계시에서다. 어느 여름날에 그는 광주리에 가득 담은 실과를 보았다. 강한 광선에 비취는 그 난숙(爛熟)한 광택(光澤)과 실내에 가득하는 그 향기가 곧 번영한 세속적 문화의 예술적 향락적 취미의 생활을 상징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를 보고 ‘카이스’(여름 실과)라는 명사를 생각할 때, 그는 동시에 그와 근사(近似)한 음(音)의 ‘케—스'(終末)라는 명사를 연상하였다. 과연 ’카이스‘는 ’케—스‘다. 난숙(爛熟)한 과실에는 꼭지가 무너지고 부패하는 종말이 깉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실례는 예레미야의 조단향 가지의 계시에 있다. 조단향(샤케드)이 깨어 있는 자(쇼케드)에 대한 것). 그는 곧 변영의 정상에서는 이스라엘에 종말이 임한 것을 가르치시는 계시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드디어 심판의 하나님을 보았다. 여호와 자신이 곧 제단 곁에 선 것을 보았다. 희생을 바쳐 여호와의 자비를 얻을 제단에는 진실한 제사가 오르지 않는 고로 이제는 무서운 심판 선언의 대가 되었다. 그는 아모스에게 명하기를
너는 도리받침을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고 도리받침을 깨뜨려 무리의 머리를 누르게 하라. 그 남은 자를 내가 검으로 살육할지니 그중에서 도망하고 피난할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무서운 일이 아닌가. 이제 이스라엘에는 흑암(黑暗)의 ‘여호와의 날’이 있을 뿐이다. “처녀 같은 이스라엘이 엎어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다시 일으킬 자가 없다.” 이를 듣고 아마시아 제사장이 미칠 듯이 노하였던 것은 그럴 만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국력신장이 그칠 줄 모르는 듯한 때에, 풍류와 노래가 가구(街衢)에 찼을 때, 이스라엘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말하는 것은 망언도 분수없는 망언이다.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말이다. 그러나 역사는 어느 편을 증명하여 주었는가.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 아모스는 물론 시리아의 배후에 사자같이 쭈구리고 있는 앗시리아를 가리킨 것이다. 천안(淺眼)의 향락자, 투안자(偸安者)들은 몰라도 투철(透徹)한 안광을 받은 그에게는 이스라엘의 번영은 앗시리아의 압박으로 시리아가 퇴각하여 그로부터 오는 일시의 소강(小康)인 것과, 장차로는 앗수르(앗시리아의 군신)의 마제(馬蹄)가 팔레스타인 전토를 유린할 것임을 선견하였던 것이다. 과연 이 드고아의 목자가 베델에서 아마시아의 욕(辱)을 받은 지 불과 50년에 불행하게도 그의 예언은 실현되었다.
누가 그 경륜을 알며 누가 그 지혜를 측량하리오.
4. 아모스의 종교사상
3천 년 전의 아모스가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그가 선민의 역사상에 중대한 지위를 가지는 것과 거기에 또 야인 장부였더라고 하는 점에도 있지만 더구나 그의 종교사상에서다. 그의 신앙과 그의 신관(神觀)을 알아보고 우리는 그가 어젯날 사람인 듯 친근하여짐을 깨닫는다.
그는 일개의 자유신앙자요 독립전도자였다. 직접 하나님의 입에서 진리를 받았고 사명을 받았다. 고로 그는 예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예언함은 교회를 위하여 함도 아니요, 사회를 위하여 함까지도 아니었다. 오직 그에게 명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책임을 졌을 뿐이었다. 우리는 개인적 신앙의 철저를 그에게서 본다.
그러나 그의 하나님은 자기와 직접 말하는 하나님이지마는 제사장들과 같이 자기 전유의 하나님은 아니었다. 그의 신관은 부족적 지방적 신관에서 한 단을 올라가 있다. 하나님은 만민의 주라는 사상이 그에게 확실히 있다.
이스라엘 자손아 너희는 네게 구스 사람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애급에서 올라오지 아니하였으며, 블레셋 사람을 인도하여 갑도르로부터 오며 아랍 사람을 기르로부터 오게 한 것이 아니냐.
여호와의 눈에는 이스라엘이나 블레셋이나 아람이나 다 일반이라 함이다. 너희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선민으로 택하고 특별한 약속이 있으나 너희라고 책임 면제된 것은 아니요, 불의를 행하면 망하고 하나님께로 오면 사는 것은 일반이라 함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무를 가르쳤다. 그는 말한다.
너희는 마땅히 여호와를 찾은즉 살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저가 요셉의 집에 불을 내려 삼키듯 하리니.
너희가 공의를 변하여 쑥이 되게 하고 또 의를 땅에 버린 자여········.
너희가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 그러하면 너희가 살리라.
너희는 마땅히 악을 미워하고 선을 좋아하며 성문에서 의로운 재판(裁判)을 행하면 혹 만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셉의 남은 자에게 긍휼을 베푸실지라.
너희 공의는 물 흐르는 것같이 하고 의는 큰 강같이 할지니라.
그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선 의(義)의 하나님이었다. 자연의 아들인 그는 자연현상이 계시하는 권능, 능력의 하나님을 자주 찬송하고 역사를 아는 그는 연면(連綿)한 그 과정중에 생존한 하나님의 섭리의 활동이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단순히 전능의 힘으로써는 우주를 통치하는 이만이 아니었다. 그는 특히 의로써 통치하는 하나님이었다. 하나님 그 자신 의(義)기 때문이다. 아모스에게는 모든 방국(邦國)과 모든 생명과 모든 시간이 그렇다, 전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라는 한 뀀으로 관통한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근본사상이요 신앙이었다. 의, 의, 의.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하나님의 의만은 나타나고 완성되어야 할 것이다. 드고아의 야인은 의인이었다. 해발 3천 척의 드고아 원두(原頭)에 서서 불의의 탁류가 이스라엘을 휩쓰는 것을 보고는 이 의인의 혼은 불길같이 탔다.
의인 고로 심판은 불가피다. 「아모스서」가 장수(章首)에서 권말(卷末)까지 준열(峻烈)한 기(氣)가 넘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적 사상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에서도 최후의 말은 구원의 약속이었다. 여호와의 눈에는 이스라엘과 이방의 차별이 없다는 사상은 분명히 8백 년 후에 될 선언의 선구(先驅)라 할 것이요, 저 자신 하나님 앞에 애걸(哀乞)하여 한 번 두 번 긍휼을 얻은 사실은,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장차 한 사람의 의로 인하여 온 세상에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의 그림자를 이룬 것이라 할 것이다.
5. 아모스와 현대
“아모스와 현대, 그 둘이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하고 현대인은 말할 것이다. 과연 이 두 말을 연결하여 놓는 것은 ‘소나무와 생선’이라는 것같이 의미없는 말인 듯하다. 하나는 3천 년 전의 드고아 목자요 하나는 20세기 문명의 첨단(尖端)을 걷는 사람들이다. 고로 저들은 아모스 같은 것은 일찍이 있었든지 없었든지 알지도 못할 터이요 알 필요도 없다. 저들 중의 소수의 특별한 사람 외에는 고유명사 사전이나 성서사전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기회를 가지는 이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현대는 아모스와 아무 관계가 없나. 현대는 과연 의인 아모스를 몰라서 관계치 않는가. 저들은 “그렇소”라고 대답한다마는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눈을 들어 세계를 응시(凝視)하라. 일장의 난무가 아닌가. 식자는 현대를 가리켜 “문명의 일대 위기”라고 한다. “이 추(醜)한 문명” “문명의 몰락(沒落)” “문명의 구조(救助)” “문명의 가는 곳” 이런 말들이 존경할 만한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나온다. 이제 이 시대는 로마 제국의 붕괴(崩壞)시대에 비함을 받는다. 타락, 혼란, 난맥, 이완(弛緩)의 시대다. 그 중에 있어서 모든 가슴은 점점 절박해오는 일대 세계혁명을 예감하고 있다. 고로 이제 저들에 대하여 가장 필요한 일은 어디로 향하여 확실한 제일보를 내여 놓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훈연(燻燃)의 시대요 모색의 시대다. 지금 “어디로 가나”라는 것이 일(一)유행어다. 신문에나, 잡지에나, 변론에나, 저작에나 무엇은 어디로 가나 하는 것이 가장 흥미를 끄는 제목이 되었다. 과연 이 시대는 어디로 갈려나.
“예수냐, 마르크스냐” 이렇게 우리 앞에 제출한다.
인류 앞에는 두 길이 열리었다. 하나는 좁은 길이요 하나는 넓은 길이다. 하나는 구원을 약속하고 하나는 빵을 약속한다. 하나는 하늘나라로 가고 하나는 맘몬의 나라로 간다. 저는 어느 길을 취할 것인가.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라고 부르짖는 자는 확실히 인기자(人氣者)다. 모든 눌림을 당한 자는 지금 결하(決河)의 형세를 가지고 그리로 가려 한다 ——그가 약속하는 빵을 얻을 줄 믿고. 한편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한 자에 향해서는 모욕과 매도(罵倒)를 퍼부으면서.
그러나 그리하나 가는 자는 한 가지를 반드시 기억하고 갈 것이다. 즉 지금 움켜쥐고 가는 배는 밀가루로 만든 빵만이 들어가지 못하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주리다 못하여 이렇게 쓰리게까지 감각이 되는 것은, 밀로 만든 빵 밖에 기실(其實)은 또 다른 무엇이 결핍된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약속하는 자에게 달려가 그의 말을 성전(聖典)으로 순종하여 배가 터지게 빵을 얻은 후에도 그 어떤 무엇의 결핍감은 점점 더 심해갈 것이요, 따라서 빵을 먹었으니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우리가 요구할 때, 그 지도자는 교재가 진(盡)한 교사 모양으로 단 위에서 머뭇거리며 모면(謀免)에 어궁(語窮)할 것이라 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빵의 결핍. 우리 아모스는 현명하게 예언하지 않았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볼지어다. 날이 이르매 내가 기근(飢饉)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기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渴)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기근이니라. 사람이 유리(流離)하여 이 바다로부터 저 바다까지 이를 것이요 북으로부터 동에 이르러 왕래하며 분주(奔走)히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현대의 ‘아름다운 처녀와 및 젊은 남자’는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느끼나.
어떤 날 나는 아모스서 연구를 초(草)하던 붓을 놓고 산보를 나갔다. 나는 고장성지(古長城趾)를 걷고 있었다. 저녁 해가 정히 황해의 저편으로 들어가려 하여 장엄과 평화의 빛이 산야를 투명(透明)시키는 때였다. 내가 걷는 장성지는 바로 드고아의 성지인 듯하였고 나는 그에게 대면한 듯이 그의 생각으로 가슴이 가득하였다. 모든 것이 봄날의 영광에 빛난다. 문득 나는 눈을 골밑에 있는 촌가에 향하였다. 저녁연기가 올라온다. “저 안에는 무엇이 있나”하고 스스로 물어보았을 때 나는 “현대는 과연 아모스를 요구치 않나” 하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다시금 생각한다 ——현대는 과연 아모스를 요구치 않는가고.
칼 하임은 아모스를 가리켜 3천 년 전의 프로테스탄트라고 한다. 과연 적중한 말. 저는 프로테스탄트였다. 하나님의 의를 위한 프로테스탄트. 창일(漲溢)하는 물질주의의 탁랑(濁浪)중에 홀로 감연히 서서 싸우던 용사.
아모스는 오지 않으려나.
하나님의 사람, 의의 사람은 오지 않으려나.
성서조선 1931. 5월 28호, 6월 29호
저작집30; 20-227
전집20; 11-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