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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 기황후 貢女 奇皇后
“모진 비바람에 쓸리고 할퀴어 마모된 돌멩이가 더욱 야물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38
무심한 잡초들 사이로 우뚝 솟아오른 예쁜 분홍빛 살사리꽃 같았다. 희고 검고 회색빛의 고집 센 수염을 기른 나이든 재상들 틈바구니에 홀로 생글생글 미소 짓고 앉아있는 소홍의 모습이 꼭 그랬다. 그 곁에 자리한 진 대인의 얼굴 역시 다른 의미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을 제외한다면 진지함과 긴장이 감도는 이곳은 분명 정전이 맞았다.
“입후에 오르실 분이 이 자리에 와 계시니 분위기가 이리 밝을 수가 없습니다.”
재상들 가운데 누군가의 발언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허허허, 하는 데면데면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지고 있었다.
“폐하, 신 등은 참으로 훌륭한 혼처라 말씀드리고 싶사옵니다. 진 가문이라 하면, 연 가문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황후를 배출해 온 나무랄 데 없는 가문이 아니옵니까.”
“참으로 그렇습니다, 폐하. 황후 배출의 역사가 있는 가문으로만 혼인을 유지해 온 황실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에도 더할 나위가 없사옵니다.”
“여러모로 흠잡을 곳이 없질 않사옵니까.”
황제도, 고 환관도, 그리고 지켜보는 우겸 역시. 이미 이 자리의 모든 재상들이 진 대인의 손아래로 넘어갔구나, 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느닷없이 나타난 소홍의 등장에도 아무렇지 않은 재상들과, 저렇듯 시종일관 웃고 있는 진 대인 부녀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가 그럴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이 잘못이었다. 어쩌면 이것을 바라고 처음부터 시기적절하게 대도로 돌아와 연제를 몰아내는 일에 손을 보탠 것일지도.
“폐하, 어찌 답이 없으신지요.”
마지막 쐐기를 박는 진 대인의 질문이 장내를 침착하게 가라앉혔다. 황제는 진 대인을 내려다보았고, 그 곁의 소홍과 눈이 마주쳤을 땐 친절하게도 미소로 답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말대로 좌승상의 가문이라면 황실에는 매우 훌륭한 혼처가 될 테지만,”
...
“연모의 정이 없는 혼인이 어떤 결말을 얻게 되는지, 그대들은 이미 잘 알 것이다.”
주 황후와 황제 자신의 과거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무엇보다 그 점을 최우선으로 한 입후를 원하였고, 짐의 마음에 꼭 드는 여인을 입후에 올리려 한다. 이 결정을 지지해 줄 뜻있는 신복은 없는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뜻밖에도 진 대인이 황제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다른 재상들 또한 한 목소리로, 그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 여인이 누구인지를 물으며 같은 의견을 외쳤다. 진 대인이 다시 상황을 정리했다.
“신 등은 마땅히 폐하의 뜻을 중히 여기겠습니다. 마음에 두신 그 여인이란 혹, 공녀 ‘은’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신지요.”
우겸은 어떠한 고민의 흔적도 없이 그렇다, 고 답하는 황제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재상들의 반대 따위에는 얼마든지 응수해 주겠다는 자신감마저 묻어났다. 그러나 실제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다. 오래도록 두고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겸은 시선을 돌리다 저를 바라보고 있던 고 환관과 눈을 마주쳤다. 가벼운 목례로 눈을 돌리고는 다시 이어지는 진 대인의 말들에 귀를 기울였다.
“그 아이의 총명함을 신 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 총기가 과히 폐하의 치정에 좋은 영향을 미칠 만큼이라는 것은 과연 폐하의 배필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추었다고도 할 수 있는 증거일 것입니다.”
재상, 부재상들이 그 말에 열렬히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오나 폐하, 역사 깊은 우리 원 황실의 입후를 새로 정함에 있어 총명함만이 기준이 될 수는 없는 탓으로 염려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 등이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 것인지는 폐하께서도 이미 아실 것입니다.”
“........”
“폐하의 평화로운 치세에, 초라한 공녀를 황후로 맞았다는 오점을 역사에 남기려 하시옵니까.”
부러 자극적인 말로 황제의 속을 긁어 놓으려는 속셈이 눈에 뻔했다. 재상들은 두 손 두 발을 들어 그런 그를 지지할 기세로 여기저기 서들 웅성거리며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혀들을 찼다. 그런 무례함 들을 지켜보다 못한 고 환관이 장내를 정리하려 입을 떼려던 찰나였다. 환관 하나가 조용히 다가와, 누군가 기다린다며 그를 불러냈다.
“아니, 네가 어쩐 일이냐.”
//貢女 奇皇后//
“..그래서 재상들은 물론이고 부재상들까지 모두 진평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모양이야. ‘소홍’인지 뭔지 하는 여자도 정전에 함께 있다나봐.”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망처럼 도처에 퍼져있는 공녀들의 입을 통해서 소식을 알아온 언주가 급히 소식을 전했다. 은은 침착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방법을 강구하려 노력했다.
“이대로라면 불리하게 될 거야.”
“그렇겠네요. ‘공녀’라는 딱지 외엔 가진 것이 없으니까요.”
“가진 게 왜 없어.”
서운하단 투로 말하는 언주였다. 은은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진평 같은 능구렁이 재상이라면 황후가 되고 나서라도 몇 명이든지 네 편으로 만들 수 있어.”
“나한테, 뭐가 있는데요?”
“후궁에 들어앉은 꼭두각시들을 제외한 황성안의 모든 여자.”
“..네?”
“그래서 출신이란 게 중요한 거야. 이미 네 말 한 마디면 두 손 털고 거들어 줄 궁인들이 한 가득이라구. 이제 알았어?”
“말은 고맙지만, 이번 일만은 어떻게도 도와주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지만.”
너무 쉽게 인정하는 언주 때문에 은은 잠시 웃고 만다. 그러나 그만한 도움이라도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쯤은 있으리라, 은은 언주의 말을 곱씹으며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아...!”
“왜, 왜.”
“딱 하나, 써먹을 만한 무기가 있긴 있네요.”
“뭔데.”
“후궁에 있는 꼭두각시들 중에, 내 말대로 움직일 인형도 하나 있잖아요?”
은은 씨익 웃어 보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눈을 빛내는 은의 얼굴에 언주는 잠시 넋을 놓았다가는, 문을 나서는 은을 뒤늦게야 부른다.
“어디 가는데-”
“정전에요. 태감을 봬야겠어요.”
//貢女 奇皇后//
술렁이는 분위기 가운데 우겸의 눈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금세 다시 나타난 고 환관의 모습을 발견한다. 방금 전까지 굳은 표정이었던 그의 얼굴이 아주 부드럽게 누그러져 있었다. 또 뭔가 판세를 뒤엎을만한 비기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로군. 우겸은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폐하, 그 어떤 황실도 혼탁한 피를 들여 스스로 분란을 만들지는 않았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마지막 말이 강한 쐐기를 박았음을 확신했는지, 진 대인은 거기서 말을 맺고 물러났다. 그리고는 제자리로 돌아가 가장 아끼는 막내딸과 눈을 맞추며 승전을 확신했다. 때를 맞추어 고 환관이 한 발 앞서 입을 연다.
“좌승상의 말씀대로라면 공녀 ‘은’의 입후 불가한 이유는 단지 ‘공녀’라는 것 때문이고, 여기 계신 소홍 소저께서 입후하셔야 마땅한 이유는 오래도록 황제를 모셔온 가문의 내력 때문이다- 이것입니까.”
“그보다 확실한 이유가 있소이까.”
다른 재상들이 되려 고 환관을 향해 당연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진 대인은 늘 그렇듯 웃는 얼굴로 ‘무슨 말이든 해 보아라’는 투의 자신감을 만면에 띄운 채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 환관은 황제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이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서 이 언쟁에 질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보였다.
“하오면 신, 태감의 권한으로 여기 계신 분들께 은이 입후해야만 하는 이유와 소저께서 입후 불가능한 이유를 한 가지씩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벌 떼처럼 웅웅거리던 장내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무슨 당찮은 소리인가 싶은 재상들이 모두 귀를 열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우선 소저께서 입후 불가능한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소저와 폐하의 성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정략혼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미 폐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연모의 정이 결코 없는 혼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이보시오 태감, 정략이라니 그 무슨..!”
“아니라 하실 참이십니까. 외람되오나 제가 지켜본 바, 신하된 여러분들은 무례하게도 폐하께서 평생의 배필을 정할 권한조차 박탈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만.”
“어허, 거 말씀 한번 듣기 거북하게 하시는구려..!”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헛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황제가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소란은 금세 멎었다.
“허면, 그 ‘은’인지 하는 공녀가 입후해야만 하는 이유란 도대체 뭐란 말이오!”
“어서 말해보시오, 들어나 봅시다!”
재상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고 환관은 서두를 것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은이 입후해야만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장황하게 설명할 것도 없는 당연한 조건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란 말이오.”
...
“글쎄요, 폐하께서 드디어 후사를 보게 되셨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첫댓글 아.. 어떻게 되는 걸까요 +_+ 기대를 듬뿍 담은 시선을 보냅니다.
후사... 은에게 아이가 있었나요..? 은이가 소란이를 이용하려 하는것 같긴 한데 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다음화가 무척이나 기다려집니다!!!
설마 아이가 있을거라곤 생각하지도 않고...은이 소란을 어떻게 움직인건가요?ㅋㅋㅋ
-0-에헤이 설마 ㅋㅋㅋㅋㅋㅋ 뭡니까 태감님 ㅋㅋㅋ 작가님 빨리빨리 담편도 부탁해요~
아이아이아이~ 후사라니요?? 아이 담에 무슨일이 벌어질지 두근두근 해요~ㅎㅎ 작가님~ 정말로 스토리 구성 잘하시는 것 같아요. 준비되어온 스토리구성하나하나가 매끄럽게 이어지는군요 ㅎㅎ 이래서 작가님을 싸랑해용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