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이 경제 관련 질의를 할 때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게 하나 있다.
"재벌을 해체하라”는 주문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외침은 일반 국민의 전폭
적인 지지를 받는다. 적어도 내가 겪어본 범위 내에서는 그렇다. 이 나라의 재벌들
이 얼마나 미움의 대상이었는지 그리고 국민들에게 비친 그들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
는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경우 어느 자리에서도 “재벌을 해체하라”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 나라의 재벌 규모는 너무 작다. 키워도 한창 더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전개하면 독자들 가운데는 “이게 웬 망발일까”라고 여길 사람
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인내를 가지고 조금만 더 들어주기 바란다.
95년도에 우리나라에서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회사는 97개사다. 이걸 일본 돈으
로 따지면 1천4백억엔 남짓밖에 안된다. 일본에는 이런 회사가 발에 채일 정도로 널
려있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 수준이 되자면 일본인구를 우리의 3배로 쳐준다 해도 97
개사가 5백개로 늘어야 겨우 이야기가 된다. 경제규모 세계 11위의 우리나라를 5위정
도의 세계중견국가로 일으켜 세우려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나의 뜻
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재벌의 나쁜 점을 고치자면 그들을 해체해서 작아지도록 만들게 아니라 우리나라 재
벌 특유의 병리를 고쳐줘야 한다. 가족지배와 끝없는 상호지급보증 그리고 상호증자
가 그것이다. 이 책이 경제 강의를 목적으로 씌여지는 게 아니니까 구체적인 설명은
삼가겠지만 상호지급보증과 상호증자야말로 1개 가족이 수십개의 회사를 끝없이 소
유. 장악. 지배하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늘여갈 수 있는 마의 요술방망이임을 알
아두기 바란다.
전두환대통령 시절의 신병현부총리, 노태우대통령 시절의 최각규부총리 그리고 김영
삼정부에서는 몇몇 소장관료들이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애써봤지만 번번이 판정패
했다. 따라서 나는 이 문제의 해결은 최고통치자가 그 문제점을 깊이 깨닫거나 파악
한 경우에만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대기업 그리고 재벌들은 더 키워야 한다. 예컨대 현대
자동차의 경우 지금 세계 12위의 생산실적을 자랑하고 WTO 체제하에서 살아남기 위
해 10대 메이커를 향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세계1위인 미국 GM의 규모는 전
세계 1백90여개국 가운데 GNP 규모가 GM의 판매액을 상회하는 나라가 19개국 밖에 없
을 정도로 엄청나다. 경제규모 세계 5위의 중견국가가 자신의 대표적 제조업체인 현
대자동차나 삼성전자를 지금의 4~5배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나의 얘기는 결코 허욕이
아닌 것이다.
이런 얘기가 흔히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나인들 모를 리 없다. 하지만 21세기
초엽 하나된 한반도 배달민족국가가 세계중견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말
로 피해야 할 일이 있고,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어야 할 일들이 있다. 이를 구분해
야 한다. 재벌의 상호증자와 상호지급보증을 제한해서 가족지배를 단계적으로 불식하
고 재벌그룹이 부실에 빠질 경우 관련된 은행을 살리기 위해 억지춘향으로 밑빠진 독
에 물 붓듯 지원하는 병리현상을 고치는 것은 찬성이다. 하지만 대기업과 재벌의 규
모를 축소시켜야 한다는 종래의 해체주장은 과감히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집을 높이
짓자면 기둥의 크기와 길이도 함께 달라져야 할 게 아닌가.
현재 우리기업의 규모확대와 세계화를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장애는 기술자립의 실패
에 있다. 정부규제보다 이문제가 훨씬 심각한 장애요인이다. 예컨대 5년 안에 세계
10대 메이커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나 단일조선소로는 세계 최대의 생
산실적을 자랑하는 현대조선소 등이 그 자동차와 선박에 탑재할 엔진의 자력개발에
아직도 자신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주요부품을 선진국으로부
터 수입하고 주요기술은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제품을 만들어가지고는 설령 기업규모
를 늘여간다 해도 온전한 의미의 세계중견국가 도약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세계최대
의 반도체 공장을 가졌다 해도 공장설비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들여오는 시스템으로
는 그 의미가 반감된다는 얘기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한한 70년대와 80년대의 일본정
부와 기업들이 보여준 합심협력을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기술자립의 중요성과 관련해서는 이런 예가 있다. 히틀러가 1941년 6월 소련침공에
나섰을 때 그 기세는 문자그대로 파죽지세였다. 그러나 소련은 후퇴를 거듭하면서도
크리스마스때까지 우크라이나 지방에 있는 3백개의 복합공장을 비롯 1천3백개의 대공
장을 동쪽으로 소개시켰다. 그 결과 스탈린그라드에서 옴스크로 뜯어 옮긴 트랙타 공
장은 대전말기 지상전에서 결정적 공헌을 한 T34 전차를 생산했고 다른 공장들도 모
두 제 몫을 했다. 이렇게 수많은 공장을 뜯어 옮긴 다음 다시 가동시킬 수 있었던 원
동력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설계에서부터 가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술을 소련이
제 손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이와같은 기술자립 덕분에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공업기술을 가진 독일을 상대
로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주코프의 회고록에 의하면 1945년 4월 마지
막 공세를 준비했을 때 소련군이 공세 첫단계에서 사용할 포탄 7백14만발을 운반하
는 데만 7만8천량의 열차가 사용되었고 그외의 군수물자 수송에 사용된 화차를 일렬
로 세우면 1천2백KM나 된다고 했다.
이런 엄청난 생산력은 러시아의 천연자원이나 슬라브민족의 투혼만으로는 절대 설명
되지 않는다. 나사못 하나에서부터 전투기 엔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책의 독자 가운데 유수한 재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특히 귀기울여 주기 바란
다. 나는 여러분들의 회사가 지금 보다 몇 배 더 커지고 월급도 몇 배 더 많이 받는
날이 올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도울 방법이 있다면 무슨 일
이든지 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핵심 기술이 5년 이상
로열티 주고 빌려쓰고 있는 중이라면, 그리고 값비싼 부품을 5년 이상 선진국으로부
터 수입해서 쓰고 있다면 지금당장 사무실 벽에 머리를 짓찧으면서 참회하기 바란
다. 자본력과 시장장악력에 기대어 나라의 장래는 생각하지 않고 언발에 오줌누기식
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자기자신과 소속 회사에 대해 참회하라는 뜻이다.
서점에는 없을듯 싶습니다. 출판시에는 베스트셀러에도 올랐지만 오래된책이어서.. 지금 이 책을 보완해서 출판하기위해 준비중입니다. 곧 새책이 출판될 예정이니 그때 보시지요. 예전의 책을 원하시면 주소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카페 자료실로 가보시면 보실수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홍총무님의 이런 합리적인 미래지향이 우리의 희망이 되고있습니다.
홍총무님이 쓴 책에서 발췌한 것인가요? 그럼 시중에 있나요?
의원님 홈피에서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서점에는 없을듯 싶습니다. 출판시에는 베스트셀러에도 올랐지만 오래된책이어서.. 지금 이 책을 보완해서 출판하기위해 준비중입니다. 곧 새책이 출판될 예정이니 그때 보시지요. 예전의 책을 원하시면 주소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카페 자료실로 가보시면 보실수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역시,홍짱은최고져,,,역대국회의원에서 장,차관,대통령까지 개인재산의2/1만 사회사업에 기증하면, 우리나라는 일등복지국가가 되고도 남을껄요,