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발등 찍은 공인중개사 처벌과 배상은 요원하다.
경향신문, 류인하 기자, 2023. 4. 24.
전세사기 피해자 A씨(27)는 23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전세사기 공범인 공인중개사들을 왜 사기죄로 처벌받게 할 수 없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모든 상황이 다 힘들지만 제일 화나는 건 계약을 했던 공인중개소는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A씨는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려다 포기했다. 입증 책임이 피해자인 A씨에게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적힌 ‘공인중개사의 설명을 충분히 들었다’는 문장 확인란에 체크한 것도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말까지 들은 데다 사회초년생인 A씨는 변호사비를 감당할 경제적 여력도 없었다.
홍정환 법무법인 루트 대표변호사는 “중개인이 주택의 권리관계나 임대인의 자력 등에 대한 중요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가 고객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중개인은 ‘고지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뿐 아니라 형사상 사기죄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 경우 임차인이 중개인의 고의·과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이 지난해 공인중개사의 설명의무 범위를 두껍게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소송이 증가할 가능성은 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6월30일 임차인 B씨가 경매로 넘어간 전셋집을 중개한 공인중개업소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낸 ‘공제금등청구의소’에서 “다가구주택 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임차인들의 선순위임대차보증금의 액수 등에 대해 중개인이 고지하지 않았더라도 중개행위에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문제는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더라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공인중개사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피해배상금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임차인은 임대차계약 체결 시 중개업소로부터 계약서 원본과 함께 ‘부동산 공제증서’를 받는다. 사고가 났을 때 공인중개사가 중개책임을 지고 배상해주겠다는 일종의 증서다. 정부는 2021년 공인중개사의 책임한도를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상향 조정해 중개업소의 보증한도를 높였다. 부동산 거래 시 공인중개사에게 중개수수료를 내는 이유도 중개사가 이 같은 책임을 지겠다는 보증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증한도액 2억원’이라는 것은 계약별 한도가 아닌 1년간 1개 중개업소에서 발생한 모든 거래의 총 합계액이다. 이마저도 소송을 통해 배상범위가 확정되기 때문에 1억원 미만 소액 임차인들은 승소하더라도 배상액보다 변호사 비용만 더 들 가능성도 있다. 강서구 화곡동, 인천 미추홀구 등 한 지역에서만 전세사기 피해자가 수백명에 이르는 경우에는 중개업소에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 자체가 실익이 없는 셈이다.
류호연 변호사(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는 “정부의 전세사기 방지대책을 보면 주로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정보비대칭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근본적으로 임차인이 위험성 있는 전세계약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인 만큼 공인중개사의 책임강화 등 전세사기 위험성이 있는 전세계약이 체결되지 않도록 하는 입법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