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여행(6)/ 새로 개통된 경의선 photo 에세이 (2009. 7월 서울서부역-디지털시티-대곡역-문산-임진각-도라산역/0
*. 경의선 철도 이야기 경의선 전철이 7월 1일(2009년) 개통되었다는 즐거운 소식에 행복한 마음으로 최근에 세 번을 다녀왔다. 한 번은 ‘일산~대곡역’을 거쳐서 문산까지, 또 한 번은 ‘서울역~대곡역’, 오늘은 ‘대곡역~도라산역‘까지 다녀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서울서 문산까지 구 경의선 열차는 1시간 간격이었는데 새로 개통된 경의선 전철은 10~15분 간격으로 운행된다니 얼마나 편리한 세상이 되었는가. 세상은 오래살고 볼 일이다. 새로 개통된 경의선에서 꼭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요번 개통은 '서울역- 문산역' 개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2년에 완전 개통되는 '용산- DMC역- 문산역' 때까지 청파동 방향의 경의선서울역까지 연장 운행한다는 것이다. ㅁ 그래서 서울역~ 문산 간의 열차는 종전처럼 1시간 간격이다. 그래서 '경의선 서울역- 지하철 서울역(1. 4호선)' 구간은 환승 처리가 안 되고 별도의 운임을 부담하여야 하는 것이다.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역(DMC역)~경기 파주시 문산역까지 잇는 1단계 구간(38.8㎞)은 하루 150회 운행을 한다. 특히 '문산∼디엠시 '구간이 복선 전철로 바뀌면서 1951년 이후 59년 동안 운행된 경의선 통근 열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경의선은 일제(日帝) 의하여 1906년에 완공된 ‘경성(서울)~신의주’ 간의 총 길이 518.5km까지의 남북 종단 철도를 말한다.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 중이어서 대륙침략을 위해서 군용철도로 경의선이 꼭 필요하였기 때문에 일본이 세운 철도다. 그러던 것이 국토 분단으로 해방된 후에는 1945년 ‘서울~개성’ 간 74.8㎞ 구간만을 단축운행 되다가, 6. 25로 인한 1953년 휴전협정으로 38선 대신 비무장지대(DMZ)가 남북을 가로 막은 이후 남한에서는 ‘서울역~문산역’까지만 운영하여 왔다. 당시에는 경의선은 경부선과 더불어 한반도의 주요 종관철도(縱貫鐵道)로 전국 철도 중에서도 가장 큰 운송 수단이던 철도였다. 그러다가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 회담의 결과로 경의선이 2003년 12월 31일 복원 공사 되어 도라산역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도라산역은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에 있는 가장 북쪽에 있는 역이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일본은 그 막대한 국력을 기울여서 경부철도에 이어 경의선을 남의 나라인 조선에 왜 놓았는가 하는 것이다. 일본은 산이 많은 나라다. 전국토의 80%가 산이요 그 중 농지로 쓸 수 있는 경작 면적이 겨우 16%밖에 되지 않은 나라다. 그래서 일본은 유사 이래로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가 없어서 그 무서운 왜구(倭寇)로 우리나라는 물론 동남아까지 진출하며 노략질을 해야만 살 수 있는 민족이었다. 그래서 한일합방(韓日合邦)을 내세워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이었고 다른 민족이 사는 나라 훗가이도와 오키나와처럼, 조선도 식민지가 아닌 완전한 자기 나라 국토의 일부로 만들고자 세계 식민지사에 유례가 없는 동화정책(同化政策)을 편 것이었다. 내선일체(內鮮一體)라던지 창씨개명도 그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어려서 살던 시절이 일제 시절이었고 따라서 소학교 다닐 때 나의 이름은 성철용 아닌 나리다 데쓰요(成田哲鏞)였다.
*. 경의선 복선전철 이야기 새로 개통된 경의선 철도를 흥겹게 타고 가다 보니 개화기였던 1904년 경부철도를 타고 가던 육당 최남선이 지은 ‘경부철도가’를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 같은 형세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우리네와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 친소(親疎) 다 같이 익히 지내니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루었네. -최남선 작(소년 2호, 1908) 이때의 경부철도는 조선 강점기에 일제에 의하여 일본 기술과 일제 국력으로 만든 철도요 증기기관차였는데, 지금 내가 타고 가는 경의선 전철은 그동안 세계 건설의 강국으로 성장한 Korea의 기술과 힘으로 만든 전철이니 어찌 감흥이 없으랴. 그동안 초라했던 역들은 최신식 시설로 바뀌어, 노약자나 장애자를 위한 시설까지 완벽하게 배려하여 놓은 2500v로 달리는 정동열차니 말이다. *. 파주, 고양시민의 행복
지금까지 있었던 고양시 일산에 있던 3호선 전철은 구파발로 우회하여 서울을 향하는 바람에, 파주와 고양시민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서울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의선 전철은 서울의 도심인 의주로와 수색로를 직선으로 달리기 때문에 서울 진입이 더 빠르고 편리하게 되었다. ‘대곡역~신촌’이 21분에 서울역까지면 28분인데, 3호선의 ‘대곡역~종로3가역’이 37분으로 거기서 서울역까지 가려면 충무로역에서부터 3정거장이나 더 가야한다. 고양시와 파주 시민들은 행복하게도 서울에 30분대로 진입할 수 있는 세상을 살게 된 것이다. 급행 전철을 타고 가면 문산~서울을 52분에, 일반전철은 65분이고, 디엠시~문산까지는 52분만이 소요될 뿐이다. 그러나 개통된 경의선 전철역에는 환승역으로 3호선으로 연결되는 대곡역과, 6호선이 연결되는 디지털미디어시티(Digital Media City) 2뿐이다. 게다가 서울역은 환승역이 아니라서 1호선, 4호선과는 연결되지 않는 서부역이 종점이요 시발점일 뿐이다. 청량리에서 떠나는 중앙선과 같다고 이해하여야 할 일이다. 구 경의선 시절에는 서울~문산 간에는 17개역이었는데 요번 개통되는 경의선은 금릉, 탄현, 풍산, 디엠시 등 역이 새로 생겨 모두 20개역이 되었다. 경의선은 출퇴근 시간에는 급행열차가 다닌다. 이 차는 20개 역 중 9개 역만 서기 때문에 일반열차보다 더 빠르다. 경의선 개통으로 고양시민 3만1천여 명과 교하 새 도시, 금촌, 문산 등 파주 시민 2만6천여 명 정도가 이를 매일 이용할 것으로 국토부는 추산하고 있다. *. 전설 따라 도라산역까지 나와 같이 경의선 개통이 보고 싶어 경의선 전철을 타고 문산이나 도라산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말한다. ‘가서 보니 볼 것이 거의 없더라고.’ 이런 분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명승지는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곳이며, 찾는 이에게만 기다리다가 그 명승지의 문을 열어 주는 곳이라고.’ 나는 이런 분들에게 최소한의 경의선 주변의 소개를 하여 주고 싶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 이름이다. 이름 속에는 사는 나라, 성별(性別), 살고 있는 시대와 그 이름에 단긴 그분 부모님의 희망 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역 이름(驛名)도 마찬가지다. 그 역(驛)의 어원이나 역명(驛名)에 얽힌 전설은 그 고장의 역사로, 그 고장을 가장 함축하여 놓은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동네가 있어 역(驛)이 들어선 것이고, 그 역 은 그 고장의 역사를 반영하면서 그 고장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여 주는 청사진이 되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 DMC역(Digital Media City) :
경의선 역명 중 가장 생소한 이름이 DMC역(Digital Media City)이다. 서울시에서는 난지도의 17만 2천 평을 상암택지개발지구로 지정하고 여기에 방송, 영화 등 미디어정보산업의 동북아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조성하고자 디지털미디어시티 (DMC : Digital Media City)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역은 경의선은 물론 6호선과 김포에서 시작되는 공항철도 등 3개 노선이 환승되는 곳이므로 승객들의 혼란 방지를 위해서 3개역의 명칭을 통일하여 DMC( Digital Media City)로 이름 한 것이다. 이곳이 은평구, 마포구, 서대문구의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서 역명으로 인한 지자체의 분쟁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가까운 거리에 수색역이 있지만 앞으로는 DMC역으로 통합될 모양이다. • 화전역(花田驛): 순우리말로 꽃밭을 ‘화전(花田)’이라고 하지만 화전(火田)에서 유래하였다는 전설에 더 마음이 간다. 화전(火田)이란 산간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풀과 나무를 불 질러 버리고 그 자리를 파 일구어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다. 이 화전 고장은 예부터 꽃이 많은 곳이라서 한자가 '火田'에서 '花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국항공대학이 있는 곳이 바로 화전(花田) 마을이다. • 행신역(幸信驛):
화전역 다음 역이 행신역(幸信驛)이다. 이 마을의 가라뫼 부근의 마을은 예로부터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名堂)이라 일컬어지던 마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청주 한(韓) 씨 자손들이 이곳에 묘 자리를 찾아 이곳에 묘를 쓰고 머물러 살게 되었다. 그 한씨 후손들은 ‘여기에 우리 조상님들을 모시고 살게 된 것은 천만 다행(多'幸')한 일이니 우리 청주 한(淸州 韓) 씨들은 서로 믿으면서('信') 살자 하는 뜻으로 행신(幸信)이란 지명을 붙었다는 것이다. *. 능곡역(陵谷驛): 행신역 다음이 능곡인데 '능곡'을 옛날 이 고장 사람들은 '능골'이라고 불렀다. 행신과 마찬 가지로 이 고장도 풍수 지리학상으로 명당이라 하여 왕릉의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 되던 곳이었다. 그러던 것을 경의선 건설 때 일제에 의해서 '능골'의 한자어 능곡(陵谷)으로 명명하게 된 것이다. • 대곡역(大谷驛): 대곡역 근처에는 인가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역이름 같은 큰 골짜기가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러다 화정이 고향인 허준 화백(전 고양시 시의회 회장)을 만나서야 그 이름을 밝혀낼 수 있었다. -대곡(大谷)이란 말은 대장리('大'壯里)와 내곡리(內'谷'里)에서 한 자씩을 취해서 생긴 말입니다. 그래서 이 고장 사람들은 대내리('大內'里)라고도 하여 오던 고장입니다.
이 대곡역은 경의선과 3호선 환승역으로 유명하게 된 역이다. 그런데 이 역은 옛날에 있던 경의선 역사(驛舍) 북쪽에 따로 환승역을 새로 지어 놓는 바람에 환승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흠이다. • 백마역(白馬驛):
백마라는 이름은 옛날의 백석리('白'石里)와 마무리('馬'頭里)의 첫음절을 따서 생긴 이름이기 때문에 하얀 말 백마(白馬)와는 관계없는 이름이다. 일산신도시 개발 전에는 근처에 '애니골 까페촌'이 있어 아베크족들이 즐겨 찾는 교외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유명한 먹거리 유흥지가 되어 성업 중에 있는 곳이다. • 풍산역(楓山驛): 풍산역이 있는 풍동은 한자로 단풍나무 ‘楓(풍)’, 마을 ‘洞(동)’ 풍동(楓洞)이라 쓴다. 예로부터 산이 없는 이 마을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농사에 지장이 많았다. 이를 막기 위해서 주민들은 단풍나무를 심어 방풍림을 만들어 산을 대신하였다 해서 풍산역(楓山驛)이라 한 것 같다. • 일산역(一山驛): 경기도의 2.6%로 넓다는 고양시에는 동구(東區), 서구(西區), 일산구(一山區), 덕양구 네 구가 있다. 동구와 서구가 일산 신도시라서, 구일산이라고 말하는 일산구에 옛날부터 있던 역이 일산역(一山驛)이다. 당시 일제가 경의선을 놓을 때 백설리에 있던 면사무소를 지금의 일산역 부근으로 옮길 때 그 부근 마을 이름이 한산 마을이었다. 그곳에 있는 산 한뫼는 한자어로 한산(韓山)이었다. 일제는 한국의 ‘韓(한)’이란 말을 싫어해서 ‘한뫼’라 하던 산을 자기들 멋대로 ‘一山(일산)’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이 일산역에서 밖으로 나서면 바라보이는 산이 있다. 고양시에서는 제일 높다는 고봉산(高峰山, 208m)이다. 옛날 이 고장에는 고봉산이 있는 '고'봉현과, 덕양산이 있는 덕'양'현이 있었다. 그 두 고을의 이름 중 하나씩 따서 '고양(高陽)'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덕양산(德陽山, 124.9m)은 행주산성이 있는 산을 말한다. • 탄현역(炭峴驛):
탄현은 한자로 숯 ‘炭(탄)’, 고개 ‘峴(현)’ 탄현(炭峴)이라 쓴다. 그래서 이 고장을 순우리말로 일명 '숯고개'라고도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고장 일대에는 참나무가 많아서 이 나무를 베어다 숯을 굽던 곳이라 해서 탄현(炭峴)이라 했다는 것이다. 지금 탄현 마을에는 SBS탄현제작소, 일산홀트학교 등이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 금촌역(金村驛):
1905년 경 일제가 경의선(京義線)을 놓을 때였다. 지금의 금촌역 자리에다가 역을 지어놓고 일인 당국자는 그 역 이름을 이 부근 마을 이름으로 정하기로 하였다. 담당자 일인이 아동동인 지금의 팜스프링 아파트 근처에 갔더니 동네 노인들이 바둑과 장기를 두고 있었다. “이 고장 이름이노 무엇입니까?” “새말이라 하지요.” 한국말을 잘 모르는 일인이 ‘새말’을 ‘쇠말’로 잘못 알아듣고 쇠 ‘金(금)’, 마을 ‘村(촌)’ 금촌(金村)이란 역명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이 고장 이름도 금촌(金村)이 된 것이다. • 월룡역(月籠驛): 원롱이란 말은 이 고장에 있는 월롱산(月籠山, 229m)의 이름에서 취한 것이다. 이 산 기슭은 예로부터 약수가 유명하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상처 입은 사슴이 달밤에 몸을 닦던 곳이요, 많은 새들이 목을 축이고 몸을 씻던 명 약수터라 하여 월릉(月籠)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그 샘 모양이 새장 같았는가 그래서 '롱(籠)' 자가 쓰인 것 같다. 고려 때 윤관 장군도 여진족을 토벌할 때 여기서 물을 길어 마셨다는 기록도 보인다. 월롱역 부근에 금강랜드가 있는데 1,020m서 뽑아 올린 그 천연게르마늄 광천수는 피부미용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니, 이 고장 물은 자고로 유명하였던 모양이다. ‘쪈의 전쟁이라는 TV 연속드라마 촬영지가 바로 금강랜드였다. 월롱산의 정상에 올라가 보면 그 모양이 마치 반달과 같은 모양으로 그 산정의 모양이 배가 떠나는 모양의 형국이어서 월롱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하여 오는데 그 전설과 '월롱'의 '롱(籠)'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후학자의 연구를 기대해 본다. 이런 유서 깊은 곳이라서 인가. 명문 여자대학인 이화여자대학교 분교가 세워진다는 곳이 바로 원롱이요, 첨단 산업단지의 이 지역에는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 화학, 마이크론, 이노텍 등 4개 LG그룹 계열사가 입주되는 곳이라 한다. • 파주역(坡州驛): - 옛날에는 이 고장을 술이홀현(고구려), 봉성현(신라), 서원현(고려)이라 하다가 이조 태종 무렵에 와서는 서원군과 원평군이 합하여 원평도호부라고 했답니다. 그러다가 수양대군이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왕위에 오르는 바람에 수양대군의 아내가 정희왕후가 되었습니다. 왕비는 이곳에 살던 파평 윤씨 윤번의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왕비의 내향(內鄕)이라고 해서 원평도호부라 하던 이름을 윤씨의 본관인 '파평'의 '파(坡)'에, 고을 '주(州)'로 이름하고 '파주목(坡州牧)'으로 승격되었던 것이지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파평면의 진산(鎭山)이라는 파평산(496m)에 오를 일이다. 파평산은 파평 윤씨 시조의 전설이 어린 산으로 그 파평산 기슭에는 용연(龍淵)이라는 못이 있어 파평 윤씨 시조 윤신달의 탄생설화가 전여 오니, 파평 윤씨 후손들은 지나치지 말고 들려 용연에 얽힌 전설을 살펴보면서 훌륭한 가문이었음을 살필 일이다. *. 문산(汶山) 이야기 드디어 나는 2009년 7월 1일 개통된 경의선 복선전철 1단계 구간인 ‘디엠시(옛 성산)~ 문산’ 간의 40.6㎞ 종점에 왔다. 제2 구간인 ‘디엠시~ 서울 용산’ 8㎞는 2012년 개통 예정이란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문산 터미널(도보 10여분)에 가서 적성의 감악산(675m)행 버스를 탈 것이요, 간단하게 시장 구경을 하고 갈 사람들은 10분 거리에 있는 제일문산시장을 둘러볼 일이다. 문산에서 다시 임진강역이나 도라산역을 갈 사람은 2층에서 우측에 있는 맞이방이라는 여행안내소에 가서 1,000원(경로 500원) 짜리 표를 끊어야 한다. 그런데 도라산이나 임진각 행 열차는 1시간 간격이어서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문산은 한자로 '汶山'이라 쓴다. '汶'은 임진강을 끼고 발달한 곳이고 여름에 물 난리가 자주 나서 '汶' 자가 쓰인 것 같다. *. 임진각역(臨津江驛) 문산역을 떠난 차가 30분만에 임진각역에 도착하니 서울에서 130리인 52km요, 평양까지가 550리인 209km거리였다.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DMZ임진각역 매표소'에서 표를 다시 끊어야 했다. 이때 꼭 갖추어야 하는 것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아니면 여권이다. 임진각역 주변에는 상가는 고사하고 건물 하나 없는 허허 벌판에서 우리는 속절없이 1시간 이상이나 기다려야 했다. 헌병이 있어 어떻게 유익하게 시간 보낼 만한 곳이 없는가 물었더니 역에 나가서 좌측 다리만 넘으면 임진각이란다. 급히 임진각을 향하면서도 답답한 심정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임진각이 근처에 있는 줄을 모르고 속절없이 1시간 30분이나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역이나 열차 내 방송은 왜 그렇게 점잖은 것일까.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일이다. 경의선을 관광으로 가는 분들은 임진각에서의 관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야 할 일이다. 그 곳에는 한반도 모양으로 조성하여 놓은 통일연못( 가로 12m 세로 36m 바닥 면적 116평), 1953년 휴전 당시에 한국전쟁 포로 12,773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하였기 때문에 명명하였다는 자유의 다리, 52년 전에 장단에서 멈추어 버린 증기기관화차(문화제 제78호)도 그렇지만 꼭 보고 와야 할 것이 더 있다. 6. 25에 희생 된 우리 장벽들의 임진강 지구 전적비, 미국군참전비, 그리고 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소 참배 중 북괴의 폭탄테러로 유명을 달리한 17명의 외교사절을 추모하는 위령탑, 1987년 김포국제공항 폭발사고 5위의 희생자 추모비와 그 위령탑 등이 소리없이 절규하고 있는 북괴의 만행을 까맣게 잊고 지내던 아픈 과거와 현실을 일깨워 줄 것이니까. 임진각 주변에는 이 이외에도 둘러볼 곳이 위 그림처럼 많다. 도라산 관광은 도라산까지 갔다가 그 근처를 보고 오는 것과 도라산 DMZ관광으로 나뉜다. 후자에는 버스를 타고 제3땅굴, 도라산전망대 등을 다니는 코스로 11,700원(경로 7400원)을 투자해야 한다. *. 도라산역(都羅山驛) 이야기 도리산역/ 도리산 남한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역이 파주 민통선 안에 있는 도라산역이다. 도라산은 비무장재대(DMZ) 남방한계선에서 700여m 떨어진 최북단이다. 이 도라산역의 이름은 해발 156m의 도라산(都羅山)에서 역 이름을 따왔다. 우리는 '도라산!' 하면 북녁땅을 바라볼 수 있는 도라산 전망대나 땅굴을 연상하지만 도라산이란 이름 속에 묻혀 있는 신라의 경순왕의 망국의 설음에 관한 전설을 살펴 보자.
-신라의 마지막 왕 56대 경순왕(敬順王)은 후백제 견훤의 도움으로 등극하였으나 국력이 쇠잔하여 후백제의 침략으로부터 도저히 나라를 지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기 879년(경순왕 10년) 경순왕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려에 항복하기로 하고 군신들을 이끌고 고려 수도 개성까지 와서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왕건은 자기의 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주어 경순왕을 부마(駙馬)로 삼아 위로하였다. 낙랑공주는 나라를 잃고 시름에 쌓인 경순왕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이 산 중턱에 암자를 지어 주니 경순왕은 조석으로 이곳에 올라 도읍('都'邑)이었던 신라(新'羅')를 바라보며 망국의 애통한 눈물을 흘렸다 하여 후세 사람들이 이 산 이름을 ‘도라산(都羅山)’이라 하였다.
경순왕은 천년을 넘어선 옛날 망국의 슬픔 어린 눈으로 신라의 도읍지 경주를 눈물로 보았다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분단의 슬픔으로 북녘을 우러르고 있다. 그 도라산역 내에서 본 다음과 같은 글귀가 우리들의 마음을 때리고 있었다. ‘ ←평양 205km/서울 56km→’ 남쪽의 마지막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
'오늘 우리는 보았다. 녹슨 철마가 56년만에 부활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싶다. 철마가 대륙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습을 ' '2007년 5월 17일 남북열차 시험운행 하던 날' 도라산 지킴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