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한 옥자씨 / 임정자
"선생님 잘 쉬고 왔어요?" 이틀 쉬고 출근하면 어김없이 그녀는 내게 인사를 한다. 환갑이 넘은 어른의 어투가 아니라 아이 같은 말투로 옥자 씨는 내 곁으로 와 "있잖아요. 선생님 내가 아들이 둘이에요. 포항에서 일하는데 자주 맛있는 거 보내와요." "그래요." 하고 내가 맞장구치면 "어제도 보냈다네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가족이 없단다. 잘 몰랐을 때는 말도 잘하고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은데 이곳에 계실까 궁금했다. 자기표현도 잘하고 도울 줄도 알고 독립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착각이었다. 그녀는 지적장애로 혼자서 생활할 수 없었다. 생리적인 기본 생활은 스스로 할 수 있다지만 곁에서 돌봐줘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되었다.
전 원장님이 영광 장애인시설에 그녀와 사정이 같은 사람을 소개해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었다고 들었다. 하객 앞에서 드레스도 입고 반지도 교환해 번듯한 혼례식이 되었단다. 영광읍에서 함께 살다가 일주일 만에 각자의 시설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슬픈 사연이 있었다. 함께 살지 못한 이유가 스무 개도 넘지만 시간 맞춰 약을 먹지 못하고 하루 세끼를 더 먹는다고 들었다. 어쨌든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생이별이나 다름없다. 짧은 인연이 긴 그리움을 남겼다.
목소리라도 듣겠다고 남편이 핸드폰을 사주었단다. 이것의 용도는 딱 두 가지다. 유튜브로 노래를 듣는 것과 유일하게 남편과 통화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읽지도 못하는데 노래는 어찌 그리 잘하는지 놀랍다. 그녀가 부르기에 나는 처음 들었다. 한영주의 '정정정'이라는 노래를. '정정 정 주고 가네 / 정 주고 간 사람 정말 정말로 미워라 / 나는 어떻게 나는 /당신만을 사랑했는데' 노랫말이 딱 그녀 같다. 정 주고 간 사람 밉지만, 남편만을 사랑한다. 목소리도 구수하고 감칠맛 나게 부른다. 다른 노래가 흘러나와도 이내 반주를 듣고서 음을 탄다. 흥에 겨워 춤을 춘다.
늘 남편은 아침 저녁으로 전화한다. 통화 내용을 듣고 있으면 도돌이표처럼 했던 말을 반복한다. "여보세요?" 하면 건너편에서 말한다. 그녀가 중간중간 대꾸하다가, "밥 굶으면 안 돼야. 끼니 잘 챙겨 먹어. 내가 어떻게 가냐? 네가 와라." 남편이 무어라 말했는지 그녀의 말만 들어도 짐작이 간다. 밤이 되면 두세 번은 더 전화가 온다. 사랑에 빠진 부부라서 알콩달콩 말한다. "오늘 태권도 하고 왔어. 저녁밥이 짜장밥이야. 당신이 사준 게 더 맛있어"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다른 날은 전화기 건너편에서 큰 목소리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널 찾아 못 간다./ 내 자옥아 내 옥자아." 가수 박상철의 '자옥아' 노래를 이름만 바꿔 목청껏 '옥자'를 부른다. 그 속을 아는지 "시끄럽다. 그만해라." 투덜거리며 전화를 끊어 버린다. 애먼 전화기를 앞에 놓고 "내 이름을 뭐 한다고 불러쌌냐,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말도 안 하면서 왜 부르냐" 남편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투덜거리는 걸 보면 그녀도 속이 타는 모양이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유튜브를 찾아 늘 하던 행동으로 노래를 불러온다. 조항조, 남진, 이미자. 진미령. 나훈아, 트로트 메들리 등을 선임이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다. 보고 싶은 마음을 노래로 달래는 듯 이런저런 노래가 나오더니 진미령 '미운 사랑'이 흘러나온다. 왠지 오늘은 더 구슬프게 들려온다. 노랫말에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처럼 이 부부의 운명인가. 서로가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인연을 맺어주지 말지 남남으로 사는 거나 다름없는데, 가혹했다. 흔히들 말한다. 사랑이 살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누군가 그리워 아침에 일어나고 밤이면 꿈꿀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이 오늘을 견딜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단다.
그녀는 노래 부를 때면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막춤을 추다가 기쁜 마음이 차오르는지 큰 소리로 웃는다. 아는 노랫말이 나오면 자연스레 삼단 고음도 나온다. 옥자 씨는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