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의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 한국 정부는 전향적인 태도로 베트남전 진실과 마주하라!"
2023년 2월 7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62세)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의 1심 선고에서 재판부가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응우옌티탄의 이모와 언니, 남동생 등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오빠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라고 밝혔고,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정부 측 주장에 대해서도 "원고에게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며 대한민국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퐁니·퐁녓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이 한국 정부에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한 지 11년 만에 정부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책임이 인정된 첫 사례이자, 1999년부터 베트남전쟁 과거사 문제가 한국 사회에 공론화된 지 24년 만에 얻은 의미 있는 성과이며, 다가오는 퐁니·퐁녓학살 55주기(2023년 2월 12일)를 맞아 한국과 베트남의 시민들이 오랜 시간 기다렸던 평화의 소식이다.
1968년 2월 12일, 사건 당시 8세 어린이였던 응우옌티탄은 한국군의 학살 피해로 복부에 심각한 총상을 입고 극적으로 구조되었으며, 그의 가족 5명이 목숨을 잃는 피해를 당했다. 2013년부터 한국 시민들을 상대로 증언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15년에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 사회의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며, 2018년에는 베트남시민평화법정의 증인으로서 증언대에 섰고, 2019년에는 청와대를 방문하여 103인의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유가족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후 2020년 4월부터 국가배상소송이 시작되어, 2022년 8월 원고 당사자 신문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응우엔티탄은 수차례 진실(sự thật)을 강조했다.
1심 승소 소식을 접한 응우옌티탄은 “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영혼들이 저와 함께 하며 응원해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혼들도 이제 안도할 수 있을 것이고 위로가 될 것 같아 너무도 기쁩니다.”라며 재판부와 연대의 마음을 보내준 한국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퐁니·퐁녓 학살은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 사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증거 자료와 이야기들이 알려진 사건으로 그간 주목을 받아왔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오랜 세월 천착해온 언론인, 법률가, 활동가, 연구자의 노력 속에서 지난 20년간 베트남전쟁 과거사 문제의 중심에 퐁니·퐁녓과 응우옌티탄이 자리했다. 4년에 걸친 정보공개청구소송을 통해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는 퐁니·퐁녓사건 관련 자료의 목록을 확인한 성과도 있었으나, 국정원은 재판부의 요청에도 여전히 자료 내용의 공개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과거사 문제는 한국 정부의 외면과 침묵 속에서 오랜 세월 제자리걸음에 머물렀으나, 이번 승소 판결을 통해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재판부가 4년에 걸친 심의 끝에 퐁니·퐁녓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한 만큼 베트남전쟁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가 요청된다. 그리고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 국가의 전쟁범죄에 대하여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은 점과 국가 간 협약의 문제를 넘어서 민간인 피해자의 청구권이 법적 효력을 갖는다고 인정한 부분은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 사이의 문제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 시민 사회가 품고 있는 여타 전쟁범죄와 과거사 문제 해결의 진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 기대한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이 베트남전쟁의 참전국이었음을 명백히 자각하는 동시에, 민간인학살의 가해책임을 국가에 묻는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범죄행위에 대해서 개인의 형사적 책임을 넘어 국가의 책임을 묻고 배상을 요구한 사법적 판단은 실제의 법정에선 이뤄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번 1심 승소는 역사적인 판례로서의 위상을 지닌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 차원에서 민간인학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나 책임을 언급하는 일은 없었고, 베트남 또한 승리의 역사 속에서 민간인학살이라는 ‘공적 없는 죽음’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회피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1심 승소의 사법적 판단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 정부의 성의 있는 대응과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
그동안 응우옌티탄과 연대하며 그의 국가배상소송을 지원하고 베트남전쟁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공론장 형성을 위해 노력해온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는 재판부의 이번 1심 선고 결과를 환영하며, 한국 정부와 한국 시민사회에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첫째, 법원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명예를 걸고 한국의 시민들이 요구하는 인권과 정의의 정신에 부합하는 베트남전쟁 과거사 문제 관련 판결이 내려지도록 앞으로 진행될 심의를 흔들림 없이 이어가야 할 것이다.
둘째, 이번 1심을 통해 재판부가 퐁니·퐁녓 사건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만큼 국정원은 정부 차원의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이밖에도 외교부와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들도 베트남전쟁 진상규명과 관련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들이 확대되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원고 응우옌티탄 이외에도 수많은 베트남 학살 피해자들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 현재 21대 국회에서 발의를 앞두고 있는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되어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제도적 차원의 기반을 확립하고 베트남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부차원의 진상조사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는 2022년 4월 하미마을 학살 피해자들이 제출한 진상규명 신청에 대해 신속히 조사를 개시하여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끝으로, 응우옌티탄의 이번 베트남전 피해자의 국가배상소송을 통해 한국 사회가 한국군 민간인학살 문제 이외에도 전시성폭력, 라이따이한, 참전군인 등 다양한 층위의 베트남전쟁 과거사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이 있고 다양하게 성찰하고 숙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3년 2월 8일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일동
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T/F,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수요평화모임, 아카이브평화기억, 아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한베평화재단
첫댓글 너무나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