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찜하다 / 허숙희
시골집을 오가며 스마트폰에 깔아 놓은 ‘똑똑 노트’(중요한 내용을 종류별로 메모해 놓을 수 있도록 만든 응용 프로그램)에 오르내린 일시와 오고 가는 이유를 간단히 적어 놓는다. 지난 12월 13일 광양을 떠나며 그동안 정리해 놓은 것을 보니 올해는 1월 26일 오후 한 시 55분에 시골에서 수원으로 올라간 것을 시작으로 열한 번을 오갔다. 대부분 병원에서 검진받고 담당 의사를 만나 그 결과를 확인하려고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시골에 내려와 있는 동안 비워 놓은 집 목욕탕에 문제가 생겨 올라가게 되었다.
지난 11월 9일 광양에서 올라와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바닥을 보니 어제저녁에 씻고 버린 물이 다 마르지 않은 채 젖어있었다. “이상하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샅샅이 훑어보았다. 바닥 타일에서 물이 조금씩 스며 나오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물이 줄줄 흘렀다. “아뿔사! 큰일 났구나!” 남편과 함께 꼼꼼하게 살펴보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보일러 배관이 잘못되었나?”, “수도관이 터진 것일까?” 어느 것이든 공사가 커질 텐데 걱정이다. 관리사무실에서는 집주인이 해결해야 한다며 와 보지도 않았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알아낸 ‘에스케이 공사(SK 공사)’에 물이 새는 이유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곧 요란한 장비를 갖추고 기술자가 도착했다. 수도 계량기를 잠그고 이곳저곳을 살핀 후 가지고 온 청진기처럼 생긴 기구를 귀에 대고 알아내려고 한동안 부산하더니 천정을 뜯고 손전등을 비추어 윗집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는 곳을 찾아냈다. 우리 집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일을 해결하려면 복잡하겠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아팠다. 일단 윗집에서 물이 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서로 받아 놓았다. 출장비를 계산하려는데 너무 비쌌다. 원인을 찾기까지 한 시간 남짓 걸렸는데 5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원인이 우리 집이 아니라 좀 억울하다고 말하며 비싸다고 말했다. 30만 원만 달라고 했다. 그래도 난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20만 원으로 내려갔다. 그 자리에서 송금하고 거래를 끝냈다.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몇 년 전 윗집에서 집을 고치면서 우리 집 거실벽으로 물이 흘러내린 적이 있었다. 또 아들 방 천정 벽지가 얼룩지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마음고생했던 일이 생각나 심란했다. 한동안 망설였다. 그래도 알려야 할 것 같았다. 그 집도 우리처럼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 만날 수 없어 전화로 알렸다. 집에 들어가지 않아 물을 쓰지 않았는데 물이 샐 이유가 없다며 펄쩍 뛰었다. 설비 업자가 써 준 확인서를 사진 찍어 보내도 막무가내였다.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 주어도 믿지 않고 옥신각신하더니 자기 집에 문제가 없으면 내게 책임을 묻겠다고 으름장 놓으며 아는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그건 나중 문제고 원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해 그러겠노라 했다.
며칠 후 보험사 보상 팀 수리 업체 직원이 찾아왔다. 윗집에서 물이 새서 받은 피해 상황을 둘러보러 왔다고 했다. 아마 상해보험을 들어 놓았던 것 같았다. 목욕탕을 살펴보고 윗집을 먼저 고친 후 우리 집은 나중에 공사해야 한다며 12월 17일부터 19일까지로 일정을 잡았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다녀간 후 목욕탕 옆 옷방에 들어가 보았다. 쾨쾨한 냄새가 났다. 천장 높이 매달린 옷걸이를 치우고 살펴보니 벽과 옷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깜짝 놀랄 일은 더 있었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액자(결혼 후 처음으로 집을 샀을 때 시아버지가 선물해 준 난초가 그려진 동양화 액자)가 곰팡이로 온통 까맣게 변해 그림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너무 속상해 끙끙 앓다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알렸다. 또 곰팡이가 핀 여름과 가을옷은 손빨래했으나 겨울옷은 손세탁할 수 없어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한참을 듣더니 가격을 계산하기 힘든 고서와 그림은 법정에 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액자는 포기하라는 듯 들렸다. 그러나 도배와 세탁비 보상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먼저 피해자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고 보상 범위를 알려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액자 보상에 미련이 남아 다시 보험사에 전화했다. 이제껏 경찰서에 간 일도 없고 법정에 서 본 일도 없어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생각 나서 다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울먹이며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몇 번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액자 보상은 그 당시 영수증을 제시하면 참고해서 보상해 주겠다고 말했다. 오래되어 거래 내역을 알 수 없을뿐더러 아버지가 생전에 선물해 준 물건인데 그것을 어찌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느냐며 항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상액이 정해졌다.
오늘(12월 14일) 곰팡이가 핀 겨울옷을 세탁소에 맡겼다. 겨울옷이라 부피가 크고 무거워 네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너무 비싸 한참을 망설이다 큰맘 먹고 산 양피에 거위 털을 넣어 만든 코트는 세탁해도 원상복구가 안돼서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끼고 몇 번 입지 않은 옷이었는데 너무 아깝다. 어떻게 해야 하나? 또 보험사 직원에게 보상을 사정해 봐야 하나? 맡긴 옷도 곰팡이 냄새를 없애려면 약품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려 올해 안으로 찾아올 수 없다고 했다.
한 해를 보내면서 가끔 해맞이 명소를 찾아 여행했다. 올 갑진년 첫날에는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일출을 보았다. 다가오는 을사년에는 가까운 여수 ‘항일 암’을 가 볼까 생각했는데 집수리로 계획이 어그러져 속상하다. 그런데다 12월을 넘기기 전에 옷에 핀 곰팡이를 말끔히 씻어 낸 옷을 세탁소에서 찾아와 새로 도배한 옷방에 걸어 두고 새해를 맞으려 했는데 그럴 수 없다니 너무 찜찜하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 생활은 나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살아왔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똑똑 노트'에 오가는 횟수가 줄면 더욱 좋겠다.
첫댓글 몸도 마음도 고생했겠네요.
그래도 찜찜한 마음 훌훌 털어버리러 시간 내서 좋은 곳에 여행 다녀오세요.
누스로 고생이 많으시네요. 나도 몇 년 전에 두 번이나 윗집에서 물이 새서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윗집에 보험이 들어있으면 누수 발견시의 비용은 물론 옷, 가구 등의 피해가 있어도 모두 보상 받을 수 있습니다.
보험금 수령 등 보험회사와 거래도 피해자와 직집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직도 보상 문제 해결이 안 되어 진행중입니다.
맘 고생 많으셨네요. 새해에는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은 개척자이십니다. 지금까지 그러셨듯이 멋진 인생 만들어가며 신나게 사실 줄 믿습니다.
에고. 정말 힘드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