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이타리아로 넘어 오니, 고속 도로가 일직선으로 아주 머리 반듯하게 뚫린 것이 눈에 확 들어 온다.
무솔리니가 대외적으로 자신의 애인을 만나러 가기 위한 용도라고 홍보를 하였었으나, 기실은 제 2차 세계 대전을 수행용으로 만들어졌으며, 병사들이 그늘 속에서 행군할 수 있도록 도로 상에는 많은 키 큰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무솔리니 그는 이미 세계인들에게 전범으로 낙인이 찍혔 있으나, 이탈리아 국가 부흥에는 상당히 기여도가 커서, 우리 나라의 박정희 대통령식으로, 이탈리아의 나이 든 층들으로 부터는 그에 대해 상당한 향수를 자아 내게 한다고 한다.
유럽을 1,200년간이나 지배하였던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의 유적지들을 둘러 보고, 그것을 불과 몇 페이지에 그 내용을 다 담으려 하면 그 발상 자체가 무모한 짓이리라. 그래서 나는 단지 그냥 피상적으로 이번에 취득한 지식만을 그냥 설파해 볼 예정이다.
적어도 이탈리아의 주요 여행 행선지라면, 밀라노, 피렌체, 베니스, 로마를 둘러 보아야 하는데, 여행의 지역 여건상 베니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은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두루 둘러 본 셈이다.
우선 이탈리아는 우리 나라와 비슷하게 반도이면서 국민성도 우리와 비슷한 반도 기질로 쉽게 흥분하였다가 쉽게 잊어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 나라 월드컵 팀이 이탈리아팀을 이기는 바람에 우리 교포가 약 2 주간 동안 바깥 출입이 어려웠었으며, 당시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일본인들이 멋모르고 바깥에 출입을 하였다가 한국인으로 오해를 받아 많은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정작 이탈리아인들은 우리 나라 축구가 세계 4강에 올라 간 것 보다는, 축구장 12개를 단지 1 년내에 모두 지은 것에 대하여 아주 상당히 경이롭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그 네들은 축구장 하나를 짓는데도 몇 해씩 걸려 지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를 아주 인상 깊게 느끼고 있다 한단다.
이탈리아의 최대 공업 도시이며 경제적 수도로, 가구와 대성당으로 유명한 밀라노(Milano)에서는 고딕 양식으로 137명 성인 조각상이 붙은 130여년에 걸쳐 건립된 밀라노 두오모(Duomo) 성당을 둘러 보았다.
의류의 일류 패션은 프랑스 파리에서 이미 이탈리아 밀라노로 넘어 와 있다고 공언 되듯이, 밀라노 거리에는 고급 의류상들이 즐비하게 눈에 많이 뜨였다.
이탈리아의 북서부쪽인 밀라노에서 중부쪽인 피렌체(Firenze)로 이동을 하였다. 피렌체는 15세기초 피렌체의 재벌 메디치가(家)가 권력을 장악하여 예술과 학술을 후원하는 등 르네상스의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후에 1532년 메디치가의 세습체제가 확립되고 피렌체의 공화국이 막을 내릴 때까지 피렌체는 수도가 되었었다.
이런 연고로 해서 이탈리아는 지금도 로마어가 아닌 피렌체어로 이탈리아 국가 표준어를 삼고 있다.
"모나리자의 미소", "최후의 만찬" 그림으로 유명한 레오날드 다빈치(Leonardo Davinchi)는 "피렌체의 다빈치라는 곳에서 온 레오날드"란 뜻이다.
피렌체에도 바티칸 성당 다음 번으로 제일 큰 두오모 성당이 있는데, 녹색, 빨간색, 흰색의 대리석들이 꽃처럼 화려하다 하여 "꽃의 성모 성당(Santa Maria del Fiore)" 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 곳에도 세일 수 없을 만큼 성인 조각상들이 건물에 놓여 있었다.
피렌체에서 다시 중부쪽의 로마로 이동을 하였다.
로마하면 아무래도 나에겐 이미 고인드이 된 Gregory Peck과 Audrey Hepburn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가 생각이 난다. 하기는 이제 60 이 다 된 내게도 그 영화를 다시 본다면, 내 가슴은 마구 쿵쾅 쿵쾅 뛸 것 같다.
그래서 로마에서 펙과 헵번이 만났던 계단에서도 사진 한 방을 찍었고, 펙이 헵번에게 모 나라의의 공주라는 자백을 실토케 하기 위해 로마 시내에 위치한 건축물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란 곳에서 한참 기달려 나도 사진 한 방을 찍었다.
로마에서 남루한 단테의 생가, 콜로세움(Colosseum)을 관람하였고 3 갈래 길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트리톤이 끄는 해마(海馬)를 바다신 넵투누스가 몰고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등을 돌리고 샘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로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전설로 유명하다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에도 가서도 사진은 찍지를 못했고 단지 시원한 맥주만 두 잔을 마셨다.
인구 6천 만명의 이탈리아에 3 백만이 거주하고 있는 로마내에, 인구 천여 명의 세계 최소 도시 국가인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이 도로에 백색선을 국경으로 하고 있다.
이 곳에는 바티칸 박물관, 성베드로 대성당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곳에 입장하기 위하여 세계인들이 인파의 행렬을 이루어 있기에 최소한 2시간 이상의 열을 서서 기다리면서 입장을 하여야만 했다.
박물관에는 많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한 조각상들이 즐비하며, 시스틴 소성당(Sistine)에는 미켈란젤로의 벽화,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파", 그리고 궁정 천장에는 구약 창세기의, "아담의 창조", "천지 창조", "해와 달의 창조", "원죄", "노아의 방주" 등의 그림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다.
특히 "최후의 심판" 그림에서는 그림 그리는데 미켈란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던 체니아 교황을 실물로 악마속 뱀에 감긴 형상으로 그려 놓았으며, 전 인간들이 나체로 그려져 있는 바람에 성당에는 부적합하다 하여 교황 파올로스 3세의 지시에 의거 미켈란젤로 작품의 나체화를 다니엘 다보르테가 추후 속옷 그림을 그려 넣었다.
바티칸 시국은 무솔리니 정부와 교황청 사이의 라테른 조약에 의하여 소국가로 독립이 된 것이며, 이타리아 중부에는 이탈리아 국가에 편입 되기를 거부하였던 유럽 최소 국가인 인구 3만의 산 마리노공화국이 존재하고 있다.
2000년 이상의 고도시 로마는 12 세기의 천상심의 원통형 볼트(Barrel Vault)의 고딕(Gothic), 17 세기 장중한 바로코(Baroco), 18 세기 가볍고 우아한 로코코(Rococo) 양식의 고대 건물들이 함께 공존하며 즐비하게 있었고, 도처에서 많은 고대 건물들을 수리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으며, 그대로 건축 기둥만 보존된 곳들도 있었고, 그리고 이번에 그리이스 로마 신화 관련 조각상에 대한 전설을 나름대로 많이 공부를 하였으나 한정된 지면상이라 하나도 적기할 수 없음에 매우 애석하게 생각 된다.
우리 한반도는 꿈에도 소원은 조국 통일을 외치고 있으나, 이탈리아는 우리와 정반대로 남북이 갈라 지기를 몽매불매 기다린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은 북쪽은 1 인당 국민 소득이 미화 25,000불이나 남쪽은 채 5,000불도 되지를 안해, 북쪽에서 계속 남쪽 동포를 벌어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분리 독립을 원한다 하니 우리로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 진다.
이번 서부 여행기를 다룸에 있어 많은 독자가 지루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겠으나, 그 동안 참고 모두를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작년 9월 부터 앓기 시작한 왼쪽 팔 50 견이 다 나으면, 다시 한번 몸을 추수려 해외 여행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
첫댓글 창세기 에덴 동산에 최초 인류를 한국인으로 만들었어야 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한국인은 뱀을 보신용으로 잡아 먹기에, 결코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는 우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이죠. ^&6
난 언제나 이탈리아 가볼까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