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중앙일보
새우의 귀족, 독도새우
심해의 차가운 바닷속 숨겨진 맛
사실 아는 사람만 알았다. 2017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 만찬에 ‘독도새우’라는
메뉴가 올라가기 전까지는 그냥 귀한 새우 중 하나였을 뿐이다.
대다수 국민들에겐 이름조차도 생소했다.
한국인에게 큰 새우라면 서해에서 나오는 대하나 남해의 보리새우가 기본.
온 국민이 다 아는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의 가사에도 독도의 생산물은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 알물새 알…’ 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새우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옛날 기사를 좀 찾아봤다. 1976년 8월, 한국 자연보존협회 답사대가 독도를 방문했을 때 당시 보도 기사에는
독도 근해 새우의 주종이 ‘도화새우’였다는 보고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도화새우는 맛이 좋고 상품성이 뛰어나 잡히는 족족 일본으로 수출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동해안을 방문하지만, 이런 까닭에 그중 독도새우를 맛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같은 동해안에서도 어떤 사람은 독도새우란 꽃새우를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닭새우가 독도새우라고 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트럼프 방한이 독도새우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 준 셈이 됐다.
본래 ‘독도새우’라는 이름은
울릉도와 독도 근해, 넓게는 동해안 일대에서 잡히는 세 종류의 새우를 통칭하는 말이다.
정식 명칭으로 하면 도화새우, 가시배새우, 물렁가시붉은새우다.
우리나라 해양 생물의 이름은 대체 누가 지었는지, 정작 바닷가에 가면 어류도감에 나오는 이름으로 불리는
어종이 더 드물 지경이다. 도화새우는 그냥 도화새우지만 가시배새우는 닭새우, 물렁가시붉은새우는
꽃새우라고 불러야 알아듣는다. 그러니 앞으로 이 글에서도 닭새우와 꽃새우라고 부를 예정이다.
이 세 종류 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밥상에 올라갔던 것은 도화새우.
좀 아쉬웠던 건 너무 작은 도화새우가 올라갔다는 점이다. 워낙 귀하신 몸이라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도화새우도
마리당 5000원은 줘야 먹을 수 있지만 본래 도화새우는 17~20cm 정도까지 자란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소줏병만한 개체도 있다.
닭새우는 닭 벼슬처럼 요란한 대가리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사실 저 먼 남해바다로 가면 닭새우라고 불리는 새우가 따로 있다.
영어로 하면 크레이피시. 집게발이 없는 랍스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크기에선 큰 차이가 나지만 맛으로는 동해 닭새우가 절대 뒤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꽃새우. 이 동해안 꽃새우는 도화새우과지만 서해에는 보리새우과의 진짜 꽃새우가 있다.
하지만 동해안에 가서 ‘물렁가시붉은새우 주세요’하면 알아들을 사람이 없으니 역시 그냥 꽃새우라고 부른다.
동해 꽃새우, 서해 꽃새우가 각각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맛에 대한 얘기 없이 종류 설명이 길었는데,
백종원 대표도 말했다시피 세 종류의 새우는 맛에서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세 종류 모두, 대하를 기준으로 하면 깜짝 놀랄 정도로 달고 살이 단단하다.
입에 딱 넣어 보면 어지간히 미각이 둔한 사람도 당장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도새우 삼총사를 먹기로 했다면, 요리법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많지 않다.
이런 놀라운 살 맛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날것으로 먹는 게 최선이다.
어떤 조리법도 살아있는 독도새우의 맛을 해칠 뿐이다.
그러니 제대로 맛을 보려면 산지 가까이, 동해안으로 가야 한다.
서울에서도 독도새우를 취급하는 전문점들이 적지 않고 요즘은 기술이 좋아 새우들이 산 상태에서 서울까지 오지만,
아무리 곱게 다뤘다 해도 바다에서 갓 건진 놈들과 어항에서 하루 이틀 지난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난다. 정말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백종원 대표는 독도새우가 담긴 통을 받아들고 잠시 감동의 묵념을 했고,
이내 새우를 한마리 한마리 꺼내어 큰 칼로 머리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초
장과 간장을 준비했지만, 사실은 양념도 필요 없다. 그냥 껍질을 깐 뒤 입에 넣으면 바로 동해 바다가 느껴진다.
한동안 녹화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천하의 백종원 대표도 씨알이 그리 크지 않은 독도새우를 까서 입에 넣는 데
너무 전념한 나머지, 다른 코멘트는 할 새가 없었던 것이다(심지어 생새우를 먹는 동안은 맥주 한 잔 곁들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20여 마리의 새우 살이 증발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껍질이 울퉁불퉁해 까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닭새우(괜히 본래 이름이 가시배새우가 아니다)가 없었더라면,
다 먹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이면 충분했을 것 같았다.
워낙 비싼 새우인 터라, 살만 먹고 버릴 건 아니었다.
백종원 대표는 일단 잘라낸 머리와 꼬리를 한데 모아 튀기기로 했다.
대하를 먹어도 원래 머리는 모아 튀기는 것이 기본이지만, 꼬리를 모아 튀기는 건 흔치 않은 일.
단단한 새우 머리도 기름에 튀기면 바삭바삭 씹히는 감자칩처럼 변한다.
특히 찌거나 구운 상태에서는 새우 머릿속의 내장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짜 새우의 맛은 머릿속에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비스크(bisque) 소스는 머리가 없다면 낼 수 없는 맛이다.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튀겨진 새우 머리를 씹어 본 사람이라면 거기서 뿜어나오는 아름다운 육즙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백종원 대표의 소감. “꼬리 안 튀겼으면 후회할 뻔 했네. 지금 마음 같아선 껍질 남은 것도 다 튀기고 싶어.”
새우라는 종은 크건 작건 어지간하면 다 맛있다.
심지어 같은 생선 중에서도 새우를 먹은 놈은 값을 더 쳐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 서 남쪽 바다에서는 모두 맛있는 새우가 나오지만,
지금 이 순간 독도새우만큼 맛있는 새우는 다시 없을 거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물론 그와 함께 다시 떠오르는 슬픈 생각은 바로 가성비.
이날 제작진이 본 독도새우 가운데서도 15 가량의 대물 도화새우는 단 1마리뿐이었다.
1970~80년대까지는 일본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의 원천 역할도 할 정도로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마리당 만원을호가할 정도로 귀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이미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나라 전체가 절대 빈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시절엔 해양 자원 보호 같은 말들은 씨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좀 먹고살 만해진 요즘엔 울릉도와 독도 주변에서 독도새우 어장을 되살리는다는 의미로
매년 수십만 마리의 새우 치어를 바다에 방류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얘기다.
하루빨리 동해 바닷속이 독도새우로 가득 차는 날이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송원섭 JTBC부국장 song.weonseop@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