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살림꾼 / 정선례
1년에 두 번 서울 친정에 간다. 두 분 다 팔순이 지나서 자주 찾아뵈려는 마음과는 달리 거리가 멀고 차 타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멀미가 시작되어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봄에 아버지, 겨울에 어머니 생신에는 형제들도 다 모이기에 빠지지 않는다. 두 해 전에 부모님이 엘리베이터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어머니께서 손을 흔든다. 휴대전화 길 찾기 기능이 있어 알아서 찾아간다고 집에 계시라고 했는데도 짐 있으면 무거울까 봐 마중 나오신 거다. 무거운 캐리어와 밑반찬이 든 박스를 나눠 들고 현관에 들어서니 아파트 모델 하우스처럼 정리 정돈이 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음식을 만드는 부엌은 집안에서 가장 깨끗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분답게 바닥에 찌든 때나 얼룩이 하나도 없다.
오랜만에 온 딸이 팔 걷어붙이고 청소할까 봐 주방, 화장실 등 집 안 구석구석을 며칠 전부터 청소했을 것이다. 신장과 고혈압, 당뇨 그리고 안과 질환으로 몸이 정상이 아닌데도 애써 부지런히 움직인다. 직장 다니실 때도 밤늦게 퇴근하는데도 부엌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있으면 그냥 두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하고서야 주무셨다. 도마와 수저통을 수시로 햇볕에 소독하고 냉장고 안에는 그릇의 크기에 따라 반찬통이 정리되어 있다. 부엌 곳곳을 매의 눈으로 살펴보니 높은데 손이 닿는일은 무리였는지 싱크대 위쪽에 누런 때가 보인다. 의자와 싱크대 상판을 딛고 물티슈로 박박 문질러 닦아더니 보기에 흡족하다. 음식을 다 만들고 몰아서 치우는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 때도 바로바로 치운다. 손끝 매운 것은 닮지 않았지만 나도 이것만은 실천하려고 애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입맛이 까탈스러워 반찬 투정을 곧잘 해서 어머니를 성가시게 했다. 1년 내내 총각김치와 쪽파김치가 상에 올라야 밥을 먹었다. 그 입맛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총각김치는 다듬는 게 일이다. 총각무를 배란다 한가득 쌓아놓고 지친 몸을 벽에 기대고 앉아 밤이 꼴딱 새도록 다듬을 때도 나는 한 번도 도와 드린 적이 없었다. 무와 잎을 잇는 부분을 돌려 가며 칼로 일일이 다듬어야 해서 손이 많이 간다. 겉잎을 떼어 내고 밑동 뿌리는 바짝 자르고 무의 잔뿌리는 긁어 내어 서로 비벼 가며 씻어 소금을 켜켜이 뿌린다. 양념으로 비벼 통에 담을 때는 알타리 이파리를 몸에 돌돌 감아 차곡차곡 넣어야 엉키지 않아 꺼내 먹기 좋다. 김치는 급하게 익히면 맛이 덜하다.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익혀 접시에 담아낼 때는 통깨를 뿌려 줘야 먹음직스럽다. 총각무는 오동통하고 전체 길이가 짧은 모양을 고르는 게 제일 중요하다. 물김치도 총각무로 담가야 다 먹을 때까지 물러지지 않고 시원하다. 김치 종류는 잘 절이는 것에 따라 맛이 절반은 좌우된다. 또한 소금을 적게 넣어야 아삭하다는 것을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다.
해준 밥만 먹다가 결혼과 동시에 반찬을 직접 만들어야만 했다. 사탕처럼 여물이 든 쪽파를 사고 시든 잎을 떼어 내고 대가리를 다듬는다. 흙이 남아 있지 않게 흐르는 물에 여러벌 씻어 물기가 빠지는 동안 양념 준비를 한다. 파는 소금에 절이지 않고 까나리나 멸치 액젓을 쪽파에 켜켜이 부어 한두 번 뒤집어 두 시간 정도 숨을 죽인다. 보리밥, 마른 고추, 양파, 사과를 갈아 와서 갓 볶아 찧은 참깨, 고춧가루를 풀어 한데 섞는다. 고루 비벼 버무린 후 서너 가닥을 잡아 돌돌 묶어 꾹꾹 눌러 가며 담는다. 파김치는 눈이 감아질 정도로 익어도 맛있다. 알타리 무김치와 더불어 밥도둑이다. 이러한 김치는 가을에도 맛있지만 김장 김치가 시큼해지는 봄에 제맛이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맛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봄에는 햇마늘 절구에 찧어 납작하게 냉동실에 얼려 두고서 뚝뚝 끊어 쓰고 늦여름에는 참깨 한 말 사서 잘 말린다. 가을에는 청양고추와 대파를 어슷하게 썰어 비닐에 싸서 납작하게 펼쳐 냉동실에 보관해서 일년 내내 요리에 넣는다. 천일염 소금도 항상 대여섯 가마 밀쳐 가며 써야 음식에 쓴 맛이 나지 않는다. 농촌에서는 어느 집이나 새우젓과 멸치젓을 항아리에 직접 담가 쓴다. 꽃게 양념장, 갈비, 장조림, 마늘종 새우 조림, 김치 등 내 음식을 먹어 본 사람들은 다들 맛있다고 한마디씩 한다. 제철에 나는 원재료에 국산 양념만을 고집하고 알맞은 불조절이 맛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어머니가 지닌 솜씨, 맵시, 마음씨 중에 나는 솜씨에 해당하는 손맛이 닮았다. 손이 많이 간다는 반찬을 수시로 만들어서 도시에서 바쁘게 사는 가족들에게 보내느라 택배 비용도 만만찮다. 그렇지만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처럼 줄 수 있어 내가 오히려 고맙다. 일상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을정도는 아니지만 무엇과도 비꿀 수 없는 보람이다. 이 또한 솜씨 좋은 어머니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