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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이 말세지말에 성령의 비밀을 증거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아버지께 모든 영광과 감사 그리고 찬양을 돌립니다.
재림주의 그 날이 가까운 지금, 모든 성도 분들이 어린양의 신부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부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르시거나 아니면 예수를 잘 믿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신부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실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신부를 소망하고 있는 깨어있는 다섯 처녀와 같은 알곡들에게 신부가 될 수 있는 성령의 비밀을 선포하시니, 성령으로 지금까지 인도하심을 받은 자들은 이 성령의 비밀계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성령으로 깨어있는 분들이라면 이스라엘과 우리 이방인의 영적인 관계를 모르시는 분들과는 달리 말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 하실 것과 그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마감케 되는 성경원리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끝을 맺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이방 은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특히 신부의 권세를 얻고 재림주의 신부가 되기를 갈망하는 알곡들은 반드시 우리 이방인과 이스라엘간의 숨겨진 하나님의 영적관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재림주의 신부가 될 수 없다고 성령께서 단호하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신부가 되어야 함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과 생각이 많고 정확히 모르고 있듯 이스라엘구원에 대한 방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상황인 것 입니다.
이제, 때가 되매 성령께서 이스라엘구원의 방법을 비밀의 계시로써 깨어있는 성도들을 향해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 비밀의 계시는 이 땅 한국에서 먼저 선포될 것이며 그 후 온 열방을 향해 달려 갈 것 입니다.
하지만, 이 계시의 최종적이고 주된 목적지는 이스라엘이라 성령께서 강조하십니다.
지금 까지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성경 내용을 잘 아시는 분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이스라엘 구원을 위해 선교사로 직접 이스라엘로 떠나시거나 아니면 국내에서 그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야말로 영적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구원이라는 영적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인 그 분들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예수이름과 은혜복음 아닙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무기를 가지고 전쟁터로 나간 뒤 지금까지 승전보를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저 이스라엘 민족이 통회하고 자복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메시야 셨도다.
이 일을 어찌 할꼬 ! 우리가 우리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을 박았었도다.
예수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런 회개의 역사가 온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 주 예수의 은혜를 저들이 받고 있나요?
아직까지 그런 소식은 저나 여러분들이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왜 이스라엘이 아직까지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율법에 갇혀서 죄의 고통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원과 그가 갖고 오신 은혜복음이라는 믿음의 약이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수의 강퍅함과 완악함으로 인해 약효가 발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들이 지금까지도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2)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 이름과 은혜복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전도한다는 것은 그들 병자들에게 약효가 없는 약을 계속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병이 나을 수가 없죠. 구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 23:39)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미 은혜복음에 의한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 유보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사람도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 병에 맞는 약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셔서 율법과 여호와 이름만 고집하여 죄의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치유 못하셨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한분도 없으실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모략이 숨어 있었으니, 예수라는 이름과 은혜복음은 소수의 이스라엘사람과 다수의 이방인인 우리들을 위한 이름이요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신 32:20,2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 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 이니라 "(롬 11:11)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1,1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 찌니라"(눅 17:24,25)
(행 18:5-6 , 22:17,18) (마 23:37-39)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이미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와 은혜복음의 주 대상이 이스라엘이 아닌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코자 주신 이름이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을 구원하는 그리스도 이름과 말씀을 이스라엘 땅에 보내시고 저들이 거부 했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합법적으로 이방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 11:25)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6-48)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19,20)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1,12)
이제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자 이 이방땅 한국에서 하나님의 새이름(계 2:17, 3:12,14:1)새로운 말씀인 "영원한 복음" (계 14:6),"감추었던 만나"(계 2:17)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아들 예수이름과 은혜복음의 만나를 발로 짓밟았음에 이러한 보화가
합법적으로 이방 땅 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이 비밀의 계시 또한 이방교회로부터 정죄함을 당하여 합법적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최종 목적지인 이스라엘구원을 위해 들어가게 될 것 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복음의 만나에 배가 부른 우리 이방교회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의 새이름과 영원한 복음이라는 감추었던 만나를 먹고 이스라엘과 같이 신부의 의를 받으라는 성령 하나님아버지의 명령을 과연 믿음으로 영접할 수있을까요?
율법과 여호와만 알고 있었고 모세의 제자라고 자랑하며 선민사상에 빠져 자고 했던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예수라는 메시야이름과 은혜복음의 만나가 믿음으로 영접함을 받았었나요?
예수께서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어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의 죄가 그저 있는니라."(요 9:41)
하신 말씀처럼 여호와의 이름과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엄청난 이적과 기사를 오랜 세월동안 체험한 이스라엘입장에서는 여호와의 이름과 율법이 예수님을 판단할 측량자로서 드러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고함과 교만함이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고 말았지요.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이방인들도 오직 예수, 오직 은혜복음의 만나, 예수님의 제자라고 이스라엘사람들 앞에서 증거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본 자들" 이라고 자고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하나님 이름과 감추었던 만나 ,영원한 복음을 믿음으로 영접하여 신부의 의를 받으라고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누가 들을 수나 있겠습니까?
예수의 이름과 은혜복음의 만나를 통해 우리 이방인들이 너무나도 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이적을 체험한 경험이 있는 중에 새로운 하나님이름과 새 진리인 감추었던 만나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먹으라고 하실 때 그 어떤 은혜의 자녀들 중에 얼마나 많은 자가 기쁘게 응할까요?
하지만 다수의 이방교회는 초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복음에 대해 율법을 사용하여 정죄했던 이스라엘의 전철을 밝게 된다고 주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은혜복음 안에 있는 자들 중에서 아래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 말씀인 영원한 복음을 정죄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 1:6-8)
하지만 예수님의 은혜의 시대에는 당연히 은혜복음만이 증거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 은혜복음안의 예언서인 요한 계시록에서 예언된 새로운 복음인 "영원한 복음" (계 14:6),"감추었던 만나"(계 2:17)를 드러내실 때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경륜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새로운 복음인 이 영원한 복음, 감추었던 만나를 변하게 하는 시도를 할찐대 재림 주의 엄중하신 경고가 적용될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19)
결국,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인 영원한 복음을 믿고 신부영광을 받을 이방교회 성도 수는 소수가 될 것 이라 하십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
또 다른 중요한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 이니라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 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 이니라"(눅 5:34-39)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궁극적인 속뜻에 대해서 이제 성령께서 경륜적으로 풀어 주시고자 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은혜복음이고 묵은 포도주는 율법이라는 것은 다 알고 계실 것 입니다.
하지만 새 부대는 무엇이고 낡은 부대는 무엇이라 알고 계십니까?
이는 다름 아닌 이방인을 새 부대로 이스라엘을 낡은 부대로 비유하셨음을 성령의 인도로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이는 이미 예수께서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 이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은혜복음의 만나를 먹지 못할 것을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전부터 먹어오던 여호와라는 하나님께서 율법이라는 공의의 음식을 주셨기에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랑과 은혜의 맛인 은혜복음의 만나를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롬 11:8-10)
이 은혜복음의 만나는 오히려 이방인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었기에 우리들은 예수안에서 은혜복음의 만나를 배부르게 먹었던 것 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는 앞으로 금식하게 될 것 이라 하신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하시니 하나님의 새 이름(계 2:17,3:12,14:1)과 "영원한 복음" (계 14:6) "감추었던 만나"(계 2:17)라는 이스라엘입맛에 맞는 새 진리를 그들에게 주심으로 이스라엘이 믿음으로써 신부의 의를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그 후에 이 완악한 이스라엘백성들이 회개하고 자복하는 주의 놀라운 역사가 완성될 것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슥 12:10-14)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깊으신 모략과 비밀을 통해 그 분의 무서운 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우주를 포함한 천지창조를 하셨을 때 루시엘(범죄후에는 루시퍼)을 비롯한 천사들이 찬양을 하나님께 돌렸을터인데 그 우주가 자기들이 갇힐 감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마찬가지로 저 이스라엘백성들이 자기들을 구원해주시기를 바라며 그토록 갈망하고 소망했던 메시야가 결과적으로 자기를 심판하는 심판주로 드러나시게 될줄 꿈에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말세 지말에 신부되기를 소망하며 신랑 되시는 재림 주를 고대하고 있는 우리 이방인들이 과연 몇 명이나 신부로서 재림 주를 신랑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세워져있으니,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 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0-14)
이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새 이름과 새 진리를 선포 하실 것인데 다수의 이방교회는 하나님아버지의 새로운 비밀의 경륜을 모른채 성령 훼방죄를 범하게 되어 재림주의 심판에 들어가게 됨을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로써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0-36)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 질것이니
예수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순종치 않음에 가두시어 이방인에게 구원문을 열어 자녀의 긍휼을 주셨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새 이름(계 3:12)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순종치 않을 것이 작정되어 있으니 이는 이스라엘에게 신부의 긍휼을 베푸시려 하심 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재림주 앞에서 어떤 열매를 맺어 재림주 앞에 내어 놓아야 할지를 성령께서 증거하고자 하십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이르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19-23)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귀신 쫓고 권능을 행하고 전도 및 목회로 주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도 그 날에 주님은 왜 모르신다 하실까요?
그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성령 도우심과 후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는데도 왜 그 날에는 그 종들을 모르신다 하시는 걸까요?
저분들처럼 예수를 위해 충성한 자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은혜복음 안에서 예수 믿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신앙 생활하는 우리들 중 저분들처럼 귀신 쫓아본 적 있는 분들이 몇이나 되며, 권능까지 행할 정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며 성령의 폭발적인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이 몇 분이나 될 것 같습니까?
저분들보다 더 큰 예수에 대한 믿음과 은혜복음에 대한 믿음과 지식을 가진 분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들도 나름대로 "주여 ! 예수여!"외치며 주를 찾는데 ,그런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믿음을 비교하면 정말 엄청나신 능력의 종들 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주님은 모른다고 하시네요.
예수에 충성하고 은혜복음의 말씀 안에서 권능까지 행했는데도 모르신다 하시네요.
주님께서 모르신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 아닙니까?
이게 왠 일 입니까? 이게 어인 비극입니까?
그럼, 도대체 능력의 종들 조차도 주님은 그날에 불법을 했다시며 모른신다 하시는데 일반 성도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걸까요?
그 어떤 누가 재림 주 앞에 설수 있단 말일까요?
주님께서 모르신다 하신 이유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불순종하며 불법을 했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그 아름다운 열매란 어떤 열매이며 아버지의 뜻과 그 불법은 어떤 행동을 두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초림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침례요한을 통해 성령께서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 3:8-10)
하셨으니 이때의 좋은 열매란 자녀라는 열매를 믿음으로 맺어 초림주 앞에 내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와 동일하게 그 날에 재림 주를 신랑으로 맞는 우리는 신부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믿음으로 맺어 주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을 요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라는 좋은 열매를 맺을때 어떻게 맺었나요?
예수라는 그리스도 이름과 그가 증거 하신 새 포도주인 은혜복음을 믿고 맺지 않았습니까!
우리 인생들이 영이신 하나님과 관계하는 방법은 믿음의 도밖에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그럼 재림 그리스도께서 또다른 아름다운 열매를 내놓으라고 하시는데 그 열매 또한 행위로 맺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죠.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해서는 행위가 아닌 그저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함을 은혜복음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죠.
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한다 말일까요?
그 힌트는 성경말씀 속에 있습니다.
바로 법대로 하지 않았다, 불법을 했다는 것 이죠 .
아까 그분들처럼 예수의 진리 ,법도에 충실했던 자녀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예수의 법도인 은혜복음의 법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법이 있고 그 새로운 법을 믿었을 때 법대로 경주했다 하시는 것입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딤후 2:5)
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믿음이 예수에 대한 믿음이겠습니까? 재림하실 것에 대한 믿음이겠습니까?
아니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하신 주께서 이미 영혼 구원받은 우리에게 다시 그 믿음을 확인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이 말세 지말에 주님께서 요구하실 믿음은 다름아닌 신부의 권세를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새 이름과 새 진리의 말씀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녀열매를 맺은 우리가 다수의 완악했던 이스라엘사람과 달리 성령의 새로운 법도인 예수라는 하나님아들의 이름과 은혜복음이라는 새 진리를 믿음으로 영접 할 때에만 자녀반열이라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이 말세지말에도 동일하게 성령의 새로운 법도인 하나님의 새 이름(계 3:12)과 감추었던 만나(계 2:17). 영원한 복음(계 14:6)이라는 새 진리를 믿음으로 영접 할 때에만 신부반열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성령으로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바로 이러한 신부의 열매를 하나님의 새 이름과 영원한 복음인 감추었던 만나를 믿음으로 영접치 못한 은혜교회안의 많은 주의 종들이 그 날에 주님으로부터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라는 청천 벽력같은 저주의 말씀을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이 예언은 마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율법과 여호와라는 잣대로 초림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요 7:49)하며 초림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정죄하여 성령 훼방 죄를 저지른 것과 같이 이방의 은혜복음안의 목자들도 그 전철을 밟게 됨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 예언말씀이 주의 종들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임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가 앞으로 신랑 되시는 재림주의 혼인잔치자리에 참석을 해야 할 터인데 우리 신부된 자들의 의무는 신부예복을 입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신부예복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성경에서 증거 하신"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롬 13:14)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그 말씀이 있다하여 초림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 신부예복 준비한 것 일까요?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성경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롬 8:14-16)
라고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는 부모와 자식관계까지만 허락하시고 부부관계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천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 속에 갇혀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바(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던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데 그분을 "여보, 당신"이란 부부관계에서 쓰는 호칭을 쓸 수 있습니까?
이제 재림주를 내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방법이 구약성경을 통해서도 이미 알리셨으니 ...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초림 주 예수이름과 은혜복음을 믿고 구원의 옷을 입어 자녀가 되는 것과 재림주의 새 이름과 영원한 복음을 믿어 의의 겉옷인 신부예복을 더하여 입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을 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후 5:2~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6-20)
결국 예수이름과 은혜복음을 믿고 재림주의 신부가 되기를 소망한다면 이스라엘의 완악한 다수가 종 반열에 처할 수밖에 없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이름과 율법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자녀반열로 올라가려고 했던 불법적 행동과 성령 훼방죄를 저지른 것과 동일한 범죄인 것입니다.
이제도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될 것이니 자녀의 권세를 가진 우리가 신부의 권세까지 받으려면 자녀의 권세를 얻을 때와 같은 원리로 받아야 함을 성령으로 깨우치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해, 예수라는 하나님 아들의 이름,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입어 자녀권세를 얻었듯 하나님의 새 이름과 감추었던 만나인 영원한 복음을 믿음으로 신부의 권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물며 자녀반열을 창조하시기 위해 예수라는 하나님의 새 이름과 은혜복음이라는 새로운 말씀이 필요했는데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1,12)
자녀권세보다 더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신부권세을 창조함에 있어 하나님의 새 이름과 은혜복음보다 더 신령하고 온전한 말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율법 속에 갇히어 “우리는 오직 여호와이며,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모세의 제자이며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니라.”라고 선민사상에 빠져 자랑하며 자고했던 다수의 완악한 이스라엘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려, 하나님의 새 이름인 예수와 새로운 말씀인 은혜복음을 주시어 하나님의 자녀를 창조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짓 밟아버렸지 않았습니까?
예수라는 하나님의 새 이름과 은혜복음이라는 새로운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하여 자녀의 권세를 얻은 우리가 볼 때 이러한 이스라엘의 완악한 행동이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측은하며 안쓰럽기까지 합니까!
따라서 은혜복음 안에서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예언해놓으신 계시록에서 영원한 복음이라 표현하셨음은 우리인생들을 구원코자 복음이라는 단어를 쓰셨고 그 구원의 목적은 바로 육체의 곤고함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은혜복음으로는 육체구원을 이룰 수 없다고 증거 하신 예수님의 신약성경말씀을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10)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우리 육체가 죽는다는 것은 말씀대로 죄와 상관하기 때문이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해주셨다면 영혼이 죄와는 상관없게 되어 해방 받은 것처럼 우리 육체도 죄와 상관없게 되어 해방되었어야 함에도 우리는 매일 피 흘리기 까지 싸우는 피곤함중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 우리 육체는 죽을 수밖에 없고 썩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라고 하심으로써 은혜복음의 한계 즉, 영혼은 구원하는 복음이나 육체의 구원은 이룰 수 없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이름을 믿어도 사단과 피를 흘리는 싸움을 해야하는 은혜복음의 멍에를 져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3,4)
또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라고 주께서 말씀 하셨음과 같이, 우리 이방인들은 주 예수의 은혜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혼의 자유를 얻었으나 그 이후에도 육체는 쉼 없는 사단과의 싸움으로 항상 피곤한 중에 있음을 영적으로 살려는 성도들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영혼은 자유를 얻었으나 육체는 자유함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 1:5)
라는 말씀으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영혼구원을 얻었지만 재림 그리스도께서는 육체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예수님께서 걱정을 하시며 재림하실 때의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그 믿음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겠습니까?
재림을 하실 지에 대한 믿음이겠습니까?
그 믿음은 다름 아닌 육체구원을 줄 수 있고 신부의 권세를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새 이름과 감추었던 만나인 영원한 복음을 믿는 믿음인 것 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순차적으로 질서 있고 조화롭게 은혜복음 -영원한 복음
이라는 말씀으로 영혼-육을 온전하게 완성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롬 8:22-25)
"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 4:18)
다시 말해 예수라는 이름과 은혜복음은 신부를 창조하는 역활이 아닌 죄인과 상관하여 자녀를 창조하는 역할 임을 천명 하신 거죠.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말씀을 수레바퀴로 삼으시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천지창조도 말씀으로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물며 자녀반열뿐만 아니라 천지창조도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신부반열의 창조는 말할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질서와 조화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3,24)
다음은 성도들의 환난 통과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이 성경에서 예언한 말세 지말이며 이제 곧 적그리스도가 그 정체를 드러내며 등장 할것이라는 것은 깨어있는 성도님들이라면 영적인 감각으로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부가 되는 방법과 이스라엘구원의 방법에 관한 생각과 의견이 많은 것처럼 우리성도들의 환란통과여부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도 확고하시니 모든 성도들은 빠짐없이 적그리스도의 환란을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성경말씀 또한 확실하게 그 뜻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증거하시는 성령의 뜻과 성경근거를 통해서 여러분들은 내키지는 않지만 성도들이 반드시 환란을 통과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시게 될 것입니다.
우선 성경 말씀 중 성도들의 환란통과에 대해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구절들을 상고 해볼까 합니다.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단 7:20~25)
“ 수 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고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 하였더라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단 8:8~14)
“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엄장하며 궤휼에 능하며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비상하게 파괴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궤휼을 이루고 마음에 스스로 큰체하며 또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
이미 말한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라 “(단 8:23~26)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편 언덕에 섰더니
그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때 두때 반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단 12:5~7)
“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계 13;4~10)
사실 위의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들의 환란통과여부에 관한 논란은 이미 무의미하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확실한 말씀으로 성도들의 적그리스도 환란통과에 대해 확정해 놓으신 하나님 앞에서 환란 전 휴거나 특정인 일부만 환란을 통과한다고 주장을 한다면 하늘 보좌에 계신 주께서 그들에게 냉소를 보내실 것이 분명합니다.
언제인가 저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설마 그 험악한 상황에 우리를 내버려 두시겠느냐!”라는 매우 인간 편의 주의적이고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며 비성경적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영혼육을 적그리스도 앞에서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지극히 아찔하고 위험한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 안일하고 무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정작 적그리스도의 환란이 닥쳤을때 과연 그가 그 혹독한 시기를 견딜 수 있을까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그러한 말씀을 하시는 분들께 저 또한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지혜있고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기의 자식을 강하게 키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무런 고난과 어려움 없이 자란 자식이 나이가 차서 부모의 품을 떠나 거친 세상을 살 때 과연 그가 꿋꿋이 자기의 영역을 개척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 장성하고도 믿음직한 성인이 될 수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나가 똑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환난 전에 휴거 받지 못하고 이 땅에 남아 환난을 통과하는 자들은 별도의 사명자 아니면 성화가 덜 된자 들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앞서 증거한 다니엘의 예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은혜교회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손에 붙임 바 되어 성도들이 싸움에 지고 성도들의 권세가 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환난 전에 휴거 받는 성도는 어떤 성도이고, 환난을 통과하는 성도는 또 어떤 성도라는 말입니까?
성도라는 단어는 거룩한 자라는 의미인데도 말입니다.
거룩한 자가 성화가 덜 된 자인가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1,12)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성도들의 환난 통과는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성도이기 때문에 환난을 피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택하신 성도이기 때문에 환난을 통과하게 하시어 정금같은 믿음을 소유케 하시어 신부의 영광을 덧 입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더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 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적그리스도의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제 정작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들을 환란통과 하게끔 하시느냐에 대한 주의 생각과 의도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유익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히 5:8,9)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 12:10)
이러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 신부들은 영 혼 육이 온전하고 정결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고 그 고난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환란통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원리는 성경의 사건을 통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며 하나님의 복을 얻는 과정에서 환도 뼈가 침을 당하는 고난까지도 불사하며 매달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라는 옛 이름을 이스라엘로 새롭게 개명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이러했던 것처럼 야곱이라는 이름의 자녀들은 환도 뼈가 침을 당하는 고난과 같은 환란을 통과 함 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축복된 새 이름을 받았던 야곱처럼 자녀반열에서 신부라는 더 신령하고 영광스런 반열로 나아감을 얻게 된다고 성령께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장차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성도들을 핍박 할 것이라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주께서 말씀 하셨으니 이렇게 자신 있게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 성령의 비밀의 모략을 증거 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그 7년 동안의 대 환란은 매우 혹독한 시기로서 나약한 인생들로서는 감당키 매우 힘들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마 24:21,22)
“And except those days should be shortened, there should no flesh be saved: but for the elect's sake those days shall be shortened ” (KJV Mt Chapter 24:22)
“But God has already reduced the number of days; had he not done so, nobody would survive. For the sake of his chosen people, however, God will reduce the days ” (TEV Mt Chapter 24:22)
한글 성경과 두 종류의 영어 성경을 모두 올린 이유는 “그 날들을 감하시라” 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읽어 보신바와 같이 그 날들에 해당하는 기간인 7년 환란기간에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만 전3년 반만 통과케 하시고 나머지 후3년 반의 기간을 빼주시겠다고 예언해 놓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라는 말씀이 환란을 통과하지 않게 하신다는 뜻이 절대로 아님을 우리 모두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라고 하신 것처럼 당신의 택하신 알곡들을 “ 피난처 (예비처) ”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 (계 12:3-6)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계 12:13,14)
그럼, 전 3년 반 동안의 환란을 통과한 택하신 알곡들이 들어간다는 그 피난처(예비처)는 하나님께서 과연 어느 곳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곳은 다름 아닌 “에덴동산”을 가리킨다고 성령께서 말씀 하십니다.
“할렐루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의 기록대로 에덴동산을 지금까지 보존하시고 계십니다.
앞으로 때가 이르매 그 에덴동산을 신부될 자들을 위해 드러내시겠다고 하십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20:26)
에덴동산인 이 피난처로 들어가는 엄청난 장면을 구약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해고를 말리우시고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서 그 하수를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 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사 11:15,16)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기사를 보이리라
가로되 열방이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려서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오며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 (미7:15-17)
이와 같이 예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 영혼 구원을 얻고 또다시 하나님의 새 이름을 믿고 전 3년 반환란을 통과해 육의 구원도 받은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알곡 성도들을 피난처인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7)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 이로다” (계 22:14)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냥 휴거시키시지 않으시고 굳이 피난처인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죠.
그 이유에 대해 성령께서 성경사건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십니다.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케 하는 기한을 마치며
처녀가 왕에게 나아갈 때에는 그 구하는 것을 다 주어 후궁에서 왕궁으로 가지고 가게 하고“ (에 2:12,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출 19:10,11)
이와 같이 구약 시대 때 여호와께서 모습을 안보이시는 강림에도 이스라엘백성들이 행위의 성결이 필요했고, 세상 왕 앞에 나아가는 처녀라 할지라도 그 규례가 엄한 것을 우리가 알찐대 하나님의 신부가 될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은 하나님과의 혼인식에 나아가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에 의한 절차가 있다 하십니다.
그 절차에 관한 성경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계 12:13,14)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 (계 12:6)
하나님께서 신부될 처녀들인 알곡성도들에게 양육하신다함은 그것은 하나님말씀으로 양육하실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말씀이 바로 “감추었던 만나”(계 2:17)요 “영원한 복음”(계 14:6)인 것입니다.
과연 그러하실진대 우리 성도들이 피난처인 에덴동산으로 들어갈 때 누구의 인도를 받아 들어가게 하시는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진두지휘하시지는 않으시겠죠.
바로 그 사명을 받은 자가 "두 증인"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사용하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셨듯이 앞으로 알곡 백성들을 피난처인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실 때에 모세와 아론과 같은 두 증인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곧 적그리스도의 환란을 통과할 때 예수 이름을 믿음으로써 환란을 이기려고 할 것이나 실패할 것을 이미 성경은 예언해 놓고 있습니다.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
(단 7:20~25)
“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
“(단 8:8~13)
“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엄장하며 궤휼에 능하며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비상하게 파괴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
(단 8:23~26)
“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 13;4~10)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때 두때 반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단 12:5~7)
우리는 어떤 이름을 믿고 자녀의 권세를 얻었나요?
다들 잘 아시다시피 예수라는 하나님 아들의 이름이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도들의 권세가 깨어지고 성도들이 싸움에서 진다는 뜻은 결국 예수의 권세가 깨진다는 뜻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권세가 깨진다는 뜻은 예수께서 증거 하신 은혜복음의 효력을 잃는다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기근이 예언되어 있는 것
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암 8:11~13)
결국 이 예언 말씀은 열 처녀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등불속의 기존기름이 떨어져가는 그 비유와 같다는 것입니다.
(마 25:1-13)말씀을 해석함으로써 성령의 뜻을 잘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열 처녀를 비유하신 성경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상징하는 바에 대해서는 그 해석을 조금씩 달리 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제 그 말씀을 하신 성령께서 직접 하신 그 해석을 증거하고 자 합니다.
본문 내용 중 모든 분들이 간과하시는 것이 미련한 처녀와 지혜로운 처녀의 판정기준인 새로운 기름을 예비했느냐 그렇지 않았냐가 아닌 두 부류의 처녀모두가 기존등불을 밝히는 기름은 이미 가졌었고 이 기존의 기름이 떨어져감에 따라 새로운 기름이 필요할 때 그 새로운 기름을 예비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운명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에 대한 간과인 것입니다.
열 처녀가 누굽니까?
신랑으로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고대하는 교회 안에 있는 자녀들 아닙니까?
그럼 그 열 처녀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기름은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다름아닌 보혜사성령이시요 바로 은혜복음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기존의 기름이 덜어져가고 결국에 꺼질 것을 말씀하셨으니 이제 새로운 기름을 예비할 때가 왔으니 바로 이때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어두워 갈 때 빛이 있으리로다."(슥 14:7)
이천년 전 다수의 이스라엘사람들이 예수님의 새 포도주를 싫어한바 되었을 때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눅 5:39)라고 하신 예수님말씀이 이 비밀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에게 성령의 경고로 받아들여져야 될줄 믿습니다.
이 말씀은 그 어떤 은혜의 종들이라 할지라도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비밀이기에 “각자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비극에 처 할 수 밖 에 없다”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새 기름을 파는 자에게 가서 믿음이라는 돈을 지불하고 그 새 기름을 예비하여 신부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새 기름이 이 말세지말의 성령의 비밀계시 말씀인 감추었던만나(계 2:17)인 영원한 복음(계 14:6)이며 그 새 기름을 파는 자가 두 증인(계 11:1-3)인 것입니다.
이 천년 전 예수께서 증거 하신 새 포도주인 은혜복음이 낡은 부대인 이스라엘의 배척함으로 인해 새 부대인 이방으로 넘어가 영접함을 받았듯
이제도 동일하게 은혜복음보다 7배나 더 진한 새 포도주인 영원한 복음을 낡은 부대인 이방교회가 배척함으로 인해 새 부대인 이스라엘로 넘어가 그들이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계11:1-3)
결국, 동방의 해 돋는 나라 이 한국 땅에서 두 증인을 탄생시키시고 두 증인에게 감추었던 만나인 영원한 복음을 계시하고 ,두 증인을 이스라엘로 들어가게 하시어 이스라엘을 신부로서 구원하신 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 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 같이 밟을 것이니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여 알게 하였느뇨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능히 고하는 자도 없고 보이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사 41:25-27)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사24:15,16)
예수님께서도 두 증인에게 하나님의 새 이름과 영원한 복음의 새 계시를 주실 것을 소원하셨습니다.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
(마 11:27)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에도 예언해 놓으셨으니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슥 4:11~14)
두 증인인 두 감람나무의 두 가지에서 금 기름이 흘러내리는 것을 묘사해 놓으셨으니 그 흘러내리는 금 기름이 바로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예비한 감추었던 만나요, 영원한 복음인 이 계시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새 기름을 파는 자에게 가서 믿음이라는 돈을 지불하고 그 새 기름을 예비하여 신부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바로 그 새 기름이 이 세대의 새로운 계시 말씀인 감추었던 만나, 영원한 복음이며 그 새 기름을 파는 자가 두 증인인 것입니다.
앞으로 두 증인이 이스라엘로 들어가 2000년 전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린 그 완악함을 책망할 것이며 초림 주이신 예수님이 그들의 메시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장소에서 순교를 당하게 하시어 예수의 발자취를 재현하게 하십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 11:7-12)
그 후, 예수님의 신부들인 이스라엘의 보존되고 남은 자들을 인도하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을 수종들고 순교한 예수님의 제자인 두 증인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된다고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 이니라 "(마 20:20~23)
이러한 역사는 공평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사 5:16)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0~33)
그리고 2000년 전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린 그 완악함이 아직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초림 주 이신 예수님이 그들의 메시야 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주어 이스라엘을 신부로서 단장함을 얻게 만들어 주는 사명을 맡은 자가 또한 두 증인 인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이것이니
2000년 전 예수께서 초림 하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들은 예수이름을 배척하고 있는 현실에서두 증인으로 하여금 또다시 예수이름을 선포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증거 하였던 것처럼, 그 이유는 이스라엘사람들에게는 예수라는 이름과 그가 증거하신 은혜복음이라는 만나는 이미 효력이 없는 약이 되어버렸기 때문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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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두 증인이 하나님의 새 이름을 들고 이스라엘로 들어갈 것을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율법이 아닌 새진리인 은혜복음이라는 편지내용의 겉봉투에 발신자인
예수 이름을 기록하여 이방으로 들어갔듯 이제도 영원한 복음이라는 새로운 편지 내용과 겉봉투에 발신자인 하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하여 메신저인 두 증인의 손에 부치시어 이스라엘로 전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새 이름은 "멜기세덱"이라 성령께서 밝히십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멜기세덱에 관해 알고는 있었으나 젖과 같은 은혜복음을 먹어야 할 시기인 어린 자녀들이 먹기에는 하나님의 새 이름과 영원한 복음은 단단한 식물이었으므로 증거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 이니라“(히 5:11~14)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
(히 7:1~10)
이제 때가 되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두 증인이 증거 하는 하나님의 새 이름인 멜기세덱을 믿는 소수의 이방 알곡성도들과 다수의 이스라엘의 남고 보존된 백성들을 예수님의 신부로서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예수)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8,9)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새 이름인 멜기세덱을 존중하고 그 멜기세덱이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새 이름속에 담겨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아간다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히 5:8~10)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는 것처럼,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좇아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을 주께서 확인 시켜주시는 것입니다.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히 7:7)
이 모든 하나님 아버지의 역사를 성경사건(창 24:1~67)의 그 상징하는 바를 통해 성령께서 다시 풀어 주시고자 하십니다.
아브라함=멜기세덱 하나님 아버지
이삭=신랑이신 예수님
이방인 다메섹 엘리에셀= 이방인 두증인
리브가=신부인 이스라엘의 보존되고 남은자
내 고향 내 족속중 나의 며느리를 취하라=예수님의 본 고향 이스라엘사람들
내 아들을 데리고 가지 마라= 예수님이 아닌 두 증인을 통해 예수님의 신부를 불러옴
그 주인의 모든 좋은것을 가져감=하나님 아버지의 새 이름인 “멜기세덱”과 영원한 복음인 철장권세를 소유함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신부를 택하시는 역사를 두 증인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철장권세를 허락하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상징적으로 증거해 놓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새 이름인 멜기세덱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신부의 의를 주시어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믿음으로 영접하시어 신부의 영광에 동참하시길 멜기세덱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라나타!" "아멘!"
*별첨
◩ 멜기세덱(Melchizedek)에 관한 성령의 참된 해석 ◪
왜 아버지 하나님의 새 이름이 멜기세덱인가?
먼저 성경의 말씀에서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새이름 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창14:17~20> ꡒ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ꡓ”
(성경 : 창세기 14:17~20, 시편 110:4, 히브리서5:11, 7:1~15)
1. 멜기세덱은 왕이면서 제사장이다.
<창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 당시 곧 율법에서 정식으로 여호와의 제사장이란 직분을 공시하시기 전에 그는 이미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었다.
이런 직책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뿐이다.
웃시야 왕도 제사장의 직책을 대행하려다가 문둥이가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는 왕과 동시에 제사장이 될 수 없다.<대하6:16~23>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는 사실이 기록된 말씀과 제사장이시라는 기록이 나타난 말씀을 살펴보자
<요18:3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시110:4>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히3:1)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 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이러한 기록들을 보더라도 예루살렘의 왕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였던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시며 주님이심을 알 수가 있다.
2. 멜기세덱이 그리스도이심의 증거인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 떡의 상징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살이다
포도주의 상징은 그리스도의 피 곧 아브라함과 아직도 그 허리에서 태어날 천하 만백성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피다.
자신의 살과 피를 가진 권세로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구원하시려고 그의 살과 피로서 아브라함을 대접한 것이다
*그러면 떡과 포도주가 왜 예수의 몸과 피로서 나타날 수 있는지 그 짝이 될 만한 말씀을 찾아보자
<마26;26~28>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하시고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이 피니라"
그러므로 멜기세덱이 가지고 나온 떡과 포도주는 피와 살을 말씀하신 것이니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피와 몸을 나타내신 기록이다.
3. 멜기세덱은 축복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창14:19> "천지의 주재 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히7:4,7>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빏을 받느니라"
그 당시 만민의 귀감이요 그 믿음의 조상이였던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수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육체를 갖고 있는 인자로서 이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권위에 참예하였던 멜기세덱을 보니 인자의 육체에 그 복을 빌어 주실 수 있는 권세를 주시려 함이 아니요 그 거룩하신 이름에 그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하나님과 함께 동등될 자격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이라는 그 이름이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서 아브라함을 향해 축복하실 수 있는 주님의 권세가 있었다는 것이다.
4. 멜기세덱은 전쟁에 대한 의의 판단을 내리신 분이다.
<창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 지로다"
전쟁 곧 아브라함이 마귀와 전쟁한 일에 대한 의의 판단을 내리시고 축복하신 것을 보니 은혜의 주님이신 예수가 아니신 심판을 원래의 목표로 하시고 공의와 심판의 권세로서 마귀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려는 것이 원 목적 이였던 아버지 하나님 곧 심판주로서의 성품을 가지신 이름이 멜기세덱이심으로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은혜의 주님으로서 싸움을 허락지 않으셨다
<눅22:49~51>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대 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마26:52> "검을 가진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전쟁과 심판이 아버지의 심판의 경륜이 드러날 때 발생할 것을 예수께서 아시고 예언하셨다
<요12:48>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나의 한 그 말 곧 계명을 들어서 일일이 심판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또 다른 돌의 세대를 예고하신 것이다.
<엡3:5>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마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이것은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려는 시온에 나타나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의 성격이며 은혜의 교회들과 세상을 심판과 형벌하실 신원의 날을 의미한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멜기세덱에게 주님은 자신의 지혜와 그 권세 곧 단창의 철장을 하사하셔서 자신이 못 다 이룬 이스라엘 회복을 이루심과 함께 천년왕국을 지구상에 이룩하사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시려는 심판주로서의 사명을 멜기세덱의 이름으로서 성취하신다.
5. 멜기세덱이 십일조를 받으셨다.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소유물인 것을 강조하시면서 명시하셨다
멜기세덱은 십분의 일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였기에 멜기세덱의 이름은 주님의 이름이시다.
십일조를 받치는 의미는 주님의 떡과 포도주로서 생명 곧 영생을 공급받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그 주님을 대접하는 의식의 상징이다.
6. 멜기세덱은 하늘의 왕이시다.
멜기세덱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던 그 당시 예루살렘의 근황이나 형편에 대해서 소개하시지 않고 마치 영적인 것처럼 예루살렘의 의미를 영적으로 뒤처리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멜기세덱은 천국에 거하시는 아버지이심을 깨달을 수 있다.
7. 멜기세덱은 심판주의 이름이다.
은혜아래 봉해 두셨던 난해한 아버지 세대에 대하여 친히 해석하셨다.
<히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
<요16: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계2:17>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계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 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이 멜기세덱의 봉해 두신 해석이 흰 돌과 함께 어우러져서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고 이것을 해석한 자가 심판주의 권세를 갖도록끔 조치하셨다.
8 멜기세덱은 족보가 없는 자다.
족보가 없는 사람임을 강조하셨다
<히7:3> "아버지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그러나 반대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와 하나님의 자손들의 기록은 아담부터 시작하는 거룩한 혈통을 중요시 여겨 역대기와 성경 곳곳에 명시해 두셨다.
또한 예수님의 인자로서 그 탄생하심을 생각하사 예수님의 육신적인 그 윗대 조상들의 족보에 관해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고 까지 예수님의 족보를 성경에 거론하셨다
멜기세덱의 족보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드러나지 않고 있기에 그 이름은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이심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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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멜기세덱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자다.
<히7:3>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멜기세덱의 출생과 사망에 대한 기록을 빼사 영적으로 뒤처리하셨기에 이는 마치 모세의 사체를 미가엘 천사장이 뒤처리하듯이 하셨고 또한 유독히 시작과 끝이 없음을 성경에 명시하셨기에 심판의 하나님이신 아버지의 이름 곧 신부들의 이마에 기록될 새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예수는 반대로 출생과 사망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사 마치 예수의 한번 죽으신 것이 오점으로 기록되셔서 여느 인생들처럼 흙의 유한성을 지니신 주님의 특성이 부각되어 있다.
<창3: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10. 멜기세덱은 아버지의 이름이다.
<히7:3> " 하나님이 아들과 방불하여..."
‘방불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있던 인성과 신성 중에 신성을 가지고 있는 같은 신이심을 말씀한다. 따라서 아들이 가지고 있는 신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버지시다
<요10:29>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요14:28>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 예수 위에 모범적 인물로서 거론하신 분이 예수보다 더 크신 아버지의 성호임을 알 수 있다.
지성소 시대를 개막할 대제사장이시다.
증인이 아버지의 권세를 받게 되므로 멜기세덱은 아버지의 성호이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롬 13:11)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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