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90장 (구 444장) / 사도행전 27 : 1 - 8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90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전 27장 1절 – 8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아멘!
여러분! 바울이 드디어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15세기 초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서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죽어서라도 로마에 가 보는 것이 소원 이라는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바울당시의 로마는 온 유럽과 소아시아를 모두 점령하고 지배하는 큰 제국 이였습니다. 로마는 역사적으로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루터교 용병들의 침략으로 황폐가 되었으며 찬란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16세기말에 이르러 교황 식토스 5세에 의하여 로마가 다시 어느 정도 재건되기도 했으나, 1797년에 다시 나폴레옹 1세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는 수난 속에서 로마라는 제국은 서서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영원한 강자도 없고 영원한 약자도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는 과거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한 제국이었는데, 오늘 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요. 약한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 로마의 역사를 보면서 염려가 되는 것은 이 미국이 언제까지 큰 나라와 강한 나라라는 명성을 지킬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로마가 망한 것은 경제공황이 와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가 망한 것은 넉넉함으로 인하여 죄악이 넘치게 되었을 때, 로마는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로마로 가기를 원했던 것은, 당시에 찬란한 로마의 거리가 보고 싶어서나 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가 로마를 가기를 그렇게도 소원했던 것은 다메섹에서 받은 사명 때문인 것입니다. 즉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는 다메섹의 사명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사실상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은, 로마제국의 가이사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하여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불안한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으며, 그 교훈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은 자진해서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바울을 심문하던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이 바울의 증언을 들은 후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일을 행한 적이 없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재판 받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더면, 석방하려고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곧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은 누구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진해서 가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왜 자진해서 로마로 가기를 원했습니까? 그가 로마로 가기를 소원했던 이유는, 오로지 로마에 가서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도 유대인들이나 로마 병들에 의하여 강제로 지신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고, 스스로 자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과 닮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예수님을 닮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과 바울을 닮아야 합니다. 무엇을 닮아야 합니까? 주님의 교회인 해남중앙교회를 위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좀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자진해서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예루살렘과 로마인 불신 영혼들에게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축복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답게 보시는 봉사가 어떤 봉사입니까 ? 아주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자진해서 즐거움으로 하는 일입니다. 억지로나 의무감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바울과 같이 내가 로마로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위해서, 자진해서 복음의 현장으로 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이 죄인으로 가는 길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은 즐거운 여행길이 아니라, 죄인의 몸으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로마로 호송되어가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예수님을 닮은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점입니까? 바울도 예수님과 같이 죄 없는 자가 죄인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한번 바울과 같이 죄인 되어 보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나 십자가를 지고 죄인이 되시어 골고다 언덕에 오르셨고 거기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며, 사도 바울이 죄가 없었으나 죄인의 몸으로 로마를 갔기에온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됐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서로 싸우는지 아십니까? 내가 죄인이 아니고, 네가 죄인이라는 다툼 때문에 부부가 싸우고, 형제가 싸우며, 이웃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 같이, 바울 같이, 내가 한번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곳에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은 풍랑이 일어나는 길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다가 유라굴라 라는 태풍을 만나므로 배가 파선되는 수난을 겪게 됩니다. 당시에 바울이 로마로 가는 9월 – 11월 가을철, 지중해에는 바다가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면서 생기는 파도가 있어서 파선하는 배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종종 하나님께 왜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 주님!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왜? / 저렇게 진실하게 사는 사람이 왜? 그리고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왜? 고난의 풍랑이 일어납니까? - 이 질문에 주님은 제게 대답해 주십니다. “그게 주님이 가신 길이요.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이니라.” - 그렇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에 고난의 풍랑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풍랑을 인하여 사도 바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높이시려고 풍랑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만, 배안에 있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바울을 무시하고,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우리지 않았지만, 풍랑으로 인하여 배가 파선되므로 바울의 말씀의 권위가 높아지고, 배가 파선하여 메리데라는 섬에 오르게 되므로 그 섬이 짐승으로부터 추장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풍랑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롭게 살려고 할 때도 풍랑을 만나고, 고난을 당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통하여 무엇을 주시는가를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만난 풍랑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울과 같이 로마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억지로나 강제로 가지 마시고 스스로 자진해서 가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시들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인이 되기보다는 죄인이 되시므로 겸손해 지시며 평화를 이루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는 로마로 가는 길에 풍랑이나 고난이 있을지라도, 바울을 생각 하시면서 참고 인내하시므로 항상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