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0년대🌺 |
✿1895년 조선의 지방제도를 23부로 개편하는 칙령(칙령 제98호)을 시행하다.
종래의 전국을 8도로 나누던 것을 폐기하고, 부·목·군·현을 군으로 단일화하여 총 337군을 23부 밑에 나누어 두었다. 23부는 한성·인천·충주·홍주·공주·전주·남원·나주·제주·진주·동래·대구·안동·강릉·춘천·개성·해주·평양·의주·강계·함흥·갑산·경성을 말한다. 각 부에는 관찰사ㆍ참서관ㆍ경무관 각 1인을 파견하여 다스리게 했다. 1896년 광무 개혁 때에는 13도 8부 1목 332군으로 다시 정비되었다. | |
| 🌱1900년대🌱 | |
🌳20년 한규설 이상재 등, 조선교육회 설립 🌳44년 프랑스ㆍ폴란드,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45년 박춘금, 친일 단체 대의당 창당. 🌳49년 맹호부대 창설 🌳51년 말리크 소련 유엔대표, 38선정전회담 제의- 25일 이승만 대통령 거부 🌳52년 한국-만주 국경의 수풍발전소 폭격당함 🌳54년 육군사관학교 현재의 위치로 복귀하여 옛 화랑의 얼과 정신을 이어받고자 '화랑대'로 명명 🌳55년 주요 도시에 양곡 배급제 실시 | |
🌳61년 세계12개국이 조인한 남극조약 발효
극지 개발이 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남극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12개국이 워싱턴에 모여 1959년 12월 1일 조인한 남극조약이 1961년 6월 23일부터 발효됐다.
주된 내용은 남극에 대해 어떠한 영유권도 항구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며, 그 밖에도 남극 지역에서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조항과 남극 지역에 대한 평화적인 이용, 그리고 남극 지역에서 채굴되는 모든 자원을 연구용으로만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조난 시에는 예외)이 들어가 있다. | |
🌳61년 휴전 교섭 제안 - 6, 25 사변 때 유엔에서 소련 대표 말리크가 한국전 휴전 제의,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 🌳67년 경기도청, 서울에서 수원으로 옮김 | |
🌳73년 박정희 대통령 `6ㆍ23선언` 발표
1973년 6월 23일 남북의 정상이 정반대의 성명과 연설을 발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UN동시가입을 골자로 하는 6.23특별성명을 발표했고 같은 날 김일성 주석은 고려라는 국호로 남북연방제를 실시하고 UN에 단일의석으로 가입하자는 것이었다. 1972년 7.4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남북조절위원회와 적십자회담이라는 두 갈래의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대화 결별 수순과도 같았다.
6.23특별성명은 외견상 박대통령의 입장이 전향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60년대까지 한국정부의 입장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이고 이는 UN이 보증하고 있으며 북은 UN결의를 무시하고 한반도 북부지역을 강점하고 있는 불법단체였다. 이 논리대로라면 북과의 교류. 협상은 물론 한국정부의 법적 정통성의 뿌리가 되는 UN에 북이 가입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1972년 7.4공동성명에서 북과 협상했고 6.23선언에서는 국제사회에 남북이라는 두개의 정치적 실체가 존재함을 인정했다.
6.23선언의 UN동시가입안은 박대통령의 안이었다기 보다는 미국의 요구였다. 힘의 열세에 직면한 미국이 동아시아 정책을 전반적으로 조정하면서 미중수교, 미군철수, 일본역할 증대, 남북 긴장완화로 이어지는 질서 재편의 한 고리가 UN동시가입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박대통령은 7.4공동성명에서 북과 대화협상하면서 남북의 국호 명기를 거부했고 6.23선언을 발표하면서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리고 6.23에 대한 북의 반응은 단일국호 UN가입이었다. 북은 7.4공동성명에서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자고 한 만큼 UN으로 문제를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고 UN에 가져가려면 단일국호로 연방제를 시행한 후에 하자는 것이다.
6.23 성명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은 7가지 제안을 한다. 1)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 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계속 경주한다. 2)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않아야 한다. 3) 우리는 남북 공동 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 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 4) 우리는 긴장 완화와 국제 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5) 국제연합의 다수 회원국의 뜻이라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북한과 함께 국제 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제 연합 가입 전이라도 대한 민국 대표가 참석하는 국제연합총회에서의 「한국문제」토의에 북한측이 같이 초청되는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6) 대한 민국은 호혜 평등의 원칙 하에 모든 국가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우리와 이념과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도 우리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진한다. 7) 대한 민국의 대외 정책은 평화 선린에 그 기본을 두고 있으며, 우방들과의 기존 유대관계는 이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임을 재천명한다.
다만 언급한 바와 같이 발표의 말미에서 이 조치는 잠정적인 것이며 북한을 국가의 실체로 인정하는 것은 아님을 명백히 했다. “나는 이상에서 밝힌 정책 중 대북한 관계 사항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과도적 기간 중의 잠정 조치로서, 이는 결코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여 둡니다.”라고… | |
🌳73년 김일성 주석, '조국 통일에 대한 대강령' 발표 : 고려 연방 공화국으로 단일 국가 유엔 가입 등 주장. 🌳78년 박정희 대통령, 남북간의 교역.기술.자본 협력 위한 「민간경제기구」구성 제의, 각료회담 용의 피력 🌳79년 윤보선 전 대통령 등 20여명, 화신 백화점 앞에서 카터 방한 반대시위 🌳81년 국내 최고 오래된 태극기(미국인 윌리엄 롤스턴 소유)가 91년만에 귀환 🌳81년 정부, 3급 이상 숙정공무원 등 434명의 취업 제한 조치를 7월에 해제한다고 발표 🌳81년 유치송 민한당 총재, 현정권의 평화적 정권교체 공약을 주시할 것이라고 언명 | |
🌳81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가 91년 만에 미국에서 귀환
1981년 우리나라서 가장 오랜 태극기 미국 윌리엄 롤스턴 소유 92년만에 미국서 귀환. | |
🌳82년 정부, 공산권 문호개방 정책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공·등 중근동 국가에 관세상 편익 부여 결정 🌳82년 목포 시내 84개 약국, 보사부의 의약 임의 분업에 반발, 일제 휴업 🌳82년 동국대 고비(오래된 비석) 조사단, 파주 감악산에서 고비 발견 🌳83년 대구에서 고려시대 천문도 발견 🌳85년 판문점에서 남북 국회 회담을 위한 제1차 예비 접촉 진행. 🌳86년 노태우 민정당 대표, 당직자회의서 대통령 직선제 반대 🌳87년 원전 7.8호기 준공(전남영광, 발전설비용량 19만kw) 🌳87년 시거 미국 국무차관보 내한(∼25일), 한국사태 해결위한 계엄령ㆍ 군부개입에 반대한다고 밝혀 🌳87년 청와대 각계지도자 대화-민주당,"별소득 없었다" 🌳88년 문교부, 89년부터 교수재임용제를 폐지하고 사립대학의 등록금책정을 대학별로 자율화한다고 밝혀 🌳89년 행정개혁위는 통일원장관을 부총리로 격상 시키는 등의 통일행정체제 조정 방안 확정 🌳89년 대검 공안부는 대학가 주사파에 대한 수색에 나서 고려대 한찬수씨등 2명 구속 관련서적 압수수색 🌳90년 신문 TV 잡지 라디오 등 4대 광고매체의 올 1·4분기(1~3월) 중 광고비 규모는 총 4082억원. 🌳90년 김상조 前 경북지사·홍종문 수협회장, 선거 비리· 수뢰 등 혐의로 구속 🌳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서 남북 단일팀, 8강 진출 🌳92년 대법원, 모든 행정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정보공개초례를 제정한 청주시의회 승소판결 🌳93년 한ㆍ중,환경협정초안 마련(서해안에 감시소도 설치) 🌳94년 정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 대표에 이홍구ㆍ 정종욱씨등 확정, 명단 북측에 전달 🌳94년 철도 지하철 사상최대 파업-열차 전국 10%만 운행 🌳94년 강원도 철원군 구 노동당사에서 평화를 위한 열린음악회 열림 🌳95년 정부, (주)대우의 남포공단 경공업공장 가동을 위해 對북한 투자송금액 512만달러를 허용 | |
🌳96년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 승찬 스님 입적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 곧 생사요, 일어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곧 열반이다, 생사와 열반이 누구를 말미암아 있는 일이냐,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손등과 손바닥이니라" 1996년 6월 23일 입적한 승찬 스님이 남긴 임종게(臨終偈)이다.
승찬 스님은 효봉(1888∼1966), 구산(1909∼1983)스님으로 이어지는 송광사의 근대 승맥을 잇는 인물이다. 평남 개천 출신인 승찬 스님은 동국대 국문과를 중퇴하고 1947년 10월 지리산 칠불암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송광사 초대~2대 방장을 역임한 구산 스님은 절집안에서 그의 형님뻘이고 법정스님, 시인 고은씨 등은 아우가 된다. | |
🌳97년 김영삼 대통령, 하시모토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 🌳97년 민간지원 북한구호식량 첫 국적선 <장영호>, 부산에서 흥남으로 출발 🌳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가을부터 금강산 관광 북한측과 합의하고 관련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혀 | |
🌳99년 네로 ‘황금궁전’ 18년 만에 재공개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 ‘도무스 아우레아’.
고대 로마 네로 황제(37∼68)의 몰락의 원인이 된 황금궁전(domus aurea)이 23일 붕괴 위험으로 폐쇄된 지 18년만에 다시 일반에 문을 열었다. 2000년 새 밀레니엄 개막을 앞두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 고대 로마 및 르네상스 문화유산 복원사업을 벌여온 이탈리아 정부는 96년 황금궁전 복구를 위해 복권 판매 수익금 등 보수자금 300만달러를 마련, 복원공사에 들어갔다. 웅장한 기둥을 따라 늘어선 방 300개 가운데 150개가 복원공사를 마쳤고, 그중 32개가 이번에 공개됐다. 물이 말랐던 호수도 제 모습을 되찾았다. 로마시는 황금궁전 복구를 기념하기 위해 25일부터 사흘간 네로의 기독교 박해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쿼바디스’를 야외상영하고,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 서사시 낭송회를 여는 등 행사를 벌였다. 각종 박물관도 무료 개방했다. | |
| 🌺200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