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참고말씀: 스7:10; 시119:105; 잠8:17; 16:9; 사30:21; 단9:2; 요14:17,26; 16:13; 롬1:17; ; 빌2:13; 딤후3:14; 약4:2; 요일2:27
읽을말씀: 행17:11; 렘33:3
주제말씀: 행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첫째, 성경에 모든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요즘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성경은 더더욱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책을 읽는 것보다는 (영상물 등)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요즘에는 영상물도 그 분량이 길면 보지 않으려고 하니, 이마저도 짧게 만들어놓아야 볼까말까 합니다.
그러나 소원의 사람은 반드시 어떠해야 합니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물론 수만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먼저는 성경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모든 답이 이미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시면서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렘33:3 상) 무엇을 통해 응답하십니까? 성경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기도하면 거기에 맞는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심으로써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그리 하십니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왜 성경을 66권이나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까? 인간의 구원에 대한 명쾌한 답을 포함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들을 빠짐없이 기록해두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그러한 예들이 있습니까?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자신의 동포들이 70년 만에 해방되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나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9:2)
학사 에스라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연구하다가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곧 자신의 사명임을 깨달았으며,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7:10)
사도 바울도 하박국서를 읽다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성경을 읽기 시작해야 합입니다. 소원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찾고 이루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가까이 하고 매일같이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기도는 고사하고 성경도 잘 안 읽습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4:2 하) 묻더라도 성경을 통해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하나님과 무슨 대화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들은 것이 있어야 생각이 나더라도 날 것인데, 들은 것이 전혀 없으니 어찌 생각날 수 있겠습니까?
둘째, 성경은 소원사용설명서이기 때문입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소원의 사람은 왜 또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원을 찾고 이루어가는 ‘소원사용설명서’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데,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그 세부적인 지침을 제공하시고자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점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30:21)
그런데 만일 소원의 사람이 성경을 전혀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두신 소원을 찾을 길이 요원(遙遠)할 뿐만 아니라, 설령 찾게 되더라도 그 사용법(使用法)을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가전제품을 구입했는데 그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구입한 물건을 전혀 사용할 수 없거나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신 스마트폰 기기를 구입했는데 이것으로 전화통화나 문자만 주고받기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아직 하나님께서 두신 소원을 찾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찾기는 찾았는데 어떻게 이루어가야 할지 막막합니까? 그렇다면 당장 성경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다가 자신의 소원을 발견했으며 또 거침없이 이루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 간절한 마음입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행17:11 상)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소원을 간절히 찾는 자가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배우고 연구하려는 자세입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하) 어째서입니까? 성경이 분명 우리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했으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 상) 우리도 당현히 그러한 자세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읽어야 합니까? 매일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하) 매일 2~3끼 식사를 하듯이 성경도 규칙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어쩌다가 한 번씩 읽는 사람보다 정기적으로 읽는 사람이 훨씬 더 성경을 잘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말입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요14:17 상) 어째서입니까? 성령님만이 우리에게 성경의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소위 말씀묵상(큐티, Quiet Time)보다는 무엇부터 힘써야 합니까? 성경 통독입니다. 성경 통독을 몇 차례 한 후에 말씀묵상을 해도 늦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성경 통독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서 큐티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제대로 된 말씀 묵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본문의 왜곡이나 잘못된 적용 등의 폐해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경은 ‘소원사용설명서’임을 깨닫고, 우리의 소원을 찾고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있습니까?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